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많다 보니 좀 정신이 없습니다.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께 제때 답변을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한 12월은 되야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판터의 기계적 신뢰성에 대한 글을 써보려고 책을 몇권 뒤지다보니 2012년 사망한 미국의 독일 기갑차량 연구자 토마스 젠츠(Thomas L. Jentz)의 영향력이 꽤 크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판터에 관한 비교적 최근의 저작이라 할 수 있는 프랑크 쾰러(Frank Köhler)의 Panther: Meilenstein der Panzertechnik에서도 판터의 주요 구성품의 수명주기에 대한 내용은 거의 대부분 토마스 젠츠의 Germany's Panther Tank: The Quest for Combat Supremacy의 내용을 재인용하고 있었습니다. 쾰러의 저작은 프라이부르크의 독일연방문서보관소와 코블렌츠의 연방군 국방기술연구박물관(Wehrtechnischen Studiensammlung)이 소장한 1차 사료등 2014년 시점에서 참고할 수 있는 판터와 관련된 문헌은 대부분 활용한 저작입니다. 이런 연구자 조차 상당히 많은 부분을 토마스 젠츠의 연구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그만큼 토마스 젠츠가 연구를 하면서 광범위한 1차 사료를 검토했음을 입증해 줍니다. 즉 신뢰도 면에서 토마스 젠츠는 충분히 검증된 연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젠츠가 내놓은 수많은 연구서들의 공통적인 문제는 주석을 거의 달지 않았다는 것 입니다. 젠츠의 저작들이 대부분 전문적인 연구서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건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젠츠가 주석을 달지 않았기 때문에 젠츠의 저작에 인용된 1차 문헌들을 찾아보려면 상당히 골치가 아픕니다. 위에서 언급한 프랑크 쾰러나 토마스 안데르손(Thomas Anderson) 같이 비교적 최근 연구를 내고 있는 독일 기갑차량 연구자들은 연구서의 경우 주석을 충실히 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연구들도 출처가 젠츠의 서적일때는 살짝 난감해 집니다. 젠츠가 본 사료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1차 사료에 숙달된 연구자들은 내용만 보면 대략 어느 문서군의 무슨 문서인지 알 수 있습니다만 일반인들은 그게 아주 힘들죠. 젠츠는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만 주석을 제대로 달지 않았다는 점은 그의 명성을 고려했을때 아주 아쉬운 점 입니다.
밀리터리 무크지 "헤드쿼터" 창간호 "판터의 모든 것"이 도착해서 읽어봤습니다. 참 좋은 시도인데 결과물이 조금 아쉽습니다.
이 무크지의 서두를 장식하고 있는 것은 취미가의 편집장이었던 이대영님의 글 「판터는 성공한 짝퉁이다」입니다. 옛날 취미가 시절이 생각나는 글 입니다. 이대영님의 문체는 유려하지만 좀 알맹이는 부실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특히 판터의 변속기와 구동장치가 전쟁이 끝날때 까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는 약간 부정확한 서술 등이 보입니다. 전반적으로 판터의 개발사를 논하기에는 부족한 글 입니다.
내용면에서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채승병님, 진중근 중령님 같은 분을 섭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분들에게 지면을 적게 할애해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느낌입니다. 채승병님이 집필한 판터의 첫 실전투입을 다룬 「촉박한 일정 속의 예고된 재앙: 쿠르스크 전투」는 14~21쪽에 걸쳐 실려있으나 다수의 일러스트레이션이 있어서 실제 분량은 이것보다 훨씬 적습니다. 채승병님의 글은 짧은 분량 내에서 쿠르스크 전투의 전략적 배경, 판터가 투입되게 된 작전적 배경, 그리고 실제 전투에서 전술적 운용을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분량이 조금 더 많았다면 좋았을 것 입니다. 역시 채승병님의 글인 「에른스트 바르크만의 만헤이 활극」은 과거 채승병님의 인터넷 사이트 '페리스코프'에 실렸던 글인데 원문 보다 많이 축약됐습니다.
