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보고서는 예전에 소개했던 “NARA 소장 독일노획문서에 대한 잡상 - 4. 독일기갑총감부문서 T78 R620”에 실린 보고서입니다. 독일군 제128대전차대대 2중대2./Panzerjäger-Abteilung 128가 T-34와 SU-85를 운용한 결과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지난 번 글의 내용에 나온 것 처럼 엔진을 비롯한 구동계통에 대해서는 혹평하고 있지만 주포 등 무장에 대해서는 높은 평가를 하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특히 900m 이상의 원거리에서도 명중탄을 기록했다는 기록이 눈에 띕니다. 이미 알고 계시는 분도 많겠습니다만, 이 보고서에 이야기 하는 T-43은 T-34를 말하는 겁니다. 독일군 일선 부대의 보고서에서 말하는 T-43은 크게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전차장 큐폴라가 달린 T-34/76이고 또 다른 하나는 T-34/85를 지칭하는 경우입니다. 오늘 올리는 보고서에서 말하는 T-43은 전자입니다.
참고로 이 보고서는 꽤 유명해서 토마스 젠츠의 Panzer Tracts 19-2에도 이 보고서의 영어 번역본이 실려 있습니다. 다만 젠츠가 내는 책이 다 그렇듯 정확한 출처 명기는 안되어 있습니다.
보고서: 소련제 전차 T-43과 SU-85의 정비유지 및 운용.주)
소련제 전차의 견인과 유지정비는 아군의 훈련을 잘 받은 전차병이라 할지라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전차의 엔진과 조종방법을 충분히 숙달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독일 전차병에게 소련제 전차를 지급할 때는 전환교육 기간이 많이 필요하다.
본 중대는 처음에 9대의 소련제 전차를 보급받았는데 이 중 8대의 변속장치가 고장난 상태였다. 이 차량들이 바른 방식으로 운용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일부 차량은 클러치도 고장이 났다.
소련제 전차의 고장난 부품은 수리하거나 교체해야 했는데, 차량 내부의 부품 중에는 신품이 없어서 처음에는 그 중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부품 조달을 이곳 저곳에서 노획한 전차에서 의존하고 있어서 교체할 부품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같은 형식의 차량을 대량으로 획득할 수 있어야 노획한 전차를 장기간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고 본다.
아군의 정비 도구는 소련제 전차의 구동계통과 무장의 일부를 정비하는데 적합하지 못하다. 소련제 전차의 정비에 필요한 공구를 설계하고 제작하는데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했다. 이런 방식을 모든 부대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노획한 소련제 전차를 운용한 시간은 길지 않지만, 소련제 전차는 항속거리가 길고 최고 속도도 빠르다는 것은 섣부른 일반화이다. 중대가 운용한 소련제 전차의 최고 속도는 시속 10~12km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30분간 기동을 하면 최소한 15분에서 20분 정도는 엔진 냉각을 위해 정지해야 했다.
적의 신형 전차를 운용하는데 있어 가장 문제가 되었고 고장을 자주 일으킨 것은 조향클러치였다. 거친 지형에서 행군하거나 공격기동을 할 때는 자주 방향 전환을 해야 하는데 이럴때 조향클러치가 자주 과열되고 오일이 새어나오곤 했다. 그 결과 더 이상 클러치를 조작할 수 없어서 전차가 기동 불능이 되곤했다. 그 경우에는 클러치를 즉시 식혀준 뒤 디젤유를 발라줘야 했다.
소련제 전차의 무장을 운용 경험에 의거해 평가하자면, 7.62cm 전차포의 사격성능은 훌륭하다. 정밀하게 조작하여 사격을 하면 장거리에서도 명중율이 높았다. 차재 기관총도 비슷하다. 차재 기관총은 천천히 사격을 하면 명중율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고장도 잘 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본 중대가 운용한 돌격포(SU-85)의 8.5cm 주포도 훌륭했다. 이 포의 실제 관통력을 7.62cm 전차포와 비교했을 때는 아직 정확하게 평가할 수 없다. 고폭탄을 사용했을때는 7.62cm 전차포에 비해 훨씬 먼 거리에서도 정확한 사격이 가능했다.
