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대대는 비행장을 경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때 대대 보급관이 시내에서 막걸리를 찾아내어 휘발유 드럼통에서 휘발유를 쏟아버리고 9드럼의 술을 가져왔다.
나는 각 중대에 2드럼씩 나누어 주게 하여 오랜만에 쇠고기를 곁들여 소대별로 회식하도록 하였다. 북한의 10월은 저녁이 되자 날씨가 추워지는데다 행군과 전투에 지친 대대 장병들이 술에 곤드레 취했을 때 였다.
‘적이 역습하고 있으니 대대도 철수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러나 술에 너무 취해있어 부대행동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이때 다시 ‘철수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으나 이 실정을 그대로 보고할 수 없었다.
‘여기를 사수하겠습니다’고 白연대장에게 보고하고 말았다. 백연대장은 ‘1개 대대가 빠지지 못하고 적중에 고립되면 곤란하니 즉각 철수하라’고 재차 엄명하여 내가 송요찬 사단장에게 ‘사수하겠습니다’고 보고했더니 ‘빨리 철수하라. 사단이 모두 나왔는데 너희 대대만 안나오면 안돼’하여 ‘사수할 자신 있습니다. 적이 근접해와 전화를 끊겠습니다’고 한 후 아예 모든 유무선을 끊어버렸다.
그런 후 나는 각 중대장에게 ‘종교인이나 술 먹지 않은 사병을 뽑아 경계병으로 배치하되 적이 근접하여도 절대로 사격하지 말라. 적이 사격해와도 응전하지 말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내가 비행장 2층 건물에서 보았더니 몇 대의 적 전차가 굉음을 울리면서 비행장으로 들어오더니 연속적으로 사격을 가한다. 그러나 대대에서는 누구도 응사를 하지 않아 얼마 후 쥐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아군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는지 적이 그대로 돌아서 비행장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긴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아침에 사단이 재 공격해 올 때 나는 대대를 철도 옆에 배치하여 측방에서 엄호사격하여 사단공격에 기여했다. 비행장에는 적 전차 3대가 들어왔던 흔적이 있었다. 곧 송요찬 사단장은 비행장에 들어오자마자 나의 손을 잡으며 ‘너는 용감했다. 전 사단이 빠지는데 너만 남아서 사수하겠다고 하더니 정말 사수해 주었구나. 대대장병들에게 나의 뜻을 전해 달라’고 하면서 몇 번이고 악수하고 돌아갔다. 나의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그렇다고 ‘실상은 대대원들이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라는 말은 송장군께서 돌아갈 때 까지 못 했다.
漢南戰友會, 『번개부대의 6•25혈전기 : 육군독립 기갑연대사』(漢南戰友會,1997), 302~303쪽
독소전쟁 당시 독일측의 기록을 보면 도시나 마을을 점령한 소련군들이 술만 발견하면 일단 먹고 뻗어버리는 통에 역습을 들어가면 어이없게 승리했다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해도 그려려니 하는데… 문제는 북한군이 공격을 해 오고도 그냥 지나가서 무사했다는 것 입니다.
과연 전쟁에는 운이 따라야 하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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