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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26일 목요일

소련의 대독 선제공격론에 대한 반론 : 1941년 5월 계획안을 중심으로

오늘도 역시 불법 날림 번역글 입니다.

마지막으로, 스탈린과 소련 고위 장성들이 남부 지구에 병력을 집중 시킨 이유가 독일을 선제 공격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즉 남부 폴란드의 평원은 동 프로이센의 강과 호수, 습지와 숲으로 둘러쌓인 지형 보다 공세 작전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소련이 독일을 선제공격하려 했다는 이론의 주요 근거는 1941년 5월에 작성된 전쟁 계획안이다. 러시아에 많은 논쟁을 불러온 이 문서가 어느 정도의 자료적 가치가 있는지는 평가하기 어렵다. 이것은 당시 작전국 부국장으로 있던 바실렙프스키가 필기로 작성한 문서이며 주코프와 티모센코의 서명란이 있기는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서명은 없다. 그리고 스탈린이 이 문서를 검토했거나 여기에 대해 언급했는가도 확실치 않다.
1941년 5월에 작성된 이 문서는 이전의 전쟁 계획들과 비교하면 개괄적이며 대략적인 개요정도에 불과하다. 로버츠(Cynthia A. Roberts)는 1941년 5월 계획안은 “실제 계획안이라기 보다는 구상 초기단계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문서에 따르면 독일과 그 동맹국(핀란드, 헝가리, 루마니아)는 총 240개 사단을 투입하고 이중 주력인 독일군 100개 사단은 코벨, 로브노, 키예프 축선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리고 독일군은 동원 단계에 있으며 아마도 “아군 보다 먼저 배치를 완료해 언제든지 기습을 감행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독일군의 기습을 방지하고 (또 독일군의 전력을 분쇄하기 위해서) 어떤 상황에서든 독일군에게 주도권을 줘서는 안되며 그러기 위해서는 독일 보다 먼저 동원을 완료한 뒤 독일군이 아직 병력 전개를 완료하지 못하고 각 집단군 및 병종간 협동이 원활하지 못한 상태일 때 선제 공격을 실시해야 한다. 붉은군대의 주요 전략 목표는 데블린 남쪽에 전개한 적 주력을 섬멸하는 것이다. (중략) 주력인 남서전선군은 크라쿠프-카토비체 지구의 독일군을 공격해 독일군을 남부의 동맹군과 절단시킨다. 그리고 서부전선군 좌익은 조공으로 세들레츠-데블린 방면으로 공격, 바르샤바 지구의 적을 포위해 남서전선군이 루블린 지구에 전개한 독일군을 섬멸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핀란드, 동 프로이센, 헝가리, 루마니아 지구에서는 능동방어를 실시하고 우세한 환경이 조성되면 루마니아에 대한 공세로 전환할 준비를 갖춘다.]

이 문서는 마지막으로 스탈린이 독일과의 전쟁에 대비해 사전에 준비된 계획에 따라 병력 배치를 실시하고 총 사령부 직할 예비전선군들의 동원을 비밀리에 실시하도록 허가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이전에 작성된 전쟁 계획안의 연장선 상에서 1941년 5월 문서를 읽는다면 그다지 놀랄 만한 내용은 아니다. 붉은 군대가 남부 지구에 전개할 독일군 주공을 타격해야 한다는 내용은 기존 계획안의 연장선 상에서 자연히 도출될 수 밖에 없는 결론이었다. 이 문서에서 주장하고 있듯 전개 완료 단계에 있는 독일군에 대해 선제 공격을 실시하자는 주장은 1941년 초 독일군의 대규모 이동이 감지되어 전쟁을 결코 피할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 진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폴란드 남부에 대한 선제 공격의 형태로 (적의 공격에 대한) 반격을 실시하자는 것은 기존의 계획안들과 같은 것 이었고 예비 야전군의 비밀 동원역시 기존에 실시하고 있던 병력 증강의 연장선에 있는 것 이었으며 비밀 동원은 이미 진행 중이었다.