소련제 전차에 탑재되는 광학장비는 독일제 광학장비에 비해 뒤떨어졌다. 독일군 전차포수는 소련제 조준기에 숙달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소련제 조준경으로 명중탄이나 유효탄 여부를 판별하는 것은 어려웠다. 소련제 T-43 전차의 포수는 조준경 외에 그 왼쪽 앞에 있는 파노라마식 관측경도 사용할 수 있다. 본 중대는 포수용 파노라마식 관측경에 더해 장전수 위치에도 파노라마식 관측경 하나를 추가하여 명중 여부를 보다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소련제 전차의 또 다른 문제점은 단차, 혹은 부대를 지휘하면서 사격을 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이다. 때문에 중대단위의 사격 지휘에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었으며, 이로 인해 부대 단위의 성과에도 제한이 있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T-43은 전차장 큐폴라가 있어서 지휘를 하면서 동시에 사격 명령을 내리는게 용이한 편이다. 다만 이 전차장 큐폴라에는 외부 관측용으로 매우 작은 관측창이 다섯개 달려 있는데 이것으론 불충분하다.
소련제 돌격포 SU-85는 이와 달라서 지휘관용 큐폴라가 따로 없다. 소련측은 돌격포의 승무원을 네명으로 정했는데 이 중에서 전차장이 사수를 겸하고 있다.
본 중대는 소련제 돌격포의 승무원 배치를 조금 변경했다. 조종수 1명, 무전수 1명(무전수가 필요에 따라 파노라마식 관측경으로 관측을 보조하도록 했다.) 사수 1명(사수는 포 조준경만 사용하도록 했다.) 다음으로 장전수 1명과 전차장이었다. 전차장은 해치를 열고, 해치의 문 한쪽을 방탄판으로 삼아 차 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외부를 관측하면서 단차를 지휘하고 포격 지시도 내리도록 했다.
T-43과 SU-85는 해치를 모두 닫은 상태에서는 안전한 주행과 지휘를 할 수 없었다. 이것을 보여주는 예로서 본 중대가 이아시Iaşi 교두보 전투의 이틀 동안 경험한 일을 들 수 있다. 하루는 적의 전차 네 대가 참호에 빠졌는데 자력으로는 벗어날 수 없었기에 견인을 시도했지만 아군의 사격으로 이것을 분쇄했다. 둘째 날도 마찬가지 였다.
전투 마지막 날에는 아군 보병의 공격을 지원하던 도중 숲에 있는 적의 사격을 받아 중대의 노획 전차 전차장들이 일시적으로 해치를 닫아야만 했다. 이 때문에 전차를 안정적으로 지휘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아군이 사용하던 노획전차 중 두대가 적의 참호에 빠져버렸다. 이 중 한대는 많은 시간을 들여 자력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으나, 다른 한 대는 전투가 끝나고 숲을 완전히 점령한 뒤에야 다른 차량의 견인을 받아 끌어낼 수 있었다.
노획 전차를 운용하는데 있어 또 다른 어려운 점은 탄약 보급이다. 본 중대는 적 전차를 노획하여 탄약을 확보하고 있다. 탄약을 지속적으로 공급받기 위해서는 격파된 적 전차에서 탄약을 긁어모으는 등의 방식에 의존하는 수 밖에 없다. 본 중대는 거의 매일 전선에 부대 일부를 보내서 탄약과 고장난 부품을 교체하는데 필요한 부품을 조달하고 있다.
지금까지 설명한 바에 의거해 본 중대는 노획한 적 전차를 전차로서 운용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고 본다. 이아시 교두보 전투의 마지막 날 거둔 성과를 고려하면 노획한 적 전차는 대전차 자주포로 운용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본다. 노획 전차는 적의 대전차소총과 중구경의 대전차포에 거의 타격을 받지 않았다. 포격 또한 승무원에게 거의 피해를 주지 못했다. 공격시 전차장은 전차장 큐폴라의 해치를 열면 관측을 자세하고 충분하게 할 수 있었다.
