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이것 저것 주워듣다 보니 지도자 숭배라는 역겨운 문화가 북한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찝찝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대통령이 당선될 때 마다 반복되는 당선자 찬양은 표현 수위의 차이만 있을 뿐 아첨을 위한 글이라는 점에서 밥맛떨어지는건 마찬가지였으니 말입니다. 그 중에서도 소위 ‘國父’라는 이승만 우상화는 가장 정도가 심한 것이어서 혐오감을 느끼다 못해 즐기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1950년대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다 보니 이승만 우상화에 대한 글을 심심치 않게 읽게 되더군요.
특히 이런 우상화는 195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심해집니다. 특히 1960년 선거를 앞두고는 이기붕에 대한 선전과 엮여서 더욱 눈뜨고는 못 볼 수준이 되지요. 최근에 읽은 것 중에서 해군의 정훈잡지였던 월간 『해군』 1959년 8월호에 실린 글들이 인상적입니다. 1959년 8월호에는 이승만에 대한 특집과 함께 이기붕에 대한 특집이 함께 실렸는데 적당히 참고 읽어줄 만한 글도 있지만 「豫言者로서의 李承晩 大統領」처럼 민망한 글도 있습니다. 8월호에 실린 글을 한편 인용해 보겠습니다.(문장이 비문 투성이인 것은 넘어가죠)
배달민족의 영원한 태양이시며 정의의 천사이신 우리 국부 리승만박사님 께서 조국의 자주 독립과 국제정의의 실현을 위하여 싸워오신 형극의 길은 그대로 대한민국 중흥의 혈사이고 세계인류 평화의 건설자이시며 님께서 앞으로 실현하시려는 그 원대한 포부는 바로 겨레와 인류가 자유와 평화를 누리기 위하여서는 반듯이 따라야 할 거룩한 정경대도이다.
겨레와 민국의 자유번영을 위하여 90평생을 아낌없이 헌신하여 오신 국부 리승만 박사께서는 유엔한국위원단 감시아래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를 실시케하고 초대 국회의장이 되시였고 헌법을 제정공포한 제헌국회에서 절대다수의 득표로 초대 대통령에 당선되시였다.
초대 대통령의 중책을 맡으시고 내각조직과 정권이양을 완료한 ‘리’대통령께서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의 자주독립을 세계만방에 선포하시였다. 표지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수립기념식에서 선포문을 낭독하시는 국부 리승만 대통령의 감격어린 모습이다.
「표지설명」,『해군』(1959. 8)
글자만 몇개 바꾸면 북쪽에서도 쓸만한 글이라 하겠습니다. 195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정권재창출의 필요가 높아진 자유당, 특히 자유당의 강경파들은 이승만 우상화를 강화하고 여기에 이기붕 끼워팔기를 시도하는데 이것은 마치 김일성-김정일을 세트로 끼워파는 방식을 연상시킵니다. 다행히도 전자는 실패했지요. 사실 지도자에 초월적인 인격을 부여함으로써 권위를 얻고 이것을 집권의 정당성으로 삼는 방식은 요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치가로서의 자질이 검증되지 않은 인물들이 단지 막연한 이미지를 팔아먹으면서 집권을 꿈꾸는 오늘날 과거의 망령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겠지요.
역시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군요. 사람생각은 다 거기서 거기인가 봅니다.
답글삭제제가 가장 마음에 안드는 것은 이런 방식의 우상화가 약간씩 변주되어 반복된다는 점 입니다. 독립운동의 화신은 민주주의의 화신으로 변용되어 쓰이고 있지요.
삭제북쪽뿐만 아니라 전통앞에서 시인 서모씨가 했다는 말하고 비교해도 수준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답글삭제그래도 북한에서 할 생각도 못하던 사일구라는것을 해낸것이 다행스럽긴 하지만 본문에서 말씀하신것처럼 현재에도 정책과 공약으로 승부하는 정치가 아니라 이미지 팔아먹기와 인물론으만 해먹으려는 정치가 계속되는 것이 불안불안합니다.
뭐, 역사는 반복된다니 그냥 팔자려니 하고 생각중입니다. ㅋ
삭제리박사-박통-전통 모두 각자에 맞는 신격화 방식들이 있었죠.
답글삭제오죽하면 80년대 땡전뉴스 시절에 전두환의 호는? "오늘", 이순자의 호는? "한편" 이런 유머가 돌았겠습니까. 땡! 오늘 전두환 대통령각하께서는, 한편 이순자 여사께서는, 이걸로 공중파를 시작했으니...
하하하. 저도 땡전뉴스를 보면서 자란 세대라서 이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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