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슈몰(Peter Schmoll)의 Me 109 Producktion und Einsatz (MZ Buchverlag, 2017) 191~192쪽에 전쟁 말기 Bf 109의 손실을 정리한 통계가 있어서 인용을 해 봅니다. 적의 공격으로 인한 손실(전투손실) 만큼이나 비전투 손실의 비중이 높은게 눈에 들어옵니다.
완전손실(Totalverlust)과 대파(schwere Beschädigung)를 합친 숫자입니다.
|
Bf
109 E |
Bf
109 F |
Bf
109 G/K |
합 계 |
|
1944년 1월 |
전투손실 |
3 |
30 |
258 |
291 |
비전투손실 |
5 |
65 |
199 |
269 |
|
합계 |
8 |
95 |
457 |
560 |
|
1944년 2월 |
전투손실 |
5 |
3 |
338 |
346 |
비전투손실 |
3 |
51 |
323 |
377 |
|
합계 |
8 |
54 |
661 |
723 |
|
1944년 3월 |
전투손실 |
1 |
1 |
552 |
554 |
비전투손실 |
22 |
42 |
379 |
443 |
|
합계 |
23 |
43 |
931 |
997 |
|
1944년 4월 |
전투손실 |
0 |
0 |
451 |
451 |
비전투손실 |
30 |
11 |
548 |
589 |
|
합계 |
30 |
11 |
999 |
1,040 |
|
1944년 5월 |
전투손실 |
|
5 |
625 |
630 |
비전투손실 |
|
55 |
418 |
473 |
|
합계 |
|
60 |
1,043 |
1,103 |
|
1944년 6월 |
전투손실 |
|
2 |
194 |
196 |
비전투손실 |
|
7 |
572 |
579 |
|
합계 |
|
9 |
766 |
775 |
|
1944년 7월 |
전투손실 |
|
6 |
955 |
961 |
비전투손실 |
|
13 |
723 |
736 |
|
합계 |
|
19 |
1,678 |
1,697 |
|
1944년 8월 |
전투손실 |
|
5 |
565 |
570 |
비전투손실 |
|
12 |
573 |
585 |
|
합계 |
|
17 |
1,138 |
1,155 |
|
1944년 9월 |
전투손실 |
|
1 |
445 |
446 |
비전투손실 |
|
4 |
401 |
405 |
|
합계 |
|
5 |
846 |
851 |
|
1944년 10월 |
전투손실 |
|
|
502 |
502 |
비전투손실 |
|
|
485 |
485 |
|
합계 |
|
|
987 |
987 |
|
1944년 11월 |
전투손실 |
|
|
345 |
345 |
비전투손실 |
|
|
364 |
364 |
|
합계 |
|
|
709 |
709 |
|
전투손실 |
|
|
462 |
462 |
|
비전투손실 |
|
|
532 |
532 |
|
합계 |
|
|
994 |
994 |
|
1945년 1월 |
전투손실 |
|
|
655 |
655 |
비전투손실 |
|
|
562 |
562 |
|
합계 |
|
|
1,217 |
1,217 |
|
1945년 2월 |
전투손실 |
|
|
225 |
225 |
비전투손실 |
|
|
260 |
260 |
|
합계 |
|
|
485 |
485 |
|
1945년 3월 |
전투손실 |
|
|
381 |
381 |
비전투손실 |
|
|
441 |
441 |
|
합계 |
|
|
822 |
822 |
비전투손실의 비중은 매월 40% 후반에서 50%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훈련 과정의 손실 뿐만 아니라 실전에서
다양한 원인으로 발상하는 비전투 손실이 상당했던 걸로 보입니다. 1944년 6월에는 비전투손실의 비중이 무려 74.7%에 달합니다.
1944년 6월과 1944년 7월 통계를 보면 그 전달의 손실 통계가 다음달에 합쳐지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직후부터 독일 공군이 대거 프랑스로 이동하면서 전투
손실이 높아졌는데 이 통계표에는 1944년 6월의 전투손실이
194대에 불과하고 그 다음달인 7월에 955대로 폭증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6월에 발생한 손실 중 상당부분이
7월에 합산 된 걸로 생각됩니다.
Bf 109를 조종하는 자체가 전투 ^^
답글삭제이륙이 고난아도라는 자료를 많이 봤습니다.
다른 기종들이 어느 정도였는지 자료가 있다면 사정을 더 자세히 알 수 있겠군요.
맞습니다. 저는 특히 Fw 190과 비교해볼수 있는 자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삭제1944년 6월, 7월은 노르망디 상륙 이후 프랑스에 전개된 부대가 소모량을 채우지도 못할정도로 격렬하게 교전하던 시기이니 손실 파악에 문제가 있었던것 아닐까 싶네요.
답글삭제그나저나 독어를 조금이라도 배워야 할 것 같네요. 이런게 있는줄도 모르고 있었으니ㅠㅠ.
페터 슈몰의 연구들이 메서슈미트쪽에 있어서 꽤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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