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Einsatzgruppen은 소련에서 깽판친 것이 꽤 유명하지만 처음 이들의 깽판에 피박을 본 곳은 폴란드 였습니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할 때는 Einsatzgruppe I 부터 z.b.V 까지 6개 Gruppe가 투입됐다고 합니다. Alexander B. Rossino의 Hitler strikes Poland에는 폴란드전에 참가한 Einsatzgruppen 지휘관들의 약력을 잘 정리해 놨는데 이게 꽤 흥미롭더군요. Rossino가 정리한 주요 지휘관들의 약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Einsatzgruppe I : SS-Brigadeführer Bruno Streckenbach
이 양반은 1902년 2월 7일 생으로 부친은 함부르크의 세관 공무원이었다고 합니다. 1919년 김나지움에 입학했지만 공부가 별로 재미 없었는지 자퇴하고 Freikorps에 자원해 함부르크의 사회주의자들을 열심히 때려잡았습니다. 모범적인 반공청년이었군요. Streckenbach가 소속된 Freikorps는 곧 정규군으로 흡수가 됐는데 군에서 제대한 뒤 이런 저런 자영업을 하다가 1930년 나치당에 가입했습니다. 1년 남짓 돌격대에 있다가 1931년 친위대로 옮겼고 1933년에는 SD에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또다시 반공의 투사가 되어 이름을 날렸다고 하는 군요. 1939년에 Brigadeführer로 진급했습니다.
Einsatzkommando 1/I : SS-Sturmbahnführer Dr Ludwig Hahn
이 양반은 1908년 1월 23일 생으로 부친은 농부였습니다. 1930년 나치당에 가입해 1년 정도 돌격대원을 하다가 1931년 이 짓을 그만두고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1933년에는 다시 친위대에 가입했고 1935년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같은해 6월 SD로 전속됐고 1937년에는 바이마르의 게슈타포 지휘관이 됩니다.
Einsatzkommando 2/I : SS- Sturmbahnführer Dr Bruno Müller
이 양반은 1905년 9월 13일 생으로 알자스 태생입니다. 부모가 골수 독일 민족주의자 인지라 1차대전이 끝나고 프랑스가 알자스를 다시 점령하자 독일로 이주합니다. 1925년에 착실하게 김나지움을 마친 뒤 취직을 했는데 자리가 잡힐만 하니 대공황.... 결국 이 양반 대학에 진학합니다. 올덴부그크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 취득. 1932년 친위대에 입대한 뒤 역시 SD로 전출됩니다.
Einsatzkommando 3/I : SS- Sturmbahnführer Dr Alfred Hasselberg
1908년 8월 30일생. 전형적인 독일 중산층 가정 출신으로 김나지움을 졸업한 뒤 군에 지원하지만 경쟁률이 높아 탈락. 1927년 대학에 진학해서 1935년 5월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박사과정 진학 이전에 지방법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는군요. 1935년 돌격대에 가입했다가 몇 달 뒤 다시 친위대에 자원합니다. 1936년 잠시 베를린의 게슈타포 본부에서 근무하다가 1937년부터 폼메른의 슈나이데뮐(Schneidemühl) 게슈타포 책임자로 근무합니다.
Einsatzkommando 4/I : SS- Obersturmbahnführer Dr Karl Brunner
1900년 7월 26일 생. 1917년 육군에 자원해 2급 철십자훈장을 수여 받았습니다. 1919년 제대한 뒤 다시 고등학교에 복학해서 학업을 하려는 찰나... 우익 학생들과 Freikorps에 가입해 빨갱이 사냥을 시작합니다. 역시 반공청년이로군요. 1923년까지 이렇게 자유의 투사를 하다가 대학에 진학합니다. 1927년에 학위를 취득한 뒤 1933년까지는 비교적 조용하게 보낸것으로 돼 있군요. 1933년 돌격대에 가입했다가 다시 1934년 SS로 옮겼고 여기서 SD 차출돼 1937년에는 뮌헨의 게슈타포 책임자가 됩니다. 1938년 Obersturmbahnführer로 진급했습니다.
