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25일 토요일

세기와 더불어에 실린 김일성의 증언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아래의 글과 관련해서 내용 보충을 하지요.

우선 진명행님이 토론중에 하신 주장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진명행님께서는 이종석이『세기와 더불어』에 수록된 북한의 중국 지원관련 내용을 아무 근거 없이 김일성의 허풍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세기와 더불어』에 실린 관련 내용을 살펴보시겠습니다. 북한식 표현 그대로 입력했습니다.

해방 후 나는 주보중을 몇 번 만났습니다. 두 번은 우리 나라에서 만났고 마지막 번은 베이징에서 만났습니다.

주보중이 우리 나라에 처음으로 온 것은 1946년 초봄이였습니다. 그를 남양에서 만나보았습니다. 그때 주보중은 동북민주련군 부총사령원 겸 길료군구 사령원으로 있으면서 국민당반동들과의 싸움을 하였습니다.
장개석이 반공을 하면서 국민당군대를 총동원하여 해방지구에 달려드는 바람에 중국대륙은 또다시 국내전쟁의 소용돌이속에 휘말려 들어갔습니다. 주보중은 동북지방의 형세가 매우 위험하다고 하면서 적아의 력량대비와 군사정치정세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쫓겨간 다음 만주땅은 얼마 동안 정치적 공백지대로 있었습니다. 이 지역을 어느 편이 장악하는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장개석 국민당과 중국공산당은 첨예한 싸움을 벌렸습니다. 국민당도 공산당도 만주를 중국전토장악을 위한 주요한 대결장으로 보았습니다.
국민당이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함선과 비행기로 그리고 륙로로 수십만의 군대를 들이미는 통에 갓 조직된 동북지구의 민주련군은 우세한 적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리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주보중이 나를 만나려고 한 것은 이런 정세에 대처하기 위한 긴급지원을 요청하려는데 있었습니다. 모택동이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한때 조직부장을 하다가 중공중앙 동북국의 부서기로 임명된 진운을 평양에 보내여 우리의 지원을 청한 것도 그 무렵 이였습니다.
나는 주보중에게 중국의 전우들이 장차 동북에서 진행하게 될 작전과 관련하여 제기하는 문제들을 죄다 해결해주고 최대한의 지원을 줄데 대해 쾌히 약속하였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때 우리나라의 형편은 남을 도와줄만한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조건 같은 것은 아예 념두에도 두지 않았습니다. 우리 혁명의 견지에서 볼 때에도 동북땅이 장개석의 세상으로 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는 일이였습니다.

그 당시 동북땅에서는 항일유격대출신의 우수한 군정간부들인 강건, 박락권, 최광을 비롯하여 약 25만여명에 달하는 조선청년들이 동북해방전투에 직접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김일성동지회고록 – 세기와 더불어 8』, 조선로동당출판사, 1998, 261~262쪽

이 뒤에는 왕일지가 북한을 방문해 부상병의 피난과 전략물자의 소개 문제 등을 요청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물론 신발을 보내줬다는 내용도 있지요.

진명행님은 이종석이 아무 근거도 없이 김일성의 주장을 믿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인용한 부분에 나와 있듯 1946년에 이미 25만에 달하는 조선계가 국공내전에서 싸우고 있다는 김일성의 주장은 오히려 신뢰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만약 김일성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진명행님이 주장하신 것 처럼 1947년부터 1948년까지 10만의 북한군이 참전했을 경우 국공내전에서 싸운 조선계 군인은 총 35만 명에 달하게 됩니다.

※ 참고로 국공내전에 참전한 조선계 군인의 규모에 대한 학계의 통설은 63,000명 수준입니다.

이런 황당한 결론이 나오니 『세기와 더불어』를 읽은 사람이라면 여기에 실린 내용을 신뢰하기 어려운 것 입니다.

다음으로, 역시 북한이 국공내전에 병력을 파견했다는 근거로 자주 인용되는 「북조선에 거주하고 있는 화교 대표들과 한 담화」(1947년 9월 3일)의 내용을 보시겠습니다.

지금 중국의 정치정세는 좋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중국공산당의 령도 밑에 중국인민해방군과 중국인민은 장개석 국민당군대와 반혁명세력의 책동을 분쇄하는 투쟁에서 성과를 확대해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중국인민들의 혁명투쟁이 조만간에 승리하게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중국인민의 혁명투쟁을 지원하기 위하여 해방 후 수차에 걸쳐 조선인민의 우수한 아들딸들을 중국 동북지방에 파견하였으며 무기를 비롯하여 필요한 전략물자도 보내주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중국인민의 혁명투쟁을 방조하기 위하여 헌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기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중국인민의 혁명투쟁에 적극적인 지지와 성원을 보낼 것 입니다.

「북조선에 거주하고 있는 화교 대표들과 한 담화」(1947년 9월 3일) , 261쪽, 『김일성전집 6』, 조선로동당출판사, 1993

보시면 아시겠지만 “조선인민의 우수한 아들딸들을 중국 동북지방에 파견”한 구체적인 시기도 모호하고 몇 명이나 보냈는지도 모호합니다. 그리고 이게 전투병력을 보낸 것인지 아니면 지원이라는 표현 그대로 의료인력 등 전투지원을 위한 인력을 보냈는지도 모호합니다. 이런 몇 줄의 문장으로 수 만명 규모의 전투병력이 파병됐다는 ISNK의 정보를 뒷받침 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제 다시 진명행님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진명행님께서는 이종석이 아무 근거 없이 『세기와 더불어』에 실린 김일성의 증언을 믿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진명행님께서는 어떤 점에 근거하여 김일성의 증언을 신뢰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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