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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25일 월요일

[번역글] 특수군사작전 2년차 : 몇가지 성과들, 향후의 전망

 가끔 미국이나 유럽쪽의 우크라이나 전쟁 연구에 인용되는 러시아 문헌들을 찾아서 번역기로 영역을 해서 읽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프로파간다를 감안해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조금씩은 나옵니다. 최근에 읽어본 글 중 흥미로운 것을 몇개 올려보려 합니다. 이 글은 Вестник Академии военных наук(군사과학학회보) 2024년 2호에 실린 Два года специальной военной операции:некоторые итоги, вероятные перспективы(특수군사작전 2년차: 몇가지 성과들, 향후의 전망)입니다. 필자는 가브릴로프(А. Д. Гаврилов), 그루디닌(И. В. Грудинин), 마이부로프(Д. Г. Майбуров), 노비코프(В. А. Новиков) 등 입니다. 글이 쓰여진 시점은 우크라이나의 2023년 반격을 막아낸 뒤 전략적 주도권을 되찾았지만 군수물자가 부족해 북한에 포탄을 지원받기 시작했고, 아직 북한군까지 참전하지 는 않은 2024년 초 입니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민간인 공격을 규탄하는 등 러시아의 파렴치한 프로파간다로 가득차 있지만 러시아의 시각을 잘 보여주는 재미있는 내용입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확대하지 않는 이유는 러시아가 정의와 휴머니즘을 추구하기 때문이라는 정신나간 소릴 하는데서는 기절할 것 같습니다. 꼬여있는 전황을 타개하기 위해 간접적으로 총동원을 촉구하는 부분이 주목됩니다.

 영어 중역이라서 번역의 질은 담보할 수 없습니다. 러시아인들은 대충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하고 참고삼아 읽으시면 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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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군사작전 2년차: 몇가지 성과들, 향후의 전망


가브릴로프

그루디닌

마이부로프

노비코프


 '특수군사작전'이 개시된지 2년이 넘었으니 군사적, 정치적 측면에서 몇가지 평가를 할 수 있을듯 하다. 우크라이나와의 분쟁에서 러시아를 전략적으로 패배시키려는 범 서방의 지구적 목표가 성공하지 못했음은 명백하다. 러시아가 내부의 모순으로 분열해 붕괴할거라는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러시아 대통령 선거 결과를 보면 푸틴에 대한 지지도가 거의 90%에 달한다. 러시아는 새로운 영토를 얻었다. 일부는 '특수군사작전' 초기에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공화국을 승인함으로서 획득했고 초기의 성공적인 작전으로 자포리자와 헤르손 주를 얻었다. 전투 작전에서 러시아군의 타격력은 크게 증가했으며 장병들은 귀중한 실전경험을 얻었다. 가장 큰 발전을 이룬 분야는 러시아의 군산복합체다. 러시아의 군수물자 생산은 크게 증가했다. 서방의 전례없는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경제는 '갈기갈기' 찢기기는 커녕 전례없는 회복력을 보여주면서 주요 지표가 확고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과거 무시받았던 농업 부문도 기적적으로 부활했다. 러시아는 백년전 처럼 세계 상위권의 농산품 수출국 지위를 되찾았다.

 소련이 붕괴한 뒤 주권을 가지게 된 우크라이나는 (소련 덕분에) 상대적으로 발달한 공업과 농업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치적, 경제적 독립성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서방의 재정 지원에 의지해 연명하는 처지가 되었다. 2024년에는 미국 의회의 대립때문에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 대한 자금지원이 지연되면서 '독립국' 우크라이나의 재정 정책은 막다른 골목에 몰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지도부는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문명화된 세계를 수호"해야 하며,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임금과 연금을 주기 어렵다면서 서방에 구걸하는 처지가 되었다. 미국 의회는 향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높은 도널드 트럼프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부담을 유럽연합에 떠넘기려는 뜻이 있음을 염두에 두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저렴한 에너지 공급을 거부한 뒤 경제 및 사회-정치적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 유럽의 산업은 침체되고 있으며 인플레이션도 높아지고 있다. 농민들은 길거리에 쓰레기를 쏟아붇고 관공서에 퇴비를 투척하고 있다. 사회복지도 축소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두 번째로 많은 원조를 하고 있는 독일의 군부와 정치 지도자들은 독일 국민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에 재정 및 군사원조를 계속하려 한다.

 우크라이나의 하계 '반격'이 실패하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낙관적인 선전선동과 최전선의 '가짜 뉴스'에 속아 한껏 높아져있던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사기는 곤두박질쳤다. 길거리에서는 군대에 보낼 사람들을 강제로 잡아들이고 있다. 무의미한 개죽음을 당하려고 모병소에 자원입대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우크라이나군이 '반격'을 실시한 이래, 즉 2023년 6월 4일 부터 2024년 2월 15일까지 입은 피해는 엄청나다. 우크라이나군의 피해는 전차 및 장갑차 15,000여대, 야포와 박격포 8,000문, 무인기 12,500여대, 항공기 571대, 헬리콥터 266대, 방공미사일체계 500문에 달한다. 적의 인명손실은 전사자와 부상자를 합쳐 약 430,000여명에 달한다.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이 교체되고 전략적 방어로 전환한 이래 하루 인명피해는 850명에서 950명 수준이다. 유럽에서 군사력이 강하다는 나라들이 보유한 전차는 우크라이나가 여름 공세에서 잃어버린 전차 보다 적다. 독일은 300여대, 튀르키예는 316대, 프랑스는 406대다. 유럽의 나토가맹국이 보유한 전차를 전부 합쳐도 최신 전차(독일의 레오파르트2, 영국의 챌린저2, 프랑스의 르클레르, 이탈리아의 아리에테) 2,300여대, 구형전차 4,000여대(미제 전차 2,500대 포함)에 불과하다. 또 과거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속했던 국가에 1,500여대의 소련제 탱크가 있다. 

 하계 공세를 시작할 무렵 우크라이나는 약 2,200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고 나토 국가들이 추가로 전차 700여대를 지원했다. 실전 결과를 보면 서방의 최신 전차도 구형 전차들 처럼 격파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군 고위층도 전투 부대에 배치된 전차와 장갑차의 50%를 잃었다고 말할 정도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경제 및 군사원조는 전례없는 규모이다. 우크라이나는 외국의 개입 없이는 국가로서 생존할 수 없는 지경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및 탄약 지원은 모든 '레드 라인'을 훌쩍 넘었다. 어떤 전문가들은 그들이 "수치심으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고 한다. 참고로, 현재 국제법상의 규범, 또는 지금까지 남아있는 국제법상의 잔재에 따르면 다른 나라에 재래식 무기, 군사장비, 탄약, 기타 군사관련 물품을 수출하는 나라는 전쟁 상태에 있는 걸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예를들어 소련은 우방국인 베트남에 100문의 S-75 방공미사일체계와 7,000발의 미사일을 제공했고 이로인해 미국은 수많은 비행기와 조종사를 잃고 베트남에서 철수해야 했다. 또 6,000여명의 소련 군사고문단이 베트남을 도왔다. 그러므로 외국인 교관들이 서방 무기체계를 직접 운용한다고 해서 놀랄일은 아니다. 예를들어 2024년 1월 24일 우크라이나군 포로를 태운 Il-76 수송기가 미국제 패트리어트 방공 미사일에 격추된 사건이 있다. 참고로 국제법은 다른 나라에 군사원조를 할때 다음과 같은 사항을 준수하도록 요구한다.

 -원조한 무기를 민간인에게 사용하는 것을 금지함

 -어느 전쟁 당사국의 국민에 대한 대량학살 및 인종 청소를 금지함

 -원조한 무기를 테러 행위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함

 -핵물질 방호협약(CPPNM: Convention on the Physical Protection of Nuclear Material) 준수

 -군사 예산에 대해 표준화된 보고 체계 적용(원조 받는 국가의 재정 지출 중 보건 및 교육 예산이 국방비 보다 높을 때 원조를 가능하게 하는 등) 등

 지금까지 우크라이나가 마이단 혁명 이후 10여년간 모든 국제법을 위반했음을 보아왔다. 우크라이나는 서방에서 지원받은 무기를 아무 제약 없이 사용했고, 키이우 정권에서 조건을 위반하지 않겠다는 거짓 약속만 하는걸로 무기를 제공한 나라들은 만족했다. 게다가 '특수군사작전'이 시작된지 2년이 넘은 현재 독일의 장거리 타우루스 미사일, 미국의 F-16 전투기를 비롯한 각종 항공기도 지원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군이 큰 승리를 거두고 상황이 진전되어 우크라이나군에 더 효율적인 장거리 무기체계가 지원된다면 무력 충돌이 격화될 수 밖에 없다. 

 러시아의 군사과학은 러시아에 대한 안보 위협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그리고 군사 기술 측면에서 문제점이 있음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그 원인은 러시아군 수뇌부가 아군의 전투력을 평가하고 잠재적인 적의 의도롤 파악하면서 너무나도 기만에 잘 넘어가고 생각이 짧은데 있다. '특수군사작전'에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부대 운용이 나타났기 때문에 서방의 "협력국"에 대해 네트워크 중심전을 수행하고, 적국이 수행하는 범지구적 단위의 타격과 항공우주 작전을 효과적으로 격퇴할 준비를 갖추며, 짧은 기간에 적을 결정적으로 섬멸할 지상 작전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연구는 필요하지 않았다. 10여년 전 서방 국가들이 '평화를 애호하는 협력국'이라고 생각하고 군사훈련을 대테러작전 중심으로 전환하고 지상군의 구조를 여단과 군단 체제로 개편한건 치명적인 오류였다. 전술 차원에서는 대대전술단이 널리 활용됐다. 대대전술단에는 모든 병과가 포함되었고 기동력이 높았으며 지휘하기도 쉬웠다. 하지만 대대전술단은 파괴공작과 정찰대를 격퇴하고, 테러리스트들과 싸우고, 규모가 작고 무장이 허술한 적군을 상대하는 특정한 임무에 적합했다. '특수군사작전' 당시 전선은 1,200-1,300km에 달했는데 대대전술단으로 이런 전장에서 일어나는 전술 문제를 해결하는건 아주 힘들었다.