이 문서의 문제는 두 가지이다. 가장 먼저 이 문서에는 선제 공격 시점이 모호하게 표시되어 있다. 독일군의 주력을 격파하는 것이 목표라면 가장 좋은 공격 시점은 독일군이 동원과 전개를 완료하지 못하고 집중과 부대간 조율이 원활하지 못한 때일 것이다. 그러나 이 시점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 두 번째 문제는 스탈린은 독일이 침공하면 소련이 스스로를 방어할 능력이 없다고 믿고 있어 여전히 평화적인 방법에 의한 문제 해결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계획은 실천될 가능성이 없다는 점 이었다. 그리고 당시 소련 군부내에서 선제 공격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할 근거도 없다. 1941년 6월 22일 전쟁이 개시된 뒤 다시 전쟁이 종결되고 또 스탈린이 숨을 거둔 이후에야 소련의 고위 군장성들은 방어 준비에 좀더 심혈을 기울여 독일의 기습에 대응할 준비를 갖춰야 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Geoffrey Roberts, Stalin’s Wars : from World War to Cold War 1939~1953, (Yale University Press, 2006), pp.76~77


요즘도 가끔씩 스탈린이 독일을 선제 공격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가설들은 위에서 Roberts가 지적 했듯 핵심적인 근거로 내세우는 것들이 오히려 그 가설이 잘못 됐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1941년 5월 계획안과 함께 자주 언급되는 사관학교 연설 역시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지요. 스탈린이 독일과의 전쟁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할 증거는 현재로서는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 인 것 같습니다.

2007년 1월 23일 화요일

주코프의 굴욕 : 1941년 6월 29일의 일화

주코프는 스탈린에게 직언을 하고도 스탈린 보다 오래 산 매우 드문 사람 중 한명입니다. 그러나 주코프가 스탈린에게 직언을 잘 했다고는 해도 최소한의 대가는 치뤄야 했습니다. 다음은 독소전 개전 초기에 두 사람간에 있었다는 일화입니다.

모스크바에서 민스크에 포위된 부대가 항복했다는 소식을 확실하게 확인한 것은 6월 29일 아침이었다. 스탈린은 이 소식을 듣자 격노했다. 민스크는 전략적으로는 별로 가치가 없었지만 연방의 슬라브 민족 공화국, 벨로루시아의 수도라는 점 때문에 국제적 대도시로 육성할 도시였다.(스탈린은 그루지야인 이었지만 짜르들이 그러했듯 슬라브 민족을 제국의 중핵으로 삼았다.) 스탈린은 시니컬한 인물이었지만 그 자신이 만들어낸 선전구호들을 그대로 믿어버리는 독재자적인 위험한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스탈린은 민스크의 함락 소식에 리투아니아의 카우나스(Kaunas)나 우크라이나의 리보프(L’vov)가 함락당했을 때 처럼 슬퍼하지도 않았고 드네프르 강의 방어준비에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았다. 스탈린은 그 대신 민스크의 함락이 매우 중대한 전략적 패배라고 간주하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티모센코에게 전화를 걸었다.

“민스크에 도데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스탈린이 질문했다.

“아직 충분한 답변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스탈린 동지.”

티모센코는 불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티모센코가 대답을 주저한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아직 파블로프가 항복했는지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동지는….”

스탈린은 무엇인가를 말하려다 그만뒀다. 그 자리에 동석한 몰로토프, 말렌코프, 미코얀, 베리야는 뭔가 말할 것을 찾느라 고민하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스탈린이 말꼬를 텄다.

“나는 이 애매모호한 보고가 마음에 들지 않소. 즉시 참모부에 가서 각 전선군 사령부의 보고를 확인해 봐야 겠소.”

