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에 기반한 군사작전 연구로 유명한 드퓨이 연구소(The Dupuy Institute) 소장 크리스토퍼 로렌스(Christopher A. Lawrence)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국면을 다룬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드퓨이 연구소의 설립자 드퓨이는 신뢰할 수 있는 통계가 충분하지 않으면 연구를 피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로렌스는 좀 과감한 선택을 했습니다. 러시아는 물론 우크라이나쪽의 통계도 완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공개된 자료만 가지고 작전을 분석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로렌스의 시도는 나쁘지는 않은 듯 합니다. 물론 추후 신뢰할 수 있는 자료가 공개된다면 대대적인 업데이트를 해야 겠지요.
이 연구는 총 22개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장의 분량이 많지 않아서 호흡이 짧고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1장 부터 5장 까지는 전쟁의 배경을 간략히 다루고 있습니다. 1장은 고대 시대 부터 소련이 붕괴할 때 까지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2장은 우크라이나가 독립한 뒤 부터 푸틴이 전면전을 결심할 때 까지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러시아의 크름반도 침공과 돈바스 전쟁을 잘 분석했습니다. 필자는 돈바스 전쟁 당시 러시아군의 작전에 깊은 인상을 받은 미군이 러시아군의 역량을 과대평가해 미국의 고위 정책결정권자들에게 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3장은 침공 직전 러시아군의 국경지대 집결과 이에 대한 서방의 분석을 다루고 있습니다. 로렌스는 본인 또한 2022년 2월 초 까지도 러시아군의 침공을 확신하지 못했다고 인정하면서, 러시아군이 충분한 병력을 동원하지 못하고 기상 여건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전면전을 일으켰다고 지적합니다. 또 미국의 모든 정보기관들이 우크라이나의 항전 의지를 과소평가해 키이우가 개전 후 72시간 내로 함락될 거라는 잘못된 예측을 했다고 비판합니다. 4장은 전쟁 직전 우크라이나군의 전력과 전투서열을 분석하는 내용입니다. 우크라이나군의 부대별 장비 현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큰 도움이 됩니다. 5장은 전쟁 직전 러시아군의 전력과 전투서열을 분석하는 내용입니다.
6장 부터 17장 까지는 러시아의 전면적인 침공이 시작되어 러시아군이 주도권을 쥐고 공세를 한 3월 말 까지의 상황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역시 호스토멜 공항을 둘러싼 공방전을 다룬 7장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듯 이 전투야 말로 개전 초 키이우의 운명을 가르고 러시아의 전략을 수포로 만든 결정적인 전투였습니다. 필자는 호스토멜 공항을 강습한 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벨라루스에서 출동한 제5근위전차여단과 제76근위공중강습사단의 엉성한 행군 계획때문에 두 부대가 42km가 넘는 차량 정체를 일으키고 예정보다 늦게 호스토멜에 도착한 점을 지적합니다. 호스토멜 방면으로 진격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에 대해 압도적인 숫적 우세를 확보하지 못한데다 작전 계획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짰다고 비판합니다. 11장은 개전 초기 항공작전을 분석하고 있는데 충분한 자료가 없어서 그런지 너무 소략합니다. 15장은 러시아군이 키이우를 조기에 점령하는데 실패한 뒤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공세를 재개한 3월 10일 부터 3월 말 까지의 작전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러시아군이 키이우를 포위하기 위해 키이우 서쪽 마카리우 방면으로 공격한 작전이 실패하는 과정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18장 부터 22장 까지는 결론입니다. 18장에서는 초기 작전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이 입은 피해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장비 손실에 대해서는 아직 공신력 있는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유명한 Oryx의 집계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인명피해에 대한 통계도 마찬가지로 불완전합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정부가 2022년 3월 12일 이후 우크라이나군의 인명 손실을 구체적으로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뢰할 만한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19장은 러시아군이 키이우와 하르키우 방면 작전을 중단하고 철수하기 시작한 3월 말 부터 4월 초의 상황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러시아 제90근위전차사단이 퇴각 과정에서 막대한 장비를 상실하고 와해되는 과정을 잘 분석했습니다. 20장은 초기 작전에서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이 보여준 성과를 평가하는 내용입니다. 필자는 비록 한계가 없지는 않으나 2014년 이후 우크라이나의 군 개혁이 성과를 거두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21장은 전쟁 초기 단계의 작전에서 도출한 교훈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러시아군이 충분한 전력 우위를 달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공세를 감행했고 보병이 부족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특히 이 장에서 주목할 내용은 러시아의 군사사교육에 대한 비판입니다. 로렌스는 러시아가 제1차세계대전에서 얻은 교훈을 취사선택했지만 제2차세계대전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문제점을 전혀 개선하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제2차세계대전에 승리했기 때문에 수준 낮은 징집병에 의존하는 소모전 방식을 21세기까지 고수했고 그 결과는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의 실패로 이어졌다는 비판입니다. 필자는 러시아의 제2차세계대전 연구는 충분한 자료에 기반하지 못햇기 때문에 전훈을 분석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비판합니다. 소련과 러시아는 엉터리 연구로 전훈을 분석하고 소련군의 역량을 과대평가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문제점을 직시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이 연구는 아직 신뢰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집필했기 때문에 한계가 많습니다. 특히 러시아에 관한 내용은 여러모로 미흡해 보입니다. 몇몇 작전에서는 러시아군의 전투 서열을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개되어 있는 자료만 가지고 이 정도의 연구를 했다는 점은 높게 평가할 만 합니다.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