마찬가지로 '특수군사작전'을 준비하면서 서방의 '협력국'들이 러시아를 '전략적으로 패배'시키기 위해 전례없는 수준으로 단합하리라는 점을 예측하지 못한 점도 군사-정치적인 예측이 실패한 사례이다. 미국의 지도하에 거의 대부분의 유럽국가와 다른 미국의 위성국가(거의 50여개국)가 반러시아 전선으로 단결했다. 서방은 러시아에 대해 전례없는 수준의 제재를 연달아 부과했다. '특수군사작전'이 시작된 이래 총 15,821건의 제재로 이루어진 13개의 제재안이 통과됐다. 그리고 노르트 스트림 가스관이라는 세계 최구의 인프라를 파괴하는 전무후무한 테러 공작도 일어났다. 헝가리를 제외한 유럽 국가들은 자국의 경제에 해가 되는 걸 알면서도 러시아의 저렴한 에너지 자원을 거부하고 세배나 더 비싼 비용을 내면서 미국에서 수입을 했다.

러시아는 서방의 무기와 교관, 용병의 지원을 받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강력한 군대와 대결하게 됐다.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제압한다는 초기의 목표는 실패했다. 혁명적인 사상을 가진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 깃발을 흔들고 꽃다발, 빵과 소금으로 러시아군을 열렬히 환영할 거라는 기대도 물거품이 되었다. 우리 군대를 맞이한 적군은 강하고 잘 훈련되었으며 우수한 무기를 갖췄으며, (정보 체계, 지휘 통제 체계, 통신장비, 현대식 무기와 장비, 다양한 정밀 유도무기 등) 필요한 모든 것을 서방에서 공급받을 수 있었다.

전투 작전의 규모와 결과라는 측면에서 '특수군사작전' 초기의 군사 작전을 평가하자면 그저 낙천적인 생각의 결과물이었다. 정면 3,500km-종심 800km에 달하는 우크라이나 전역의 중요한 군사 시설은 장거리 정밀타격 무기로 일시에 타격할 대상이었다. '특수군사작전'을 시작하고 겨우 2주 동안 800여발의 지대지 및 공대지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을 사용한 걸로 추산된다. 이는 미국이 이라크 전쟁, 유고슬라비아 사태, 리비아 사태 당시 사용한 것 보다 두 배는 많은 숫자였다. 가장 최신의 고정밀 무기를 사용했다. 이스칸데르, 칼리브르, 킨잘, Kh-101, Kh-555, Kh-69 등 모두 매우 정확하고 치명적인 효율성을 가진 무기였다. 공중강습과 상륙작전도 병행됐다. 우크라이나군은 작은 집단으로 쪼개져 포위망에 갇히거나 요새화된 거점에 고립됐다.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군대와 러시아군은 병력면에서 우크라이나군 보다 열세했는데, 이는 전통적인 군사학 기준과 반대되었다. 또 나토식으로 훈련받은 우크라이나군은 전쟁에서 암묵적으로 따르는 규범과 반대로 행동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자국 국민들에게도 무자비했으며 민간인을 지하실에 몰아넣고 인간방패로 사용했다. 초기 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은 우크라이나군의 지휘통제가 무너지고, 우크라이나군의 방공 체계가 제압되었으며, 우크라이나군 비행장과 항공기 대부분을 격파해 공중우세를 달성하고, 우크라이나군 여단과 연대들의 전략적 기동성을 빼앗아 전장에서 효과적으로 고립시킬 수 있었던데 있다. 

 그 다음에는 우크라이나군이 서방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저항을 강화하면서 전쟁이 장기화되었다. 이 기간 중 양측은 각자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었다. 미국이 80%를 소유하고 통제하는 서방의 모든 언론 매체들은 우크라이나 국민과 전 세계에 우크라이나가 곧 승리를 거두고 크름 반도를 탈환할 것이며 우크라이나 군이 모스크바를 점령하고 티파티를 열 거라고 선전했다. 하지만 실제 전장의 상황은 완전히 달랐고 지금은 전세가 러시아에 유리하게 역전되었다. 주된 이유는 미국의 우크라이나 원조가 지연되고, 미국이 유럽에 부담을 떠넘기려 했기 때문이다.

 '특수군사작전'을 2년 동안 수행하면서 군사조직과 전쟁수행에 있어 몇가지 특이한 점이 발견되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전술적, 조직적, 기술적 혁신이 결합하면 군사혁명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게다가   '특수군사작전' 수행으로 광범위하고 다양한 전투 경험이 공개적으로 논의되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견해가 나오고 있다. 이는 미래의 전장에서 벌어질 전투의 새로운 경향과 본질을 설명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기인한다. 이토록 짧은 기간(사실상 실시간의)에 일어나는 전투 과정의 본질과 내용을 객관적인 평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때문에 연구자들은 전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재래식, 또는 최신 전투 수단의 역할과 위치의 관계에서 가장 보편적인 변화와 이것이 다양한 전투 임무를 해결하는데 기여하는 방식을 구별하고 설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음과 같은 사항은 특히 흥미롭다. 전차 부대는 제병협동전투(작전)의 핵심 타격 요소로서의 위치가 흔들리지 않을 것 처럼 보였지만 이제는 이것을 확신할 수 없다. 작전에서 전차를 운용한 경험에 관해서 여러 전문가들이 다양한 결론을 내놓고 있다. '투명한' 전장 상황에서 전차는 전혀 신뢰할 수 없으며 적이 보유한 다양한 무기(지뢰, 포병, 무인기)에 전차가 매우 취약하다는 주장부터 기술적으로 향상된 최신형 전차가 필요하며, 제병협동전투를 준비하고 수행하는새로운 조건하에서  새로운 전차 운용 방법을 개발하고 실증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동시에 요새화된 적 방어선을 전차 부대를 집중해서 돌파하는 전통적인 개념은 완전히 부적절하다는 결론도 내려졌다. 물론 미래의 전투 체계에서 전차가 차지할 위치는 시간과 전장 환경의 변화에 달려있겠지만, 한세기 동안 '전통적'이었던 적극적인 전차 운용 방식이 큰 변화에 직면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전차의 공격으로 적 부대를 돌파하는 신속하고 기동적인 전투 작전 대신, 지상군 부대들은 장기간의 진지전을 수행하게 되었다. 적이 공들여 구축한 요새 지대를 점령하는 작전과 도시를 해방하는 작전은 특수한 부대 운용 방식과 많은 노력과 자원을 필요로 하는 독립적인 작전이 되었다. 시가전은 매우 복잡하고 공격측은 큰 손실을 입는다. 전통적인 작전술적 공세의 기본 교리(가장 가까운 목표와 차후 목표를 4-5일의 기간에 점령하는 등)는 더이상 적용되지 못하며 앞으로 한동안 그러할 것이다. 만약 3~4개의 제병협동군과 전차군이 공군과 해군의 지원을 받으며 대규모의 공세를 펼쳤다면 특수군사작전의 목표를 보다 일찍, 그리고 확실하게 달성하고 교전 상태를 끝냈을 것이다. 작전술의 원칙을 따랐다면 모든 병과와 병종의 화력을 사용해 3~4일안에 공세 방향의 적을 모두 소멸하고 당당하게 우크라이나 서부 국경에 도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완전히 다른 성격의 작전으로 양측 모두 큰 인명 피해를 입었을 것이며, 광범위하고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

 포병은 전술 및 작전술 차원에서 주된 파괴 수단으로서의 지위를 확인했고, 정찰용 무인기를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정밀유도탄약 사용이 늘어나면서 그 지위가 더욱 강화됐다. 특수군사작전 지역에서 신형 크라스노폴 유도포탄을 사용하면서 포병의 효율성이 크게 향상됐다. 20세기에 개발된 크라스노폴 유도포탄은 신형 레이저 유도 체계를 통합해 새로운 쓰임새를 얻었다. 개량된 크라스노폴 유도포탄은 이동하는 목표에 대해서도 80%의 명중율을 보장한다. 이와 같은 유도포탄은 D-20 곡사포와 므스타-B 곡사포, 아카치야 자주포, 므스타-S 자주포(개량형 포함), 칼리챠-SV 자주포, 말바 자주포  등이 사용한다. 포병부대가 표적 식별 능력을 획득함으로서 포병은 새로운 수준에 도달했다. 특정한 화력 임무에서 모든 단계의 적 화력 자산을 신속하게 정찰하고, 이를 통합 목표 배분 체계에 통합하는 능력이다. 필요한 데이터를 전송하는 체계만 갖춰지면 화력 임무를 거의 실시간으로 수행하고 목표 식별에서 교전에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 할 수 있다. 게다가 적의 화력 교전 체계가 가진 새로운 능력은 필요할 경우 여러가지 형식의 정찰 및 화력 장비, 그리고 다양한 유형의 부대들을 단일한 정찰 및 화력 모듈로 통합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무기가 지정된 목표와 교전하도록 보장할 수 있는 능력을 크게 향상시킨다.