읽고 나니 이 무크지가 얇은 편이라는걸 감안하더라도 제한된 분량을 낭비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54쪽 부터 59쪽 까지는 판터의 사진들이 실려있는데 딱히 고화질의 화보도 아니라서 이런걸 왜 넣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불필요한 화보를 넣을 지면에 다른 분들의 글을 더 보충하는게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유감스러운 부분은 이성주씨의 「나는 왜 야크트판터를 좋아하는가」, 그리고 역시 이성주씨의 소설 「요람안에서」가 상당한 분량을 잡아먹고 있다는 점 입니다. 전자는 그냥 단순한 잡담이고 후자는 소설입니다. 이성주씨의 소설은 66쪽에서 76쪽까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걸 빼고 판터의 기술적 측면이나 실전 운용을 분석한 글을 더 넣는게 이 무크지를 충실하게 했을겁니다.
무크지의 제목은 「판터의 모든 것」인데 제목값을 못한다는 느낌입니다. 소설을 넣을 공간에 독일군이 판터를 집중운용한 노르망디 전역이나 1944년 동부전선의 작전들(예를들어 바그라티온 작전 당시 독일 기갑사단들의 작전)을 분석한 글을 넣는게 좋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 무크지에서는 「촉박한 일정 속의 예고된 재앙: 쿠르스크 전투」와 우에스기라는 분의 「판터의 사라지는 전설: 아라쿠르 전투」 등 두편의 글이 판터가 투입된 작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판터 특집이라는데 어째 판터가 굴욕을 당한 전투만 선정을 했군요.
그리고 '판터의 모든 것'을 다루고자 했다면 판터와 관련된 참고문헌들을 정리해서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하는 것도 좋았을 것 입니다. 판터는 꽤 유명한 전차이고 이 전차를 분석한 서적은 여러종이 나와 있습니다. 과거 취미가 같은 잡지에서는 모형인들을 대상으로 간헐적으로 군사관련 참고문헌을 소개하는 기사를 마련하곤 했지요. 「판터의 모든 것」에는 이성주씨의 잡담이 들어간 지면은 있지만 판터에 대한 참고문헌들을 다루는 지면은 없습니다. 매우 유감입니다.
아카데미과학 개발부의 이선구 부장님을 인터뷰한 「독일 대전물의 라인업을 완성하다」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마음에 드는 기사였습니다. 이 기사는 무크지 「판터의 모든 것」에 부록으로 들어간 아카데미과학의 판터G형 모형 개발에 대한 이야기인데 개인적으로 이 키트를 꽤 좋아하기 때문에 즐겁게 읽었습니다.
마무리는 정경찬님의 글 「전후세계의 판터는 어떻게 되었을까」입니다. 1945년 이후 각국의 판터 운용에 대해서 소개하는 글 입니다. 무크지의 성격에 맞는 마무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부록은 꽤 충실합니다. 독일군의 교범인 판터 피벨의 원문 복각판과 한국어 번역판, 그리고 웹툰 70의 작가인 김재희님의 단편만화가 있습니다.
「판터의 모든 것」은 전체적으로 좋은 시도입니다.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둬서 앞으로도 이런 시도가 계속되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다음번에는 첫번째 타자의 단점들을 보완하면 좋겠네요.
냉전의 종식은 제2차세계대전 연구에 있어 일대 전환점이었습니다. 냉전 시기에는 공개되지 않았던 많은 사료들이 공개되면서 특히 독소전쟁 연구가 급격히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요. 러시아 정부가 독일 정부에 반환한 사료와 동독 정부가 소장하고 있던 사료가 통일 독일정부의 소유가 된 일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외에도 동유럽의 공산 국가들이 붕괴하면서 새롭게 서방에 공개된 자료도 많습니다. 체코 정부가 소장하고 있던 무장친위대 사료도 그 중 하나입니다. 프라하의 군사문서보관소에 소장된 무장친위대 사료들이 1990년대에 공개되면서 무장친위대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들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2012년 출간된 Norbert Számvéber의 Waffen-SS Armour in Normandy가 대표적입니다.
