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012년에도 변함없이 제 재미없는 블로그를 들러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06년 이래로 제 블로그를 들러주신 분들은 식상하시겠지만 안내사항을 간단히 적어보겠습니다.
1. 이 블로그는 술자리 잡담 같은 방향을 추구합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적당히 취기가 오른 상태로 진지한듯 하면서도 진지하지 않은 이야기가 오가는 대학가의 맥주집' 같은 분위기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알딸딸한 상태로 약간의 허세를 부리며 천하대사를 논하던 기억을 가진 분들이라면 이 블로그의 분위기에 잘 적응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좀 가벼운 인간이라서 뭔가 심각한걸 기대하고 오시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아마도 블로그질을 그만두는 순간까지도 이런 분위기를 유지할 것 같습니다.
2. 아무래도 제가 아는 분야가 제한되어 있다보니 블로그에서 다루는 이야기가 제한적입니다. 주로 하는 이야기는 산업혁명 이후의 군사문제와 외교안보에 관련된 것 들 입니다. 좀 더 폭넓은 이야기를 해 보고 싶긴 한데 제가 아는게 별로 없는지라 별 발전이 없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는 자료들에 제 단견을 양념으로 곁들인 것들이라 깊이라고는 없으니 그냥 가볍게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3. 가끔 댓글을 달 수 없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솔직히 저는 다른 곳에서 제 블로그에 접속한 경우에도 특별한 문제를 느끼지 못했는지라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의도적으로 댓글을 막아놓은 것은 절대 아니니 오해는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댓글을 달 수 없어 불편을 겪는 분들께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4. 특정한 포스팅과 관련이 없는 말씀은 여기에 댓글을 남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가 좀 괴팍한 면이 있어서 포스팅에서 관련없는 이야기를 하시면 삐질 우려가 있습니다.
2012년 12월 30일 일요일
독일 제9군 사령부의 오룔 전투 보고서에 실린 삽화
바그라티온 작전 관련 문서들을 살펴보던 중 1943년 7월에서 8월에 걸쳐 오룔 돌출부에서 전개된 독일군의 퇴각전에 대한 전투 보고서를 찾았습니다. 제목은 'Schlacht im Orelbogen'으로 총 12쪽 입니다. 분량은 그리 길지 않은데 몇 편의 삽화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딱딱한 공식보고서와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듯한 삽화를 집어넣은게 좀 재미있더군요.(물론 만화를 그려넣은 보고서도 있더군요. 이건 미군도 마찬가지지만.)
그중에서 가장 멋있는(?) 걸로 한장 올려봅니다.
격파된 T-34의 옆을 지나가는 4호전차들과 하늘 위의 슈투카들이 인상적이네요.
그중에서 가장 멋있는(?) 걸로 한장 올려봅니다.
격파된 T-34의 옆을 지나가는 4호전차들과 하늘 위의 슈투카들이 인상적이네요.
2012년 11월 17일 토요일
1943~44년 겨울전역에서 제1SS기갑사단의 전차 손실
지난번에 썼던 「후퇴전에서 기갑부대의 전차 손실에 대한 잡상 - 바그라티온 작전의 독일 제4, 5기갑사단의 경우」와
내용이 연관되는 포스팅이로군요. 기갑총감부 문서를 보다가 흥미로운 통계를 하나 찾았습니다. 1944년 5월 제1SS 전차연대에서
작성한 보고서인데 1943~44년 겨울 동부전선에서 상실한 전차 내역에 관한 내용입니다. 제1SS 기갑사단은 1943년 겨울
소련으로 이동할 당시 완편된 상태였습니다. 이 상태에서 장기간의 후퇴전을 치뤘지요. 링크한 포스팅에서 다루는 제4, 5기갑사단과
비슷한 경우이니 비교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표1. 제1SS 기갑사단의 전차 손실(단위 : 대)
[표 출처 : “Totalausfälle an Pz.kpfw.” (1944. 5. 9), RG242 T78 R622]
[자폭A는 기계고장이 원인인 경우, 자폭B는 피격, 지뢰에 의한 피해가 원인으로 견인을 할 수 없어 자폭시킨 경우.]
