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에 나온 장 샤오밍의 Deng
Xiaoping’s Long War : The Military Conflict between China and Vietnam,
1979-1991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1979년
중국-베트남 전쟁의 발발부터 1991년 양국 국교정상화까지
장기간에 걸쳐 지속된 중국-베트남 전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아무래도 영어권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중국 본토에서는 공개적으로 하기 어려운 중공군에 대한 비판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저자의 배경상 외국인에 비해 중공 문헌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입니다. 다만 여전히 신뢰할 만한 베트남 문헌이 부족한 관계로 베트남군의 움직임에 대한 서술은 중공군에 비해 부족한
느낌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중공군의 전쟁 준비를 다룬 3장, 1979년 전쟁의 경과를 다룬 4장, 그리고 1979년 전쟁에 대해 평가하는 5장 까지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전쟁 자체의 전개 과정을 다루고 있어서
집중이 잘 되더군요.
제3장에서는 중공군의 베트남 침공 준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중공 지도부가 설정한 전쟁 목표의 문제, 중공군의 전투력 문제를 집중적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전략적인 면에서는 중공 지도부가 “무력으로 베트남에게 교훈을 준다”는 모호한 전쟁 목표를 설정한 것을 지적합니다. 베트남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베트남 북부를 침공하라는 명령을 받은 광저우 군구와 쿤밍 군구의 지휘관들은 군구 단위의 목표 설정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베트남에게 교훈을 줄” 목표는 어느 선 까지 설정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작전 목표에 대해서는 일선의 군구지휘관들에게 재량이 주어졌지만 작전에 소요되는 시간은 덩샤오핑이
직접 설정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북베트남 침공이 장기전의 수렁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지속적으로 경고했고
덩샤오핑도 이 경고를 염두에 두고 단기전을 계획했습니다. 시간적인 제한은 있으나 지리적인 목표는 모호한
상태에서 전쟁에 돌입하게 된 셈 입니다. 게다가 침공의 주력이었던 광저우 군구는 1979년 2월 5일 최종계획을
결정할 때 까지도 침공할 지역의 베트남군 전력과 지형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었다고 지적합니다. 저자는
광저우 군구 사령관 쉬스유(许世友)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인 입장입니다. 또한
베트남 침공에 투입된 광저우 군구와 쿤밍 군구가 협동 작전을 한 게 아니라 개별적으로 작전을 수행했다고 지적합니다.
중공군 전투부대의 질적
문제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당시 중공군의 평시 편제는 1개
군단의 1개 사단만 완편사단(갑종사단)이고 2개 사단은 동원사단(을종사단)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베트남 침공이 결정되자 황급히 을종사단을 완편하기
위해 동원이 이루어집니다. 광저우 군구 소속 제42군단은
소대장을 충원하기 위해 침공 직전 1,045명의 병사를 장교로 임관시켰습니다. 쿤밍 군구의 제13군단은 침공직전 11,874명의 군사경험이 없는 ‘신병’을 보충받았습니다. 전쟁 직전에 황급하게 경험이 부족한 인원으로 숫자를
채웠으니 실제 작전이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기존에 있던 경험이 있는 인원의 상태도 좋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중공군 공군의 경우 1978년 기총 사격과
폭탄 투하 훈련에 참여한 조종사 800명 중 목표에 명중을 시킬 수 있었던 인원은 36% 정도였다고 합니다.
장비와 군수지원도 엉망이었다고
합니다. 인민해방군 총후근부장(군수국장)이었던 장젠(张震)의 회고에 따르면 베트남 침공 직전 일선부대들을 검열 했을 때 야포 포탄 중 불발탄이 많았고 수류탄은 3분의 1이
불발탄이었다고 합니다.
제4장에서는 중공군의 침공이 어떻게 초반부터 실패했는가를 이야기 합니다.
중공군은 개전 초기 까오방(Cao
Bang) 방면에 광저우 군구 소속의 7개
사단을 투입했습니다.
제41군(3개 사단), 제42군(3개 사단), 제129사단(43군) 등 입니다.
반면 이 지역을 방어하는 베트남군은 제346사단(3개 연대)과 3개
독립연대(제31, 567,
576연대)와 민병대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개전 초기 까오방 축선의 전투는 중공군의 정규군의 전투력이 베트남 정규군은 커녕 민병대와 비교할 수준이었음을 드러냈습니다.(실제로 중공측에서 베트남 민병대의 수준이 중공군의 일부 정규군 부대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했다고 합니다.)
광저우 군구는 개전 초기 국경돌파에 애를 먹으며 막대한 손실을 냈습니다.
물론 베트남군이 숫적으로 압도적 열세였기 때문에 우세한 중공군은 여러 곳에서 국경을 돌파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경을 돌파해 내륙으로 들어오면서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게 됩니다.
중공군 제125사단은 개전 초기 푸호아(Phu
Hoa) 방면에서 베트남 지방군의 저항으로 돈좌되었다가 우한 군구 제54군 예하 부대가 증원되고 나서야 진격을 재개할 수 있었습니다.
