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런 예지력을 갖췄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심히 곤란하기 때문에 조박사께서는 각별히 조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간악한 일제의 귀에 이 소문이 들어간다면 조국의 독립이 물 건너 갈 수 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던 조박사는 겉으로는 충량한 황국신민인 것 처럼 위장을 했습니다.
장덕수와 조병옥이 영국인들과 미국인들에 대한 의분(義憤)을 고조시키고자 ‘그들에 대한 오해를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일본어가 꽤 유창한 장군은, 관계 당국이 현재 육지와 바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황을 좀더 자세히 알려주어야 하고, 미얀마와 필리핀의 독립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나 계획이 명료하게 설명되고 또 실행에 옮겨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군은, 조선인들은 정부의 충량한 병사가 되기로 결심을 하는 한편 정부는 조선인들에게 총리대신이나 대사가 될 수 있다는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기(八木信夫) 보안과장과 하다(波田重一) 장군이 이 발언에 대해 상당히 언짢아 했다.
윤치호의 1943년 2월 28일 일요일자 일기 중에서
윤치호/김상태 편역, 『윤치호 일기 1916~1943 – 한 지식인의 내면세계를 통해 본 식민지시기』, 역사비평사, 2001, 495쪽
조병옥 박사의 연기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물론 이렇게 자신의 예지력을 감추기 위해 충량한 황국신민으로 위장하셨던 조박사께서 왜 고향 동네의 사람들에게는 원자폭탄의 개발을 술술 털어놓으셨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아마 조박사께서는 동네 사람들이 일제에게 자신의 예지력을 밀고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간파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 波田重一를 읽는 법에 대해서 배군님께서 지적을 해 주셨습니다. 배군님이 지적해 주신게 맞는것 같은데 저도 한번 확인을 해 보고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좋은 조언 해 주시는 배군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