프라하 군사문서보관소가 무장친위대 사료를 소장하게 된 계기는 꽤 재미있습니다. 친위대 본부는 1944년 초 부터 베를린 북쪽의 오라니엔부르크(Oranienburg)에 보관하고 있던 서류들을 연합군의 폭격을 피하기 위해 프라하 동쪽의 자스무키(Zásmuky)로 옮겼습니다. 독일이 패망하자 이 문서들은 체코슬로바키아 정부가 소유하게 됩니다. 체코슬로바키아가 공산화 된 뒤 무장친위대 문서들은 비공개로 제한적인 접근만이 가능했습니다. 동독 정부가 1950년대 부터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와의 교류하에 무장친위대 자료 중 일부를 반환받았습니다. 동독정부는 1957년 체코슬로바키아 정부로 부터 약 10톤 가량의 문서를 반환받았는데 이것은 친위대원의 신상문서, 무장친위대의 군법회의 기록 등이었다고 합니다. 동독정부는 반환받지 못한 문서에 대해서는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의 협조하에 마이크로필름을 촬영하고 해제를 작성했지만 동독이 붕괴될 때 까지도 이 작업을 마무리하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냉전이 종식된 이후에야 프라하에서 보관하고 있던 무장친위대 사료들이 본격적으로 공개되게 됩니다. 통일된 독일 정부는 체코 정부가 소장하고 있는 독일 사료들에 대한 조사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1991년 부터 독일 연방문서보관소와 체코 군사문서보관소 사이에 공식 교류가 시작됐습니다. 1993년에는 이때까지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여 Militärgeschichtliche Mitteilungen 52호에 Zuzana Pivcová가 쓴 프라하 군사문서보관소가 소장한 무장친위대 사료에 대한 짤막한 해제 "Das Militärhistorische Archiv in Prag und seine deutschen Bestände"가 발표되었습니다.
프라하 군사문서보관소가 소장한 무장친위대 사료군의 특징은 연대급 부대들의 문서가 주종을 이룬다는 점 입니다. 무장친위대의 야전군~사단급 문서들은 미국이 노획하여 1970년대까지 원본을 미국이 소장하고 있다가 서독 정부에 반환했습니다. 미국은 노획한 무장친위대 문서들을 다른 독일 문서와 마찬가지로 RG242 문서군에 넣어 관리했습니다. 프라하 군사문서보관소는 연대급 부대들의 사료를 소장했는데 이러한 문서들은 보다 미시적인 전술 단위의 연구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물론 프라하 군사문서보관소에도 군단급의 상급부대 사료들이 있습니다만 미국이 가지고 있다가 독일 반환한 것에 비하면 소량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Norbert Számvéber의 Waffen-SS Armour in Normandy가 무장친위대 제12전차연대의 기록을 바탕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2000년대 이후 간행되고 있는 무장친위대에 관한 서적 중 많은 수가 프라하 군사문서보관소의 사료들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체코 정부가 소장한 사료들은 현재 독일 정부가 소장한 무장친위대 사료들의 빠진 부분을 보완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Osprey 출판사에서 낸 Douglas C. Dildy와 Paul F. Crickmore의 To Defeat the Few: The Luftwaffe’s Campaign to Destroy RAF Fighter Command, August-September 1940를 읽었습니다. 영국본토방공전을 독일 공군을 중심으로 분석한 저작입니다. 필자들은 히틀러와 독일공군 수뇌부의 전략적 목표와 작전 단위의 결단을 분석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작전 단위 이상의 전개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전술 차원의 공중전 교환비나 격추 전과 검증은 중요하게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단지 고급 지휘관들의 결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경우에 한해서 독일공군과 영국공군이 자군의 전과와 손실을 어떻게 평가했는지를 언급합니다.
