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사망한 황장엽의 예우 문제를 두고 며칠 간 꽤 시끄러웠지요. 김일성의 충실한 이데올로그였던 인물이 팔자에도 없는 북한 민주화의 화신이 되었으니 확실히 황당하긴 했습니다.
물론 저는 황장엽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고 그저 세간에 알려진 그와 관련된 글을 몇 편 주워 읽은 수준이긴 합니다만 그 양반을 둘러싼 논의를 보다가 그 양반이 젊은 시절 썼던 글 한편이 생각났습니다. 예전에 복사해 둔 것을 어디에 뒀는지 찾지 못하다가 오늘에서야 그 글을 찾았는데 다시 읽어봐도 재미있더군요.
잘 알려진 장안파 공산주의자인 이청원은 월북 이후 연구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했습니다. 지금이야 북한의 역사학 수준이 눈뜨고는 못 볼 수준으로 퇴보했지만 사실 1950년대 중반까지 북한의 역사학계는 꽤 흥미로운 성과를 많이 거두었지요. 1950년대 중반부터 숙청의 바람이 몰아치기 전 까지는.
이청원은 1955년에 사회주의 운동사를 정리한 『조선에 있어서의 프로레타리아트의 헤게모니를 위한 투쟁』이라는 저작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이 저작은 바로 황장엽과 같은 신진 학자들에 의해 맹렬한 공격을 받게 됩니다. 1957년 12월, 황장엽은 김후선과 함께 집필한 「리청원 저 “조선에 있어서의 프로레타리아트의 헤게모니를 위한 투쟁”에 관하여」라는 글을 『근로자』에 기고합니다. 황장엽은 이 글에서 이청원을 맹렬히 비난했습니다. 황장엽의 이 글은 매우 노골적으로 김일성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청원에 대한 비판의 상당 부분은 “김일성의 역할”을 올바로 조명하지 못했다는 것 들이죠. 이 글의 일부분만 인용해 보지요.
저자의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는 우리 나라 로동 운동이 30년대에 와서 무장 투쟁의 형태를 취하게 된 리유를 설명하는 데서도 나타나고 있다.
저자는 로동 운동에서의 주관적 요인과 객관적 요인에 관한 이.브.쓰딸린의 명제 (쓰딸린 저작집 5권 ‘로씨야 공산주의자들의 전략과 전술에 관하여’ 참조)들을 거의 그대로 인용부 없이 서술하고 30년대의 로동 운동이 무장 투쟁 형태를 띠게 된 객관적 조건은 일제의 가혹한 파쑈적 탄압, 주관적 요인은 우리 로동 계급이 폭동을 일으킬 정도로 장성 성숙되었다는 것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추상적 명제로서는 우리 나라 로동 운동의 질적 비약성의 설명될 수 없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조건만 가지고는 로동 운동이 폭동적 형식을 취할 수 있게 될 수 있다는 것은 설명할 수 있어도 무장 투쟁의 형태를 취하게 될 필연성은 설명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조건만 가지고는 절대로 견실한 공산주의자들이 진행한 항일 무장 투쟁이 우리 혁명 운동에서 질적으로 새로운 단계를 열어 놓았다는 것이 설명될 수 없다. 즉 이것으로서는 견실한 공산주의자들의 출현 없이도 무장 투쟁이 가능하였다는 결론 밖에 나올 것이 없을 것이다.
저자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도외시하고 있다. 즉 그것은 첫째로 우리 로동 계급이 력사상 처음으로 진정한 맑스-레닌주의로 무장된 견실한 공산주의자들의 지돌르 받게 되었다는 것. 둘째로 김일성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견실한 공산주의자들의 지도적 핵심의 출현은 종래 각종 종파 단체들에서 떠돌던 비속화 되고 실천과 유리된 공론들과는 질적으로 구분되는 진정한 맑스-레닌주의가 위대한 쏘련 및 중국을 통하여 우리 로동 계급에게 전파되었으며 대중 투쟁의 무기로 되기 시작하게 된 결과라는 것…(후략)
100~101쪽.
주지하는 바와 같이 김일성 동지는 일제기 국제당과의 긴밀한 관계하에서 조선에서의 새로운 형의 맑스-레닌주의 당 창건 사업을 빛나게 수행해 나갔다. 즉 김일성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견실한 공산주의자들은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면서 일국 일당의 원칙에 립각하여 당 조직을 체계적으로 조직 확장하였으며 당 생활을 강화하였으며 당성을 단련시키며 당적 지도를 강화하여 왔던 것이다. 견실한 공산주의자들이 이와 같은 당 조직을 가지였으며 또 통일적 맑스-레닌주의 당 창건을 위한 사상적, 조직적 및 전술 전략적 기초를 구축하는 투쟁 없이 조선의 로동 계급의 헤게모니는 절대로 실현되지 못하였을 것은 의심할 여지 없다. 그러나 저자는 바로 프로레타리아트 헤게모니 실현의 문제를 견실한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당 창건의 투쟁과 분리하여 고찰하고 있는 것이다.
