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6일 일요일

1961년, 한국군 제1군 기동훈련에 대한 논평 중 핵무기 운용에 관한 내용

한국군이 1950년대 부터 전술핵 운용 훈련을 해 왔다는 것은 군사문제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라면 대부분 아시는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1950~60년대 한국군의 전술핵 운용 훈련에 관해서는 저도 관련된 내용을 단편적으로 접하긴 했습니다만 구체적인 자료는 읽어 보지를 못했는데, 얼마전 1962년에 육군대학에서 낸 『軍事平論』22호를 훑어보다 보니 1961년 10월 17일에서 11월 4일까지 실시한 제1군 기동훈련에 대한 논평에서 전술핵 운용에 대해 평가한 내용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1950~60년대의 전술핵 운용에 대한 자료는 저도 처음 본 것이라서 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논평의 저자는 당시 중령 계급으로 육군대학 연구관 겸 교관으로 있던 김황봉(金黃鳳) 입니다. 그때 복사한 것을 몇 달 쌓아두고 있다가 오늘 군사평론을 꺼내 볼 일이 있어서 또 읽어 보았습니다. 이왕 꺼낸 김에 이 논평에 실려있는 전술핵 운용에 관한 내용들만 발췌를 해 봅니다.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 핵무기 운용

금번 훈련에서 일반적으로 핵무기의 전술적 운용이 원만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이 거대한 파괴력의 핵무기를 정확하게 사용하였을 때 비로소 결정적으로 전과를 확대할 수 있으므로 무엇보다 선결문제는 정확한 핵표적의 선정을 하여야만 되는 것이다.
핵 표적 선정방법은 육군대학을 졸업한 장교는 이미 기지(旣知)의 사실이지만 여기에 개략적이나마 간단히 소개하여 본다면 G-2, G-3에 의하여 잠재표적을 설정하고 다음 이것에 의하여 잠정표적을 선정한다. 이것이 완료되면 핵무기의 배당수에 따라 실제 부대가 기동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표적의 우선순위를 결정 타격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역시 임기(臨機)표적이나 요청사격을 위하여 보유되는 예비량의 핵무기 사용도 표적선정에 있어서 확실한 정보에 의하여 심중(深重)한 판단으로서 정확한 요청사격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금번 기동훈련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적의 이동표적이나 적에 관한 첩보의 불확실한 것으로 말미암아 핵무기의 요청사격이 몇번이나 각하 당하는 예가 있었다. 또 한가지의 결함으로서는 이 거대한 파괴위력을 가진 핵무기의 사격이 기동계획과 결합되었을 때 전과확대의 최대효력을 발휘할 수가 있는 것인데 기동계획과 협조되지 않는 핵무기 일방의 사격은 가치있게 사용되었다고는 할 수 없으며 이번 훈련기간을 통하여 목격한 결함을 지적할 수가 있다.

金黃鳳, 「第1軍 機動訓練에 對한 小考」, 『軍事平論』22(1962. 1), 49쪽

그리고 아군이 핵무기에 타격 받았을 경우의 대응에 대한 논평도 흥미롭습니다.

6. 핵 상황하에서의 사체처리 및 후송 문제

핵무기 1발로 1개 중대병력이나 수개 대대병력까지 순시간(瞬時間)에 사상 및 파괴시킬 위력을 보유하고 있음은 이미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이번 훈련은 핵 상황하에서 실시되었다는 것은 수차 말한 바 있고 또 핵무기 투발로 인하여 이번 훈련에 많은 인원 및 장비가 사상되고 파괴된 상황이 있었다.
이와 같이 일시에 다수의 인원이 사상을 당하였을 때 지휘관이나 참모의 조치가 대단히 막연한 입장에 처해 지는 것이다. 1개 중대 및 기타의 병력이 완전히 손실을 입었을 때 손실병력에 대한 보충이나 예비대로서 대치하는 등의 전술적 문제는 용이하게 해결시킬 수 있을지 모르나 사상자의 처리와 후송에 관하여 심각하게 고려되어 있지 않는 것을 지목할 수 있었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소홀히 할 과제가 아닐 것으로 본다.
이 문제에 부가해서 말할 것은 사단의무중대나 연대의무중대 등이 장차의 핵상황하에서 전기한 바와 같은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을 시 현재의 편제병력과 장비로서 능히 처리할 수 있겠는가를 고려하여 볼 때 편성면에서나 장비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처리 및 후송문제에 이르는 기술적인 면도 연구되어야 하겠다.

金黃鳳, 「第1軍 機動訓練에 對한 小考」, 『軍事平論』22(1962. 1), 51쪽

저도 관련된 내용을 구체적으로 접한 것은 이것이 처음인데 추후 1950년대부터의 핵무기 운용에 관한 자료들을 모아서 정리해 본다면 꽤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댓글 8개:

  1. 공작 등푸른 돼지10:18 오후

    잠재표적이나 잠정표적이라는 표현이 제게는 눈에 확 띄네요. 앞으로 번역할 때 잠재와 잠정이라는 말의 의미를 잘 구분해서 써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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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 지적을 해 주셨습니다. 1950~1960년대 한국군이 작성한 문헌을 보면 영어 군사용어에 대응하는 한국어 표현을 찾기 위해서 고심하는 모습이 많이 보여서 흥미로운데, 말씀하신 잠재표적과 잠정표적이라는 표현도 거기에 속합니다. 역시 전문적으로 번역을 하시는 분 답게 용어적인 측면에 좋은 말씀을 해 주시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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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스카이호크11:38 오후

    핵을 쓴 다음에 기동한다면 핵으로 뚫어놓은 구멍으로 돌파한단 얘긴가요. 반도의 패기도 어머니 러시아 못지 않을 때가 있었나 봅니다. 덜덜덜덜...
    그나저나 글 말미에 전사상자 처리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개선의 여지가 별로 안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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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아직까지 단편적인 자료만 접해서 정리가 안되어 있긴 한데 미국의 펜토믹 사단 편제에 큰 관심을 보인 흔적 등 유사시 핵운용을 위한 준비를 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전사상자 처리라. 요즘은 조금 나아지지 않았을까요? 물론 제가 군대 있을때 구경했던 사단 의무대를 보면 별 기대가 안 가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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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스카이호크9:24 오후

    아직 군의관으로 최전방 사단에 있는 친구 얘길 들어보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는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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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역시 전쟁은 결코 일어나선 안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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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군시절에 오래된 야전교범을 정리하다가 핵전상황의 행동요령이란 책을 본적이 있습니다.

    핵투발 통문;; 같은것도 있고 예시에 한국군 5사단장이 핵을 사용 머 이런 시나리오가 있었는데 한국군이 직접 핵을 운용했었네요.

    부대운용지침도 있었는데 예상피폭이 몇 rem이면 그냥 해당지역을 통과하고 연대를 몇개로 나눠서 몇 rem까지는 피폭을 허용해가며 배치 운용하고 머 그런거였습니다. 

    피폭인원과 장비에 대해서는 비눗물 살수세척을 최우선으로 해야한다해서 웃엇는데 인디아나존스 이번편을 보니 진짜 그리하더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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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피폭 개념이 적용된게 언제 부터일지 궁금하군요. 일단 1950~60년대 초반까지는 직접적인 사상자 문제에만 신경을 썼던 것 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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