 극초음속무기를 포함한 고정밀 무기 체계도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이스칸데르, 칼리브르, 킨잘, 그리고 다양한 공중발사, 그리고 해상발사 순항미사일 등으로 방산업체와 같은 우크라이나의 핵심 군사 인프라를 정밀하게 타격했다. 이른바 정밀 무기를 이용한 대량보복은 우크라이나를 비무장화하는 임무에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2022년 3월 9일 흐멜니츠키주(Хмельницька область) 스타로코스탼티니우(Старокостянтинів)에 있던 우크라이나군과 나토군의 지휘통제통신센터는 킨잘 극초음속미사일에 공격받았다. 푸틴 대통령이 2018년 대국민 담화에서 새로 개발하는 사르마트 미사일과 지르콘 미사일에 관해 이야기 했을때 서방은 이를 사전선거운동이라고 비웃었다. 또 킨잘 극초음속 미사일은 2017년 12월에 실전 시험을 했다.

 '특수군사작전'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양상은 방공무기체계가 유인항공기에 우위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이는 군사전문가들조차 예측하지 못한 현상이었을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수십년간 지속되어온 항공기의 폭격이 방공무기체계에 우위를 보이던 경향이 완전히 역전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전장에서 도전받지 않던 유인 항공기의 우위도 끝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된다면 작전술과 전술 차원에서 공군력을 운용하는 근본적인 기반 자체가 본질적으로 바뀔 수 밖에 없다.

 무인기의 발전과 정찰, 타격, 전자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운용하는 것은 진정한 혁명적 발전이다. 이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쪽 모두에게서 나타났다. 우크라이나군은 2024년 2월 초 무인기 운용인력을 훈련시키고 전투에 투입할 인력과 수단을 군의 독립된 병종으로 만들었다. 소형 무인기가 대규모로 운용되고 그 규모도 갈수록 늘어나면서 전장은 '완전히' 투명한 상태가 되었고, 부대 뿐만이 아니라 장갑차 한대, 병사 한명 조차 들키지 않고 움직일 수 없다. 소형 무인기 집단에 단독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공무기체계는 없다. 소형 무인기 집단에 대응하려면 전자전을 비롯한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모두 사용해야 한다.

 러시아군이 다양한 종류의 무인기를 대규모로 운용한 것은 우크라이나군에게 진정한 재앙이었다. 가장 중요한 기종으로는 란셋 무인기와 10여종에 달하는 파생형이다. 란셋은 전차, 보병전투차, 병력수송장갑차, 야포 등의 기갑장비와 고정 목표물에 큰 위력을 발휘했다. 란셋1과 란셋3 무인기는 시리아에서 실전 시험을 거친뒤 여러 차례 개량을 했다. 란셋은 지형 지도를 탑재해 위성 통신에 의존하지 않기때문에 전자전으로 교란하기가 어렵다. 또한 레이저에 대한 방어가 가능하며 폴리머 복합재로 만들어져 방공 레이더에 잘 포착되지 않으며, 유도체계도 갖추고 있다. 공격용 무인기는 전차와 보병전투차가 가장 취약한 상면을 타격한다. 공격용 무인기가 사용하는 탄은 장갑차량의 정면과 측면 장갑을 관통하기 어렵다. 약 50여년전 미국은 "몰려오는 소련 전차"들을 상대하기 위해 '어설트 브레이커(Assault Breaker)' 정찰타격체계(Reconnaissance and Strike System)을 개발했는데, 이 무기체계는 장갑 목표물을 탑재한 탄약으로 정밀 타격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현대 무인기의 시초격이다.) 우연히도 수년전 새로운 기술 환경을 바탕으로 이 계획이 다시 추진되고 있다.

 현재 러시아 국내의 군산복합체는 란셋 무인기와 그 파생형을 대량 생산하고 있다. 오부호프(Обухов) 공장 한곳만 해도 3교대 근무로 1달에 3,000여대의 란셋 무인기를 생산한다. 또한 이란의 샤헤드-136 무인기를 기반으로 신형 추진 체계와 재밍 방어능력을 가진 게란-2 무인기의 대량 생산도 시작되었다. 전술 차원의 전투 임무를 수행하는데 소형무인기의 역할과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므로 적 무인기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무기체계를 개발하고 러시아군의 무인기 전력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포병 전력을 강화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경제적, 정치적 문제는 대구경 포병 탄약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다. 현재 러시아의 군산복합체는 포병 탄약 생산을 늘리는 문제를 극복하는데 있어 우크라이나 보다 훨씬 성공적이며 전선에 배치한 포병 무기의 숫자도 더 많아서 우크라이나군 보다 화력면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다. '특수군사작전' 2년차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우크라이나군의 포병 탄약은 거의 다 고갈됐으며 나토 국가들의 탄약창도 고갈되기 직전이다. 또 유럽과 미국은 다시 탄약을 생산하면서 자원, 예산, 기타 경제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래에도 대구경 포탄 수요가 유지될 지 확실한 보장이 없어서 생산량을 급격히 늘리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현재 대구경 포탄 생산을 늘리려는 미미한 시도가 있기는 하다. 특히 독일의 숄츠 총리는 새로운 포탄 공장을 건설하는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또 미국은 2025년까지 연간 포탄 생산량을 120만발로 늘릴 계획이다.  이에 비해 러시아의 군산복합체는 1년에 대구경 포탄 450만발을 생산할 수 있다.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약속한 1백만발의 포탄 중 고작 30만발만 보내졌다. 물류 및 재정 문제로 나머지 포탄을 보내는게 지연되고 있다. 그결과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에 비해 10배 이상의 우위를 가지고 있다. 

 무인기를 대규모로 운용하는 현상은 극히 소수의 전문가만이 예측했다. 우리는 무인기의 대규모 운영으로 인해 공격 무기의 가격과 타격할 목표물의 가격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경향이 나타났고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가장 최첨단의 무기 체계가 단순하고 저렴한 무인기, 또는 무인기를 포함한 복합 타격 체계에 효과적으로 공격받고 있다. 이러한 경향이 초래한 현상은 육해공 모든 분야의 전투의 물질적 환경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만약 이런 현상을 초래하는 조건이 계속 유지된다면 서방 진영의 군대가 압도적인 기술적 우위로 '원주민' 군대를 압도하는 식민주의 전쟁은 종말을 맞을 것이다. 아주 가까운 미래에는 저항하는 민중과 정부를 '직접 상대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도륙하는 행위도 과거의 일이 될 것이다. 또한, 재래식 무기체계 전체의 상성관계가 무너지고 무기체계와 이를 운용하는 플랫의 비용과 효율성의 새로운 균형점을 찾게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악명높은 현대적  '포함 외교'의 주된 수단인 미국의 공군력과 나토 국가들이 보유한 소수의 항공모함은 애물단지로 전락할 것이다.

 심오하고 복잡한 국제 정치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우크라이나 정권을 무장해제하고 탈나치화하려는 '특수군사작전'의 복잡성과 다면적인 성격은 군사술의 발전에 있어 수많은 경향을 만들어내고 있다. 미래의 전쟁과 분쟁에서 이런 새로운 경향들은 더욱 강화되고 계속해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끼칠것이다. '특수군사작전'에서 매우 두드러졌으나 영향력은 끼치지 못할 다른 경향들은 앞으로 사후 분석의 대상으로만 남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가장 일반적인 경향들과 비교했을때, 무력 충돌의 결과가 통신 환경에 따라 전적으로 좌우되는 경향은 앞으로도 계속 중요하고, 그 중요성도 커질 것이다. 스타링크 시스템은 이런 경향을 보여주는 시초격이라 할 수 있다. 스타링크 시스템 처럼 신속하고 고도로 조직화된 데이터 전송 시스템이 없으면 무기 체계 개발, 미래 전쟁에서 군사 조직 및 기타 조직을 운용하는 방식을 발전 시킬 수 없다. 군사작전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데 있어 통신 체계는 너무나 중요하므로 통신 장비를 다양화하고 적의 강력한 방해공작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예비 장비, 정비 수단, 복구 수단을 갖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특수군사작전'을 준비하고 수행하는데 관한 세부적인 사항을 통해 앞으로의 전망, 성과, 영향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특수군사작전'의 공식적인 최종 목표는 우크라이나 정권을 비군사화하고 탈나치화하는 것이며, 이 목표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서방은 우크라이나를 이용해 "러시아를 전략적으로 패배"시키려는 그들의 소망을 현실화하려 한다. 동시에 원래 러시아를 봉쇄하는 목표의 명분으로 내걸었던 것을 최근에 바꾸는 점이 주목된다. 이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무찌르지 못하게 막는다." "우크라이나가 패배하지 못하게 한다.", 또 우크라이나가 패배한다면 세계의 자원을 식민주의적으로 재분배하면서 재정적, 경제적 번영을 유지하는 "서구 문명"의 존속에 치명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명분을 주로 말하고 있다.

