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프로이센-독일의 군사이론에서 군사 동맹이 큰 관심을 받지 못 한 것과 클라우제비츠를 연계 시키는 것은 타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전쟁론』에서는 동맹국과의 연합작전을 소홀히 취급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은 클라우제비츠가 외교에 대해 무관심 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클라우제비츠 연구자 중 한 명인 베아트리체 호이서Beatrice Heuser는 클라우제비츠의 외교에 대한 시각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상가의 한 사람으로 마키아벨리를 꼽습니다. 실제로 클라우제비츠가 남긴 글에서 마키아벨리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는 부분이 많으며 마키아벨리의 저작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클라우제비츠는 『군주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21장은 모든 외교관의 규범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따르지 못하는 이들은 안타깝기 그지없다.”2)
클라우제비츠가 극찬한『군주론』의 21장은 그 유명한 ‘외교적 중립’의 문제점에 대해 다루고 있는 장입니다. 마키아벨리는 21장에서 인접한 두개의 강국이 충돌할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어느 한 편에 서서 참전하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클라우제비츠는 자신이 경험한 현실 때문에 더욱 더 마키아벨리에 주목했을지도 모릅니다. 프로이센은 1805년 오스트리아와 러시아가 프랑스와 싸우고 있을 때 중립으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동맹국이 남지 않았던 1806년이 되어서야 전쟁에 끼어들었고 그 결과는 굴욕적인 패전이었습니다.
클라우제비츠가 『전쟁론』에서 외교적인 부분을 비중있게 다루지 않은 것은 약간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입니다. 하지만 클라우제비츠가 마키아벨리를 높게 평가한 것을 보면 굳이 외교적인 측면은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주
1) Richard L. DiNardo, Germany and the Axis Powers : From Coalition to Collapse, (University Press of Kansas, 2005), pp.5~6
2) Beatrice Heuser, Clausewitz lesen!, (Oldenbourg Verlag, 2010), p.9
쓸 시간이 없었을지도요. <전쟁론>을 쓰고 있을 때 스승인 그나이제나우 장군이 콜레라에 걸려서 간호를 하다가 자기도 콜레라에 걸려서 죽음으로써 기왕 써둔 원고도 퇴고할 시간이 없었다지요. 결국 아내 마리가 남동생과 함께 정리해놓은 게 오늘날의 <전쟁론>이라지요.
답글삭제외교문제를 다룬다면 1권에서 다뤘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데 1권은 비교적 체계가 갖춰져 있습니다.
삭제개인적으로 전쟁론은 군바리들을 위한 개념원리 서적으로 씌어졌지 국가 레벨에서 대전략을 운영하는데 참고할 용도로는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딱 군인들이 건드릴 수 있는 부분까지만 다뤘죠. 그런고로 저도 클라우제비츠 본인이 일부러 안 썼다는 데 한 표.
답글삭제뭐 클라우제비츠가 오래 살면서 전쟁론을 계속 다듬었다면 외교 부분도 추가되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삭제저도 장웅진님처럼 급작스럽운 죽음이 그 원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답글삭제결국 클라우체비츠도 군인이었기 때문에, 군문제가 우선이고 그다음이 다른 외적요인이 될 가능성이 많치않았을까요.
아래의 댓글에서도 적었습니다만 클라우제비츠가 외교를 꼭 다루려 했다면 전략 문제를 다루는 1권에서 했을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그리고 1권과 2권은 꽤 정리가 잘 되어 있는 부분이라서 클라두제비츠가 갑자기 사망한 것과는 큰 관련이 없을겁니다.
삭제설사 러시아 오스트리아 편에 붙어도 패배하지 않을런지
답글삭제그럼 마찬가지 결과일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