이 책은 총 14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중 1장부터 3장을 영국본토방공전의 전사인 서부전역 항공전과 됭케르크 항공전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4장부터 6장까지는 서부전역 이후 독일 수뇌부의 전쟁지도 방침, 독일공군과 영국공군의 조직과 편성, 교리, 전술을 비교분석 하는 내용입니다. 7장부터 13장까지는 영국본토방공전을 단계별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습니다. 7장은 영국해협의 해운 봉쇄를 위한 해협항공전(Kanalkampf), 8장은 제뢰베 작전의 입안, 9장부터 12장까지는 8월 12일부터 9월 17일까지의 영국본토방공전을 단계별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13장은 9월 공세에서 패배한 독일 공군이 10월까지 진행한 공세작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지막 14장은 결론입니다.
저자들은 독일공군의 입장에서 서술을 하기 위해 영국본토방공전의 각 단계를 독일측의 기준에 맞춰 분류하고 있습니다. 각 단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조우전단계, 프랑스전역 종결 직후부터 1940년 8월 7일까지: 영국해협 해운 봉쇄를 위한 해협항공전이 진행된 시기.
1기 1단계, 8월 8일~8월 23일: 바다사자작전 준비 차원에서 영국 남부의 비행장과 해군 기지에 대한 광범위한 공격이 진행된 시기.
1기 2단계, 8월 24일~9월 6일: 영국 남부의 제공권 장악을 위해 영국공군 제11비행단(No.11 Group)의 기지에 공격을 집중한 시기.
2기 1단계 , 9월 7일~9월 19일: 런던과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공격을 집중한 시기
2기 2단계, 9월 20일~11월 13일: 런던을 중심으로 전투폭격기(Jabo)의 주간 공격과 폭격기부대의 야간 폭격을 병행한 시기.
2기 3단계, 11월 14일~1941년 5월 21일: 영국 본토에 대한 대규모 폭격의 최종 단계. 영국에서 통칭 야간 전격전(Night Blitz)로 칭하는 시기.
작전사를 다루는 연구들이 모두 그렇듯 이 책의 핵심 주제는 “독일 공군이 왜 영국본토방공전에서 패했는가?”입니다.
저자들은 독일 공군의 전술적 우위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입장입니다. 문제는 작전~전략단위의 능력입니다. 결국 영국본토방공전이라는 전략 단위의 항공전에서 독일공군이 패배한 원인은 작전~전략 단위의 역량 부족에서 찾아야 한다는 관점입니다.
이 책에서는 먼저 독일공군본부의 조직적 문제를 지적합니다. 독일공군은 신생 병종이었고 이 때문에 공군본부를 원활하게 운영할 수 있을 만큼의 고급장교를 육성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독일공군의 고급장교들은 대부분 육군 출신으로 항공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인물도 있었습니다. 가장 큰 구조적 문제는 1940년 시점에서 독일공군본부에는 공군이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전략단위의 작전을 기획할 조직이 없었다는 점 입니다. 저자들은 1940년 6월 시점에서 독일공군본부의 참모조직은 독일육군본부나 독일해군본부의 전문적인 참모조직과 달리 공군사령관 헤르만 괴링의 개인 참모조직에 불과한 수준이었다고 비판합니다.
오토 호프만 폰 발다우(Otto Hoffmann von Waldau) 소장이 이끄는 독일공군본부의 작전참모국은 작전과, 훈련과, 정보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공군본부의 작전참모국은 부대의 이동과 작전 목표 선정 및 우선순위 부여, 목표 목록 및 정보 하달 등의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실제 작전 수립은 항공군(Luftflotten) 사령부와 항공군단 사령부 단위에서 담당했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작전-전술 단위에 불과했으며, 이때까지 지상군의 작전과 연계된 작전만을 수행해 왔습니다. 공군본부의 작전참모국이 각 항공군사령부에 작전 목표 목록을 하달하면 항공군사령부는 지원하는 육군의 집단군 사령부와 협의해 목록 중에서 목표를 선정하고 실제 작전을 입안하는 방식이었습니다. 1940년 6월 시점에서 독일공군본부는 단독으로 영국공군을 제압하는 전략 단위의 항공 작전을 수립해야 했습니다. 독일공군본부가 여지껏 단 한번도 수행해 보지 못한 과제였습니다.