 단합된 서방의 지원을 받는 강력한 군대를 가진 우크라이나를 비군사화하고 탈나치화하려면 우크라이나 정권을 완전히 항복시키고 말살해야한다. 비군사화는 전쟁을 포기하게 하고, 무장을 해제하고 추후에도 무기 획득과 생산을 금지시키고, 요새와 군사시설을 해체시키고 군대를 보유할 가능성을 없애는 것이다. 지금의 우크라이나 정권은 비군사화에 자발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것이므로 우크라이나 군대를 철저하게 패배시켜야 비군사화가 가능하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정부는 법적으로 러시아와 어떠한 협상도 할 수 없게 제약을 걸었으며, 지금까지 이루어졌던 합의도 서방의 요구로 취소됐다. 또 한편으로 어떠한 서방의 정부 기관을 배제하고 우크라이나 정권과 타협을 이룬다 하더라도 그 결과를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러한 대표적인 사례가 민스크 합의다. 서방의 협상 대상국들은 나중에 협상 과정의 진정한 목표는 우크라이나가 서방에서 피할수 없다고 간주하는 러시아와의 군사적 대결을 보다 효과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버는 것이라고 하면서 협상 자체가 거짓이었음을 드러냈다. 나토가 동쪽으로 더 팽창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명시한 것, 우크라이나가 1991년 소련에서 분리독립할 당시 헌법에서 중립국 지위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도록 명시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터커 칼슨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비나치화란 신나치즘 운동을 금지하고 생활 속에서 나치 사상과 행동을 버리지 않고 지키려 하는 사람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본질적으로 현재의 우크라이나 정권을 무조건 교체하고 입법부 단위의 국가 기관에 해결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정권은 권력을 잃을때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으므로 평화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모두 거부하고 끝까지 권력을 움켜쥐려 할 것이다. 또한 서방도 우크라이나의 내부 자원이 완전히 바닥날때까지 지원을 계속할 것이다. 그러니 러시아에게는 한가지 선택지 밖에 없다. '특수군사작전'의 목표를 단호하게 달성해야 한다. 우리 필자들은 '특수군사작전'의 핵심 결과는 필연적으로 나치즘 부활의 근원이며, 한치의 영토만 남아있더라도 러시아의 국가 안보에 철저한 위협이 되는 우크라이나라는 국가를 철저하게 말살하는 것이라고 본다. 우크라이나 국가의 말살은 각 지역의 역사적 기원과 국민들의 민족 구성에 따른 우크라이나 국토 분할로 이어질 것이다.

 전선에서 결정적인 변화가 없는, 전문가들이 뚜렷한 발전이 없는 일종의 교착상태라고 해석하는 이상 이 분쟁은 몇년 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군이 숫적으로 우세하고 (서방의 군사 및 기술 원조를 받아 특히 첩보 및 정보에서 기술적 우위를 가진) 현재의 병력 비를 고려하면 '특수군사작전' 목표를 신속하게 달성하는 건 비현실적이다. 틀림없이 서방은 앞으로 전쟁을 확대하려 할 것이다. 확전의 다음 단계는 이미 유럽의 군사, 정치 지도자들이 공공연히 발표하고 논의한 바와 같이 F-16, 타우루스 미사일 같은 장거리 타격 수단을 지원하는 것이리라 본다. 유럽연합은 물론 미국도 우크라이나에 추가로 재정을 지원하려는 다양한 방안을 고안하고 실행하려 한다. 나토군을 우크라이나에 직접 배치하는 방안(프랑스는 유럽 국가의 연합군을 결성해 이를 준비하려는 의도가 있다.) 나토 주요 국가들이 무기와 군용장비를 생산하는 기업들에게 금융 및 경제, 기타 다양한 우대 조치를 통해 군산복합체를 강화하려는 시도, 러시아의 종심 깊이 위치한 중요한 전략 시설을 파괴하려는 계획 등이 공공연하게, 그리고 치밀하게 조율되어 공개되고 있다.

 서방의 전략가들은 이제 공공연히 이번 분쟁에 핵무기가 사용될 가능성을 논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영내에서 전술핵을 사용할 가능성 뿐만아니라 나토 회원국 중 하나(아마도 러시아를 전략적으로 패배시키기 위해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국가)에 대한 선제 타격을 감행할 가능성까지 논의하고 있다. 이런 추측을 하는 이유는 러시아 지도층과 러시아 국민을 협박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하지만 서방에서 이런 논의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우려스러운 일이다. 서방 국가들이 꾸준하고 일관되게 확전을 시도하는 상황에서 아직까지 적의 도발에 대해 대응하지 않은 러시아의 군사-정치 지도자들의 입장은 명백히 비대칭적이다. 서방은 이 분쟁에 말려드는 길을 걷고 있다. 방탄모, 의료장비 등의 개인보호장구류 같은 인도주의적 지원으로 시작해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장거리 무기 공급과 같은 노골적인 개입, 유럽에게 전적으로 파괴적인 러시아와의 완전한 경제적 단절과 중국과의 부분적인 단절, 군사-정치 영역에서 우크라이나와 서방 정보 기관의 직접적인 테러행위(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파괴와 같은)에 대한 노골적인 지원등이다.

 현재까지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은 2022년 2월 24일 이후 러시아에 적용한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조치에 대해 단 한번의 대응도 받지 않았다. 서방 동맹은 '확전 경쟁'에서 러시아에 대해 8-10 단계 앞서나가면서 무기고가 바닥나고 있어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러시아 지도부가 이토록 자제하는 진짜 이유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한가지 짐작되는 것은 러시아가 이렇게 자제함으로서 서방을 포함한 전 세계에 러시아가 정의, 휴머니즘, 그리고 식민주의 엘리트 집단만이 아닌 전 인류가 공평한 발전을 이룩해야 한다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러시아가 서방에 대응 조치를 많이 취하지 않는 이유는 서방 동맹국 뿐만 아니라 그들의 우두머리인 미국을 은유적인 "군사-정치적 싸움"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라고 여겨진다. 마치 우크라이나 해군보병대가 정예 부대들을 꾸준하고 체계적으로 도살장에 밀어넣게 하는 것 처럼 말이다. 타당한 평가인지 확신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수준의 정보만으로 판단할때 갈수록 쇠락하는 유럽 경제가 제살을 깎아먹는 과정이 진행중이며 점차 가속화되는 것이 확실하다. 서방 국가 중에서는 미국 경제만이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그 이유는 정상적인 사회 경제의 발전 법칙에 따른 것이 아니라 주로 국방비를 과도하게 지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동맹국의 경제를 뜯어먹기 때문이다.

 또한 2년간 '특수군사작전'을 치르면서도 러시아는 아직 사용하지 않은 수단들이 남아있으며, 장소와 시간, 적에게 끼칠 영향력을 선택할 수 있는 뚜렷한 우위를 가지고 있다. 러시아가 대립을 더 격화하기 위해 고를 수 있는 첫번째 수단은 러시아 영토내의 시설과 민간인을 공격하는 부대와 무기체계를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미국과 나토 국가들의 첩보 및 정보 자산을 목표로 삼는 것이다. 탐지와 목표물 지정, 목표에 무기를 유도하는 과정에서 고정밀 무기 체계의 직접 통제하는 것이 서방 군사전문가들의 참여하에 이루어지고 있으니 이 문제를 첫 번째로, 최우선 순위에 두 해결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서방이 "방관자"인척 한발 빠져있는 편안한 상태에 있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영토 깊은 곳을 타격할 수 있는 역량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해도 감소시킬 수 는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의 민간 목표를 타격하는 빈도가 크게 늘어나면서 민간인 피해가 증가하고 있으며 중요한 후방의 정부 및 군사 시설이 파괴되고 있어 민감한 정치적, 선전적 요소가 되어 양측의 대중 여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서방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강력한 적을 맞아 군사적 대결이 장기화되면서 비극적이지만 인력 자원을 포함한 러시아의 국부를 대규모로 사용하는 등 거대한 러시아의 국방 잠재력을 끌어낼 수 밖에 없게 되었는데, 이는 사회경제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밖에 없다. 전장의 상황을 고려하면 '특수군사작전' 전선에 배치된 러시아군의 전투력이 확고한 우위를 달성하고 전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결정적인 행동을 취할 필요가 있다.

 신뢰할 수 없는 서방과 협상을 해서 분쟁을 외교적으로 해결하겠다는 희망은 부질없다. 미국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있는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끝내겠다고 발언한 것은 그냥 선거운동 구호라고 봐야 한다. 서방의 이익을 위한 슬라브인의 싸움은 더 커지고 서방은 계속 후원할 것이다. 서방 엘리트 집단의 자질은 아주 저급하며 정치적으로 매우 편향되어 있어 동등한 입장에서 상호간에 이익이 되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게다가 서방 엘리트들은 자국의 이익을 희생하면서까지 미국을 기쁘게 하고 미국의 의도를 이행하려는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을 가지고 있어서 유럽연합과 나토가맹국의 대중들은 그들의 지도자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고 있다. 서방 정치인들은 우크라이나의 전쟁터에 정치적 자산을 모두 걸어놓았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우크라이나가 "비참한 최후를 맞을때 까지" 원조를 해야한다는 주장을 반복할 수 밖에 없다.