중공군은 숫적 우위를 활용해 작전 목표들을 대부분 점령할 수 있었지만 막대한 인명 및 장비 손실을 치러야 했습니다.
제5장에서는 1979년
전쟁의 결과를 평가합니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1979년
전쟁에서 7,915명의
전사자와 23,298명의
부상자를 냈다고 인정합니다.(반면 서방에서는 중공군의 피해가 전사 26,000명, 부상 37,000명이라고 추정해왔습니다.)
저자는 베트남측의 피해는 기록이 부족해서 파악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중국측에서 주장하는 베트남군의 사상자 57,000명은
과장됐다고 인정합니다.
중공 공군의 작전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평가합니다.
주된 비판점은 중공 공군의 소련 공군의 영향으로 매우 방어적으로 운용됐다는 것 입니다.
중공 공군은 국경 근처의 기지를 이용할 수 있어서 훨씬 먼 거리에서 오는 베트남 공군에 비해 체공 시간이 길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장점을 살리지 못했다고 평가합니다.
베트남 공군에 대해서는 베트남 육군 보다 부정적으로 봅니다.
실제로 베트남 공군 또한 소련식으로 조직됐기 때문에 중공 공군과 동일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공군의 전술 단위 리더쉽 문제도 비판의 대상입니다.
까오방 방면 전투에서 중공군 제484연대의 1개
대대가 베트남군 전투공병대대 1개
팀(숫자 미상)의 매복 공격을 받자 장교들이 먼저 도망을 쳐서 괴멸된 사례를 전술 단위 리더쉽의 결여로 지적합니다.
또한 제3장에서 지적한 것 처럼 중공군의 전반적인 훈련 및 전투경험 부족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비판합니다.
특히 신병 중심으로 편성된 제150사단이 전쟁 막바지 단계의 철수 작전에서 베트남군의 매복으로 와해되어 큰 타격을 입은 사례를 제시합니다.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1979년
전쟁에 투입된 병사의 48%가
실전경험이 없었고 장교의 25%가
전쟁 직전 임관한 지휘경험이 없는 인원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문제점들은 익히 알려졌듯이 중공 수뇌부가 ‘인민전쟁’ 노선이 해외에 군사력을 투사하는데 부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군 개혁에 나서게 하는 동력이 됩니다.
베트남군에 대해서도 비판을 하고 있지만 중공군에 비하면 평가가 후한 듯 합니다.
특히 개전 초기 북베트남 정규군이 숫적열세에 있었지만 민병대를 신속하게 동원해 숫적 격차를 줄인 점을 높게 평가합니다.
중공군의 주공이 투입된 까오방 방면에서만 40,000~50,000명의
민병대를 동원했다고 합니다.
제가 관심을 가지고 읽은 부분은 1979년 전쟁을 다루는 부분입니다만 중공 수뇌의 전쟁 결심을 다룬 제2장이나 1979년 이후 장기간에 걸쳐 지속된 중국-베트남 국경분쟁을 다룬 제6장도 재미있습니다. 특히 제2장의 경우 중공과 중공군 내부의 정치적 문제를 잘 다루고 있습니다. 2장에서 또 하나 재미있는 부분이 미국의 역할입니다. 덩샤오핑이 카터에게 베트남 침공 계획을 처음 알렸을 때는 카터가 반대했지만 덩샤오핑이 주장을 굽히지 않자 미국 정부에서 정보 공유를 하는 등 제한적으로 협조를 했다고 합니다. 특히 미국을 통해서 중소국경에 배치된 소련군의 준비태세가 취약하다는 점을 확인한게 중공 수뇌부가 베트남 침공을 확실히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이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시물들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지금와서야 좀 늦은감이 있지만, 이글루스의 폭파이후로 다른 전쟁사 관련된 양질의 글들을 잃게 된 점이 아쉽습니다.
답글삭제https://archive.is/panzerkatz.egloos.com 장갑묘님같은 블로그의 다른 아카이브들도 있을까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삭제번역 용어 관련해서 질문드립니다만.. 군단이라는 편제 용어가 집단군으로 해석해야하는건가요? 아니면 병단으로 해석하면 되는건가요? 짱깨군 용어상 군단이라는 편제는 제가 아는한 국공내전이후 사라졌다고 알아서요 군단이라는 용어가 집단군이라는 용어로 고정된 것으로 아는데 언급한 저 군단 편제용어는 집단군으로 해석해야하는건지 아니면 병단으로 해석해야하는건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글삭제본문에서 '군단'이라고 쓴건 중공군의 '군' 입니다
삭제중공군은 국공내전 초기 군(军)을 종대(纵队)로 개칭했다가 1948년 다시 군(军)으로 되돌립니다. 이 편제는 1980년대 초 까지 유지되다가 집단군으로 개편됩니다. 1940년대 후반 부터 1980년대 초 까지 중공군의 군단급 편제는 군(军)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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