4호전차의 경우 자폭 보다는 적에 의해 격파된 비율이 높은데 판터와 티거는 정반대라는 점이 금방 눈에 들어옵니다. 4호전차는 자폭시킨 것이 44대, 적의 공격으로 상실한 것이 62대인데 판터는 자폭시킨 것이 74대이고 적의 공격으로 상실한 것이 47대 입니다. 판터의 경우 정비를 위해 본국으로 송환한 숫자도 상당한 점이 눈에 들어오는 군요. 티거의 경우도 판터와 비슷합니다. 링크한 글의 제4, 5기갑사단의 경우도 양상은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하게 만드는 자료입니다. 실제 서부전선에서의 손실을 보더라도 판터와 티거의 경우는 자폭의 비율이 높은 것이 특징이지요.
표1. 제1SS 기갑사단의 전차 손실(단위 : 대)
손실 원인
|
4호전차
|
5호전차
|
6호전차
|
자폭(A)
|
27
|
40
|
13
|
자폭(B)
|
17
|
34
|
6
|
적의 공격
|
62
|
47
|
12
|
정비를 위해 본국으로 송환
|
8
|
40
|
6
|
타 부대에 인계
|
2
|
4
|
1
|
[자폭A는 기계고장이 원인인 경우, 자폭B는 피격, 지뢰에 의한 피해가 원인으로 견인을 할 수 없어 자폭시킨 경우.]
4호전차의 경우 자폭 보다는 적에 의해 격파된 비율이 높은데 판터와 티거는 정반대라는 점이 금방 눈에 들어옵니다. 4호전차는 자폭시킨 것이 44대, 적의 공격으로 상실한 것이 62대인데 판터는 자폭시킨 것이 74대이고 적의 공격으로 상실한 것이 47대 입니다. 판터의 경우 정비를 위해 본국으로 송환한 숫자도 상당한 점이 눈에 들어오는 군요. 티거의 경우도 판터와 비슷합니다. 링크한 글의 제4, 5기갑사단의 경우도 양상은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하게 만드는 자료입니다. 실제 서부전선에서의 손실을 보더라도 판터와 티거의 경우는 자폭의 비율이 높은 것이 특징이지요.
2012년 11월 13일 화요일
"제프" 디트리히와 미국 정신과의사의 면담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당시 피고인들의 정신상담을 담당했던 미국 정신과의사 리언 골든슨Leon Goldensohn의 면담록을 읽는 중 입니다. 나치 독일의 굵직한 거물들이 나오니 재미있게 술술 잘 읽히는군요. 오늘은 “제프” 디트리히Josef Sepp Dietrich를 면담한 부분을 읽었는데 이것도 역시나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 하나를 발췌해 보지요. 1946년 2월 28일에 있었던 면담이라고 합니다.
양면전쟁을 두 번이나 경험한 군인다운 평가입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재미있는 또 다른 요소는 여러 인물들의 주관적인 인물평입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인물평이니 여러가지로 생각해 볼게 많습니다. 골든슨은 디트리히에게 롬멜에 대해 물어봅니다. 디트리히는 롬멜에 대해 꽤 냉정한 평가를 내립니다.
디트리히는 면담에서 자신이 카톨릭 신도임을 강조하면서 나치즘에 경도된 인물은 아니었다고 자신을 변호합니다. 이러한 자기 변론은 전후 서독에 거주한 무장친위대 출신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논조라 꽤 재미있습니다. 몇년전 포스팅 했던 “기이한 도덕적 먹이사슬”에 인용한 글 처럼 나치당의 사조직이 아니라 독일군의 일원이었음을 강조하는 것이지요.
골든슨 : 히틀러가 1940년 이전에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합니까?
디트리히 : 물론이오. 전쟁을 일으켰잖소. 전쟁에 진 패자는 한심해 보이는 법이지. 독일의 외교는 형편 없었소. 히틀러가 집권하기 전 부터 말이오.
골든슨 : 무슨 이야기입니까?
디트리히 : 지도를 한번 펼쳐봐요. 독일이 어디에 붙어 있습니까? 독일을 둘러싼 나라들을 한번 봅시다. 그리고 독일의 적국과 우방국을 찾아 보시오. 그러면 내가 하는 말이 무슨 소린지 알 게요.