 서방 엘리트들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면서 전세계에 그들의 제국주의적 본질을 드러냈으며 문명간의 충돌을 계속할 것임을 확인해 주었다. 따라서 현재 서방 지도자들은 그들의 예외적인 존재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으며 가장 냉소적인 표현 조차 피하지 않고 있다.(주제프 보렐[Josep Borrell, 당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유럽은 정원이다. 우리는 정원을 만들었다. 모든 것이 작동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지금껏 인류가 만들어낸 체제 중에서 정치적 자유, 경제적 번영, 사회적 통합이 가장 이상적으로 결합했다. 나머지 세계, 세계의 다른 대부분의 국가들은 정글이다. 정글이 정원을 침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블링컨[Antony Blinken] 미국 국무장관은 "전반적으로 우리는 자발적인 동맹과 협력에 기반한 강력한 네트워크라는 상대적인 이점을 가지고 있다. 만약 국제적인 체제라는 식탁에 앉지 못한다면 메뉴판에 올라가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사실상 서방의 모든 지배 엘리트들이 이런 성향을 드러내고 있으니 (최소한 지금의 정치 체제하에서) 서방의 대표들과 건설적인 접촉을 하겠다는건 허망한 일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러시아의 국가적 안보를 강화하는 목표를 이룩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공개적으로 선언한 목표를 완전히 달성하여 '특수군사작전'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지난 2년간 우크라이나에서 '특수군사작전'을 수행하면서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근본적인 상황이 러시아군에 유리하게 바뀌었다. 우크라이나의 '하계공세'는 실패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막대한 군사장비와 병력을 잃었다. 서방의 무기와 군사장비 지원에도 불구하고 전황에는 이렇다 할 영향이 없었다. 러시아 국내의 군산복합체가 모든 종류의 군사장비, 무기, 탄약 생산을 늘리면서 소모전을 하는 것도 유리하다. 정찰, 지휘, 통신, 전자전, 무인무기체계, 정밀유도무기, 기타 무기 체계도 많이 개발되어 전장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특수군사작전'의 목표를 완전히 달성하려면 국가와 사회의 조화로운 발전하에 군사, 정치, 경제적 도전을 골고루 해결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러시아가 전쟁은 이겨도 평화를 얻지 못했던 저주를  무슨 일이 있어도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경험한 것에서 배워야 할 때이다.

2024년 7월 14일 일요일

에스토니아 해외정보국이 추정하는 러시아의 군수산업 역량

발트 3국과 폴란드는 러시아와 소련의 침략으로 재난을 겪은 역사가 길다보니 러시아의 위협에 매우 민감합니다. 이 네 나라의 러시아군 연구는 수준이 높아서 참고할 가치가 있습니다. 올해 1월 에스토니아 해외정보국에서 발표한 보고서 "International Security and Estonia 2024"는 러시아의 군수산업 역량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1. 포병 탄약 생산 능력

 이 보고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의 포병 탄약 사용량은 감소 추세라고 평가합니다. 2022년 봄 러시아가 도네츠크-루한스크 방면에서 공세를 감행했을 때는 하루에 평균 60,000발의 탄약을 소모했으나 2023년 하반기 이후로는 하루 평균 10,000발에서 15,000발 수준으로 격감했다고 평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4년 초 기준으로 러시아군은 하루에 우크라이나군에 비해 3배에서 4배 더 많은 포병탄약을 사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중요한건 러시아의 탄약 생산능력입니다. 이 보고서 또한 러시아의 탄약 생산량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2022년에는 포병탄약을 약 1백만발 신규생산하거나 재생했으나 2023년에는 350만발로 증가했고, 2024년에는 450만발로 늘어나리라 예측하고 있습니다. 


2. 기갑차량 생산 능력

 러시아의 기갑차량 생산 능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위협적으로 평가합니다. 러시아의 기갑차량 손실이 너무 심각하다 보니 현재 역량을 파괴된 차량을 수리하거나 치장물자를 재생하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봅니다. 러시아 정부에서는 2026년까지 치장물자 2,000대를 재생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 목표는 달성 가능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다만 경제제재로 인해서 전차에 사용할 부품이 부족하다는 점, 러시아가 품질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생산한 기갑차량의 성능이 들쑥날쑥하다는 점은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식 차량들을 계속 재생해서 숫적으로는 어느 정도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포병 탄약과 기갑차량 등 두 분야에 대해서만 분석을 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역량이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하는 건 다른 서방국가의 분석과 동일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장기전으로 가게 되면 우크라이나가 불리하다는 점은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이 장기전 상황에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할 수 밖에 없습니다.

2015년 12월 7일 월요일

스탈린 동지의 현대전 강의

1940년 4월 14일 부터 17일 사이에 모스크바에서는 핀란드전 전훈을 평가하고 분석하기 위한 주요 지휘관 회의가 열렸습니다. 여기에는 스탈린도 직접 참여해 지휘관들의 의견을 듣고 스탈린 본인의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는데 그 중에서 포병 운용에 관한 내용을 발췌해 봅니다.


(전략) 

스탈린: 제122소총병사단의 규모는 어느 정도였소? 

추이코프(핀란드 침공시 제9군 사령관): 제122소총병사단의 병력은 12,000명이었고 여기에 1개 산악소총병연대, 제88소총병연대, 그리고  NKVD 1개 연대가 배속되었습니다. 

스탈린: 제122소총병사단의 정면은 130km고 담당 지역에는 이렇다 할 자연장애물이 없었소.

추이코프: 스탈린 동지. 만약 제122소총병사단이 퇴각하지 않았다면 이 사단도 다른 사단들 처럼 남쪽으로 부터 포위를 당했을 것 입니다. 이 사단은 35~40km를 후퇴했습니다. 

스탈린: 이 사단은 국경으로 부터 120베르스타(약 80마일) 떨어진 지점에서 철수를 멈췄소. 이 사단은 대략 스무번은 포위될 가능성이 있었소. 이것은 사단장에게 달려있는 것이오. 만약 훌륭한 사단장이 있다면 사단도 잘 운용될 것이요. 형편없는 사단장이라면 사단을 붕괴시키거나 사단의 사기를 떨어트릴 것이오. 훌륭한 지휘관은 형편없는 사단이라도 훌륭한 사단으로 만들 수 있소. 지휘관들이 항상 그들의 지위에 걸맞는 역량을 지닌 것은 아니지. 
동지가 부대를 지휘하는데 방해가 되는 자는 없었소? 

추이코프: 없었습니다. 

스탈린: 주저하지 않고 ‘없었다’고 말하는구려. 

추이코프: 질문하시는 바를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누가 방해를 할 수 있겠습니까? 

스탈린: 나야 모르지요. 그저 당신에게 질문하는 겁니다. 

추이코프: 없었습니다. 말씀드리자면, 우리는 특히 군사위원회의 성원들과 협조를 잘 했습니다. 이제 레닌그라드 군관구에서는 기존의 전차 중대, 차량화 소총중대, 혹은 유사한 중대의 편제에 기반한 수색대대를 편성 중에 있습니다. 이런 형태의 수색대대가 제9군의 작전지역 같은 곳에서 유용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런 편제의 수색대대는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스키 부대가 필요합니다. 스키 부대는 겨울에만 유용한 것이 아니라 여름에는 소택지에도 투입할 수 있습니다.무장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자동화기 사격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탄약 소모에 대해서는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데그차레프 기관단총을 직접 시험사격해봤는데 이건 매우 우수한 무기였습니다. 한 발만 명중 시켜도 목표를 제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동사격을 하면 목표를 명중시키는데 더 많은 탄환이 필요합니다. 

스탈린: 핀란드군이 기관단총을 쏘는 것 처럼 하시오. 여기서 쏘는거요.[의미 불명] 탄약을 조금만 사용한다면 더 많은 병력을 희생해야 하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병사를 아끼면서 총포탄을 더 많이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총포탄을 아끼면서 병사를 더 많이 희생시킬 것인지. 어느게 낫겠소? 

추이코프: 정확한 사격으로 목표물을 명중시키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스탈린: 당신은 틀렸소. 그런건 진부한 생각이오. 만약 아군 포병이 특정한 목표물만 타격했다면 아직도 핀란드와 전쟁을 하고 있었을 거요. 우리 포병이 승리한 이유는 하룻 동안 23만발의 포탄을 퍼부었기 때문이오. 어떤 사람들은 포탄을 많이 소모했다고 비난하기도 하더군. 나는 이런 자들이야 말로 문제라고 생각하오. 이왕이면 23만발 보다 40만발을 퍼붓는게 낫지 않았겠소? 만약 포탄 20발 중에서 한 발이라도 헛간이건 뭐건 간에 목표를 맞춘다면 그건 괜찮은 일이오. 만약 100발의 포탄을 쐈는데 99발은 빗나가고 한발만 목표를 맞췄다 치더라도 이건 근사한 일이 아닐 수 없소. 이런 식으로 포탄을 퍼부어서 적의 후방을 타격하고, 적이 방어선을 강화하는 것을 막으며 적의 움직임을 봉쇄했던 것이오. 그리고 우리는 핀란드군을 패배시켰소. 당신은 포병 사격에 정신이 붕괴되어 달아난 핀란드군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오? 핀란드측은 포격으로 충격을 받은 병사들을 치료하기 위한 특수 시설을 개설했다고 하오. 이것이 바로 포병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오. 현대전에서 총포탄을 아껴서는 안됩니다. 탄약을 아끼는 것은 범죄요. 총포탄을 아끼지 않고 퍼부었다면 인명 희생도 줄고 전쟁도 다섯배는 빨리 끝낼 수 있었을 거요. 

추이코프: 제가 스웨덴 의용군을 상대로 1만발의 포탄을 사용하자 곧바로 왜 그렇게 많은 포탄을 사용했냐는 전문을 받았습니다. 

스탈린: 누가 그랬소? 

추이코프: 총참모부였습니다. 

스탈린: 그건 잘못된 것이오. 총참모부가 현대전의 본질을 모르는구만. 

추이코프: 저는 총참모장으로 부터 왜 그렇게 많은 포탄을 사용했냐는 전문을 받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스웨덴 의용군을 상대로 더 많은 포탄을 사용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탈린: 4만발은 쐈어야지. 만약 더 많은 포탄을 사용했다면 올해 2월에는 승리했을 것이오. 전쟁을 한달만 더 일찍 끝냈다면 비용을 얼마나 아낄 수 있었겠소? 10억 루블은 절약됐겠지. 그리고 더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었을 거요. 포탄이 별거요?  만약 당신이 현대전에 대해 생각한다면 이런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포병이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이오. 당신은 더 많은 소총수가 필요했다고 하지만 그 불쌍한 동무들이 뭘 할 수 있었겠소? 포병이 없다면 이들은 헛되이 죽었을 거요. 

