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0일 토요일

어떤 여가 활동

갓 소위로 진급한 보직 대기 장교들은 주데텐란트의 슈트라우빙(Straubung)에서 압도적인 물량과 병력을 가진 미군을 상대하게 됐다. 우리쪽은 저항해 봐야 희망도 없었고 미군이 우리 부대를 그냥 지나쳐 갔기에 싸울 필요도 없었다. 우리에겐 무기도 별로 없었다. 며칠 뒤 우리는 미군에게 항복했다. 미군은 우리를 그라펜뵈어(Grafenwöhr)에 있는 훈련장으로 이송했다. 그리고 포로들을 병과에 따라 분류했다. 미군 경비병들은 우리를 공정하게 대해줬지만 심문은 힘들었다. 식량은 부족하고 포로는 많아서 항상 굶주림에 시달렸다. 병사들은 잡지에 있는 벌거벗은 여자들의 컬러 사진을 돌려 보는게 낙이었다. 나는 이런 걸 처음 봤다. 나는 농부의 아들이고 추수철이 다가와서 금방 석방됐다. 1945년 6월 나는 석방되어 쾰른 근처에 있는 부모님의 농장으로 돌아갔다.


제505중전차대대 소속이었던 야콥 회게스(Jacob Höges)의 회고

Dale Richard Ritter, Charging Knights on the Eastern Front: The Combat History of schwere Panzer-abteilung 505 (Winnipeg: J. J. Fedorowicz, 2019), p.304.

댓글 6개:

  1. 재작년에 새로 출간됐다는 505 중전차대대 부대사 서적이군요. 저런 사소한 잡썰(?)을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인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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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서 자료가 부족해서 부대원들의 회고가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책 마지막 부분의 내용인데 살짝 웃겨서 인용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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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1.제505대대가 동프러시아에서 종전을 맞은게 아니었군요.
    2.자료를 보면 포로가 된 즉시 석방, 위 친구처럼 한달만에서 석방, 몇달 후 석방, 최악은 소련군 인도 등이 있는데 특히 미군의 경우 해당지역 지휘관 재량이 크게 작용한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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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야콥 회게스는 간부 교육을 받으러 갔다가 원대 복귀를 못하고 포로가 됐습니다. 제505중전차대대 본대는 아시는대로 동프로이센에서 종전을 맞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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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주로 월남전 회고들이 저런 사소한 전쟁터 생활에 관한 기록이 많던데 웃긴게 많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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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선 군인들의 회고담이 보통 이런 자잘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작전의 윤곽을 보여주는 고급 장교들의 회고와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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