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지중해에서 그럭저럭 밥값은 하던 해군과는 달리 시작부터 끝까지 졸전을 거듭하며 호사가들의 안주거리가 된 육군과 그 육군의 뒤치닥 거리만 하다가 종전을 맞은 공군, Regia Aeronautica는 그야말로 비참함 그 자체다.
이탈리아 공군은 육군과 마찬가지로 적들에 비해 뒤떨어진 장비, 그리고 불충분한 항공기 생산량으로 대표되는 결정적인 약점을 안고 있었다. 질과 양 모두 뒤떨어지는 비참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다.
이탈리아 공군이 193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세계적인 수준이었다는 점을 보면 불과 10년도 안된 사이에 이렇게 몰락했다는 것은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먼저 항공기 생산을 살펴 보면 이탈리아는 전쟁 이전부터 싹수가 글러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 공군의 2차 대전 이전 항공기 생산 계획과 실제 생산량은 다음과 같았다.
연 도
|
생산계획
|
생산량
|
1933
|
424
|
386
|
1934
|
455
|
328
|
1935
|
1,236
|
895
|
1936
|
2,031
|
1,768
|
1937
|
1,900
|
1,749
|
1938
|
1,700
|
1,610
|
1939
|
1,930
|
1,750
|
위의 수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탈리아는 전쟁 이전에도 계획된 생산량을 달성하지 못 했고 이 때문에 1937년부터 생산계획량을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목표에 도달하지 못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이탈리아는 전쟁 발발 이전부터 골머리 아픈 경제문제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일단 국방예산을 보자.
이탈리아는 동원체제에 들어간 나라도 아닌 주제에 전쟁 이전부터 국방비가 국가 예산의 30%를 돌파하고 있었다!
아래의 수치를 보자.
회계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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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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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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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35
|
22.5
|
5.3
|
1935/36
|
35.2
|
12.1
|
1936/37
|
39.2
|
13.1
|
1937/38
|
39.6
|
12.3
|
1938/39
|
40.9
|
13.4
|
1939/40
|
54.4
|
24.7
|
국방비가 이렇게 많은데 왜 공군은 저 모양이었는가?
가장 먼저 예산 우선순위가 해군과 육군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1933년부터 1940년 까지 이탈리아 공군에 배정된 예산은 평균 전체 국방비의 24.5%였는데 독일 공군은 재무장 직전인 1934년에도 36%, 영국 공군도 전시 동원 이전인 1938년에 국방예산의 38%를 배정 받고 있었다.
그리고 공군에 들어오는 예산도 신장비 도입보다는 기존에 있는 장비를 관리하는데 더 많이 배정이 됐다.
결정적으로 오지랖만 넓은 두체가 사방에 허세를 부리는 통에 그나마 배정 받은 예산도 괴상한 곳으로 많이 흘러 들어갔다.
먼저 1938년까지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공군을 지원하기 위해서 이탈리아 공군의 예산(!)이 지원됐고 뒤이어 이디오피아와 스페인 내전 개입으로 더 많은 예산이 새 나갔다.
내실을 다져야 할 시기에 삽질만 한 셈이다.
1938년 12월 이탈리아 공군의 항공기 보유대수는 1년 전보다 500대 이상 줄어들었고 생각이 조금 있는 이탈리아 장군들은 미래의 전쟁을 점점 더 암담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특히 스페인 내전 개입은 1938년까지 공군 전력을 170개 비행대로 증강시킨다는 공군 증강계획을 말아먹는데 일조했다.
물론 이탈리아 공군도 1936년 스페인 내전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면서 미래 전쟁을 대비한 ‘R 계획’을 만들어 항공 전력을 확충하긴 했지만 영국 같은 강대국과 한판 벌이기에는 상당히 부실했다.
무 엇보다 이탈리아 공군은 매우 부실한 장비만 두루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이탈리아 공군이 그나마 최신형이라고 내놓은 MC.200 전투기는 성능은 Bf-109 E나 스핏파이어 Mk.I 같은 동시기의 전투기보다 성능은 뒤떨어지는 주제에 생산성도 무려 다섯배나 떨어졌다.
Bf-109E의 생산에 소요되는 시간이 평균 4,500 시간이었는데 MC.200은 21,000시간(!)이나 잡아 먹고 있었다.