추이코프: 스탈린 동지. 제9군 구역에서 공병이 포병 진지를 구축하는데는 최소한 5일이 소요되었습니다.  

스탈린: 괜찮소. 포병 진지를 준비하는데만 10일이 소요되더라도 말이오. 제8군과 제15군도 비슷한 조건에 있었소. 모든 것은 포병에 달려있소. 포병이 모든 것을 결정한단 말이오. 

추이코프: 공군도 포병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스탈린: 항상 그런 것은 아니오. 항공기는 기상 조건에 영향을 받지않소. 항공기 지원을 많이 받을 수도 없소. 게다가 항공기는 기상조건에 좌우되니 언제나 쓸 수 있는게 아니오. 하지만 포병은 날씨에 구애받지 않잖소. 당신도 포병을 후방에 남겨둬야 한다는 이론가들을 알고 있을 것이오. 이들은 사단 전체에 스키를 지급해 보병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했지. 허무맹랑한 소리 아니오? 핀란드군은 강력한 방어시설을 구축하고 있었소. 이들은 중기관총과 37mm포, 3인치 포를 가지고 있었지. 야포를 견인하는게 어렵다는 이유로 포병을 후방에 남겨둔 스키 사단이 적군의 요새화된 방어선을 공격했다면 사상자만 잔뜩 내고 아무런 성과도 거둘 수 없었을 것이오.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추이코프: 그런 주장을 하는 자들이 있었지만 우리는 거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강력한 군단 포병을 사용할 생각이 없었지만 우리는 군단 포병을 활용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아군이 레폴라Repola로 진격했을때 아군의 보병, 포병, 공군의 합동 작전은 최고로 잘 수행되었습니다. 아군은 4만발의 포탄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레폴라 방면에 할당된 재고량의 거의 전부였습니다. 

스탈린: 말을 끊어서 미안하오. 포탄 사용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소? 

추이코프: 그건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도로 상태와 보급이었습니다. 


(후략)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열린 대 핀란드전 전훈 수집을 위한 지휘관 회의, 1940년 4월 15일 제3차 모임.  Alexander O. Chubaryan and Harold Shukman(ed.), Stalin and the Soviet-Finnish War 1939~40, (Routledge, 2013), pp.94~96에서 재인용.

2015년 11월 8일 일요일

진천 전투 당시 김석원 사단장의 지휘(?) 방식


예전에 김석원 장군에 비판적인 미국 문서를 조금 포스팅한 일이 있는데 지나치게 미국 주장에 경도된게 아니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김석원 준장 재임용 소문에 대한 미국 군사고문단의 반응


한국군 참전자들의 증언을 보면 김석원의 지휘능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김석원에 비판적이고 미군사고문단의 문서를 뒷받침 할 만한 증언도 존재합니다. 한국전쟁 초반 포병단 부단장이었던 김계원의 증언을 보면 김석원이 군사적 지식이 부족해 사단을 운용하는데 문제가 있었다는 미군사고문단의 평가가 아주 허무맹랑한 중상모략은 아니었다고 볼 수 있을듯 합니다.

처음 곡사포를 수령한 김성 대대장은 충분한 운용의 실습도 없이 곧바로 진천지구 전투에 투입이 된 것인데 긍지를 가지고 분투하였다. 소속의 대전차포 중대장 허현(許玄) 중위는 이 전투에서 장렬하게 목숨을 잃었다. 이곳에 확인차 진천지구 OP관측소에서 오르니 사단장 김석원 대령*은 일본도를 옆에 들고 카이젤 팔자수염을 연신 만지며 참모장 최경록 중령*에게 계속해서 돌격 앞으로만 외쳤다. OP가 무엇을 하달하는 곳인 줄 모르는 것인가. 옆에서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니 측지관측이 제대로 될 수 있겠는가 가관이었다. 직전 적의 이동경로에 정확히 아군의 포탄이 떨어져야 함에도 죄 없는 동네 민가에 떨어져 화염에 싸인 집에서 놀라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오는 불쌍한 주민들의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즉시 화력지원 통제소에 뛰어가 오차의 원인을 분석하고 미군 고문관에게는 포의 운용을 점검케하여 시정하였다. 
김계원, 『The Father: 하나님의 은혜』, (SNS미디어, 2012), 300쪽

*두 사람의 실제 계급은 각각 준장, 대령입니다. 저자가 말년에 회고를 하다 보니 기억에 오류가 있었던 듯 합니다.

한국전쟁 기간 중 김석원이 유능한 지휘능력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있는데 미국쪽 자료들과 일부 한국측 증언을 보면 그에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김석원의 지휘능력에 대한 비난은 그가 지휘한 사단에 배속됐거나 거쳐간 고문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데 제3사단 선임고문관 에머리치(Rollins S. Emmerich) 중령은 김석원의 지휘능력이 형편없고 공격성이 결여된데다 고문단이 사단을 지휘하는 동안 잠이나 자고 있었다고 맹렬히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이 에머리치 문서는 나중에 한번 번역해 보겠습니다.

김석원이라는 군인의 군사적 능력에 대한 자료들은 평가가 극과 극을 오가는지라 상당히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2011년 12월 12일 월요일

미서전쟁과 미국의 전시동원

미서전쟁은 짧은 기간 동안 전개되었고 규모도 유럽의 기준에서 본다면 그리 큰 전쟁이라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 몇 년 뒤 벌어진 러일전쟁이 1차대전을 예고하는 듯한  산업화된 근대전쟁의 양상을 뚜렷이 보여준 것과 대비가 됩니다. 대규모 함대결전, 그리고 기동전과 근대적 요새에 대한 포위전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전쟁 양상이 나타난 러일전쟁에 비하면 미서전쟁은 소박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서전쟁은 군사사에 관심을 가진 입장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점을 몇가지 보여줍니다. 이미 산업적으로 대국으로 성장해 있던 미국이었지만 상대적으로 전쟁 준비는 부족한 편이었습니다. 이 상태로 태평양과 대서양이라는 두개의 대양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한다는 것은 엄청난 과업이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미국의 전쟁 준비는 이런 준비부족을 극복하는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물론 국력이 받쳐 주기 때문에 부실한 전쟁 준비가 어떻게든 극복이 되는 것이긴 합니다만.

이 글에서는 기본적인 병력, 수송, 장비 및 보급 문제만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행정과 인사문제까지 들어가면 정리하는 것도 좀 더 어렵고 글이 더 길어질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전시동원이라고 하면 일단 첫번째로 병력 동원이 머리에 떠오릅니다. 사람이 있어야 싸우죠. 미국이 스페인에 선전포고를 할 당시 미육군은 겨우 28,000명 밖에 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미국과 스페인의 관계는 이미 1897년 초 부터 악화되고 있었지만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매킨리William McKinley가 본격적으로 전시동원을 고려하기로 한 것은 선전포고가 이루어지기 한달 전에 불과했습니다.1) 전쟁준비를 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이었습니다. 다행인 점이라면 상대가 스페인이었다는 것 정도였습니다.
육군이 3만명도 되지 않는 상황인데다 선전포고가 전쟁 준비도 갖추기 전에 일어났기 때문에 미국은 각 주의 “주방위군”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시기 미국의 “주방위군”은 오늘날과 같은  “주방위군”으로 체계가 잡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미국의 병력동원은 엉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실제로 당시의 미국은 물론이고 현재의 역사가들도 미서전쟁 당시 미국의 민병대 동원은 실패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매킨리 대통령은 초기에 원정을 위해 125,000명의 동원을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동원규모가 수정되어 연방정부는 182,687명의 병력을 동원하기로 하고 각 주지사들에게 민병대의 동원할 것을 통보했습니다.2) 대규모의 대외원정이 연방군이 아닌 주의 민병대를 주축으로 실행해야 했던 것 입니다.
주 방위군은 사실상 미군의 주력을 담당할 수 밖에 없었는데 정규 육군이 3만명도 채 안되었던 반면 각 주의 민병대는 1897년 기준으로 총 114,000명이었습니다. 실질적인 전투력은 둘째 치고라도 일단 숫자는 어느 정도 채우고 있었던 셈입니다. 여기에는 기병 4,800명과 포병 5,900명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편제는 제각각이어서 사단급 편제를 갖춘 주는 5개 밖에 되지 않았고 그외에 25개의 여단이 있었습니다.3) 나머지 주방위군 부대들은 연대 이상의 편제가 없었으니 일단 사단 부터 만든 뒤 훈련을 시켜야 쓸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 입니다.
각 주의 병력동원은 상당히 엉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일단 이 당시는 오늘날과 같은 주방위군 체제가 잡혀 있지 않았고 여전히 각 주 민병대의 자율성이 강했습니다. 이 때의 경험으로 미서전쟁 이후 주방위군 개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는 했습니다만 이 시점에서는 아직 미래의 일이지요. 몇가지 사례를 들어보지요. 미네소타 주에서는 존스 팜Jones Palm이라는 사람이 친구들과 사설 군사조직을 만든 뒤 주지사와 연방정부 민병대국에 정식 주방위군으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가 거부를 당하고 그냥 기존의 주방위군 연대에 입대했습니다. 반면 캔자스 주에서는 주지사 존 리디John Leedy가 기존의 주방위군을 불신하여 새로 지원병을 모집하여 연방정부로 부터 할당받은 4개 연대를 편성했습니다.4) 평시 주방위군의 훈련과 감독을 성실히 했던 주들은 부대편성과 병력 동원이 순조롭게 이루어졌습니다. 매사추세츠, 펜실베니아, 오하이오, 위스콘신 등이 그런 모범적인 사례였습니다. 반면 플로리다, 미주리, 루이지애나, 텍사스와 같은 주들은 상대적으로 주방위군 편성과 동원에서 혼란을 겪었습니다. 평시 훈련과 관리를 소홀히한 주들은 주방위군 대원들의 상당수가 연방군의 체력 검정도 통과 못하는 굴욕을 겪을 정도였다고 전해집니다.5)
게다가 아직 주방위군을 전시에 해외파병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법적, 행정적인 철차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주방위군 대원 중 일부는 소집에 응하지 않았지만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어쨌든 병력 동원은 그럭저럭 이루어 졌으며 약 20만명의 주방위군이 미서전쟁 기간 중 동원되었습니다.
실제로 주방위군은 전쟁 기간 중 미군의 중추를 이루었습니다. 비록 유럽의 기준과 비교하면 서투르고 부족한 면이 많았지만 스페인과의 전쟁에 대한 미국인들의 자발적인 참여 열기는 상당했던 것 같습니다. 각 사회단체는 물론이고 갑부들 중에서는 자비를 부담하여 1개 연대를 무장시키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오하이오주의 한 공무원은 오하이오에서만 10만명의 자원병은 모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을 정도라니 굉장하지요.6) 스페인과의 전쟁을 앞두고 하원의원 헐A. T. Hull이 입안한 이른바 “헐 법안Hull-Bill”은 정규군 만을 원정에 투입하고 주방위군은 국내 방위에만 투입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었는데 의회는 물론 각 주의 주지사와 주방위군 단체들의 반발로 폐기되고 주방위군은 대외 원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7)

