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러시아는 소모전으로 우크라이나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도네츠크 등 동부전선에서는 2024년 하반기 들어 러시아군이 전술적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이 추세로 나가게 된다면 작전적인 성공도 거둘지 모른다는 불안한 예측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군사원조는 우크라이나의 요구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군사원조가 계속 이 추세로 이어진다면 우크라이나가 2023년 여름과 같은 대공세를 펼치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정전 가능성이 계속 제기되고 있고 미국 대통령후보인 트럼프는 즉각 정전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전후 정세에 따라 러시아가 전쟁을 다시 시작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으니 평화는 요원합니다. 상황이 이러니 전후 러시아가 군사력을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에 대한 예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관련된 연구들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미국 전략예산평가연구소(CSBA, Center for Strategic and Budgetary Assessments)에서 2024년 3월에 낸
More of the same?: The Future of the Russian Military and its Ability to Change,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Chatham House, the Royal Institute of International Affairs)에서 2024년 7월에 낸
Assessing Russian Plans for Military Regeneration, 카네기국제평화대단(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에서 2024년 9월에 낸
Russian Military Reconstitution: 2030 Pathways and Prospects 등을 읽어 봤는데 전반적으로 전쟁이 끝나더라도 러시아군이 효율적인 군대로 탈바꿈하기는 어렵고 수년간 전쟁에서 입은 피해를 복구하는데 주력해야 할 걸로 평가합니다. 아직 전쟁이 종결되지 않았고 전후의 국제관계가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의 경향을 바탕으로 추론을 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미국 CSBA의 보고서 저자는 Katherine K. Elgin입니다. 이 보고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종결된 뒤 러시아가 군사력 재건을 시도하면서 안보적 위협으로 남겠지만 큰 혁신은 없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러시아 국가지도층, 특히 군지도층이 현재 러시아군이 처한 문제점을 제대로 진단할 능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전략사상 때문에 이번 전쟁에서 드러난 작전적, 전술적 문제는 외면하고 전략적인 측면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입니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하위 제대에 자율성을 거의 부여하지 않는 군사문화를 가지고 있고 푸틴 시기의 개혁도 이때문에 실패한 전례가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지금까지 그래왔듯 러시아의 경직된 관료주의 때문에 대규모 개혁은 있을 수 없다고 봅니다. 러시아 군부 엘리트층은 개혁에 저항할 걸로 보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러시아의 고질적인 부정부패 문제가 있습니다. 필자인 Elgin은 러시아의 지도층도 부정부패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러시아가 부정부패를 근본적으로 근절하는건 불가능하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므로 전후에 개혁을 시도한다고 한들 전쟁 이전의 궤적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이 연구는 그런 사례 중 하나로 전쟁 이전 세르듀코프 국방장관과 그 후임인 쇼이구의 개혁을 들고 있습니다. 세르듀코프와 쇼이구 시기 러시아는 국방개혁에 많은 자원을 투입했고 가시적인 성과도 있었지만 러시아의 부정부패와 경직된 관료 체제 등 본질적인 문제를 극복하지 못해 성공하지 못했다고 평가합니다.
영국 왕립국제문세연구소의 보고서는 저스틴 브롱크(Justin Bronk), 롭 리(Rob Lee) 등 저명한 분석가 여러명이 공동으로 집필했습니다. 이 두명 외에 공동저자로 마티외 불레그(Mathieu Boulègeu), 캐롤리나 허드(Karolina Hird), 재클린 커(Jaclyn Kerr), 마이클 피터슨(Michael B. Petersen) 등의 러시아 군사연구자들이 참여해 러시아군의 지휘통제체계 및 인력구조, 지상군, 공군, 해군, 비대칭전력, 군산복합체 등 주제별로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지휘통제체계 및 인적 자원 문제는 캐롤리나 허드가 집필했습니다. 허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잃고 있는 인력은 '숫자상'으로 충분히 보충하고 있지만 질적 수준이 낮기 때문에 작전적인 수준에서는 큰 변화가 없을 걸로 보고 있습니다. 러시아군의 개별 부대 단위에서는 전훈을 잘 분석해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사례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러시아군의 질이 낮아 성과가 확산되지 못한다고 봅니다. 특히 현재 대부분의 러시아군 부대들은 질이 떨어지는 병력으로 소모적인 보병 전투만을 벌이고 있어서 효율적인 제병협동 작전에 필요한 경험을 축적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러시아가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개혁에 나선다면 방심할 수 없다고 평가합니다.
러시아 지상군에 대한 분석은 롭 리가 집필했습니다. 롭 리 또한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된 러시아군의 질적 문제를 지적합니다. 공수군이나 해군보병대 같이 상대적으로 수준이 양호한 부대도 있지만 대부분의 지상군 부대는 질이 너무 낮아서 실질적인 보병 작전은 소수의 돌격부대에 의존하고 있다는 겁니다. 러시아 지상군의 포병 전력은 가장 높게 평가합니다. 포병의 숫자와 포탄의 양에서 우세를 보이고 있으며 전쟁 경험을 쌓으면서 표적 획득 및 타격의 효율성이 크게 향상됐기 때문입니다. 특수전부대와 미사일 전력을 통한 종심타격 능력에 대해서도 높게 평가합니다. 하지만 러시아 지상군의 전투력 회복 여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결과에 달려있다고 지적합니다. 전쟁이 오래 계속되어 지금과 같은 소모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만큼 전력을 회복하는게 어려워집니다. 또 전쟁에 너무나 많은 장비를 잃었기 때문에 향후 숫적인 전력 증강을 위해 T-72 계열과 BMP-3 같은 기존 장비의 생산에 주력하고 아르마타와 같은 신형 장비 도입은 더 지연될 걸로 예측합니다.
