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14일 토요일

어떤 문화적 다양성(?)


라종일의 『장성택의 길: 신정神政의 불온한 경계인』을 읽는 중 입니다. 저자가 다양한 정보 출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이 많아 즐겁게 읽힙니다. 북한의 자원 낭비에 관한 저자의 해석이 상당히 재미있고 통찰력을 보여주는 것 같아 인용을 해 보겠습니다.

이탈리아산 대리석, 북유럽산 고급 가구, 고급 샹들리에 등이 연이어 평양으로 들어왔다. 외부 사람들에게 이런 사업이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외화 부족에 시달리는 나라에서 어째서 이런 사치가 필요한가?'
'상식적으로 이런 일은 오히려 최상위 권력층에서 막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북한 내부의 논리에서 보면 개인적 사치 차원 이상의 문제였다. 이것은 일반인은 물론 권력의 핵심에 있는 인사에게 수령과 최고 지도자의 절대적인, 반신적인 권위를 각인시키기 위한 도구였다. 이 권위를 위한 소도구가 롤렉스 시계나 메르세데스-벤츠 자동차 등이라면 거창한 건축물이나 동상 등은 무대이고 치장이며 그 장치였던 것이다.
필자는 런던 근무 시절 여러 사업으로 북한 인사들을 초청해 영국과 교류하도록 도운 일이 있었다. 그때 북한 방문객들을 안내하던 영국 정부 인사가 놀랐다는 말을 했다. 방문객들에게 버킹엄궁전을 보여주었는데 그들이 코웃음을 치더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겨우 대영제국의 여왕이 사는 곳인가?" "(북한에 와서) 우리의 주석궁을 한번 보라"등의 반응을 했다고 한다. 영국인 안내원은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어떻게 외부에 식량 원조를 청하는 나라의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그는 물론 신정적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무대 장치들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이를 설명해줘도 끝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것 같았다. 
한편은 필자가 어렵사리 북한 젊은이들을 위해 해외 유학의 기회를 마련한 적이 있었다. 당시 그들에게 선호하는 전공 분야를 물으면 '건축'이라는 답이 돌아와서 신기하게 여겼다. 흔히 낙후된 북한의 경제 상황을 생각하면, 농업 아니면 경영, 혹은 금융이나 이공계의 답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의 답은 그렇게 어려운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집트 룩소르의 유물, 혹은 베이징의 자금성을 보면 쉽게 연상할 수 있는 답이 있다. 권력과 장엄한 건축물들은 역사상 불가분의 관계였다. 
"건축은 정치의 물리적인 현현이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벽돌과 모르타르로 이루어진 권력이다." 
특히 신정은 교리만이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있는 신전이 필요하다. 북한의 신정이 세속적인 만큼 속세의 일반이에게 외경의 느낌을 줄 수 있는 신전이 있어야 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상상하기 어려운 시설물들을 보면서 새삼 권력의 생생한 권위를 느끼는 것이다. 말하자면 장성택의 임무는 새로 떠오르는 권력을 떠받들어 줄 치장을 마련하는 것 이었다.
라종일, 『장성택의 길: 신정神政의 불온한 경계인』 (알마, 2016), 120~122쪽.

댓글 2개:

  1. 북한은 보면 볼수록 태평천국과 판박이인 것 같습니다..
    사교집단이 지정학적 공백을 틈타 장기간 존속하면서 국가라는 탈을 쓰고 있는..
    북한을 대화 가능한 문명국가라는 인식을 버리지 않은 한 의미 있는 해법이 나올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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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쟤네도 쟤네 나름의 합리성이란게 있긴 할텐데 거기에 맞춰주는건 좋은 선택이 아닌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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