Einsatzgruppe II : SS- Obersturmbahnführer Dr Emanuel Schaefer
1900년 4월 20일 생으로 실레지엔이 고향입니다. 부친이 작은 호텔을 운영해서 집안은 비교적 넉넉했던 모양입니다. 재수없게 전쟁 막판인 1918년에 징집됐지만 여기서 다시 인생역전으로 전투 한번 안하고 동원해제가 돼서 귀향합니다. 그런데 인생만사 새옹지마라 집에 돌아와보니 고향은 폴란드 민족주의자들이 국경을 넘어들어와 깽판을 치는지라 살벌해 졌습니다. 결국 이 양반도 우익 민병대에 가입해 폴란드인들과 싸우게 됩니다.
1926년 브레슬라우 대학에서 법학 석사를 받은 뒤 경찰에 취직합니다. 1933년 나치당에 가입하는데 이미 학위도 있는데다가 경찰 경력이 만만찮아 게슈타포에서 승승장구 합니다. 1936년 SD로 전출됐습니다.
Einsatzkommando 1/ II : SS- Sturmbahnführer Otto Sens
1898년 4월 14일 데사우(Dessau)에서 태어났습니다. 전쟁 중에는 해군에서 복무했으며 제대 뒤 Freikorps에서 활동했습니다. 1919년부터 실레지엔에서 폴란드인들과 피박터지게 싸웁니다. 1931년 SS에 입대했고 1934년에 SD로 전출됩니다.
Einsatzkommando 2/ II : SS- Sturmbahnführer Karl-Heinz Rux
1907년 9월 3일 서 프로이센 브롬버그 태생. 1936년 SS에 입대했는데 1938년에 무려 세번 진급해 순식간에 Sturmbahnführer가 됐습니다.
Einsatzgruppe III : SS- Obersturmbahnführer Dr Hans Fischer
1906년 8월 21일생. 1926년 예나 대학에 입학해서 1933년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1932년 친위대에 입대했으며 에어푸르트와 뮌스터의 게슈타포 책임자를 지냈습니다. 1938년 Obersturmbahnführer로 진급합니다.
Einsatzkommando 1/ III : SS-Hauptsturmführer Dr Wilhelm Scharpwinkel
1904년 7월 4일 반네-아이켈(Wanne-Eickel)에서 태어났습니다. 1933년 돌격대에 가입했습니다. 특이하게도 보험 조사원 경력이 있습니다. 3년간 했군요. 역시 게슈타포에서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Einsatzkommando 2/ III : SS-Hauptsturmführer Dr Fritz Liphardt
1905년 5월 3일 슈테틴에서 판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924년 육군에 입대했으나 1926년 장교로 진급하지 못하고 전역됩니다. 결국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려 했는데 10학기가 넘도록 졸업을 못 했다는군요. 머리는 약간 별로였나 봅니다. 1933년 돌격대에 가입했다가 1936년 친위대로 옮깁니다. 차를 갈아타는게 늦은거로 봐서는 확실히 두뇌회전이 별로인 모양입니다. 어쨌건 박사학위는 취득했는데 언제인지는 안나오는군요. 1938년 베를린의 SD 본부로 전출됐다가 여기서 전쟁을 맞습니다.
Einsatzgruppe IV : SS-Brigadeführer Dr Lothar Beutel
이 아저씨는 1902년 5월 2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습니다. 나이가 어려서 전쟁에는 참전하지 못했지만 싹수가 노랬는지 17세부터 우익 단체에서 활동했습니다. 1921년 군에 입대해서 1923년에 제대했습니다. 대학 전공이 재미있는게 미학, 그리고 약학이라고 합니다. 박사학위를 약학으로 받은 유일한 Einsatzgruppe 지휘관입니다. 1931년 돌격대에 입대했으나 바로 그해 친위대로 옮깁니다. 1932년 SD로 전출됐고 1939년 4월 Brigadeführer로 진급합니다.
Einsatzkommando 1/IV : SS- Sturmbahnführer Helmut Bischoff
1908년 3월 1일 생으로 아버지는 정육점을 했던 것으로 돼 있습니다. 1930년 돌격대에 입대한 뒤 1935년 친위대로 옮겼고 1936년에는 SD로 전출됐습니다.
Einsatzkommando 2/IV : SS- Sturmbahnführer Dr Walter Hammer
1907sus 6월 30일 하겐 출생. 부친은 판사로 전형적인 중산층 집안 출신입니다. 1931년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33년 주법원에서 근무하던 중 돌격대에 가입합니다. 1935년에는 게슈타포로 옮겼고 2년간 베를린 본부에서 근무한 뒤 1937년 에어푸르트의 게슈타포 책임자로 임명됩니다.
