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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4일 화요일

베를린

뉘른베르크 다음 목적지는 베를린이었습니다. 베를린은 지난 2003년에 석달 정도 삐대며 즐겁게 지냈던 곳이니 만큼 이번 여행에 잠깐이나마 들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를린에 도착해서 방을 잡자 마자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다행히 눈을 뜨니 비교적 이른 시간에 일어났더군요. 샤워를 마치고 창 밖을 바라보니 운하가 보입니다.

각하의 로망...

전날 하룻 밤을 보낸 호텔입니다. 아침에 주는 커피가 꽤 맛있었습니다.


S-Bahn을 타러 가는길에 꽤 재미있는걸 발견했습니다. 아주 틀린건 아닌데 좀 묘한 한글 문구가 적혀있더군요.


베를린에 들른 이유 중 하나는 마침 이날이 토요일이어서 벼룩시장이 열린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페르가몬 박물관 옆의 좌판은 쓸만한 책을 건질 수 있는 곳이죠.

반가워! 베를린 성당.

이날은 비가 많이 내렸지만 역시나 부지런한 독일인들은 아침부터 좌판을 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페르가몬 박물관 옆의 노점상 중에는 군사서적만 취급하는 양반이 한 분 있습니다. 바로 이 분 입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부지런히 좌판을 펴고 계시더군요. 5년만에 존안(?)을 뵈니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이 분의 존함이요? 명함을 받았는데 잃어 버렸습니다.;;;;

이 양반의 특징은 어디에선가 신통하게도 책을 잘 구해온다는 것 입니다. 꽤 재미있는 책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왼쪽 구석에 있는 책은 Werner Haupt의 제 8기갑사단사 인데 이 양반은 이걸 115 유로에 팔고 있습니다. 이 책은 2003년에 이 양반을 처음 만났을 때 부터 좌판에 있던 놈인데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안 팔리고 남아있었습니다. 가격은 그때 그 가격 115유로를 유지하고 있더군요. 아마 한 1~2년 뒤에 가도 안팔리고 남아있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리고 몽케의 베를린전투 회고록이 다시 출간된걸 이날 알게 됐습니다.

좌판에서 책을 산 뒤에는 페르가몬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놀랍게도 이 어린양은 2003년에 베를린에 석달이나 있으면서 페르가몬 박물관을 비롯한 박물관의 섬(Museumsinsel) 일대의 박물관들을 한번도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석달 내내 다음 주 쯤 가야지 가야지 하다가 그냥 귀국을 하게 됐지요.;;;;;

페르가몬 박물관은 공사중이었습니다. 허헛 참. 2003년에도 공사중이었는데....

갈 때 마다 공사중;;;;

페르가몬 박물관의 상징인 페르가몬 제단. 설명이 필요 없지요.


제 마음에 가장 멋졌던 것은 이쉬타르의 문 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모조리 말아먹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모두 수업시간에 지겹도록 많이 보셨겠지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리고 특별전시로 이슬람 미술에 대한 전시가 있었는데 정말 여기서 찍은 사진은 모두 망쳤습니다. 정말 좋은 카메라가 하나 있어야 겠습니다.!


페르가몬 박물관 관람을 마친 다음에는 바로 그 옆에 있는 구박물관(Altes Museum)으로 직행했습니다. 바깥에는 비가 쏟아 지고 있으니 박물관 말고는 갈 곳이 없었거든요.;;;;

야옹!

페리클레스 선생

시민들이여! 마누라를 숨겨라! 대머리 난봉꾼이 나가신다!

이거 아그리파라는군요

구박물관에는 다양한 형식의 그리스 투구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역시 이런 것에는 많은 관심이 가더군요.




이집트 관련 유물 중에도 흥미로운게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 무덤의 주인과 함께 묻힌 부부의 조각상은 묘한 느낌을 주더군요.


댁들은 정말 열심히 사랑하셨나 보오!

구박물관의 관람을 마치니 벌써 오후 5시가 넘어있었습니다. 이 시간으로는 다른 박물관을 볼 수는 없고 또 비까지 계속 내리니 좀 난감하더군요. 일단은 베를린 중앙역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잠시 간식을.... 두툼한 치즈가 최고였습니다.

간식을 먹고 잠시 다음 일정을 점검한 뒤 베를린에서 음악 공부를 하고 있는 친구의 집으로 쳐들어 갔습니다. 숙박료를 아껴 볼 겸... 흐흐흐...

2007년 2월 20일 화요일

합리적 수익분배 유형 - 1944년 동유럽 분할 문제

태양계적 대인배 푸틴좌의 한 말씀(sonnet)

※ 오늘(2월 26일) sonnet님이 쓰신 글을 보니 제가 앞 부분에서 심각한 오타를 냈습니다. 잘못 쓴 부분을 수정했습니다.