다음으로는 정보 문제를 지적합니다. 사실 정보 수집 및 분석능력 부족은 독일 공군은 물론 육군본부의 참모조직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였습니다. 영국본토방공전 기간 중 독일공군본부 작전참모국의 정보과장은 요세프 슈미트(Josef Schmid) 중령이었습니다. 정보과의 정보 수집능력은 상당히 빈약했던 것으로 나타납니다. 전쟁 이전에는 각국 주재 공군무관부와 국방군 방첩국(Abwehr)의 정보수집에 의존했습니다. 그리고 친위대 보안국(SD, Sicherheitsdienst)의 해외자료 수집에도 크게 의존했습니다. 그러나 친위대 보안국은 군사정보 수집을 주목적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안국을 통한 군사정보 획득은 불규칙했습니다. 이런 빈약한 정보수집능력 조차 전쟁이 발발하면서 무너지고 맙니다. 결과적으로 전쟁이 발발한 뒤에는 인적자산을 통한 정보수집은 마비되었고 항공정찰 및 감청이 주된 정보수집 수단이 됩니다. 정보과장 슈미트 중령의 분석 능력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지만 수집되는 첩보가 감소하니 분석력을 발휘할 여지도 줄어든 셈 입니다. 그리고 슈미트의 분석력 또한 점차 감퇴해 결국에는 객관적인 분석력을 상실하고 상관들이 원하는 정보를 가공해서 바치는 수준으로 전락했다고 평가합니다.
저자들은 슈미트가 8월의 공세 결과를 잘못 평가한 점을 예시로 듭니다. 1940년 8월 19일 베를린에서 열린 독일공군 수뇌부 회의에서 슈미트가 보고한 정보분석은 완전히 잘못된 분석을 하고 있었습니다. 슈미트는 1940년 7월 1일부터 영국공군이 561대의 전투기를 전투 손실로 잃었으며 추가로 196대의 전투기가 전투외의 원인으로 파괴되었다고 추산했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보충된 전투기(스핏파이어와 허리케인)은 270~300대라고 과소평가했습니다. 그는 영국공군이 본토 남부지역에 투입할 수 있는 주간전투기가 330대 가량일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슈미트는 이후에도 괴링에게 계속해서 부정확하고 과장된 내용을 전달했습니다. 그는 8월 24일부터 9월 2일까지 제2항공군의 전투기부대가 공중전에서 영국공군의 전투기 572대를 격추했다고 보고했고 괴링은 이것을 토대로 영국 공군의 잔여 전력을 격파하기 위해서는 비행장을 폭격하는 것 보다 공중전으로 끌어내는게 더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실 8월 내내 영국공군의 전투기 부대는 완강하게 저항했으나 슈미트는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독일공군의 전투기부대가 ‘압도적인’ 교환비로 공중전에서 승리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9월 1일 기준으로 영국공군의 전투기 전력은 총 600대이고 이중 420대가 영국 동남부에 배치되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괴링과 제2항공군 사령관 케셀링(Albert Kesselring)은 비행장을 계속 폭격하면 영국 전투기부대가 후방의 기지로 철수해 Bf109의 작전반경 안으로 끌어낼 수 없다고 생각해서 런던 폭격을 미끼로 영국공군의 남은 전투기를 끌어내 섬멸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독일공군의 고급 지휘관 중에서 제3항공군 사령관 후고 슈페를레(Hugo Sperrle)는 슈미트의 정보평가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영국공군의 가용 전투기 전력이 1,000대 이내일 것이라고 슈미트 보다는 정확한 평가를 했습니다. 또한 독일공군 전투기부대의 전과 보고가 매우 과장되어 있다고 정확하게 보았습니다. 슈페를레는 영국공군의 전투기 전력이 상당한 규모이기 때문에 제뢰베 작전을 수행하려면 영국 남부의 비행장을 계속 타격해서 영국 공군의 전투기 부대를 북쪽의 기지로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괴링은 슈미트의 정보평가를 신뢰해서 런던을 타격한다는 결정을 내립니다. 