Einsatzgruppe V : SS-Standarteführer Ernst Paul Damzog
1882년 10월 30일 생으로 폴란드전에 참가한 Einsatzgruppe 지휘관 중 최고령자입니다. 1912년 경찰에 들어갔으며 1915년에는 육군에 입대해 헌병이 됩니다. 1933년 SS에 지원한 뒤 장기간의 경찰 경력을 인정받아 1934년 SD로 전출됩니다.
Einsatzkommando 1/V : SS- Sturmbahnführer Dr Heinz Graefe
1908년 7월 15일 생으로 아버지는 1914년 전사했습니다. 1928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진학해 법학을 전공했습니다. 1932년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작센의 법률사무소에 취직했습니다. 1937년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1933년에 돌격대에 들어갔다가 같은해 말 친위대로 옮겼고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에는 베를린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Einsatzkommando 2/V : SS- Sturmbahnführer Dr Robert Schefe
1909년 8월 23일 생으로 폴란드전에 참가한 주요 Einsatzgruppe 지휘관 중 최연소 였습니다. 1934년 친위대에 입대해 1935년 SD로 전출됐습니다. 이 사람의 경력이 흥미로운 점은 친위대에 들어 온 뒤 법학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점 입니다. 1936년 법학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베를린의 게슈타포 본부에서 근무했습니다.
Einsatzgruppe z.b.V : SS-Obergruppenführer Udo von Woyrsch
주요 지휘관 중 유일한 귀족 출신으로 1895년 7월 24일 생입니다. 1차 대전당시 기병장교로 참전했으며 전후 Freikorps에 가입해 활동했습니다 1930년 친위대에 입대했는데 장교에다가 귀족출신이어서 그런지 진급이 빨랐습니다. 히믈러는 실레지아의 친위대를 책임지게 하기 위해서 직접 von Woyrsch를 직접 관리했던 모양입니다. 지역 친위대를 관리하다가 1936년 베를린으로 전출돼 히믈러의 참모진에 들어갑니다. 1938년에는 히믈러의 배려로 경찰 간부 교육과정을 이수합니다.
이 살인 전문가들을 보시면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중산층 이상에 고등 교육을 이수한 사회 엘리트층이라는 점 입니다. 이런 걸 보면 배운자들이 무서워 집니다.
하여간 이렇게 깡패집단인 친위대에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이 많이 가담한 것을 1920년대 후반 독일 지식인 사회의 급속한 보수화가 원인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뭐,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대한민국도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그런지 지식인계층의 보수화가 눈에 보이는 듯 합니다. 이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히총통뿐?
허거덩 어찌하야 저의 방치플레이 블로그 링크가 제일 위에?
답글삭제보수화된 지식인이라.... 지식의 개뿔도 없지만 저도 최근 4년간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기에는 철저학 보수화가 진행되었지요. 그러나 일단 제 의사로 결정했으니, 후회도 책임도 전부 제것이겠지요.
프루테스크의 침대같은 기준으로 자신의 중도를 표방하는 자들을 방패막이로 삼고 상대주의를 자신이 필요할때만 읊어대는 주체 태양민족주의 나치즘 신도들을 이젠 더이상 놔두면 안된다는 생각이 자꾸드니....
그래도 같이 괴물이 될 순 없다고 생각하며 딴에는 조심하려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네요....
긿일은 어린양님께서는 최근의 모습을 보며 나치즘내지는 사회의 반동을 예감하시는 것 같군요.
그런데 저의 경우는 잘난척인지, 쓸데없이 민감한건지 몰라도, 이미 4~5년 전에 이미 그 것이 다가온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상대방을 통째로 부정하고 자신의 정의에 도취되어있는 모습을, 스스로가 대안임을 표방하던 권력자에게서 보고 난 뒤부터였지요. 도리어 사람들끼리 자신들의 가치관에 대해 토론하는게 수년 전 보다 더 힘들게 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도 그때쯤 부터 였습니다. 그리고 민족이란 케치프레이지 뒤에 숨어 있는 인간들의 사고기준이 나치즘이랑 별로 다를 것 없다는 것을 알게된 것도 그때쯤이었고...