Leon Goldensohn(Author), Robert Gellately(Editor), Nuremberg Interviews : An american psychiatrist’s conversations with the defendants and witnesses, (Vintage Books, 2004), p.283
양면전쟁을 두 번이나 경험한 군인다운 평가입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재미있는 또 다른 요소는 여러 인물들의 주관적인 인물평입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인물평이니 여러가지로 생각해 볼게 많습니다. 골든슨은 디트리히에게 롬멜에 대해 물어봅니다. 디트리히는 롬멜에 대해 꽤 냉정한 평가를 내립니다.
디트리히 : 롬멜 원수는 나와 대략 비슷한 연배였소. 기갑전에 능통한 장군이라고 하기는 조금 그랬지.
골든슨 : 롬멜 원수가 유능한 기갑부대 지휘관이 아니란 겁니까?
디트리히 : 평범한 수준이었소.
(디트리히는 롬멜에 대해 매우 냉정했다.)
디트리히 : 병과를 바꾸는건 어려운 일이오. 롬멜 원수는 보병전에 능통한 장군이라고 해야겠지. 롬멜 원수는 침착하지 못한 성격이라서 모든 것을 한번에 해치우길 원했소. 그리고 나면 흥미를 잃어버렸지. 나는 노르망디에서 그의 부하였소. 롬멜 원수가 좋은 장군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겠지. 성공을 거두면 괜찮았지만 상황이 역전되면 침울해 졌소.
Leon Goldensohn(Author), Robert Gellately(Editor), ibid., p.280
디트리히는 면담에서 자신이 카톨릭 신도임을 강조하면서 나치즘에 경도된 인물은 아니었다고 자신을 변호합니다. 이러한 자기 변론은 전후 서독에 거주한 무장친위대 출신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논조라 꽤 재미있습니다. 몇년전 포스팅 했던 “기이한 도덕적 먹이사슬”에 인용한 글 처럼 나치당의 사조직이 아니라 독일군의 일원이었음을 강조하는 것이지요.
2012년 11월 6일 화요일
2차대전 후반기 독일군의 전차 및 돌격포 손실률
지난번에 올렸던 「2차대전 후반기 독일군의 대전차포 손실률」의 후속 포스팅입니다. 넵. 또 통계자료 하나로 대충 때우는 땜빵 포스팅입니다. 이왕 읽으시는 김에 역시 지난번에 썼던 「후퇴전에서 기갑부대의 전차 손실에 대한 잡상 - 바그라티온 작전의 독일 제4, 5기갑사단의 경우」도 같이 보시면 좀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먼저 통계부터 나갑니다. 지난번 포스팅에 인용한 통계와 마찬가지로 손실률의 단위는 %이고 매달 1일 보유하고 있던 차량 숫자를 기준으로 그달 마지막 날까지 집계된 손실 대수로 나눈 것 입니다.
표. 독일군의 전차 및 돌격포 손실률(1943.7~1944.9)
[표 출처 : “Anl zu Nr.3730/44 gkds Gen.Insp.d.Pz.Tr : Pz u. Stu.Gesch Verluste 1943/44” (1944.11.6), NARA RG242 T78 Roll145]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돌격포가 회전포탑을 가진 전차들에 비해 낮은 손실률을 보이고 있다는 점 입니다. 물론 예외도 있어서 1944년 7월에는 티거 다음으로 높은 손실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른 포스팅에서 다루겠지만 돌격포는 티거 만큼이나 높은 피아 교환비율을 보이는 장비입니다. 1944년 7월에 유독 높은 손실률을 보이는 이유는 바그라티온 작전 당시 중부집단군의 기갑전력 핵심을 이루던 돌격포여단들이 대거 괴멸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추후 바그라티온 작전 관련 포스팅을 할 때 다룰 기회가 있겠지요.
1943년 7월에 판터가 유독 높은 손실률을 기록한 것은 다들 아시다 시피 쿠르스크 전투에 투입한 판터D형이 기계결함 등으로 지독한 손실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는 손실이 점차 줄어들어 4호전차와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지요.