우리 같은 거스름돈 입장에서는 불쾌하지만 사실 저게 살벌하고 정나미 떨어지는 국제정치의 현실이지요.

발트 3국이 거스름 돈이라면 동유럽은 부수입 정도는 될 것입니다. 1994년에 출간된 Origins of the Cold War : an international history에 실려 있는 Charles Gati의 Hegemony and Repression : Eastern에는 이 부수입 분배를 둘러싼 처칠과 스탈린이라는 두 대인배의 거래에 대해 실려있습니다.

1944년 10월, 처칠은 전후 동유럽 5개국의 처리 문제를 결정하기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했습니다. 첫 번째 회담은 10월 9일 처칠과 이든, 스탈린과 몰로토프 참석하에 치러졌는데 이날 회의에서 처칠이 소련측에 제시한 세력 분할안은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헝가리 – 소련 50%, 영국 50%
유고슬라비아 – 소련 50%, 영국 50%
불가리아 – 소련 75%, 영국 25%
루마니아 – 소련 90%, 영국 10%
그리스 – 소련 10%, 영국 90%

처칠의 첫번째 제안은 그리스에서 영국의 압도적 우위를 달성하는 대신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에서는 소련의 우위를 인정하고 헝가리, 그리고 유고슬라비아는 적당히 세력 균형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 이었습니다. 사실 이때는 소련군이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를 휩쓸고 헝가리에 육박하던 시점이었고 영국은 발칸반도에 별다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지요. 스탈린은 처칠의 제안에 대해서 큰 이견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10월 10일에는 이든과 몰로토프간에 회담이 이뤄 집니다. 그런데 이든은 루마니아에서 소련의 지배적 위치를 인정하게 된다면 헝가리와 불가리아에서는 영국이 조금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몰로토프 또한 이날 좀 더 센 제안을 내놓습니다. 이날 몰로토프가 처음 제시한 분할안은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헝가리 – 소련 50%, 영국 50%
유고슬라비아 – 소련 50%, 영국 50%
불가리아 – 소련 90%, 영국 10%
루마니아 – 소련 90%, 영국 10%
그리스 – 소련 10%, 영국 90%

그리고 이든의 제안을 접한 뒤 다시 다음과 같이 제안을 수정합니다.

헝가리 – 소련 75%, 영국 25%
유고슬라비아 – 소련 75%, 영국 25%
불가리아 – 소련 75%, 영국 25%
루마니아 – 소련 90%, 영국 10%
그리스 – 소련 10%, 영국 90%

몰로토프는 이날 두 번 더 수정안을 제안하는데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가 협상 대상이었습니다. 몰로토프가 세 번째 수정안에서 제시한 세 국가에 대한 세력분할안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헝가리 – 소련 75%, 영국 25%
유고슬라비아 – 소련 60%, 영국 40%
불가리아 – 소련 75%, 영국 25%

이든이 여기에 대해 다시 내놓은 안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헝가리 – 소련 75%, 영국 25%
유고슬라비아 – 소련 50%, 영국 50%
불가리아 – 소련 80%, 영국 20%

몰로토프는 이든의 수정안에서 헝가리 부분은 동의하고 유고슬라비아와 불가리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변경안을 제시합니다.

유고슬라비아 – 소련 50%, 영국 50%
불가리아 – 소련 90%, 영국 10%

그리고 다음날인 10월 11일, 몰로토프가 마지막으로 제안한 것은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영국측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 이었습니다. 몰로토프의 최종 수정안은 영국측도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보입니다. 몰로토프의 최종안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헝가리 – 소련 80%, 영국 20%
유고슬라비아 – 소련 50%, 영국 50%
불가리아 – 소련 80%, 영국 20%
루마니아 – 소련 90%, 영국 10%
그리스 – 소련 10%, 영국 90%

전쟁이 끝난 뒤 유고슬라비아는 제멋대로의 길을 걸었고 헝가리, 불가리아, 루마니아는 소련의 지분이 100%가 돼 버리고 그리스는 거꾸로가 돼 버립니다.

결과가 어찌 됐건 도박판의 판돈 신세를 면한 것은 유고슬라비아 정도였고 나머지 네 나라는 그 운명을 바꾸지 못 합니다. 티토는 개인적으로는 별로 좋아하지 않은 인물이지만 유고슬라비아가 강대국의 노름판에서 판돈으로 전락하는 것은 막았으니 그럭저럭 쓸만한 지도자 인 것은 부인할 수 없지 않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