미국이 전쟁경험의 부족 때문에 준비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은 그 외에도 여러 부문에서 나타납니다. 국내 자원의 동원에서 그런 점이 잘 드러나는데 막대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은 다소 부족한 점이 엿보입니다.
철도이동에 관한 규정들은 선전포고가 있고 거의 2주가 지난 5월 8일이 되어서아 육군 군수국장의 명령에 의해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전까지 군부대의 철도를 이용한 이동은 아무런 규정도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 지고 있었습니다. 육군 군수국은 민간철도회사와의 계약을 통해 철도를 활용했는데 철도부대를 운용하던 독일과는 달리 대규모 군병력의 철도 이동 경험이 없었던 미군은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군수국이 필요한 시기에 민간 철도회사의 차량을 투입하지 못해 부대이동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미숙한 운용은 침공군의 주요 집결지였던 플로리다 탬파Tampa에는 1천여대의 열차편이 몰려 극심한 정체를 이루었으며 심한 경우에는 탬파행 열차가 직선거리로 대략 700km 떨어진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컬럼비아에 묶여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일이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8) 그야말로 대륙적인 규모의 교통정체였습니다.

컬럼비아에서 탬파까지는 직선거리만 해도 어마어마하지요;;;;대륙 규모의 교통정체란;;;

철도와 달리 해상교통은 훨씬 준비가 잘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군수국은 3월 24일 전쟁을 대비해 선박 확보를 준비하기 시작했고 4월 1일부터 8월 31일 까지 대서양 방면의 작전을 위해서 44척의 선박을 임대했고 추가로 14척을 구입했으며 태평양 방면의 작전에는 17척을 임대하고 2척을 구입했습니다. 이와 별도로 병원선으로 사용하기 위해 존 잉글리스John Englis라는 기선이 구입되어 개조된 뒤 릴리프Relief로 개칭되었습니다.9)
그 다음으로 중요한, 특히 작전 단위의 이동에서 중요한 이동수단은 말과 노새와 같은 축력이었습니다. 당시 편제상 미육군의 기병중대는 말 126마리, 보병중대는 12마리, 경포병 포대는 126마리의 말을 필요로 하고 있었습니다.10) 그렇기 때문에 수송용 동물의 조달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미국의 방대한 생산력 덕분에 마필의 조달은 쉽게 이루어졌습니다. 미국은 미서전쟁 기간 중 기병용 말 10,000마리, 포병용 말 2,500마리, 견인용 노새 17,000마리, 등짐용 노새 2,600마리를 조달했습니다. 반면 견인용 수레는 약간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노새 6마리가 끄는 미육군의 표준형 수레는 민간시장에서 생산하지 않는 것이라 결국 육군의 기준에는 미달하는 민수용인 4마리가 끄는 수레를 3,600대 구입해야 했다고 합니다.11) 미육군의 표준형 노새 6마리 수레는 4천파운드의 수송량을 가졌는데 민수용인 노새 4마리 수레는 3천파운드 이하로 적재하도록 권장되었다고 합니다.12)

장비와 물자의 조달은 매킨리 대통령이 병력동원을 결심한 3월 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미육군은 위에서 언급한 헐 법안에 따라 주방위군은 본토 방위에 투입하고 원정군은 정규군을 중심으로 한 7만5천명에서 많아봐야 10만명 정도면 충분하다는 계획하에 물자 조달을 시작했기 때문에 헐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고, 또한 전쟁의 규모가 커져 수십만명의 주방위군을 무장시켜 원정군에 합류시켜야 하는 상황이 되자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없었습니다.13) 당장 쿠바 침공 부터 미육군이 당초 예상한 규모를 훨씬 넘어서는 병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주방위군 및 지원병을 동원해야 했으며 이것은 장비와 물자조달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게 됩니다. 극단적인 예를 하나 들면 켄터키 주방위군 소속의 한 연대는 집결지로 지정된 치카마우가에 도착했을때 위스키는 잔뜩 챙겨왔지만 소총은 단 한정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1개사단의 절반에 해당되는 2개연대가 무장이라곤 전혀 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당장 연방군이 가진 물자를 모조리 털어서 지원병들을 장비시켜야 했고 이것은 정부가 계약한 업체들이 쉽게 공급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14) 군수국Quartermaster Department과 병기국Ordnance Department은 4월 20일이 넘어서야 본격적으로 군수물자를 발주하였습니다. 병기국은 4월 30일까지 5만3천정의 크랙-요르겐슨Krag-Jörgensen소총과 1만5천정의 카빈을 구할 수 있었는데 20만에 육박하는 주방위군이 소집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이게 턱없이 모자란 수준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15) 이런 상황에서 급하게 장비를 조달하다 보니 문제가 속출했습니다. 병기국이 윈체스터사에 1만정의 소총을 먼저 주문했다가 이것들이 육군이 요구한 성능기준에 미달해 20만달러를 허공에 날린 일도 있었습니다.16) 스프링필드 조병창은 근로자를 6백명에서 10시간 2교대 1,800명으로 늘렸고 소총 생산은 3월 중순 하루 120정에서 8월 중순에는 하루 363정으로 늘어납니다.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총은 부족했기 때문에 주방위군과 지원병으로 구성된 부대는 초기에 흑색화약을 사용하는 구식 스프링필드 소총을 장비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전쟁 발발 당시 26만정 가까운 재고가 있었다고 하는군요.18)
다 른 모든 병과와 마찬가지로 포병도 준비가 매우 부실했습니다. 1896년 당시 미육군은 야전포병의 표준장비인 3.2인치 야포를 150문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1898년 전쟁이 발발하자 14개의 정규군 포병 포대는 포대당 6문의 편제를 갖출 수 있었으나 지원병으로 새로 편성된 포대는 포대당 4문의 편제를 갖춰야 했습니다.19)
또한 무연화약의 생산도 문제였습니다. 이것 또한 평시 상비군의 규모가 적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였습니다. 민간기업들은 민수용으로 주로 흑색화약을 생산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이 닥치고서 군대의 발주에 의해 황급히 시설을 전환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전시동원이 시작될 당시 민간 기업중 무연화약 생산능력을 갖춘 곳은 세곳 뿐이었습니다. 이때문에 무연화약의 배분은 해군의 함포와 육군의 크랙-요르겐슨 소총 탄환에 최우선적으로 할당되었고 해안포와 야전포병에는 임시변통으로 흑색화약이 보급되었습니다. 야전포병에 대한 무연화약 구입은 5월이 되어서야 시작되었고 전쟁 내내 무연화약 보급은 부족했습니다.20)
그 밖의 군장류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부족한 재고량을 민간기업의 생산능력으로 보충하려 했으나 위에서 언급한 무연화약과 마찬가지로 민간기업들은 생산해 본 경험이 없는 군수물자를 생산하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실제 생산된 것들도 조악한 품질이 많았던 모양입니다.21) 탄입대 같은 것은 지금 우리의 기준으로 본다면 꽤 단순한 물건인데 이런 것 조차도 당시 미육군의 품질 기준을 통과하는데 꽤 어려움을 겪었던 모양이더군요.