역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지난번에 올렸던 대전차포의 손실률과 마찬가지로 1944년 7월부터 폭증하는 손실률입니다. 노르망디 전역과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인한 패배의 타격이 극심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1944년 9월에는 엄청난 손실률을 보이고 있는데 이시기에 집중적으로 전장에 투입되어 괴멸적인 타격을 입은 독립 기갑여단들의 피해가 반영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먼저 통계부터 나갑니다. 지난번 포스팅에 인용한 통계와 마찬가지로 손실률의 단위는 %이고 매달 1일 보유하고 있던 차량 숫자를 기준으로 그달 마지막 날까지 집계된 손실 대수로 나눈 것 입니다.
표. 독일군의 전차 및 돌격포 손실률(1943.7~1944.9)
돌격포
|
3호전차
|
4호전차
|
5호전차
|
6호전차
| |
1943.7
|
12
|
15
|
28
|
41
|
18
|
1943.8
|
10
|
15
|
22
|
32
|
22
|
1943.9
|
10
|
9
|
15
|
25
|
15
|
1943.10
|
13
|
11
|
16
|
26
|
15
|
1943.11
|
14
|
18
|
23
|
20
|
11
|
1943.12
|
9
|
10
|
24
|
19
|
23
|
1944.1
|
15
|
10
|
22
|
30
|
22
|
1944.2
|
14
|
9
|
12
|
24
|
5
|
1944.3
|
13
|
4
|
9
|
3
|
9
|
1944.4
|
18
|
15
|
18
|
31
|
23
|
1944.5
|
7
|
2
|
6
|
15
|
5
|
1944.6
|
8
|
10
|
15
|
15
|
20
|
1944.7
|
36
|
12
|
28
|
28
|
45
|
1944.8
|
16
|
5
|
23
|
22
|
24
|
1944.9
|
26
|
29
|
52
|
60
|
35
|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돌격포가 회전포탑을 가진 전차들에 비해 낮은 손실률을 보이고 있다는 점 입니다. 물론 예외도 있어서 1944년 7월에는 티거 다음으로 높은 손실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른 포스팅에서 다루겠지만 돌격포는 티거 만큼이나 높은 피아 교환비율을 보이는 장비입니다. 1944년 7월에 유독 높은 손실률을 보이는 이유는 바그라티온 작전 당시 중부집단군의 기갑전력 핵심을 이루던 돌격포여단들이 대거 괴멸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추후 바그라티온 작전 관련 포스팅을 할 때 다룰 기회가 있겠지요.
1943년 7월에 판터가 유독 높은 손실률을 기록한 것은 다들 아시다 시피 쿠르스크 전투에 투입한 판터D형이 기계결함 등으로 지독한 손실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는 손실이 점차 줄어들어 4호전차와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지요.
역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지난번에 올렸던 대전차포의 손실률과 마찬가지로 1944년 7월부터 폭증하는 손실률입니다. 노르망디 전역과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인한 패배의 타격이 극심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1944년 9월에는 엄청난 손실률을 보이고 있는데 이시기에 집중적으로 전장에 투입되어 괴멸적인 타격을 입은 독립 기갑여단들의 피해가 반영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2012년 11월 5일 월요일
맥아더 기념관 - 1
지난달 초에는 버지니아주 노퍽(Norfolk)에 있는 맥아더 아카이브와 기념관을 다녀왔습니다. 이곳은 인터넷이 느려서 사진을 많이 올리면 브라우저가 상당히 버벅거리더군요. 그래서 내용은 별로 없지만 좀 나눠서 올립니다.
맥아더 아카이브의 소장 자료를 개략적으로 조사하러 갔는데 예상대로 특별히 NARA와 차별되는 자료는 없더군요. 대신 그곳에 간 김에 바로 옆에 있는 기념관도 함께 구경을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제가 방문했을때는 맥아더 기념관 신관이 개관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정확히 제가 방문하고 일주일 뒤에 개관했다고 하더군요.
곧 신관이 개관할 예정이었지만 구관도 아직 볼만한 전시물이 조금은 남아 있더군요. 일단 구관에 들어서면 먼저 맥아더와 그의 부인이 안치된 두개의 관이 관람객을 맞이 합니다. 주변은 맥아더가 참가한 전역과 그가 지휘했던 부대들의 부대기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꽤 인상적인 배치였습니다.
