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개월간 중동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엄청난 국제적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비교적 국제문제에 무관심한 한국에서도 최근의 중동은 큰 관심을 끌었지요. 정치와는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중동 문제가 다뤄진 것을 보면 그 영향력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일본의 대지진 등 굵직한 사건이 연달아 터지면서 지금은 중동에 대한 관심이 다소 줄어들길 했습니다만.
하지만 좀 아쉬운 점이라면 한국 내에서는 갑작스럽게 관심이 끓어오른 것에 비해서 흥미로운 글이 부족했다는 것 입니다. 주류언론의 기사들은 정보 전달이 중심이었지만 한국의 언론들이 일반적으로 국제문제, 특히 한반도 주변국을 벗어난 문제에 대해서는 다소 취약한 편이었으니 그다지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꽤 흥미로웠던 것은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들에 올라온 일반인들의 글이었습니다. 상당히 많은 수의 글이 중동 사태를 단순한 독재세력vs민주화세력의 대결로 보고 있었고 특히 한국의 경험을 단순하게 대입시켜 보고 있었던 것 입니다.
해당 국가의 정치·사회적 배경에 대한 고찰없이 단순한 선악의 문제로 바라본다는 것이 좀 답답했는데 진보를 자처하는 몇몇 언론들도 유사한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꽤 흥미로웠습니다. 이런 재미있는 관점은 리비아 사태와 뒤이은 서구의 군사개입에도 반영되고 있습니다. 진보를 자처하는 한 인터넷 언론의 다음 기사가 이런 관점을 잘 보여주는 것 같군요.
사실 한국의 진보 지식인들이 제3세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런 구제불능의 발상은 하루이틀 된 것이 아니라서 더 재미있습니다. 1965년에 씌여진 다음 글을 보시지요.
1965년 4월 반둥 회의의 기조연설을 통해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은 “우리 인도네시아인이나 그 밖의 아시아·아프리카 제국(諸國)의 형제국들이 겪어온 고전적 형태의 것으로만 식민주의를 생말자. 식민주의는 이 밖에도 일국내의 소수의 외래적 집단에 의한 경제적 지적 물질적 지배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현대적 의상을 쓰고 있는 것이다. 식민주의는 능숙한 솜씨로 과감히 행동을 하는 적이며 여러가지 가장을 하고 나타난다. 식민주의는 어디서 어떻게 나타나던간에 이 지구상에서 뿌리를 뽑아야 할 악이다.” 이와 같은 수카르노의 기조연설 내용은 전후 후진국 개발원조라는 휴머니즘 탈을 쓰고 지배복종의 관계를 수립한 신식 제패형태, 즉 유선형의 제국주의적 신식민주의의 출현을 단적으로 말하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신형태의 제국주의와 대항하여 투쟁을 아끼지 않고 있는 신생 민족국가의 움직임은 아시아·아프리카를 비롯한 전세계의 후진지역 전반에 긍(亘)하여 확대되고 있으며 이 들의 횡적인 연대와 단결의 힘은 금일 세계사 상황의 주요한 새로운 원동력으로 등장함으로써 안으로는 진정한 민주주의적 사회정의의 실현과 완전한 정치적 경제적 자주독립을 쟁취하고 밖으로는 전쟁을 반대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신생제국이 달성한 독립의 과정과 형태는 일정하지 않고 각양각색의 특성을 가지고 있음은 주의깊게 관찰해야 할 점이다.
朴哲漢,「新生民族國家의 基本動向」,『靑脈』8호(1965. 5), 130-131쪽
저 글은 기본적으로 서구는 제국주의적인 惡이고 제3세계는 평화를 애호하는 善이라는 관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1965년은 한국이 식민지에서 해방된 지 불과 20년 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한국은 여전히 빈곤한 후진국이었던 때 입니다. 한일국교정상화가 가시화 되어 일본의 새로운 침략을 우려하던 때였으니 진보적 지식인들이 제3세계에 기대를 걸었던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 입니다.
그런데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들이 21세기에도 저것과 다름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우울한 일이지요. 인용문에서 제국주의 반대를 소리높여 외친 인도네시아만 하더라도 동티모르에서 똑같이 ‘제국주의적인’ 행태를 보였던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서방세계의 선진국들이 현실정치적인 바탕에서 움직이듯 제3세계의 모든 나라들도 마찬가지로 움직이고 있는 것 이죠. 뭐, 제가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도 없이, 이곳을 들러주시는 분들이라면 아주 잘 알고 계실 것 입니다. 하지만 인용문이 씌여진 지 40년이 훨씬 넘었건만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별로 발전한게 없어 보입니다. 정말 우울한 일이죠.
진보적 지식인들의 서구와 제3세계에 대한 이분법적인 인식은 앞으로도 당분간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것은 한국의 식민지 경험과 강력한 민족주의가 가장 큰 원인일 것 입니다. 한국의 역사적인 경험은 마찬가지로 식민지 경험을 가진 제3세계에 대한 객관화를 어렵게 하는 요인입니다. 1960년대의 지식인들이 그러했던 것 처럼 식민지 경험이라는 공통요소는 제3세계에 대한 우호적인 시각을 가지게 만듭니다. 21세기의 한국은 더 이상 제3세계의 범주에 넣을 수 없는 국가가 되었지만 과거의 경험은 너무나 깊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이쪽 진영(...) 사람을 자처하긴 합니다만, 그와는 별도로 이쪽 진영 사람들의 과도한 진영주의 논리나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단순한 선악 이분법, 그리고 자주(...)에의 열망은 아무리 이해를 하려해도 이해하기가 많이 어렵다 싶더군요... 게다가 그런것 치고는 '적의 적은 친구' 라는 단순한 정치논리에 휘둘리는것 또한 굉장한 자기모순이 아닐까 싶은 느낌입니다.
답글삭제이쪽 진영에서 NL 계열이 성립하고 또 발언권을 키워왔던 원인이나 과정 등을 아예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만, 명색이 좌익, 혹은 진보라는 진영에서 민족이란 논리를 여기저기 들이대는걸 보니 한편으로는 참 답답하다 싶은 느낌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제3세계의 문제에 우리의 입장을 기계적으로 대입하려 한다는 것 같습니다. 식민지 경험이라는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 엮기에는 무리인데 말입니다.
삭제이 사람들은 꼭 세상을 아군vs적군으로 갈라서 전쟁하는 것 같습니다. 무슨 악에 대항하는 선의 전쟁이라도 하는 것 마냥 어린얘들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답글삭제소위 진보진영, 특히 NL계열이나 그 영향을 받는 집단은 국제문제를 보는 시각이 지루하지요.
삭제말씀하신 한국의 역사적 경험도 이유겠지만 일단 반미/반서방이라면 일단 덮어놓고 아군이라고 간주하는 진영의식도 이유가 되지 않을까요?
답글삭제몇 년 전 카다피가 국내 어느 진보단체에서 인권상을 받았다는 건 말 그대로 블랙 유머더군요.
재미있군요.
삭제그런데 좌파쪽에서의 그런 이분법 인식은 우리나라만에 문제만은 아닌듯 싶습니다.
답글삭제이번주 뉴스위크에서 리비아 사테를 서양의 중동 통제 시도로 보는 기사를 보고 좀 놀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리비아 사테 초기에로 그런 기사가 있었더랬죠...
저는 그 진영의식 자체가 한국의 역사적 경험이 낳은 산물이라고 보는 겁니다.
삭제'제3세계'에 대한 특이한 시각은 정말 생각 이상으로 그 뿌리(?)가 깊었군요!!!
답글삭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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