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가 미국정부에게 최초로 공식적인 군사원조 요청을 한 것은 1948년 11월 5일 이었습니다. 이 원조요청은 공군 창설과 해군 증강에 필요한 장비를 요구하고 있었는데 공군 이야기는 나중에 다루도록 하고 해군이야기를 중심으로 해 보지요.
11월 5일의 군사원조 요청에서 해군 관련 요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호위구축함(Destroyer Escorts) 3척
잠수함 3척
포함(PG) 5척
구잠함(PC) 15척
예인선 3척
유조선(YO) 척
LST 5척
보급함 4척
구명정 12척
부유건선거(Floating Dry Dock) 2척
TFGCT 452, Request for United States Air Force and Navy Equipment(1948. 11. 22), RG 319 Army Staff & Operations Division decimal file 1949-1950, 091 Java to 091 Korea, Case 60 Box 548(Folder #6)
여기에 교관으로 미 해군장교 18명과 부사관 15명, 통신기술자 3명이 덤으로 붙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정부는 한 달도 되지 않은 12월 2일에 다시 한번 군사원조 요청을 하는데 이번에는 첫 번째 군사원조 요청 보다 요구 사항이 더 커졌습니다.
(경)순양함 2척
호위구축함 8척
잠수함 2척
소해함 5척
구잠함 20척
예인선 3척
유조선 4척
LST 5척
보급함 4척
구명정 12척
부유건선거 2척
TFGCT 400, Request of Government of Korea for Army, Air Force and Naval Equipment(1948. 12. 10), RG 319 Army Staff & Operations Division decimal file 1949-1950, 091 Java to 091 Korea, Case 60 Box 548(Folder #6)
물론 미 임시군사고문단도 인정했듯 한국 해군은 물론이고 한국군의 장비 자체가 열악하기 짝이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문제는 한국의 경제력으로 유지할 수 있는 물건도 많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원조만 해 준다고 끝나는 게 아니니 말입니다.
그리고 한국측이 대규모 해군을 요구한 이유도 미국측에서는 살짝 납득하기가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최소 1척 이상의 경순양함과 구축함이 시급히 필요한 이유가 ‘소련 태평양 함대’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차대전 이후 미국이 아시아 지역의 최대 우방인 국민당 정부에 공여한 함정은 만재배수량 5,000톤 정도의 LST가 최대였습니다.(영국이 국민당 정부에 경순양함을 양도한 사례도 있긴 합니다만) 한국 같은 3류 우방에게 국민당 보다 더 나은 지원을 해 줄 만한 이유는 없었고 또 한국에 대규모 원조를 해 준다면 미국은 원조한 장비들에 대한 유지 정비를 위한 추가 원조를 해야 했습니다. 트루먼 행정부는 국방비 감축을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고 있던 시점이라 한국의 황당한 요구는 들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우리의 이박사는 크게 분노합니다. 그리고…
화가 난 이박사는 대통령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한 조병옥에게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립니다.
본인은 조박사가 이 상황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유엔과 미국의 고위층과 솔직하게 의논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그들에게 우리가 남과 북의 통일을 위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철저히 비밀스럽게 이야기 하시오. 실상 우리는 단 한가지만 제외한다면 모든 점에서 통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오 그 한가지란 우리에게 무기와 탄약이 없다는 점이오. 공산군의 대다수는 반란을 일으켜서 우리를 도와 김일성과 그 밖의 다른 공산당의 졸개들을 쫒아낼 준비가 되어 있소. 또한 북한의 민간인들도 공산 테러 도당 전체를 숙청하고 통제하는데 동참할 것이오. 북한인들은 우리의 도움이 없더라도 이 일을 해 낼 준비가 되어 있소. 그들은 우리에게 무전이나 다른 비밀스러운 연락수단으로 날자와 시간만 정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소. 사실 북한인들이 우리에게 그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우리가 다음 단계로 나가기 위해 충분한 무기와 탄약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북한 사람들에게 기다리라고 하는 실정이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북한을 소탕하고 평정하자는 것이겠소? 누가 중국 팔로군과 연안파, 그리고 시베리아의 적들이 다시 쳐들어 오지 못하게 막겠소? 우리는 충분한 군대로 준비한 뒤 북한으로 진격해 그곳에 있는 우리에게 충성하는 군대와 합세해 철의 장막을 38선에서 압록강으로 밀어내고 더 이상 (공산당의) 침입하지 못하게 방어해야 하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압록강과 두만강의 (국경을) 방어할 8천톤에 8인치 포*를 장비한 두 척의 해군함정이 필요하오. 우리는 공산당의 지하 운동 조직이 우리의 해안 지대를 쳐들어 오지 못하도록 고속 초계정을 필요로 하오. 우리는 북쪽의 국경을 방어하기 위해서 20만명의 병사를 훈련하고 조직할 필요가 있소. 우리는 방어를 위해 비행기와 대공포가 필요하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당장 필요한 것이오.
(For this operation we need two naval vessels of 8,000tons each, with 8 inch guns*, for the defense of the Yalu and Tumen Rivers. We need fast running patrol boats to guard against Communist underground movements along our coasts. We need 200,000 soldiers trained and organized for defense along the northern border. We need planes for defense and anti-aircraft guns.
And we need them now.)
이승만이 조병옥에게(1949. 4. 10), 『大韓民國史資料集 29 : 李承晩 關係書翰資料集 1949-1950』, 46쪽
*원문에는 18인치로 되어 있습니다. 오타죠.
사실 북한식 협상술의 원조는 이박사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Ps. 평화일보에 따르면 조병옥은 이승만의 지시를 받고 11일에 애치슨 국무부장관에게 한국 해군을 1만 명으로 증강하고 50척의 함정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사에는 구체적인 함정 내역이 없어서 조병옥도 중순양함을 달라고 했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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