이탈리아 공군 전력은 1939년 10월 말 ‘서류상’으로는 총 5,200대에 달했으나 이 중 2,700대는 너무 구식이어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900대는 정비 상태가 매우 불량해 즉시 폐기 처분해야 했다.
이결과 삽질의 제왕인 두체께서 영국과 프랑스에 호기롭게 선전포고를 했을 때 이탈리아 공군이 보유한 항공기 3,296대 중 가동 가능한 물건은 2,000대를 겨우 채우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 중 폭격기가 995대, 전투기가 574대 였는데 전투기 중 그나마 현대적인 물건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은 MC.200 77대와 Fiat G.50 89대에 불과했다!
이탈리아는 전쟁에 돌입하고 나서도 주력 전투기가 CR.42라는 당시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확실히 구식화 된 물건이었다.
반면 독일 공군은 이미 1939년 8월에 세계 최고수준의 전투기인 Bf-109 D 112대와 Bf-109 E 631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선전포고를 한 이탈리아는 먼저 가장 만만한 코르시카 등 지중해 일대의 프랑스 군을 공격했는데 6월 11일부터 24일까지의 짧은 교전 기간 중 지상에 주기된 70대의 프랑스 항공기를 격파하고 40대의 손실을 입었다.
그리고 프랑스가 곧바로 백기를 들고 이탈리아는 어쨌든 승전국 행세를 할 수 있게 됐다.
여기서 끝났다면 정말 행복했겠으나…
영국과의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되면서 이런 재미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돼 버렸다.
두체는 동업자(실은 상전) 히틀러가 프랑스에서 대박을 터트리자 곧 영국도 나자빠질 것으로 보고 Corpo Aereo Italiano라고 간판을 달고 CR.42, G.50 등 구닥다리 비행기 178대로 구성된 부대를 파견했다.
이 부대는 영국에 27톤의 폭탄을 투하한 것 외에는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빈둥대다가 리비아의 이탈리아군이 박살나자 땜빵을 위해 아프리카로 보내졌다.
1940년 말, 영국군이 이집트에서 공세를 개시하자 구식 항공기로 머리 숫자만 채운 이탈리아 공군은 2개월도 되지않아 풍비박산 나 버렸다. 단 2개월의 전투로 이탈리아 공군은 700대가 넘는 항공기를 잃어 버린 것이다!
이 중 100대가 공중전에서 격추됐고 140대는 영국공군의 공습으로 지상에서 격파 됐다. 그리고 약 400대는 이탈리아군이 패주하면서 자폭시키거나 소각시켰다고 한다.
2월 말 리비아에 남은 이탈리아 공군 전력은 채 70기가 되지 않았고 그나마 트리폴리의 제공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독일 공군이 파견한 ZG26의 20대 남짓한 Bf-110 장거리 전투기 덕분이었다.
이렇게 부실한 상태에서 전쟁에 뛰어든 허약한 공군은 지속적인 소모전으로 재미한번 보지 못한 채 역사의 뒷길로 초라하게 사라져갔다.
이탈리아 공군은 1940년 6월부터 1941년 3월까지 3,500대의 항공기를 상실했는데 같은 기간 보충된 항공기는 3,100대에 불과했다.
적자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결과 이탈리아 공군의 전력은 계속해서 감소했다!!!
이탈리아 공군은 1940년 6월 전쟁 발발 당시 2,000대의 작전 가능한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1941년 12월에는 1,493대, 1942년 11월에는 860대로 그 숫자가 계속 줄어들었다.
이탈리아 공군이 이렇게 전쟁 중반도 지나지 않아 나자빠진 원인은 이탈리아의 부실한 공업력과 전시동원 능력이었다.
먼저 이탈리아의 항공기 생산이 가장 큰 문제였다. 전쟁 기간 중 이탈리아의 항공기 생산은 다음과 같았다.
연도
|
생산계획
|
생산량
|
1940
|
3,785
|
3,257
|
1941
|
4,200
|
3,503
|
1942
|
4,800
|
2,821
|
1943
|
3,822
|
2,024
|
이탈리아의 항공기 생산은 1942년에 이미 엄청난 감소세로 돌아서는데 독일과 달리 산업시설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말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탈리아의 항공산업 노동자는 1934년 9,700명에서 1938년 45,700명으로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동안 생산성은 불과 50% 증가하는데 그쳤다.
