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는 다루고 있는 시기의 특성상 글 쓰기를 할 때 조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키보드를 잘못 치거나 혓바닥을 잘못 놀리면 바로 고소가 날아오니 말입니다. 이승만을 부정적으로 다루는 연구자나 언론인이 있으면 바로 고소를 때리는 이승만의 양자 이인수 박사가 대표적이라 하겠습니다.
그렇다 보니 재미있어 보이는 자료가 굴러들어와도 함부로 쓰긴 어렵습니다. 이런 종류의 자료로는 구술자료가 대표적입니다. 문서로 기록되지 않은 비사는 역사적 사건에 참여한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 떠돌고 구술자료의 형태로 정리가 되지요. 그런데 이런 자료들은 종종 문서로 기록되지 못할 만큼 난감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자료가 문서의 공백을 메꿔줄 만한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거나 기존의 설명과는 다른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경우 그것은 글쓰는 사람들을 갈등에 처하게 합니다. 욕 좀 먹더라도 이걸 쓸 것이냐 왠지 불길한데 그냥 쓰지 말 것이냐.
한국 현대사는 기묘하게도 자료의 공백이 많은 편입니다. 일단 한국전쟁으로 많은 문서를 잃어버린 것이 첫번째 이유 겠지만 현대사의 당사자들이 뭔가 구린 구석이 많다 보니 자신에게 불리할 법한 기록은 최대한 회피하지요. 간도특설대 출신의 한국군 장성들이 식민지 시대의 경험을 최대한 말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당사자들이 민감한 사실에 대해서는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 하다보니 다른 기록이나 증언이 있다 보면 관심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나 임시정부나 만주국과 관련해서는 중국과의 수교 이후 조선족들이 꽤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요한 신뢰도의 문제가 있습니다만. 1990년대 이후 새로 발굴된 증언들은 기존에 남한에 알려진 것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예를들어 한국측 기록에서는 김홍일 장군이 일본 항복 직후 만주로 파견되어 한인들을 보호하는 등 많은 활약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 조선족들은 이와는 약간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즉 김홍일은 만주 일대의 조선족들이 국민당을 지지하도록 공작을 벌이기 위해 만주로 보내졌지만 조선족들이 중국 공산당을 지원하게 되자 그의 상관인 두율명(杜聿明)의 의심을 받게 되었다는 것 입니다. 두율명이 만주의 조선족들이 중국공산당을 지원한다고 보고하자 분노한 장개석이 김홍일을 파면해서 난징으로 소환했다는 게 조선족들 사이에 떠도는 버전입니다. 그나마 독립운동을 한 김홍일 같은 경우는 나은 편이고 간도특설대와 같이 악명(!!!) 높은 곳에서 복무한 이들에 대한 조선족들의 증언은 좀 더 난감합니다.
이 와는 조금 다른 경우가 1960년대에 이루어진 한국전쟁 참전자들의 증언록입니다. 국방부가 1960년대에 한국전쟁사 편찬을 시작하면서 참전자들을 대상으로 방대한 구술채록 작업을 한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증언록을 편집해서 단행본으로 내기도 했지요. 그런데 사실 책으로 나와 있는 증언록은 민감한 이야기들이 삭제된 축약본입니다. 1960년대에 채록한 원본을 열람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공문이 필요하며 군사편찬연구소장의 결재를 받아야만 합니다. 게다가 복사와 촬영이 금지되어 있지요. 받아 적는건 허용되는데 이 방대한 증언록을 노가다로 쳐 넣는건 문제가 있습니다. 어쨌든 저도 미공개된 증언록의 일부를 읽은 일이 있는데 정말 대한민국에 대해 환멸을 느끼게 할 만한 내용으로 가득하더군요;;;; 조선족들의 증언 처럼 신뢰도가 크게 의심되는 것도 아닌 당사자들의 증언이지만 좀 곤란한 내용이 많다보니 역시나 함부로 쓰기가 곤란합니다.
하여튼 흥미로운 자료는 많습니다만 잘못 썼다가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모르니 쓸수 없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아무래도 당사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고 시간이 조금 더 흘러야 이런 민감한 자료들을 자유롭게 쓸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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