이미 씨는 잘 뿌려 졌고, 이제 수확의 때가 다가오고 있는 걸까요?
솔직히 이 다음에는 어떤것이 오게 될지는 저도 상상이 안가고 두렵습니다. 이 나라 안에서 있는 자들은 어떤 쪽이건 모두 패배자가 되는 걸로 결말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생각이 죄다 쓸데없는 기우이기만을 빌뿐입니다.
자유군단 출신이 특히 많다는 것이 눈에 띄는군요.
답글삭제보수주의를 주장하더라도 후겐베르크 같은 역을 맡진 말아야겠다고 새삼 다짐하게 됩니다.
경찰출신이나 법학 전공자들도 많이 보이는군요.
답글삭제그나전 한국에서 과연 검은 외투 입고 검은 깃발 휘두르는 '애국 청년'들을 볼 날이 올 것인지....
원래 이건 사대부 등장할 때 배운 이론이지만,
답글삭제대개의 경우 한 사회에서 새로이 치고 올라가는 세력이
우국충정으로 사회에 대해 대거 참여한다더군요.
왜? 자기들은 이제 살만한데 나라가 위험하니까.
생각해보면 다들 나름대로 입지도 있고
지식도 있는 사람들입니다.
굳이 저러지 않아도 한 자리 넉넉히 할 사람들지요.
그렇게 보면, 역시 그 이론이 크게 틀린 것 같지 않아요
존 루카치는 20년대 이후를 '반공'의 최대유행기로 보고 이 당시엔 러시아를 제외하곤 모든 나라 모든 계층이 정신없이 반공이데올로기를 외쳤다고 주장했는데 이 시기가 한번 더 돌아오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답글삭제PS : 유럽을 기준으로 할때 유럽 보수세력의 주요 독트린중 하나인 인종주의의 흐름은 혈통적 인종주의에서 문화적 인종주의로 꾸준히 변질되어 왔는데, 그 중에서도 과격한 일파는 양쪽 모두를 겸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르펜이 기존의 주장에 더해 가끔 유태인학살에 대한 수치 과장 등을 주장하는게 일례죠. 그런식으로 볼때 외국인에 대한 '다양한 경험'이 적은 편이고, 어떤 확고한 정책이 존재하는 것도 아닌 한국에서 동남아계 이민+무슬림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를 경제적어려움과 연관지어서 장차 정치활동에 이용하는 것도 등장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상상만해도 끔찍하지만 한국인의 손에서 홀로코스트가 이뤄지지 않는 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45acp님 // 아.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고 글자순서대로 정렬을 하니 숫자가 가장 위로 가더군요. ㅎㅎ
답글삭제말씀하신 자신들이 대안임을 표방하던 자들은 그냥 얼간이들이라 신경 쓸 가치를 못 느낍니다.
sonnet님 // 후겐베르크의 싸구려 짝퉁을 꿈꾸는 자들이 한국에도 의외로 많은 것 같아 찝찝합니다.
행인님 // 대한민국의 열혈 애국청년들은 오프라인에서 위력을 과시하기 보다는 인터넷 게시판에서 찌질대기를 즐기는 것 같습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지요.
티앙팡님 // 누구의 이론인가요?
라피에사쥬님 // 이미 수십년 전에 같은 동족을 상대로 유혈극을 벌였으니 Untermenschen들을 상대로 같은 짓을 하더라도 놀랄 일은 아닐 듯 싶습니다.
이글을 보다가 궁금한게 있습니다.
답글삭제Freikorps라는 단체가 대관절 무슨 단체이길래 좌파들을 폭력으로 대하다가 나치당이 집권하기도 전에 정규군에 편입이 된건가요?
그리고 이건 단순한 잡생각이지만 독일군부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에도 좌파를 극도로 혐호했었다는 사실을 듣기는 했었지만 정말 저런 단체를 군내에 받아줄 정도였나 하는 의문도 드는군요.
답글삭제아텐보로님 // Freikorps는 1차대전 종전후 동원해제된 예비역 군인들이 모여 만들어진 무장단체입니다. 독일 전역을 휩쓸던 좌익 운동을 때려잡는데 매진했습니다.
답글삭제그리고 Freikorps 전체가 정규군으로 편입됐다는 것이 아니고 이 중 일부가 육군에 편입됐다는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