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 : 이야기가 약간 뒤로 돌아갑니다만, 1984년 3월에 중국에 가셨지요?
나카소네 : 네. 최초의 공식방문이었지요. 그때까지는 호요방 씨가 아직 건재하였으므로 대환영을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북경대학에서 강연까지 했고 그것이 중국 전체에 TV로 방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강연이 끝난 다음 학생들이 이것저것 의견을 듣고 싶다기에 30명 정도 학생들과 간담을 했는데 일문일답하는 내용이 방영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학생들이, 야스쿠니신사참배 반대 전단도 뿌리고 데모도 하면서 나카소네 반대운동을 했어요.(웃음)
사토 : 중국에서 북한 문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지요?
나카소네 : 그때까지 남북한간의 화합에 대해서는 “결국 중국과 소련, 미국과 일본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과 북이 대화를 하게 하는 방법 밖에 없다. 그러나 그에 앞서서 한국전쟁의 교전국들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겠다. 그러니 남북한과 미국, 중국의 4자회담을 하라.”고 권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북한은 “한국은 제외시키고 3자회담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집하고 있었던 것 입니다. 그러니 호요방 씨에게 “그런 불합리한 억지주장은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중국이 4자회담에 응하도록 설득시켜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왜냐하면 전두환 씨로부터 “당신은 미국과 친하고 중국과도 사이가 좋으니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알선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있었으므로 그런 이야기를 건냈던 것 입니다. 그랬더니 – 이것은 솔직한 대답이었다고 생각되는데 – 호요방 씨가 “북한은 심리적으로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여서 중국도 다루기 힘들다. 그러한 북한에 대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입장이 못 된다.”는 말을 했습니다. 마치 위험한 폭발물을 다루듯 조심스러운 느낌이 그 당시부터 있었어요. 아마 북한은 현재 미국에 대해서 포커게임을 하고 있듯이 중국과도 그런 게임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사토 : 알만합니다.
나카소네 : 그러므로 중국으로서도 북한문제는 귀찮고 다루기 힘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소련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패권주의에 반대하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이토 다카시, 사토 세이사부로, 성완종 번역,『정치가는 역사의 법정에 선 피고』, 한송, 1998, 384~385쪽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북한은 확실히 ‘자율성’이 강한 국가입니다. 사실 자폐적이라고부르는 것이 보다 적절할 것 같긴 합니다만…. 소련으로부터 복구원조를 받아먹던 50년대 중반에도 소련의 통제가 제대로 먹히지 않았고 천리마운동 이후로는 그야말로 독자노선을 걷기 시작했지요. 지루한 핵 협상과정을 통해 잘 나타났듯 북한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은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러니 80년대 초반에는 인용한 글에서 후야오방이 밝혔듯 중국이나 소련의 말이 더욱 더 먹히지 않았을 것 입니다.
북한의 자율성(또는 자폐증)은 북한을 상대하는데 있어서 아주 골치 아픈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처럼 북한과 그럭 저럭 말이 통하는 국가가 필요한 것이겠지요. 북한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높아졌으니 정치적 영향력도 어느 정도는 높아지지 않았을까 싶은데 또 50년대의 경우를 보면 그렇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솔직히 잘 모르겠군요.;;;; 물론 미국이나 일본보다는 중국이 미치는 영향력이 크겠지만 어떤 때는 북한 문제에서 중국의 역할이 종이전화기에 달린 실 밖에 안되는 것 처럼 보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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