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산 전투는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이 중국군을 상대로 거둔 대표적인 승리 중 손에 꼽히는 전투입니다. 이 전투에서 한국군 제6사단은 중국군을 상대로 상당히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한국에서 간행한 용문산 전투 관련 문헌들은 제6사단이 거둔 전과를 실제보다 ‘적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문헌이 1983년에
간행된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의 『용문산
전투』입니다. 이 책에서는 국군 제6사단의 전투상보를 인용하여
1951년 5월 19일부터
5월 30일까지 중공군의 장비 및 물자 손실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표1-1.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의 『용문산 전투』에 기록된 중공군 장비 및 물자 손실
종 류 |
수 량 |
소 총 |
1,900 |
기관단총 |
482 |
자동소총 |
124 |
경기관총 |
189 |
중기관총 |
|
로켓포 |
2 |
박격포 |
71 |
산 포 |
9 |
직사포 |
4 |
소화기탄약 |
트럭 1대+15상자
분 |
포 탄 |
39상자 |
트 럭 |
4 |
군 마 |
349 |
[출처: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용문산 전투』, 1983, 226쪽]
『용문산 전투』에 실린 중공군의 장비 및 물자 손실 내역은 전투상보에 실린 내역을 일부만 올린 것 입니다. 제6보병사단의 전투상보에 정리된 중공군의 손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표1-2. 제6보병사단 전투상보에 기록된 중공군 장비 및 물자 노획 내역
|
제2연대 |
제7연대 |
제19연대 |
본부 및 직할대 |
합계 |
3/4톤 트럭 |
1 |
|
|
|
1 |
트럭 |
3 |
|
|
|
3 |
지프 |
1 |
|
|
|
1 |
야포 |
4 |
|
1 |
4 |
8 |
산포 |
|
4 |
5 |
|
9 |
직사포 |
|
|
4 |
|
4 |
기관포 |
|
|
5 |
|
6 |
3.5인치 바주카포 |
2 |
|
|
|
2 |
기타 대포 |
|
|
|
1 |
1 |
120mm 박격포 |
1 |
|
|
3 |
4 |
105mm 박격포 |
|
|
4 |
|
4 |
81mm 박격포 |
1 |
2 |
14 |
|
17 |
60mm 박격포 |
8 |
3 |
35 |
|
46 |
고사기관총 |
|
|
|
1 |
1 |
ZB vz.
26 |
24 |
|
|
|
24 |
중기관총 |
2 |
|
79 |
3 |
84 |
경기관총 |
14 |
8 |
151 |
16 |
189 |
기관단총 |
440 |
17 |
26 |
1 |
484 |
BAR |
|
1 |
62 |
61 |
124 |
PPSh41 |
28 |
64 |
108 |
4 |
204 |
소련제 소총 |
53 |
68 |
342 |
45 |
508 |
38식 소총 |
|
3 |
|
|
3 |
M1 소총 |
|
3 |
19 |
|
22 |
카빈 소총 |
|
4 |
7 |
|
11 |
기타 소총 |
372 |
|
782 |
|
1,154 |
수류탄 |
9,140 |
2,466 |
205 |
122 |
11,933 |
무전기 |
3 |
|
1 |
2 |
6 |
전화기 |
4 |
1 |
3 |
|
8 |
군마 |
50 |
23 |
216 |
60 |
349 |
피복 |
트럭 4대 분량 |
|
|
|
트럭 4대 분량 |
식량 |
트럭 50대 분량 |
|
|
|
트럭 50대 분량 |
[출처: 육군본부, 『한국전쟁사료 53 제6보병사단 전투상보』, 1987, 948쪽]
그런데 미군이 기록한 내용을 보면 제6보병사단의 전투상보에 기록된 것 보다 노획물자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좀 더 자료를 검토해 봐야 알 수 있겠습니다만, 한국 쪽에서 중공군의 손실을 실제보다 다소 적게 집계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예전에 다른 곳에 발표한 글에서 이
문제를 몇 번 지적한 바 있습니다. 용문산 전투 당시 제6보병사단이
배속되었던 미 제9군단의 1951년 6월 지휘보고서에 집계된 통계를 보면 한국군 제6보병사단의 전과가 훨씬
더 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표2. 미 제9군단의 1951년 6월 지휘보고서에 기록된 중공군 장비 및 물자 노획 내역
종 류 |
한국 6사단 |
한국 2사단 |
미 24사단 |
미 7사단 |
소 총 |
3,966 |
1,564 |
1,062 |
|
기관단총 |
955 |
136 |
6 |
212 |
자동소총 |
193 |
7 |
3 |
5 |
경기관총 |
364 |
14 |
3 |
71 |
중기관총 |
203 |
11 |
31 |
|
대공기관총 |
6 |
|||
로켓포 |
10 |
4 |
||
무반동포 |
10 |
|||
박격포 |
154 |
61 |
8 |
|
야 포 |
58 |
19 |
20 |
|
수류탄 |
12,670 |
3,233 |
3 |
2,833 |
소화기탄약 |
104,000 |
2,800 |
15,000 |
118,250 |
박격포탄 |
460 |
32 |
4,220 |
|
야포탄 |
50 |
28 |
||
트 럭 |
19 |
14 |
50 |
|
군 마 |
318 |
3 |
48 |
|
무전기 |
13 |
3 |
7 |
|
유선전화기 |
19 |
|||
우마차 |
30 |
19 |
||
식 량 |
트럭 50대분 |
트럭 1대분 |
[출처: HQ IX Corps, Annex 2 to Periodic Intelligence Report Nr.248(June 1,
1951), Supporting Documents to Command Report June 1951, Book II Vol 2, RG407
Entry NM3-429 Box1810, p.5]
이 표를 보면 한국군 제6사단이 미군 부대들을 압도하는 전과를 거두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원인은 당연히 용문산 전투 당시 중공군 주력을 맞아 싸우면서 추격전을 전개했기
때문입니다. 중공군이 철수하면서 병력은 수습할 수 있었어도 상당한 양의 장비를 버리고 도주했음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 표에서 주목할 부분은 한국군 제6사단이
노획한 야포의 숫자입니다. 무려 58문의 야포를 노획했습니다. 중공군 보병사단은 당시 편제상 12문의 산포나 곡사포를 보유하고
있었으니 아무리 적게 잡아도 한국군 6사단은 중공군 5개사단이
장비할 수 있는 물량을 노획한 셈 입니다. 좀 단순하게 이야기 하면 최소한 중공군 1개 군의 포병은 무력화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측 기록인 제6사단의 전투 상보 보다 미 제9군단의 지휘보고서에서 한국군의 전과를 더 높이 평가하는 점은 꽤 흥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