전시관의 전시물은 비교적 평이한 편이었습니다. 맥아더의 이력과 당시 국제정세를 간략히 설명해주는 전시판과 관련된 전시물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주로 복식, 군장, 소화기 등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특별한 설명은 필요가 없을 듯 싶으니 사진만 올리겠습니다.
맥아더의 초기 군생활을 다룬 전시실 다음에는 1차대전기 맥아더의 활동을 다룬 전시실이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군장, 소화기류 중심으로 전시가 되어 있는데 그래도 눈에 확 들어오는 전시물이 하나 있더군요. 1차대전 당시 서부전선의 참호를 1:1로 재현한 디오라마였습니다.
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의 전간기를 다룬 전시물은 대부분 설명문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내용은 상당히 알찬 편이지만 책에서도 알수 있는 내용들이라서 사진은 생략.
태평양전쟁 초기를 다룬 전시실도 특별히 다를 것은 없지만 재미있는 전시물이 아예 없지는 않았습니다. 맥아더가 코레히도르 시절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권총이 그 중 하나입니다.
맥아더 아카이브의 소장 자료를 개략적으로 조사하러 갔는데 예상대로 특별히 NARA와 차별되는 자료는 없더군요. 대신 그곳에 간 김에 바로 옆에 있는 기념관도 함께 구경을 했습니다.
맥아더 기념관 구관. 바로 옆에 신관이 들어섰습니다. |
인천상륙작전을 묘사한 꽤 유명한 부조 |
그런데 마침 제가 방문했을때는 맥아더 기념관 신관이 개관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정확히 제가 방문하고 일주일 뒤에 개관했다고 하더군요.
맥아더 기념관 신관 |
상당히 인상적인 배치였습니다 |
맥아더와 부인의 관 |
전시관의 전시물은 비교적 평이한 편이었습니다. 맥아더의 이력과 당시 국제정세를 간략히 설명해주는 전시판과 관련된 전시물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주로 복식, 군장, 소화기 등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특별한 설명은 필요가 없을 듯 싶으니 사진만 올리겠습니다.
맥아더의 초기 군경력을 보여주는 전시판 |
1903년 경의 미육사 생도 제복 |
1차대전 시기를 다룬 전시실 |
은근히 그럴싸 합니다. |
상당히 괴로워 보입니다(?) |
대부분의 전시물은 이런 군장류 입니다 |
가장 위에 있는 훈장이 맥아더가 1차대전 당시 수여받은 공로기장이랍니다 |
태평양전쟁 초기를 다룬 전시실도 특별히 다를 것은 없지만 재미있는 전시물이 아예 없지는 않았습니다. 맥아더가 코레히도르 시절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권총이 그 중 하나입니다.
맥아더가 코레히도르에 포위되어 있을 당시 소지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권총이랍니다 |
맥아더가 코레히도를 탈출할때 탑승한 PT-41의 모형 |
2012년 10월 27일 토요일
NARA 소장 독일노획문서에 대한 잡상 - 1. 독일기갑총감부문서 T78 R616
이곳에 온 뒤 시간이 날때마다 칼리지파크의 NARA 4층 마이크로 필름 열람실에서 독일노획문서를 촬영하고 있습니다. 사실 남는 자투리 시간에 촬영을 하다보니 굉장히 속도가 느려서 이제 겨우 필름 세롤을 촬영했습니다. 이 상태라면 독일자료는 그리 많이 수집할수 없을것 같군요. 돈만 넉넉하다면 그냥 DVD로 복사를 신청하겠습니다만 한롤에 125달러나 하는지라;;;;
오늘은 노획문서 중에서 미국이 소장한 독일육군 기갑총감부 문서의 첫번째롤, T78 R616을 모두 촬영했습니다. 자료를 대략 훑어본 소감을 말씀드리죠.
T78 R616은 크게 두개의 폴더로 나뉘어 있습니다. 첫번째 폴더는 1944년 9월에서 10월까지 독립전차대대와 독립대전차대대의 편제에 대한 자료들이 들어있고 두번째 폴더는 1943년 7월부터 1943년 12월까지 기갑사단의 편제에 대한 자료들이 들어있습니다. 두번째 폴더는 바로 2차대전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유용한 자료집인 Kamen Nevenkin의 Fire Brigade : The Panzer Divisions 1943 - 1945의 기본사료 중 하나입니다.