본 중대는 5월 30일 제14기갑사단 소속의 한 기갑척탄병연대가 프루트Prut 강변의 골러에슈티Golăiești 근교의 숲을 공격하는 것을 지원하여 적의 주 방어선을 돌파할 수 있도록 했다. 5월 31일에는 제23기갑사단의 한 기갑척탄병연대가 프루트 강변의 스탄차Stanca남서쪽의 한 고지를 공격하는 것을 지원해 1개 대대가 적의 방어선을 돌파할 수 있도록 했다. 전투 과정에서 수많은 벙커를 고폭탄 사격으로 격파했으며 수많은 대전차총과 경대전차포 1문을 파괴했다. 6월 1일에는 제79보병사단 소속의 1개 전투단이 스탄차의 지점197 남서쪽의 분지를 방어하는 것을 지원했다. 낮 12:00경 본 중대의 전차 4대는 적 전차부대가 스탄차 남쪽의 지점197과 198 방면의 고지를 공격해 왔을 때 적 전차 1대를 격파하고 다른 두 대를 기동불능으로 만들었다. 교전 거리는 900~1100m였다. 6월 2일에는 대대 전체가 지점189와 그 서쪽에 대한 적 공격을 방어하는데 투입되었다. 낮 12:00경 적 전차부대가 전날과 같은 방면에서 스탄차 남쪽의 고지군을 공격해 왔다. 본 중대는 그중 네대의 전차를 격파해 불길에 휩싸이게 만들었으며 두대는 기동 불능으로 만들었다.
6월 1일에 격파한 적 전차 세대는 T-34였다. 6월 2일에 격파한 적 전차 중 3대는 셔먼이었고 3대는 T-34였다.
본 중대는 5월 30일 전투에 투입되었을 때 2대의 SU-85 돌격포와 5대의 T-43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다.
손실:
T-43 1대: 지뢰를 밟아 완전히 파괴되었다.
T-43 1대: 지뢰를 밟아 궤도, 보기륜, 유동륜이 파괴됨(중대 정비반에서 수리에 들어감)
T-43 1대: 변속기 고장(중대 정비반에서 수리에 들어감)
5월 31일에 본 중대는 2대의 SU-85 돌격포와 2대의 T-43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다.
손실:
돌격포 1대: 조향 클러치 고장(중대 정비반에서 수리에 들어감)
T-43 1대: 배터리 손상(현장에서 곧바로 새 배터리로 교체해 수리함)
T-43 1대: 메인 클러치 손상(중대 정비반에서 수리에 들어감)
6월 1일 본 중대는 1대의 SU-85 돌격포와 3대의 T-43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날은 손실이 없었다.
6월 2일 본 중대는 1대의 SU-85 돌격포와 4대의 T-43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날 오후 1대의 SU-85 돌격포가 정비를 마치고 복귀했다. 손실은 없었다.
주) “Erfahrungsbericht: über die Instandsetzung und Einsatz russischer Panzerkampfwagen vom Typ T43 und SU85”(1944. 6. 2), H16/201, RG242 T78 R620
프루트 강에서 교전이면 44년인 것 같은데 그때도 7.62cm포가 괜찮은 화력으로 인정받았다는 건 꽤 놀랍네요.
답글삭제문서를 보면 이 부대가 소련 전차를 운용한 것은 5월부터인것 같은데 언제까지 운용했는지는 알 수 있을까요?
44년 중반까지도 독일군 일선 보병연대의 주력 대전차포가 50mm급이었으니 76.2mm포 정도면 양호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삭제그리고 제128대전차대대 2중대의 경우 1944년 9월 중순에 4호구축전차로 장비를 교체하기 위해 후방으로 빠졌으니까 최소한 8월 말이나 9월 초 까지는 T-34 계열 차량을 운용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괜찮은 화력에 비해 기동력, 특히 미션 등 엔진 외의 동력계통이 후졌다는 평가는 공통적인 것 같네요. 정밀가공 기술이 딸려서 그런 건지..
답글삭제그나저나 신병훈련소 행군도 아니고, 최고속도 10~12km에 30분 기동 - 10분 휴식은 충격적이네요. 스텝 전선군이 300km 이상의 거리를 자력행군해서 쿠르스크 전투에 참가했다는 전설이 야부리가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요.
실제로 그당시 제5근위전차군의 장거리 행군 과정에서 고장이 속출했습니다.
삭제그 최고속도 10~12km의 경우 엔진결함, 변속기결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죠. 앞서 올린 논문에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상당히 충격적이군요. 그동안 구동계통 욕먹어온건 알았는데 이정도일줄은 몰라서 충격이고, 그 무장이 괜찮다는 평가를 받아서 또 충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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