가장 먼저…
전후 연합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차 대전 기간 중 독일에 점령된 국가들이 독일 공군에 공급하기 위해 생산한 항공기는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국 가 | 1941 | 1942 | 1943 | 1944 | 총 계 |
프랑스 | 62 | 668 | 1,285 | 502 | 2,517 |
체코슬로바키아 | 819 | 568 | 805 | 1,955 | 4,147 |
네덜란드 | 16 | 75 | 414 | 442 | 947 |
헝가리 | 0 | 0 | 73 | 344 | 417 |
이탈리아 | 0 | 0 | 32 | 79 | 111 |
통계에도 나타나 있듯 독일이 가장 재미를 본 국가는 체코였습니다. 일단 오스트리아를 제외하면 가장 먼저 독일의 수중에 들어온 산업화된 국가였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제국항공성(RLM) 내에는 체코의 기업들에게는 항공기 완제품 생산대신 부품과 반조립 정도만 맡겨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우데트(Ernst Udet)가 체코의 공업시설 활용을 적극적으로 밀어 붙였기 때문에 이미 1939년 말에 체코의 항공기 제조업체들은 독일공군으로부터 총 1,797대의 항공기 생산을 수주 받습니다. AVIA가 이때의 경험으로 전후에도 Bf 109의 짝퉁(?)을 생산한 것은 유명하지요.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체코의 군수 산업체들은 독일 점령지역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고 기여도가 컸다는 점 입니다. 체코의 기술 좋은 노동자들은 비교적 말도 잘 듣고 사보타지에 취미가 없었다지요. 군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도 경호를 위해 무장 병력을 붙여줘야 했던 유고슬라비아에 비하면 체코는 독일 기업들이 털어먹기 좋은 낙원이었다고 합니다.
슬로바키아는 명색은 독립국이었지만 실제 사정은 옆 동네인 체코와 같아서 거의 일방적으로 독일에 털립니다. 독일의 공군사절단(Luftwaffenmission)은 슬로바키아 정부로부터 국영 항공기 공장의 설립과 운영에 대한 권리를 얻어내는데 사실 이건 반 강제적인 것이었지요. 독일은 슬로바키아 정부에게 슬로바키아의 국영 공장이 생산한 항공기의 75%는 독일 공군이 인수하고 25%만 슬로바키아 공군에 공급한다는 조항을 강요해서 아주 재미를 봅니다.
프랑스의 경우는 꽤 흥미로운 경우입니다.
먼저 독일 점령지역의 공장과 비시 정부 관할 지역의 공장을 다루는 주체가 달랐습니다. 비시 정부 관할 지역은 1943년 점령 이전까지는 스위스, 스웨덴과 함께 중립국으로 분류돼 독일항공산업위원회(DELIKO, Deutsche Luftfahrtindustriekommision)의 담당이었습니다. 반면 독일 점령지역은 제국항공성의 관할하에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특히 항공기 완성품 뿐 아니라 중간 부품의 공급에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유럽 대륙에서는 독일 다음으로 항공 산업이 발달한 나라였기 때문에 많은 독일 기업들이 침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제국항공성이 나서기 전에 기업들이 먼저 작업을 시작했다고 하지요. 많은 수의 항공 기업(특히 융커스)들은 아직 프랑스와의 휴전이 체결되지 않은 상태(즉 이론적인 교전상태)에서 프랑스 기업들과 사업계약을 체결하러 인력을 파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프랑스는 전체적인 항공기 생산에서는 슬로바키아에 뒤지긴 하지만 독일 공군의 중요한 해외 파트너(?) 였습니다. 1942년 까지 독일 공군과 납품 계약을 체결한 프랑스 기업은 192개사였다고 합니다.(같은 기간 독일 육군은 60개사, 해군은 9개사)
프랑스는 휴전 이후에도 자국 정부를 위해서 항공기 생산을 계속했는데 가끔은 독일이 제 3국에 공여할 목적으로 프랑스제 항공기를 주문하는 경우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1943년에 불가리아 정부는 독일측에게 Dewoitine D.520(도데체 왜 이걸 독일에?) 96대를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타전했는데 무슨 이유인지 이건 취소되고 Bf 109 16대가 공여 됩니다.
폴란드의 경우는 말 그대로 안습 입니다. 국가사회주의 강도단의 두목인 괴링 부터가 폴란드는 산업적으로 가치가 없으며 약탈할 건덕지가 없다고 공언할 정도였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인켈은 크라쿠프에, 융커스는 포즈난에 부품 생산 공장을 확보합니다. 물론 폴란드의 경우 서유럽과 달리 항공기 완성품을 조립할 수 있는 공장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폴란드와 유사한 국가로는 유고슬라비아도 있습니다. 유고슬라비아의 항공 기업들은 독일 점령과 동시에 독일 항공기업들의 자회사로 강제 흡수됩니다. 전쟁 이전 유고슬라비아의 대표적인 항공기업이었던 Aeroput은 루프트한자의 정비공장으로 바뀌고 Rakovica는 융커스의 엔진 부품 공장으로 전환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독일이 가장 재미를 보지 못한 곳은 이탈리아였습니다.