101쪽
항일 무장 투쟁 시기의 견실한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는 것은 민족 해방 운동에 있어서 프로레타리아트 헤게모니를 위한 견실한 공산주의자들의 투쟁을 보여 줌에 있어서 결정적 의의를 가지는 것이다. 이것을 성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서는 항일 무장 투쟁 단계에로의 민족 해방 운동 발전의 력사적 필연성과 그의 합법칙성을 론증하면서 김일성 동지를 비롯한 견실한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해결된 민족 해방 운동에 대한 맑스-레닌주의 전략 전술의 확립, 조선 혁명 수행에 대한 정확한 정치 로선과 정책들의 강구 실시, 혁명 운동의 대중적 지반의 확대 강화를 위한 실천적 투쟁 등을 통하여 새형의 맑스-레린주의 당 창건을 위한 사상 조직적 준비 과정을 론증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20년대의 종파의 극악한 해독성을 청산하기 위해서와 혁명 운동에 대한 온갖 좌유경 기회주의를 극복하기 위하여 조선 프로레타리아트로 하여금 진실로 조선 혁명의 령도적 계급으로 단련되게끔 한 견실한 조선 공산주의 력량의 장성과 그 집결 과정, 그의 실천적 활동을 규명하는데 돌려야 할 것은 명백한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항일 무장 투쟁 시기의 지도적 핵심인 견실한 공산주의자들의 혁명적 활동을 불충분 하게 취급하였으며 소홀히 하였다.
105쪽
주지하는 바와 같이 김일성 동지와 그의 전우들을 선두로 하는 견실한 공산주의자들은 혁명 활동의 실천적 투쟁을 통하여 온갖 종파적 경향과 기회주의와의 비타협적 투쟁을 전개하였으며 공산주의 진영 내의 통일과 단결을 위하여 헌신적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들은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온갖 비속화의 경향과 수정주의를 반대하여 조선 혁명의 구체적 실천에 맑스주의 리론을 결부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과 투쟁을 통하여 민족 해방 운동의 최고 형태인 항일 무장 투쟁 단계를 창설하였다.
그러나 저자는 견실한 공산주의자들의 구체적 활동에 대한 분석은 없이 일제와 파쑈 폭압과 국내 운동의 폭동등의 조건들을 가지고 투쟁 형태의 이행 문제를 형식적으로 정식화하는 것은 매우 불충분하며 본질적인 점에서 일탈한 것이라고 본다. 이것을 옳게 해명해야만 김일성 동지와 견실한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맑스-레닌주의 당 창건을 위한 투쟁 방침이 명확히 천명되는 바 저자는 이와 같은 설명이 없이 20년대 정세가 당 창건을 요구하였다는 것으로서만(동서 213페지) 문제를 끌어 가고 있을 뿐이다.
106쪽
이와 같이 김일성 동지와 그 전우들의 지도하에서 민족 해방 운동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 헤게모니의 요구가 실현되어 나갔는 바 그 실현은 혁명적 당 창건을 위한 사상 조직적 준비 투쟁과의 심오한 결부가 없이는 도저히 서술될 수 없는 것이다.
항일 무장 투쟁의 전 행정은 공산주의적 핵심의 집결 단련 과정이었으며 대중과의 련계의 부단한 강화 과정이었으며 유일한 규률로 결속된 공산주의자들의 조직의 강화 발전 과정이었다. 빨찌산 투쟁 형태를 통하여 로동 운동, 농민 운동을 그에 결합시키면서 조선 혁명을 통일적으로 지도한 이 영광스러운 행로는 아직 통일된 맑스-레닌주의 당은 조직된 형태로 존재하지 못하였으나 그의 사상조직적 및 전술적 준비는 구축된 것으로써 바로 여기에 우리 당의 혁명적 전통을 밝혀 주는 관건이 있다고 보며 이것을 떠나서 프롤레타리아트 헤게모니 문제의 론의는 형식적이라고 본다.
107쪽
인용된 부분을 보고 있으면 수령님에게 “제발 저 좀 예쁘게 봐 주세요”하고 알랑거리는 젊은날의 황장엽 동지가 떠오릅니다. 사실 젊고 정치적으로 야심있는 학자가 학계의 쟁쟁한 선배들을 ‘합법적으로’ 제거할 기회가 왔는데 가만히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겠지요.
황장엽의 이 글은 권력에 대한 의지가 매우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글이라 읽는 재미가 나름 쏠쏠합니다. 어쨌든 젊은날의 황장엽은 학문적 정치투쟁을 통해 권력과 영광을 거머쥘 수 있었습니다. 이청원 등의 선배들이 몰락했을 때 황장엽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을 겁니다. 물론 이 글을 쓸 때는 자신이 남반부 괴뢰정권에 쿵짝하게 될거라곤 상상도 못했겠지요. 하지만 글에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권력에 대한 의지를 보고 있자니 노년의 황장엽도 딱히 상상못할 존재는 아니라는 느낌도 듭니다. 대부분의 경쟁자들을 무찌르고 천수를 누리다 갔으니 나름 인생의 승리자라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