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6일 목요일

데이비드 글랜츠 저, 유승현 옮김, 『8월의 폭풍』 길찾기, 2018

길찾기 출판사의 신간 『8월의 폭풍: 1945년 8월 9~16일, 소련의 만주전역 전략 공세』를 읽었습니다. 길찾기 출판사는 대중을 대상으로 한 군사서적을 꾸준히 간행하면서 군사분야에 관한 대중의 관심을 확대하는데 노력해 왔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독일군의 신화와 진실』을 시작으로 대중서를 넘어 전문적인 군사사 연구로 범위를 확장하기 시작했습니다. 『8월의 폭풍』은 길찾기 출판사가 내놓은 군사사 연구의 두번째 저작입니다.

1945년 8월에 있었던 소련의 대일전 참전은 외교사의 범주에서 많은 연구가 있었습니다. 제2차대전 종전후 아시아의 정치 지형을 결정한 사건이기에 많은 관심이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군사작전'에 관해 주목하는 연구는 거의 없었습니다. 제2차대전 종전 직전의 짧은 기간 동안 진행된 군사작전이라는 점, 자료가 러시아어와 일본어 등 영어권 연구자가 접근하기에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점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쳤을 것 입니다. 영어권에서 손꼽히는 소련-러시아 군사사의 대가 데이비드 글랜츠의 이 연구는 글자 그대로 선구적인 저작이라 하겠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연구자의 저작이기 때문에 내용을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소련군의 만주지역 전략 공세를 다루고 있지만 제2차대전 중 소련군의 발전을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을 줍니다. 소련은 1941년 부터 시작된 독일과의 전쟁을 계기로 전략, 작전술, 전술적인 측면에서 괄목한 만한 성장을 이룩했습니다. 전쟁 종결 직전에 있었던 만주지역 전략 공세는 소련군이 그동안 유럽 전역에서 쌓아온 역량이 총체적으로 발휘된 무대였습니다. 4장 부터 9장에 이르는 소련군의 공세 준비와 실행 과정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실제 작전 시행과정을 다루는 장에서는 1939년 이후로 큰 발전이 없이 교리와 장비면에서 정체되어 있던 일본군을 상대로 신속한 전략적 승리를 달성하는 과정을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일본군의 전술적인 분전도 빠트리지 않고 언급하면서도 이것이 전략-작전술의 차원에서는 별 영향이 없었음을 지적합니다. 개념적인 측면에서 전략-작전-전술의 차원을 명쾌하게 분리해 설명하면서 일본군의 전략-작전 차원의 패배 원인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연구는 데이비드 글랜츠의 초기 연구에 속하지만 작전연구라는 측면에서 매우 훌륭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본측 시각을 보여주는 자료 대부분이 1950년대 미육군에서 수행한 작전연구들에 제한되어 있지만 소련에 편향되지 않고 객관적인 시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전략~작전술 차원의 연구이기 때문에 일본군에 대한 서술도 이 범주에 국한하고 있습니다. 만주에 주둔한 일본군의 질적 수준과 전략-작전 단위 방어 계획에 대한 설명은 이 정도로 충분합니다. 오히려 1990년대 이후에 나온 글랜츠의 일부 연구가 소련 자료에 대한 과도한 편향성으로 작전연구 차원에서 아쉬운 면이 있었던 점을 생각한다면 1980년대에 나온 『8월의 폭풍』에서 보여주는 공정한 시각은 높이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길찾기 출판사 편집부의 실력은 기존에 간행된 『독일군의 신화와 진실』등을 통해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만 『8월의 폭풍』에서도 그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습니다. 만주 전역의 특성상 고유명사를 번역하는데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길찾기 출판사에서는 이 어려운 작업을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내용 외적인 부분에서도 장점이 많습니다. 특히 큰 판형을 채택해서 본문에 지도와 도판이 많이 포함된 장점을 살리고 있습니다. 편집부가 지도 편집에 많은 공을 들여서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면 지도의 가독성도 높습니다. 게다가 초판 한정 부록에 포함된 대형 작전도는 즐거운 깜짝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후 상업출판사에서 출간된 증보개정판이 아니라 미육군에서 간행한 초판이라는 점 입니다. 물론 초판으로도 만주 전략 공세를 전략-작전술적으로 이해하는데는 충분합니다. 증보개정판은 내용면에서도 보완이 있었고 부록으로 1차사료의 영역본을 제공하고 있어 만주 전략 공세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역자인 유승현님을 비롯해 감수를 맡으신 주은식 장군님, 그리고 길찾기 출판사 편집진을 비롯해 많은 분들의 노력이 들어간 책인 만큼 군사사에 관심 가지신 분들이 많이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댓글 4개:

  1. 어라 글랜츠의 경향이 시간이 지날수록 편향되어가나요? 그다지 사보는 편이 아니라 직접 뭐라 말하긴 좀 그렇지만 해외쪽에서 몇번 언급되는걸 보면 최근작들은 비료적 나아졌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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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갈수록 편향된다는게 아니고 본문에 쓴 것 처럼 90년대 이후의 저작 중에도 일부는 문제가 있다는 이야깁니다. 예를들어 2002년 저작인 The Battle for Leningrad, 2009년 저작인 After Stalingrad를 보면 전체적인 작전 추이에 대한 서술은 정확하지만 독일군 손실을 추산할때 소련 자료만 가지고 평가하는 경우가 보입니다.

      최근 저작인 스탈린그라드 3부작, 특히 2권의 경우는 교차검증이 훌륭하게 잘 되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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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사진을 보니 덕국 위장무늬 칠한 트럭을 그대로 이용했더군요. 몽골 쪽에서 밀고 들어갔다면 철도는 거의 없는 곳에서 기갑부대 운용이라 굉장한 어려움이 있었을걸로 생각되는데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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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럽 전선에서의 작전처럼 기계화 부대에 보급역량을 집중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의 작전들과 비교해보면 자바이칼전선군의 경우 제6전차군에 전선군의 수송역량을 집중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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