괴링은 9월 15일 런던 상공의 공중전에서 참패한 뒤에도 여전히 영국 전투기부대를 단기간 내에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독일 공군은 9월 27일의 런던 공습에서 참패하고서야 영국 전투기부대를 단기간에 제압하는게 불가능하다고 인정하게 됩니다. 독일공군은 이미 8월의 전투에서 영국 전투기부대의 완강한 저항으로 고전을 하고 있었음에도 자신들이 공중전에서 압승하고 있다는 잘못된 정보평가를 맹신했습니다. 독일 공군 전투기 부대가 영국본토방공전 기간 중 1.77:1로 우세한 교환비를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괴링이나 케셀링이 생각한 압도적 승리와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영국공군 전투기 부대는 지속적으로 증강되고 있었고 전투가 소모전으로 접어들자 독일공군 전투기 부대 보다 훨씬 잘 견딜 수 있었습니다. 저자들은 괴링이 잘못된 정보분석을 맹신해 비행장에 대한 타격을 중단한 것이 결정적인 패인이라고 평가합니다.
각 단계의 작전에 대한 저자들의 평가도 꽤 재미있습니다. 됭케르크 항공전을 예로 들 수 있겠군요. 저자들은 됭케르크 항공전 당시 영국공군 전투기부대의 역할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비판적입니다. 숫적 열세 때문에 독일 공군이 됭케르크에서 철수하는 연합군 선단을 공격할 때 충분한 공중 엄호를 제공하지 못했다고 평가합니다. 다이나모 작전 당시 독일 공군의 피해는 폭격기 51대와 전투기 36대인 반면 철수작전을 엄호한 제11비행단은 작전에 투입한 전투기 106대를 잃었고 이중84대를 독일 전투기와 폭격기의 방어사격에 상실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독일공군이 다이나모 작전을 저지하는데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공격을 됭케르크에 집중하지 못한데 있다고 봅니다. 독일공군은 다이나모 작전이 진행된 9일 중 겨우 3일만 됭케르크에 공격을 집중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겁니다. 저자들은 영국공군이 수송함대를 엄호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다이나모 작전 기간 중 됭케르크 공격에 집중했다면 독일공군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영국 해협 봉쇄를 위한 항공작전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양호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영국의 해운을 단기간에 마비시키기에는 충분하지 못한 수준이었다고 평가합니다. 독일공군은 이 기간에 급강하 폭격기와 중형폭격기의 폭격만으로 34척의 민간선박과 13척의 군함을 격침시켰으나 이것은 영국의 해운력과 해군력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이 책은 꽤 장점이 많습니다. 독일공군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지만 영국공군의 조직과 전술에 대한 설명도 풍부합니다. 오스프리 출판사의 저작 답게 독일공군과 영국공군의
전술을 그림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사진을 비롯한 도판도 풍부하고요.
저자들은 현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영국본토방공전을 현대 나토의 군사용어와 개념에 맞춰서 설명합니다. 예를들어 영국공군의 위성 비행장(satellite airfields)와
독일공군의 야전비행장(Feldflugplätze)을 나토의 개념인 전방작전기지(Forward Operating Location)로 분류하고 다우딩 시스템을 현대의 통합방공체계(Integrated Air Defence System)으로 분류하는 식 입니다.
기존의 연구 성과들을 잘 정리해서 재미있게 잘 쓴 책입니다. 다만 이미 영국본토방공전에 대한 훌륭한 책이 많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유명한 오스프리 출판사의 책이라는 점 때문에 완전히 묻히지는 않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