간략히 살펴보면 전쟁 말기에 노획된 사료들이니 만큼 누락된 부분이 가끔 있습니다. 특히 두번째 폴더의 1943년 7월~8월 시기의 자료들은 누락된 사단이 제법 있어서 해당 사단의 상급제대, 특히 야전군 단위 제대의 사료에서 보충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독일군의 사단단위 사료들은 미국에서도 소장하지 못한 것이 많으니 혹시나 독일에서 자료수집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온다면 그때 확인하는 수 밖에 없겠네요.
전반적으로 매우 유용한 사료입니다.
첫번째 폴더는 유명한 중전차대대에서 노획장비로 편성된 잡다한 독립전차대대에 이르기까지 대대급 독립기갑부대의 월별현황을 보여줍니다. 비록 두달치에 불과하지만. 아쉬운점은 중전차대대에 대한 자료가 상대적으로 누락된 부분이 많다는 점 입니다.
두번째 폴더는 기갑부대들의 편제와 장비현황을 1개월 단위로 확인할 수 있으며 부대에 따라서는 매우 상세한 장비보유 현황을 알수 있습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대대단위의 차량보유량과 화기보유량이 명시된 자료도 섞여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제13기갑사단이나 제23기갑사단 처럼 상세하게 목록을 작성한 경우와 상대적으로 내용이 소략한 보고서들이 섞여 있는 점은 아쉽습니다.
오늘은 노획문서 중에서 미국이 소장한 독일육군 기갑총감부 문서의 첫번째롤, T78 R616을 모두 촬영했습니다. 자료를 대략 훑어본 소감을 말씀드리죠.
T78 R616은 크게 두개의 폴더로 나뉘어 있습니다. 첫번째 폴더는 1944년 9월에서 10월까지 독립전차대대와 독립대전차대대의 편제에 대한 자료들이 들어있고 두번째 폴더는 1943년 7월부터 1943년 12월까지 기갑사단의 편제에 대한 자료들이 들어있습니다. 두번째 폴더는 바로 2차대전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유용한 자료집인 Kamen Nevenkin의 Fire Brigade : The Panzer Divisions 1943 - 1945의 기본사료 중 하나입니다.
간략히 살펴보면 전쟁 말기에 노획된 사료들이니 만큼 누락된 부분이 가끔 있습니다. 특히 두번째 폴더의 1943년 7월~8월 시기의 자료들은 누락된 사단이 제법 있어서 해당 사단의 상급제대, 특히 야전군 단위 제대의 사료에서 보충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독일군의 사단단위 사료들은 미국에서도 소장하지 못한 것이 많으니 혹시나 독일에서 자료수집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온다면 그때 확인하는 수 밖에 없겠네요.
전반적으로 매우 유용한 사료입니다.
첫번째 폴더는 유명한 중전차대대에서 노획장비로 편성된 잡다한 독립전차대대에 이르기까지 대대급 독립기갑부대의 월별현황을 보여줍니다. 비록 두달치에 불과하지만. 아쉬운점은 중전차대대에 대한 자료가 상대적으로 누락된 부분이 많다는 점 입니다.
두번째 폴더는 기갑부대들의 편제와 장비현황을 1개월 단위로 확인할 수 있으며 부대에 따라서는 매우 상세한 장비보유 현황을 알수 있습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대대단위의 차량보유량과 화기보유량이 명시된 자료도 섞여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제13기갑사단이나 제23기갑사단 처럼 상세하게 목록을 작성한 경우와 상대적으로 내용이 소략한 보고서들이 섞여 있는 점은 아쉽습니다.
2012년 10월 16일 화요일
2차대전 후반기 독일군의 대전차포 손실률
2차대전 중 독일육군 병기국Heereswaffenamt 문서를 훑어보다가 재미있는 통계가 하나 보여서 포스팅을 합니다.
