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26일 목요일

'지원병제 군대에 관한 대통령 위원회 보고서'를 다시 읽으면서

1970년에 나온 ‘지원병제 군대에 관한 대통령 위원회 보고서(The Report of the President’s Commission on an All-Volunteer Armed Froce)’를 다시 읽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몇 년전만 하더라도 이 보고서에서 주장하는 몇몇 논점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이 보고서가 예측한 많은 사실들이 틀린 것으로 판명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생각은 조금씩 바뀌는 것이라 지금은 약간 다른 생각을 가지고 이 보고서를 읽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베트남전쟁을 겪고 있던 미국의 상황을 반영한 것이고 게다가 미국이라는 나라는 근대적인 징병제가 시작된 유럽의 국가들과는 전혀 다른 정치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징병제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만큼 현재의 우리들도 한번 읽어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보고서는 서두에서 모병제 반대진영에서 제기하는 아홉가지 문제들을 열거한 뒤 모병제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는 것들은 근거가 부족하거나 지나친 걱정이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 들고 있는 모병제 반대진영의 주요 주장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모병제 문제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이라면 쉽게 짐작하실 수 있는 문제들이죠.

1. 지원병 만으로 군대를 편성할 경우 유지비가 매우 많이 들어 국가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2. 지원병 만으로 군대를 편성할 경우 갑작스러운 위기시에 신속하게 규모를 늘릴 수 있는 유연성이 부족해 질 것이다.
3. 지원병 만으로 군대를 편성할 경우 모든 시민은 국가에 헌신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가 있다는 전통적인 믿음을 약화시켜 애국심을 약화시킬 것이다.
4. 징집병은 (군에 대한) 민의 우위, 자유, 그리고 민주적 제도들을 위협하는 독립된 군사문화가 성장하는 것을 막아준다.
5. 지원병제에서 제시하는 높은 급여는 상대적으로 가난한 계층(미국의 경우 흑인)을 군대에 집중적으로 끌어들일 것이며 이것은 계급적인 약자들에게 국방의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 될 수 있다.
6. 지원병제 하에서는 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이 주를 이룰 것이며 이들은 애국심이 아닌 금전적 보상을 바라고 입대하는 사실상의 용병에 불과할 것이다.
7. 지원병 만으로 군대를 편성할 경우 해외에 대한 군사적 모험을 부추기고 무책임한 대외정책을 조성하는 한편 군사력 사용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약화시킬 것이다.
8. 지원병으로 편성한 군대에는 유능한 인재가 들어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군대의 효율성이 저하할 것이다. 군인의 자질이 저하되면 군대의 권위와 존엄성도 떨어지고 이것은 다시 모병에 어려움을 가져올 것이다.
9. 완전한 지원병제를 실시할 만큼 국방예산을 늘리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다른 국방 부문의 예산을 삭감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전반적인 국방 태세를 약화 시킬 것이다.

물론 보고서 작성자들은 이 아홉가지 문제 모두가 실제와는 거리가 있으며 지원병제 추진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예언은 틀리기 마련입니다. 언급된 아홉가지 문제 중 아마 2번과 5, 6번 문제는 어느 정도 현실화 된 문제로 볼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8번도 해당될 수 있겠군요. 어쨌든 지원병제가 직접적인 경제적 부담이 더 크다는 점과 징병제에 비해 우수한 인력을, 특히 낮은 계급에 충당하는게 어려워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미국과 달리 인구와 경제력에서 여유가 없는 한국같은 나라는 더 위험하겠지요.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이 더 노골적으로 드러날 수 도 있을 겁니다. 게다가 경제적, 안보적 환경은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징병제를 계속 유지시키는 구실이 되고 있지요. 사실 저도 아직까지는 한국에서 징병제를 불가피하게 유지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한국의 현실에서는 장기적으로 군 복무 단축을 계속해서 12개월에서 18개월 사이로 줄일수만 있어도 다행이겠지요.

하지만 미국의 징병제 폐지론자들이 강하게 주장한 것 처럼 징병제란 아무리 좋게 포장하더라도 국가가 시민의 자유를 강제로 빼앗는 제도입니다. 어쩌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나 그린스펀(Alan Greenspan)이 주장한 것 처럼 서구의 근대적인 징병제도 실상은 중세의 군역과 다를바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한국의 징병제 처럼 불합리하게 운영되는 제도는 어떻게 변호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이상적인 근대적 징병제라면 무엇보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써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 되어야 할 텐데 한국의 실상은 정말 군역에 불과한 수준이니 말입니다. 필요성은 절감하는데 옹호하기 참 어렵습니다.