몇 분 뒤 소련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다섯 사람이 총참모부의 황동으로 된 문을 열고 들어섰다. 경비를 서던 병사는 너무 놀라 말도 못한 채 얼어 붙었다. 다섯 사람은 아무말 없이 경비병을 지나쳐서 티모센코의 집무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그들이 방에 들어섰을 때 티모센코는 주코프와 다른 여러명의 장군들과 함께 테이블 위에 상황도를 펴 놓고 토의를 하고 있었다.
스탈린이 나타나자 방안에 있던 모든 장군들이 부동자세를 취했다. 티모센코는 하얗게 질렸지만 어쨌건 스탈린에게 다가가 보고했다.

“스탈린동지. 국방인민위원회와 총참모부는 현재 전선의 상황을 분석 중이며 지시를 따르고 있습니다.”

스탈린은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았다. 스탈린은 테이블로 가서 서부전선군 지구의 상황도를 찾았다. 스탈린은 서부전선군의 상황도를 찾은 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동안 지도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마침내 스탈린이 장군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좋소. 보고하시오. 우리는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듣고 싶소.”

“스탈린동지. 시간이 부족해 아직 전선의 상황을 충분히 분석하지 못 했습니다. 많은 정보들이 아직 확인 못 한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종합된 것들은 매우 모호합니다. 보고를 드리기엔 정보가 부족합니다.”

스탈린은 격분했다.

“동지는 지금 내게 사실을 말하는 게 무서운 거 아니오! 동지는 벨로루시아를 잃었소. 이제 또 뭘 가지고 날 실망시킬 작정이오? 우크라이나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소? 발트 3국은! 동지는 지금 지휘를 하는거요 아니면 그냥 몇 명 죽었나 숫자만 세고 있는거요?”

주코프가 끼어들었다.

“우리가 상황 분석을 마치도록 내버려 두시지요.”

베리야는 어이가 없다는 투로 물어봤다.

“우리가 방해가 됩니까?”

“각 전선군의 상황은 매우 심각하고 우리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코프가 맞받아쳤다.

“베리야 동지. 명령을 내릴게 있다면 좀 도와주시지요?”

베리야는 불쾌한 어투로 대답했다.

“당의 지시가 있다면 그렇게 하겠소.”

주코프는 다시 대답했다.

“네. 그렇다면 당의 지시가 내려올 때 까지는 참모부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코프는 그의 “보스”에게 말을 꺼냈다.

“스탈린 동지. 총참모부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임무는 전선군 지휘관들을 돕는 것 입니다. 보고는 그 뒤에 하겠습니다.”

스탈린은 다시 분노를 터트렸다.

“먼저! 동지가 지금 우리를 대하는 태도는 큰 실수라는 걸 아시오! 두 번째로, 전선군 지휘관들을 어떻게 도울 건지는 지금부터 우리가 생각하겠소!”

스탈린은 독설을 쏟아 낸 뒤 다시 조용해 졌다. 장군들에게 발언할 것이 있으면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잠시 뒤, 주코프가 벨로루시아의 야전군 지휘관들과 통신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고 대답하자 스탈린은 또다시 격분했다. 스탈린은 주코프가 아무 쓸모없는 인간이고 패배자라고 소리쳤다.
주코프는 눈물을 글썽이며 티모센코의 집무실에서 나갔다. 몰로토프가 주코프를 따라 나갔다. 잠시 뒤 주코프가 다시 티모센코의 집무실로 들어왔을 때 그의 눈가는 새빨갛게 돼 있었다.

스탈린은 그를 따라온 사람들에게 말했다.

“동지들, 돌아갑시다. 좋지 않은 상황에 여길 온 것 같소.”

스탈린은 총참모부 건물을 나서면서 침울하게 말했다.

“레닌은 우리에게 위대한 유산을 남겨줬소. 그런데 우리가 이걸 다 말아먹어 버렸구만.”

Constantine Pleshakov, Stalin’s Folly : The Tragic First Ten Days of World War II on the Eastern Front, (Houghton Mifflin), p.212-214

스탈린 동지의 일갈에 눈물을 글썽이는 우리의 불패의 장군. 정말 안구에 습기가 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