결정적으로 노동력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노동 숙련도가 낮은 수준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항공산업 노동자는 1943년 초 까지 115,000명으로 증가했지만 월 평균 항공기 생산량은 266대로 1940년의 308대 보다도 오히려 더 감소한 비참한 수준이었다.
여기다가 신형 항공기 생산 부족과 생산 라인의 전환이 매우 더뎌 1943년까지도 CR.42같은 구식 기종의 생산을 계속해야만 했다. 어차피 아예 없는 것에 비하면 낫지 않은가.
어쨌거나 1943년 휴전이 성립된 뒤 이탈리아 공군은 정부와 마찬가지로 독일, 또는 연합군에 합류해 전쟁을 계속했다.
독일측은 무솔리니에 충성하는 병력을 근간으로 항공기 100대로 편성된 소규모 공군을 재건했다.
독일은 이탈리아군의 무장 해제시 약 1,200대의 이탈리아 항공기를 압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의 항공기가 성능 미달이었고 쓸만한 조종사의 충원도 어려운 문제였다.
이후 이탈리아 공군은 독일, 또는 연합군의 지원을 받아 생계를 유지해 나가다가 역시 궁색한 최후를 맞았다.
참고한 자료들...
F. D’Amico & G. Valentini, Regia Aeronautica
Olaf Groehler, Geschichte des Luftkriegs
Hans W. Neulen, Am Himmel Europas : Luftstreitkrafte an deutscher Seite 1939-1945
Brian R. Sullivan, “The Impatient Cat : Assessments of Military Power in Fascist Italy, 1936-1940”
Brian R. Sullivan, “Downfall of the Regia Aeronautica 1933-1943”
레지나 마리나와는 정 반대이군요;
답글삭제이탈리아 해군도 전쟁이전에 확보해 놓은 전력이 어느 정도 수준이 됐기에 그정도라도 한것일 뿐이죠.
답글삭제전쟁기간 중엔 역시 마찬가지로 예산과 공업력 문제로 신규 전력 확보가 문제였습니다.
돈 없는 나라가 주제파악 못하고 설친게 문제죠.
소련이니 독일이니 일본이니 미국이니 쟁쟁한 나라들 사이에서 너무 처지는데요;;
답글삭제하드웨어적인 면은 그렇다 치더라도 방기한 숫자가 너무 많고 공중전 교환율이 형편 없군요. 한 번에 수천대씩 방기하는 상황 속에서는 공업력이 받쳐준다고 해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을 거 같습니다. 더욱이 소프트웨어적인 면에서도 문제가 많았던 거 같군요. 도대체 이탈리아 공군은 체계가 어떻게 되어 있길래 저런 추태를 보일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답글삭제hyhn217님 // 네. 확실히 일본보다도 못하다는 느낌이 들죠.
답글삭제장갑냐옹이님 // 일단 이탈리아 기체들이 가혹한 사막의 환경을 버티기에 기술적으로 문제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상쇄시켜 줄 정비인력도 부족했고 예비부품 보급도 매우 시원찮았다고 하는군요.
그것도 전쟁 초기인 1940년 부터...
사막에서는 그렇다치고 넘어가죠. 예비부품 보급율이 낮았다는 건 말씀하신 대로 군수 물자를 제대로 생산하지 못했다는 거겠죠. 그렇게 공업력이 낮고 숙련 수준이 떨어지면서 전행을 감행한 용기가 가상합니다. 게다가 1940년이면 먹고 살만한 시기인데 그 시기에 이 모양이었으니 아예 전쟁 준비 자체가 제대로 도어 있지 않았다고 봐야겠군요.
답글삭제독일도 제대로 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건 해결했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비해 이탈리아는 한숨나오는군요.
장갑냐옹이님 // 네. 확실히 지도자를 잘 못 둔 이탈리아 인민들은 너무 불쌍합니다.
답글삭제비록 조종사들 개인 기량은 최고수준이었다지만...제대로 지원을 못 받는 상황에서는 말 그대로 안습인 거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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