이 보고서를 처음 읽었을 무렵에는 자유주의적인 관점에서 근대적인 징병제를 비판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요즘은 제 생각도 조금 바뀌었습니다. 얼마전 군복무기간을 다시 24개월로 늘리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반사적으로 화가 치밀더군요.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면 징병제에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댓글 15개:

  1. あさぎり1:24 오전

    부대에 있을 때 주위 간부들이 '그래도 군생활은 2년정돈 해야지'라는 반응을 보였을때 정말 화가 치밀었었죠. 그렇게 병사들을 부려먹고 싶은건지...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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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간부들은 징집병으로 대규모 군대를 유지하는게 밥그릇을 지키는데 도움이 되니까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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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더 어이가 없는건 "난 군대갔다왔으니까 상관없어" 라고 하는 종자들... (갈때는 온갖불평을 늘어놓다가)
    당장 예비군 기간을 2배로 늘린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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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체적으로 이 문제에 무관심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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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aPenguin2:46 오전

    뭐 그런데 징집적령기의 인원 자체가 줄어버리는 상황이니 결국 징집기간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가는게 부득이 하기는 하니까요....

    애초에 복무기간이 줄어들을 수 있었던 것이 적령기의 인원이 풍부했었다는 것에 기인한 것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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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럴바엔 차라리 모병제로 바꿔서 동원하는 인력의 연령대를 늘리는게 나을 수 도 있을 것 같습니다. 20대 남성에게 지나치게 많은 부담을 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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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빛의화살4:42 오후

    하지만 정작 징집연령대의 인구가 줄기 시작한 때부터 복무기간이 줄었다는데서 공무원
    +정치가들이 뭐하는 작자들인가하는 의구심이 비슷한 예로 인구가 실질적으로 줄기 시작했을 때부터 하나만 낳아 잘키우자는 산아제한 구호를 퍼트린 공무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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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징집병들의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는 복무기간의
    마지노선은 어느 정도일까요? 2년이면 숙련된
    병장의 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정도 아닐까
    싶은데... 어떨지요. 주위 국가들을 또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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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는 징집병 복무개월수에 징집병의 전투력을 연관시키는 시각 자체가 문제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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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스카이호크9:26 오전

    2번 문제를 해결하려면 예비군은 징병제로 굴릴 수 밖에 없지요. 5번과 6번은 답이 안 나오는 문제고... 8번은 장교들과 하사관들이 뼈빠지게 가르쳐서 커버를 하긴 하더군요.

    개인적으로 군복무기간 24개월 드립 보고 열이 확 올랐던 게, 인력운영 그 따위로 해놓고 병사 모자란다, 숙련병 없다 운운하는 꼬라지가 역겨워서였습니다. 어디 독일연방군은 복무기간 길어서 정예인 건가? 우수한 병력자원을 펑펑 낭비하는 주제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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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제는 한국군도 구조개혁을 피할 수 없는 시점에 왔다는 생각입니다. 그동안 방만한 육군을 억지로 유지해 온 것 자체가 다행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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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아무래도 전투력의 유지 자체는 간부가 주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인가요? 어떤 이유인지...
    제가 직접 봐 온 사람들은 다들 전투력의 문제를 거론해서 말이죠. 저도 중요한게 아닌가 싶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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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복무기간=숙련도는 자동으로 성립되지 않으니까 문제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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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스카이호크10:51 오전

    병사들의 전투력은 교육훈련 프로그램에 따라 결정되지, 복무기간과는 크게 상관없습니다. 독일이나 스웨덴(여기는 징병제 폐지 예정으로 압니다), 노르웨이, 핀란드 등도 1년 안팎의 복무기간을 갖고 있습니다만, 한국군과 비교했을 때 어느 쪽을 더 정예로 쳐 줄지는 뻔하죠. 10년을 복무해도 둔전병으로 농사만 지으면 전투력은 형편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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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미연시의REAL12:26 오전

    저도 지금의 극도로 불합리하게 운용하는 우리 한국군의 문제점을 볼때 사회적으로 계속되는 군사복무에 대한 불만적 문제를 해결할수도 없으면서 24개월 환원 이야기를 하면서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할수 있겠지만~-이라는식으로 발언한 이상우 국가안보총괄회의 의장의 발언이 참.. 기분나쁘게 들리더군요.

    개인적으로 굳이 본다면.. 저는 현재 유급지원병에 대해서 모병제 운용방식으로 운용하면서의 제대로 월급주어가면서 15개월로 줄이는 방안이 가장 합당하다 생각합니다. 근본적으로 15개월 기준은 독일군이라는 우리보다 앞선 선진국 군대가 해왔던 결과물이기도 하는등의 여러가지 군이라는 가장 보수적인 집단이 혁신적인 걸 이야기하는걸로 먹히는것보다 보수적인 것에서 먹히는게 더 설득력이 되는 문제니까요.. 관련 포스팅은 대략.. 이렇게 적어봤습니다.

    한국군의 유급지원병 경쟁율을 그나마 높이려면..

    http://shyne911.tistory.com/571

    솔직히 그렇게 현재 우리군이 말하는 숙련도 대비해서의 문제 기갑-포병만해도 유급지원병이라는 모병병력 4만명중 대략 2만명정도면 완전대체(부사관+사관 포함)가 가능하다는 점에서(곡사포는 제외) 의무병역제 병역자원의 운용에 대해서 저는 독일식을 전면 검토하는게 어떤가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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