독일은 이탈리아를 점령한 뒤 이탈리아의 항공기업들을 독일의 항공기 생산에 활용하려 했으나 성과가 매우 시원치 않았다고 하지요. 항공기 생산이 1943년에 32대, 1944년에 79대로 독일의 한달 치 생산도 안 되는 규모였습니다.
독일이 해외의 산업 기반을 활용한 것은 이렇게 외형적으로나마 합법의 탈을 쓴 것도 많았지만 아예 노골적인 약탈로 나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많았습니다.
먼저 체코슬로바키아가 점령된 다음 접수된 장비와 시설은 불가리아로 매각됐고 폴란드 점령 후 압수된 항공기와 기자재는 루마니아, 불가리아, 스웨덴 등지로 매각, 또는 공여 됐습니다.
독일 공군은 점령지로부터 산업 시설을 인수하는데 필사적이었기 때문에 소련 침공을 앞두고는 제국항공성 내에 산업시설 노획을 위한 조직(Beute-Sonderkommando)를 만들었습니다. 이 조직은 1941년 한 해 동안 소련의 점령 지역내에서 8,400여대의 대형 공작기계를 약탈해서 독일로 보냈다고 합니다.
뭐, 어쨌건 소련도 전쟁이 끝난 뒤 실레지엔과 동프로이센의 기계들을 잔뜩 뜯어 갔으니 피장 파장이려나요?
전체적으로 봤을 때 항공산업 부문만 놓고 보면 독일인들은 2차 대전기간 동안 충분히 재미를 봤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쟁으로 거덜직전까지 가긴 했지만 그것 조차 미국의 경제원조로 피해가니 말 다했지요.
체코에서도 어느 정도의 사보타주는 있었다더군요. 사람이 타고 다니는 장비보다는 포탄류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탄두에 작약을 안 넣고 속을 비게 만드는 것(쏘고 나면 그게 빈 탄인지 아닌지 모르니까). 어떤 영국군 폭격기는 출격에서 귀환하고 보니, 날개에 포탄이 10여 발 가까이 박혀 있더랍니다. 물론 화약이 하나도 안 든 빈껍데기 탄환이요. 그리고 그 속에 "우린 이렇게밖에 당신들을 도울 수 없다"라고 쓴 종이가 들어 있더라는군요. 근데 내가 이 이야기를 어디서 봤더라~~?
답글삭제남의것을 털어 팔아먹다니.....
답글삭제장물아비 독일인가요?
슈타인호프님 // 그것 참 흥미로운 사례로군요. 나중에 출처를 알게 되시면 제게도 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답글삭제아텐보로님 // 범 유럽적인 메뚜기떼지요.
저거의 국내 출처는 루카스아츠의 게임 "The Secret weapons of Luftwaffe" 매뉴얼입니다. 저 이야기가 게임 매뉴얼에 어떻게 들어갔는지는 저도 추적해 봤지만 답이 안 나오더군요. 아마도 개인 회고담 모음 중 하나인듯합니다만... 하여튼 매뉴얼에 실린 내용 대로라면 영국 폭격기가 아니라 B-17이었습니다. 카셀 공습 때의 일이었다고 하는군요.
답글삭제뭐, 이 게임은 윌리엄슨 머레이 정도의 연구자 정도와는 인터뷰를 수시로 해 가면서 제작됐으니, 아예 근거 없는 얘기를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전 일단 그 게임 매뉴얼은 본 적이 없고, 인쇄된 책에서 본 걸로 기억합니다만...일단 다시 찾아보고 확인하면 알려드리겠습니다.
답글삭제윤민혁님 // 아 그렇군요. 루카스아츠에서 나온 "최상의 시간"은 저도 정품으로 가지고 있어서 대략 어떨런지 상상이 갑니다.
답글삭제슈타인호프님 // 보통 설명서 뒤에 참고 서적을 적어 놨으니 그것들 중 하나가 아닐까싶습니다.
전 책으로 된 매뉴얼을 본 적이 없다 싶었는데...인터넷에서 봤더군요.
답글삭제"불타는 하늘"에 매뉴얼 내용이 연재되고 있습니다. 해당페이지 주소는
http://airwar.hihome.com/heroes/swotl/swotl-10.htm
입니다. 윌리엄슨 머레이 교수의 인터뷰 중간에 삽입되어 있네요.
최상의 시간은 가지고 계시는군요. 저는 그놈을 못 구했습니다. 두 게임 모두의 원조 격인 Battle hawks 1942(1989)는 구하시거나 해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저도 실제 게임을 구입하거나 입수하지는 못했습니다만. -_-;;)
답글삭제그나저나 Their Finest hour 정품이라니. 국내 정발된 적이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제 주변에서 그걸 입수한 분은 처음 뵙는군요. orz 아니, 미국 원판일까요.;
슈타인호프님 // 아. 그렇군요. 확인했습니다.
답글삭제윤민혁님 // 국민학교 다닐 때 동서에서 나온 걸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박스부터 설명서 까지 다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