넵. 또 땜빵 포스팅입니다. ㅋㅋㅋ. 제대로 된 글은 귀국하고 자료를 정리하면서 하도록 하지요.(넵. 언제가 될지는 기약할 수가 없지요;;;;;)
이 통계는 매달 1일 보유하고 있는 수량을 기준으로 한달 동안 상실한 수량을 가지고 백분율로 환산한 것 입니다. 원래 인용한 도표에 수량은 나와 있지 않고 백분율 수치만 표시되어 있으니 이것만 올립니다. 월별 손실은 다른 병기국 문서에 월별로 정리가 되어 있는데 롤별로 흩어져 있어서 다 모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 싶습니다. 원본 문서는 그래프에 색을 칠해서 구분하고 있는데 미국인들이 흑백 마이크로 필름으로 촬영을 했는지라 알아보는게 살짝 골치 아팠습니다.
일단 도표부터 나갑니다.
표.독일군의 대전차포 손실률(1943.7~1944.9, 단위:%)
[표출처 : “s.Pak(Mot.z) Verluste 1943/44”(1944.11.8), NARA T78 Roll145; “SF- Verluste 1943/44”(1944.11.7), NARA T78 Roll145]
처음에 이 표를 봤을때는 대전차포의 형식에 따라 쉽게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손실률 차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단은 견인식 대전차포의 손실이 자주 대전차포 보다 높은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이보다도 1944년 1~3월 동부전선에서의 퇴각전과 1944년 7~9월 동쪽과 서쪽 양전선의 붕괴 시기에 모든 대전차포의 손실률이 폭증하는 것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군요. 이런 후퇴시기에는 크고 무거운 88mm 계열의 손실이 늘어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기갑장비의 손실률과 함께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넵. 또 땜빵 포스팅입니다. ㅋㅋㅋ. 제대로 된 글은 귀국하고 자료를 정리하면서 하도록 하지요.(넵. 언제가 될지는 기약할 수가 없지요;;;;;)
이 통계는 매달 1일 보유하고 있는 수량을 기준으로 한달 동안 상실한 수량을 가지고 백분율로 환산한 것 입니다. 원래 인용한 도표에 수량은 나와 있지 않고 백분율 수치만 표시되어 있으니 이것만 올립니다. 월별 손실은 다른 병기국 문서에 월별로 정리가 되어 있는데 롤별로 흩어져 있어서 다 모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 싶습니다. 원본 문서는 그래프에 색을 칠해서 구분하고 있는데 미국인들이 흑백 마이크로 필름으로 촬영을 했는지라 알아보는게 살짝 골치 아팠습니다.
일단 도표부터 나갑니다.
표.독일군의 대전차포 손실률(1943.7~1944.9, 단위:%)
견인식
대전차포
|
자주
대전차포
| ||||
88mm
Pak43/41
|
75mm
Pak40/41
|
76.2mm
Pak36(r)
|
나스호른
|
마더
| |
1943.7
|
17
|
11
|
8
|
4
|
14
|
1943.8
|
31
|
13
|
14
|
14
|
11
|
1943.9
|
3
|
7
|
10
|
2
|
13
|
1943.10
|
5
|
7
|
1
|
10
|
7
|
1943.11
|
3
|
4
|
4
|
1
|
1
|
1943.12
|
7
|
6
|
14
|
8
|
12
|
1944.1
|
8
|
10
|
22
|
8
|
13
|
1944.2
|
24
|
16
|
39
|
13
|
5
|
1944.3
|
3
|
10
|
5
|
15
|
3
|
1944.4
|
6
|
3
|
7
|
6
|
18
|
1944.5
|
2
|
10
|
19
|
1
|
6
|
1944.6
|
4
|
2
|
1
|
28
|
8
|
1944.7
|
2
|
21
|
5
|
30
|
40
|
1944.8
|
66
|
34
|
43
|
19
|
13
|
1944.9
|
37
|
20
|
15
|
38
|
26
|
처음에 이 표를 봤을때는 대전차포의 형식에 따라 쉽게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손실률 차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단은 견인식 대전차포의 손실이 자주 대전차포 보다 높은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이보다도 1944년 1~3월 동부전선에서의 퇴각전과 1944년 7~9월 동쪽과 서쪽 양전선의 붕괴 시기에 모든 대전차포의 손실률이 폭증하는 것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군요. 이런 후퇴시기에는 크고 무거운 88mm 계열의 손실이 늘어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기갑장비의 손실률과 함께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