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퍼싱이 유럽 원정군을 1918년 6월까지 1백만 수준으로 증강시키고 최종적으로 2백만으로 증강시킨다는 계획을 전쟁부(Department of War)에 제출했을 때 미국 유럽 전선에 보낸 장비 중 현대적인 야포는 120문의 M1903 3인치 유탄포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실상 미국에 제대로 된 군수공장이 드물다 보니 새로 개발하는 M1916 3인치 유탄포는 프랑스군의 75mm 포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 도중에 설계를 변경해야 했습니다. 결국 미국의 공장들은 프랑스로부터 75mm 유탄포의 생산면허를 도입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됩니다. M1916을 양산할 수 있을 때 까지 기다리다간 전쟁이 끝날 판이었으니…
1차 대전이 끝난 뒤 미 육군 포병감 스노우(William J. Snow)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전쟁 기간에 우리는 우리 군대에 대포를 보급할 능력도 없었고 보급하지도 못했다고 말해도 틀리진 않을 것이다."
지금이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일 이겠지만, 프랑스 정부가 미국의 딱한 사정을 보고 나서게 됩니다. 1917년 5월 22일, 조프레는 미국 전쟁성에 미육군의 병력 동원을 앞당기기 위해 미국이 필요로 하는 자동화기와 야포를 모두 프랑스 정부가 원조한다는 안을 제안했습니다.
또 같은 달 25일에 프랑스 정부는 미국 측에 1백만발의 75mm 포탄과 10만발의 155mm 포탄을 먼저 원조하고 그 다음으로 매일 3만발의 75mm 포탄과 6천발의 155mm 포탄을 원조하겠다는 제안을 하게 됩니다.
마침내 미국 정부는 1917년 6월 9일에 프랑스 측에 미국제 3인치, 6인치 유탄포 생산을 취소하고 그 대신 프랑스로부터 75mm, 155mm 유탄포를 원조 받겠다고 통보합니다. 당장 포탄부터 얻어 써야 할 판이니 대안이 없었던 것이죠.
결국 이 덕분에 오늘날 수많은 제 3세계 국가가 155mm를 주력 야포로 쓰고 있지요. 만약 미국이 원래 계획대로 3인치와 6인치 유탄포를 양산할 수 있었다면 오늘날 야포의 표준 구경은 6인치가 됐을 텐데 말입니다.
부족한 것은 대포 말고도 많았습니다.
1차 대전의 필수품, 기관총도 매우 적었던 것 입니다. 퍼싱은 기관총 부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프랑스에 처음 도착한 사단들은 미국 본토에서 기관총 사용을 충분히 훈련 받지 못했고 많은 사단들은 프랑스에 도착하기 전 까지 기관총을 지급받지 못한 상태였다. 전쟁에 참전할 당시 각 사단은 기관총 92정만 보유했는데 실제 편제상으로는 기관총 260정과 자동소총 768정이 필요했다. 기관총이 부족해서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됐는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결국 퍼싱은 1917년 6월 21일, 프랑스에 기관총도 원조해 줄 것을 요청하도록 전쟁부에 문서를 보냈고 프랑스 정부는 즉시 미국에 기관총과 탄약 일체를 원조하겠다는 답신을 보냅니다.
항공기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J. H. Morrow. Jr의 The Great War in the Air에는 전쟁 발발당시 말 그대로 안습이었던 미 육군항공대의 비참한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미 미국은 1909년 이후 군사 항공에서 독일과 프랑스에 큰 차이로 뒤진데다가 전쟁이 발발한 이후 유럽의 항공기술이 급속히 발전해 미국으로서는 이 격차를 쉽게 줄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결과 당연하게도(?) 미국 육군항공대는 프랑스가 만든 비행기로 도배를 하고 맙니다.
그러나 미국은 프랑스에 철강, 화약 등을 지원했기 때문에 프랑스에 대해 저자세를 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미국은 1917년에 영국과 프랑스를 합친 것 보다 더 많은 무연화약을 생산했습니다. 그리고 이 차이는 1918년에는 더 벌어지지요. 프랑스 역시 자원이 부족한데다 장기간의 전쟁으로 자본이 거덜날 지경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미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어내려고 혈안이 돼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측에 파격적인 선심공세를 퍼붓게 됩니다.
1차 대전기간 중 미육군이 프랑스와 영국으로부터 원조받은 장비는 다음과 같습니다.
(프랑스 / 영국)
야포 : 3,532 / 160
열차포 : 140 / 0
탄약차(Caisson) : 2,658 / 0
박격포 : 237 / 1,427
자동화기 : 40,884 / 0
전차 : 227 / 26
항공기 : 4,874 / 258
R. Bruce, A Fraternity of Arms : America & France in the Great War, p.105
거의 대부분의 군 장비를 원조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나마 차량은 생산기반이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에 중화기 보다는 조금 나은 편이었다지요.
저런 일들이 불과 90년 전 일 이라는게 믿어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저 때로부터 불과 30년 만에 경쟁자가 없는 절대 강국으로 떠오른 것을 보면 미국은 좋건 나쁘건 간에 역사상 유례가 없는 괴물 국가임에 틀림 없습니다.
요새 읽었던 존 키건의 책들이나 '미국해군 100년사'를 보면, 1차대전까지만 하더라도 프랑스 육군이 나름대로 잘 나갔던 것 같습니다. 독일에게 중공업 지역 상당부분을 내주면서도 초반엔 영국 원정군, 후반엔 미군 뒤치다꺼리를 해준 걸 보면요.
답글삭제그나저나, 미국이 저랬던 때가 아직 정정하신 제 할머니께서 10살때셨을 테니, 저도 앞으로 한 70년 정도만 살면 세상이 바뀌는 걸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
30년이면 강산이 세번 변한건데...
답글삭제정말 강산이 변하긴 변했군요.
역시 세상 오래살고 볼 일입니다.
big train님 // 아무래도 1871년 이후 '가열차게' 전쟁 준비를 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1890~1904년 사이에는 포병 전력에서 독일을 일시적으로 앞지르기도 했으니까요.
답글삭제155mm가 대세(?)가 된건 저런 비사가 있었군요...
답글삭제왠지 예전에 포스팅 해주셨던 미 육군의 차량화 포스팅이 연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