러시아 공군 부분은 저스틴 브롱크가 담당했습니다. 브롱크는 러시아 공군을 크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지상군은 최소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점령하는 성과를 내고 있는데 러시아 공군은 전쟁이 시작되고 2년이 넘도록 우크라이나 영공에서 이렇다 할 항공작전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러시아 공군은 수십년 동안 지상관제소의 관제와 사전에 계획된 경직된 계획에 따라 작전하는 관행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미래에도 큰 발전은 없을 거라고 봅니다. 러시아 공군은 미래에 Su-57과 같은 진보된 항공기를 대량으로 도입하려고 시도는 하겠지만 러시아의 경제 력과 서방의 경제제재 때문에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걸로 전망합니다. 브롱크는 서방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될 수 있는건 러시아의 지상방공전력에 그칠 걸로 봅니다.
러시아 해군은 마이클 피터슨이 집필했습니다. 피터슨은 러시아 해군이 지금까지 졸전을 거듭해 왔지만 과소평가를 해서는 안된다는 신중한 입장입니다. 우크라이나군이 지금까지 잘 싸워왔지만 우크라이나군에게 격침된 러시아해군 함선 중 '모스크바'를 제외하면 실질적인 주력함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러시아해군은 여전히 원양에서 작전할 능력이 충분하다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향후 전력 증강에는 어려움이 있을 걸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먼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큰 피해를 입은 지상군과 공군 등 다른 병종과 자원 경쟁을 해야 합니다. 또 러시아의 조선산업이 쇠퇴한 점도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 입니다.
러시아의 비대칭전력에 대한 부분은 재클린 커가 집필했습니다. 이른바 '하이브리드 전쟁'의 일환으로 지금까지 러시아가 수행한 사이버 여론공작 등은 지금까지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러시아는 위에서 아래로의 상명하달식 문화를 가지고 있고 민간 부문이 취약하기 때문에 한계를 안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군산복합체에 대해서는 마티외 불레그가 집필했습니다. 러시아의 군산복합체는 미래에 러시아의 군사적 부흥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 입니다. 불레그는 지금까지 수년간 계속된 서방의 경제제재로 러시아의 군산복합체는 큰 타격을 받았으며 당분간 계속해서 쇠퇴할 거라고 전망합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보고서는 지난 9월에 공개됐습니다. 필자는 카네기국제평화재단에서 러시아 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다라 마시코(Dara Massicot)와 국제정치컨설팅 기업인 Oxford Analytica의 러시아 경제전문가 리처드 코놀리(Richard Connolly) 두 사람입니다.
전후 군대를 재건하는데 고려할 가장 중요한 요인은 역시 인력 문제입니다. 이 연구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종결된 이후 러시아군이 어떻게 인력을 수급할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현재 러시아군의 급여는 전쟁 전에 비해 크게 높아졌고 이 덕분에 모병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는 국방예산이 삭감될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군대의 급여 수준도 떨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 처럼 대량으로 소모할 낮은 수준의 보병을 충원할 것이 아니라면 높은 급여를 지급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전후에 러시아군이 얻을 수 있는 인력은 매우 수준이 낮은 인력일 겁니다. 게다가 과거의 전쟁과 달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매우 많은 사람이 군에 입대했기 때문에 러시아 군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점도 문제로 꼽습니다. 게다라 러시아는 근본적으로 인구 구조가 썩 좋지 않으므로 미래로 갈 수록 병력 수급이 어려워 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현재 러시아 정부는 전후에도 2022년 보다는 더 많은 군대를 확보하려 한다는 정황이 있으므로 향후 러시아 정부가 인력 획득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지 궁금합니다.
장비 획득 문제에 대한 전망도 부정적입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지금 러시아는 손실을 메꾸기 위해 비축물자 재생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신규생산의 비중은 낮습니다. 전쟁이 일어난 이후 신규생산을 늘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서방의 경제제재 등으로 인해 큰 성과는 보고 있지 못 합니다. 러시아가 경제제재로 군용장비 생산에 필요한 전자부품을 획득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에 노동력 문제도 있습니다. 노동력 문제는 군병력 획득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기본적인 인구구조가 문제입니다. 또 러시아는 여성 노동력을 중공업에 투입하지 않는 정책을 취하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전후 러시아의 경제와 국가재정 문제가 있습니다. 러시아는 장기전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전 수립한 국가재정 계획을 대폭 수정하고 국가 지출을 크게 늘렸습니다. 러시아가 현재 수준의 재정지출만으로 전쟁을 잘 수행해 온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러시아가 전쟁에서 입은 막대한 인적-물적 손실을 보충하고 군사력을 증강하기 위해서는 현재 수준의 재정지출만으로 부족합니다. 러시아가 군사력을 보다 급속히 증강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급증시킨다면 소련 시기 보다 훨씬 더 경제가 군사화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 세편의 보고서 모두 러시아와 러시아군의 미래에 대해서 부정적인 예측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만 가지고 판단하면 충분히 합리적인 예측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러시아가 전쟁에 승리한다고 해도 군사력을 복구하는데는 어려움을 겪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