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미육군의 전시동원계획 중 독일 방어를 담당한 제7군에 대한 증원계획을 표로 만들어 봤습니다.
1953년 12월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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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12월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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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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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RCT(오스트리아)
351RCT(오스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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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RCT(오스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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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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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보병사단(미국)
1기갑사단(미국)
82공정사단(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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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보병사단(미국)
1기갑사단(미국)
82공정사단(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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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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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병사단×3(미국)
보병사단×(극동)
공정사단×1(미국)
보병연대전투단×1(카리브해)
공정연대전투단×1(미국)
기갑기병연대×2(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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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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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갑기병연대(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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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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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병사단×3(미국)
보병사단×1(태평양)
기갑사단×1(미국)
공정사단×1(미국)
기갑집단×1(미국)
기갑기병연대×1(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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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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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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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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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12월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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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12월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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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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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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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보병사단(미국)
3보병사단(미국)
1기갑사단(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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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보병사단(미국)
4보병사단(미국)
1기갑사단(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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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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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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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갑기병연대(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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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보병사단(태평양)
기갑기병연대×2(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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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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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집단×1(미국)
기갑기병연대×1(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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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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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공수사단(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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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공수사단(미국)
4기갑사단(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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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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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기갑사단(미국)
25보병사단(태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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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보병사단(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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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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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병사단×5(미국)
기갑사단×1(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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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위군 보병사단×4(미국)
주방위군 기갑사단×1(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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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12월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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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1월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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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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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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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보병사단(미국)
4보병사단(미국)
101공정사단(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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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보병사단(미국)
82공정사단(미국)
101공정사단(미국)
3기갑기병연대(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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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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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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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갑기병연대(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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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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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공정사단(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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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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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갑사단(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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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보병사단(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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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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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보병사단(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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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보병사단(미국)
2기갑사단(미국)
주방위군 보병사단×2(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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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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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위군 보병사단×5(미국)
주방위군 기갑사단×1(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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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위군 보병사단×3(미국)
주방위군 기갑사단×1(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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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는 Ingo Trauschweizer, The Cold War U.S. Army : Building Deterrence for Limited War(Lawrence, University Press of Kansas, 2008), pp.245~248의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 입니다.
표 에서 재미있는 점은 미군의 증원 속도가 갈수록 늦어진 다는 것 입니다. 1953년 계획만 하더라도 D+30~31일에 대부분의 증원병력이 도착하도록 되어 있는데 1954년 부터는 D+30일에 3개 사단이 증원된 뒤 한참 뒤에 증원병력이 도착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물론 독일을 미 제7군 혼자서 방어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기에 다른 NATO군이 존재하고 있었고 독일의 재무장으로 독일군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늘어날 예정이긴 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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