미서전쟁 기간 중 미국의 전시동원을 보면 아무리 방대한 산업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이 바로 군수물자 생산능력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차대전 당시 미국은 방대한 동원력을 보여주었지만 거기에는 미서전쟁과 1차대전을 거치면서 축적된 경험과 전간기 동원을 위한 많은 연구가 바탕에 깔려있었습니다. 남북전쟁 이후 30년이 지난뒤 갑자기 전쟁에 뛰어든 미서전쟁기의 미국은 그와는 동떨어진 존재였습니다. 군대를 어떻게 유지하고 조직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개념도 부족했고 민간부문의 경제력을 효율적으로 동원하는 능력도 부족했습니다. 위에서 열거한 몇가지 극단적인 사례처럼 경험부족으로 인한 심각한 비효율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저런 시행착오를 극복하면서 전쟁에 승리할 수 있었고 이런 경험이 조금씩 쌓여가면서 마침내 2차대전 시기에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방대한 전시동원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1) Jerry Cooper, The Rise of the National Guard : The Evolution of the American Militia, 1865-1920, (University of Nebraska Press, 1997), p.97
2) Michael D. Doubler, Civilian in Peace, Soldier in War : The Army National Guard, 1636-2000, (University Press of Kansas, 2003), p.129
3) Graham A. Cosmas, An Army for Empire : The United States Army in the Spanish-American War, (Texas A&M University Press, 1998), pp.6~7
4) Jerry Cooper, Ibid., pp.99~100
5) Jerry Cooper, Ibid., pp.102~103
6) Graham A. Cosmas, Ibid., p.86
7) Jerry Cooper, Ibid., pp.97~98; Graham A. Cosmas, Ibid.,  pp.82~89
8) “The Dodge Commission Assesses the Work of the Quartermaster Department in the War with Spain”, United States Army Logistics 1775~1992. Vol.2, (CMH, US Army, 1997), p.336
9) “The Dodge Commission Assesses the Work of the Quartermaster Department in the War with Spain”, United States Army Logistics 1775~1992. Vol.2, (CMH, US Army, 1997), pp.337~338
10) “Official Allowances for Supplies, Equipment, and Transprot, 1898”,  United States Army Logistics 1775~1992. Vol.2, (CMH, US Army, 1997), p.346
11) Graham A. Cosmas, Ibid.,  p.151
12) “Official Allowances for Supplies, Equipment, and Transprot, 1898”,  United States Army Logistics 1775~1992. Vol.2, (CMH, US Army, 1997), p.346
13) Graham A. Cosmas, Ibid.,  pp.82~84
14) Graham A. Cosmas, Ibid.,  p.124
15) Graham A. Cosmas, Ibid.,  p.148
16) Graham A. Cosmas, Ibid.,  p.137
17) Graham A. Cosmas, Ibid.,  p.149
18) Graham A. Cosmas, Ibid.,  p.154
19) Janice E. McKenny, The Organizational History of Field Artillery, 1775~2003, (CMH, US Army, 2007), pp.85~88;  Graham A. Cosmas, Ibid.,  p.152
20) Graham A. Cosmas, Ibid.,  pp.152~153
21) Graham A. Cosmas, Ibid.,  pp.156~157

2011년 6월 6일 월요일

2차대전 당시 미국의 전차 무용론

전차가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이래 전차의 위치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어왔습니다. 일반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사례로는 제4차 중동전쟁이 가져온 충격이 있겠지요. 제4차 중동전쟁 초기 이스라엘군의 기갑부대가 이집트군의 대전차 전력에 쓴맛을 보자 전차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물론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 방어력과 기동력이 획기적으로 향상된 일련의 제3세대 전차들이 등장하면서 이런 목소리들이 다시 사그러들긴 했지만 말입니다.

2차대전 당시에도 이와 유사한 전차무용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일부 있었던 것 같습니다. Military Affairs 1944년 여름호에 실린 빅맨(Fred K. Vigman)의 "Eclipse of the Tank"라는 글은 대전차화력의 강화로 전장에서 전차의 중요성이 감소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빅맨의 이 글은 미국이 유럽전선에서 본격적인 대규모 지상전을 펼치기 이전의 경험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이 글의 핵심은 2차대전 초반에 전차가 잠시 맹활약하면서 전차의 시대가 오는 듯 했지만 결국 대전차 화력의 증대로 전차라는 무기체계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 입니다. 글에서는 몇몇 실전 사례들을 예시로 들고 있는데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뭔가 좀 이상하게 보입니다.

붉은 군대는 나치의 우세한 기갑전력에 대해 다른 방향에서 대응책을 찾았다. 러시아의 언론들은 전쟁 첫해, 그리고 몇 차례의 작은 승리를 거둔 뒤 여러차례 포병을 “전장의 신”으로 불렀으며 대전차포와 일반 야포를 핵심적인 대전차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포병으로 전차를 상대하여 저지하고, 격퇴할 수 있다는 점이 모스크바 전투에서 드러났다. (독일군은) 1941년 12월, 모스크바에 가장 많은 전차와 기타 기갑장비를 투입했던 것으로 보인다. 붉은 군대는 똑같은 수단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나치가 열등한 수단으로 간주한 포병에 크게 의존했다. 베르너(Max Werner)가 지적한 바와 같이 그 결과 나치의 기갑군은 “무력화 되었으며 글자 그대로 고철더미가 되고 말았다.”

1942년에 들어와 소련군이 독일군을 보다 잘 막아내고 무찌를 수 있게 된 원인은 대전차전을 위해 개발된 많은 수의 향상된 기동력과 향상된 성능을 가진 신형 야포와 같은 포병을 강화하기 위한 큰 노력을 기울인 데 있다.

1942년 11월 19일 시작된 소련의 스탈린그라드 공세에서는 나중에 원수로 진급한 보로노프(Никола́й Н. Во́ронов) 대장의 지휘에 따른 강화된 포병의 대규모 운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1)

물론 전쟁 중이기 때문에 활용 가능한 자료가 극히 제한되기는 했겠지만 저자는 소련이 1942년에 전차군을 편성하는 등 기갑전력의 강화에 주력했다는 점은 무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스탈린그라드 공세에서 소련 기갑부대의 공헌에 관심을 두지 않는 점은 꽤 놀라울 정도 입니다.

이런 태도는 다른 전역을 바라보든 시각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비록 나치의 전차 및 급강하폭격기가 영국의 아프리카 주둔군에 초반의 패배를 안기기는 했지만 영국군이 중근동 전역에서 얻은 전투 경험은 포병을 중시하고 전차의 활용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1942년 6월 13일, 영국군의 1개 여단이 독일군 88mm의 매복에 걸려 난타당한 기갑 부대의 참패 이후 전차를 앞세우는 전술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 일어났다. 주포의 양각이 제한적인 전차에 대해 야포의 우세함이 뚜렷하다는 것은 거의 옳은 주장으로 보인다.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을 분쇄한 몽고메리의 대규모 반격은 (1차대전 당시의 전투방식과 같은) 유례 없는 중포의 대량 운용과 전차를 돌파 수단으로 사용하는 대신 지원용도로 사용했다는 것이 특징이다.2)

만약 영국군이나 미군이 1944년 이전에 동부전선과 같은 규모의 독일군 기갑전력과 맞서야 했다면 이런 판단착오를 하지 않았겠지만 북아프리카 전선에 투입된 독일군의 기갑전력은 군단급에 불과했습니다. 1942년 하반기 이후로는 독일군의 소규모 기갑전력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두게 되었으니 기갑전투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은 당연한 일 일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전차 무용론은 미국에서 상당히 근거 있는 것으로 받아 들여졌던 것 같습니다. 1943년 4월 21일 뉴욕타임즈에는 이런 기사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영국 포병 병과는 이번 전쟁 기간 중 (기존의) 우세를 되찾을 수 있는 만족스러운 신형 전차가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육상의 공격 작전에 있어 포병은 기갑에 비해 이미 압도적인 우위를 갖추었다고 보고 있다.3)

언론 뿐만 아니라 미군 고위층 또한 북아프리카 전역의 경험을 통해  기갑전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게 됐습니다. 1942년 12월 14일 부터 1943년 1월 25일 까지 전선을 시찰하고 일선 기갑부대의 실태를 조사한 디버스(Jacob L. Devers) 장군이 내린 결론이란게 “M4는 전장에서 가장 우수한 전차다”라는 정도였다니 말입니다.4)  영국군의 전투경험은 미군에게 매우 악영향을 끼쳤는데 맥네어 장군은 북아프리카 전투 이후 대전차대대의 상당수를 견인식 3인치포로 전환하라는 명령을 내리기 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그 결과 노르망디 전역이 시작될 무렵 영국에 배치된 미군의 30개 대전차 대대중 11개 대대가 견인식 대전차포를 장비했다고 하지요.5)

다시 빅맨의 글로 돌아가 보지요. 빅맨은 이 글에서 재미있는 결론을 내립니다.

기동력 자체는 타격력이라고 할 수 없다. 기동력의 가치는 필요한 때와 장소에 화력을 기동력 있게 제공해 줄 수 있는데 있다. 그러나 사용되는 것은 기동력이 아닌 화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차의 기동력과 장갑에 중점을 둔다면 화력이 애매해 지게 된다. 전차의 화력이란 전차가 본질적으로 기관총에 대한 대응병기라는 전제조건에 입각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차의 장갑, 기동력 그리고 화력은 1차대전 당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나타난 밀집된 소총과 기관총 화력을 극복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차의 문제점은 대전차 무기를 동원해 전차에 맞서기 전 까지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전차는 기동력을 갖추고 있지만 대전차 병기의 발전에 따라 점차 전장에서 가장 크고 눈에 띄는 표적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차와 야포의 대결에서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야포가 우세하다.6)

이 글이 쓰여질 무렵 미군은 아직 프랑스에 발을 딛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글이 발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전차포의 우세를 점쳤던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1) Fred K. Vigman, “Eclipse of the Tank”, Military Affairs, Vol. 8, No. 2 (Summer, 1944), p.103
2) Fred K. Vigman, ibid, p.103
3) “Germany's Gamble on Tank And Dive-Bomber Held Lost” New York Times(1943. 4. 21)
4) David E. Johnson, Fast Tanks and Heavy Bombers : Innovation in the U. S. Army 1917-1945(Cornell University, 1998), p.190
5) Steve Zaloga, Armored Thunderbolt : The U.S. Army Sherman in World War II, (Stackpole, 2008), pp.72~75
6) Fred K. Vigman, ibid, p.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