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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25일 수요일

일본계 미국인 병사의 한국전쟁 참전기 - Up and Down, In and Around North and South Korea

일본계 미국인으로 한국전쟁 당시 미 제24보병사단에 소속되어 포로 심문 임무를 수행했던 케네스 타시로(Kenneth Aijiro Tashiro)의 일기를 정리한 Up and Down, In and Around North and South Korea를 읽었습니다. 일본계 미국인의 기록이고 또 정보계열에서 복무했다고 하니 흥미가 당겨서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기대했던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1950년 7월 부터 10월 말 까지의 기록을 보면 단순히 그날 잡힌 포로의 숫자, 심문한 포로의 숫자만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을 뿐 입니다. 북한군 포로에 대한 내용 보다는 오히려 그날 먹은 음식에 대한 내용이 조금 더 상세한 듯 합니다. 1950년 7월 26일 일기에는 타시로가 처음 한국산 맥주를 마시고 악평한 내용이 실려있는데 맥주가 북한군 포로 보다 더 깊은 인상을 준 듯 합니다. 물론 이렇게 일상적인 내용만 자세한 아닙니다. 미 제24사단이 참패한 대전전투 시기의 일기는 매우 자세하게 적혀있습니다. 말단 병사였던 타시로도 패전의 충격을 강하게 받았는지 상세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대전에서 간신히 탈출해 숨을 돌리게 된 과수원에 사과와 복숭아가 가득했다는 내용에서는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느껴집니다. 

전쟁 초기에 일어났던 비극적인 일화도 눈에 띕니다. 7월 31일 일기에서는 한국 경찰이 북한 말씨를 쓰는 사람을 간첩으로 의심해 총으로 쏜 뒤 칼로 찌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 참상을 보다 못한 미군 병사가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이 사람을 사살했다고 합니다. 

타시로의 일기에서 가장 많은 내용은 역시 전쟁 중의 일상, 특히 먹는 문제에 관한 겁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때는 A레이션과 C레이션만 보급받았다고 무미건조하게 적고 있지만 왠지 짜증이 느껴집니다. 반면 취사차량이 추진되어 제대로 된 따듯한 식사를 먹게 되었다는 내용에서는 즐거움이 느껴집니다. 일본계 미국인이어서 그런지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쌀밥을 먹으려 하는 걸 보면 조금 짠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1950년 9월 18일 일기를 보면 미 제8군사령관 워커 중장이 제24사단을 방문하자 뭔가 일어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식사로 쌀밥과 데리야끼를 먹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중요한 작전이 있을것 같으니 일부러 쌀밥을 챙겨먹었다는 느낌을 받지요. 9월 28일 일기에는 북진하던 중 북한군에게서 쌀을 노획해서 밥을 지어먹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전투식량만 계속 먹었으니 굉장히 밥이 먹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중공군이 참전한 이후에는 일기의 분위기도 바뀝니다. 일기를 읽으면서 포로 심문을 담당한 병사가 포로 심문에 관해 자세한 기록을 남기지 않아서 조금 김이 샜는데 중공군 참전 이후에는 조금 바뀝니다. 1950년 11월 5일 일기에는 투항한 중공군 포로가 진술한 비교적 정확한 전투서열 정보와 병력 규모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951년 1월 1일 일기에도 중공군의 전투서열과 목표 같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중공군 참전이 준 충격이 타시로 같은 사병에게도 큰 영향을 준거라고 볼 수 있겠죠. 유엔군이 반격을 시작한 이후에는 중공군 포로에 대한 내용도 북한군과 비슷하게 몇명이 잡혀왔고 몇명을 심문했다 정도로 간략해 집니다. 이건 충격에서 벗어났다는걸 보여주는 듯 하더군요. 

전투 병과가 아니라 통역이라는 특수한 보직을 담당하고 있으며 일본계라는 문화적 배경 때문에 굉장히 흥미로운 자료입니다. 처음에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나쁘지는 않네요.

2023년 7월 10일 월요일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1951년) 3월 서울 수복할 때는 당시에 중공군에 대하여 VT신관을 사용하여 TOT 사격을 했는데 대부분 목이나 손발이 잘렸고 하도 시체가 많아서 미군 도저로 밀어 붙이기도 했다. 지금의 한양 CC지역이 아마도 그래서 나무가 잘 자랄 것이다."


고기환 예비역 대령(1951년 3월 당시 제27포병대대 소속) 구술

신기철·하보철 편, 『포병과 6·25전쟁 증언록』, (계룡, 육군군사연구소, 2012), 39쪽.


전쟁을 직접 경험한 분들의 농담 센스는 으스스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2023년 3월 23일 목요일

용문산 전투에서 한국군 제6사단이 거둔 전과

 

용문산 전투는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이 중국군을 상대로 거둔 대표적인 승리 중 손에 꼽히는 전투입니다. 이 전투에서 한국군 제6사단은 중국군을 상대로 상당히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한국에서 간행한 용문산 전투 관련 문헌들은 제6사단이 거둔 전과를 실제보다 적게평가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문헌이 1983년에 간행된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의 『용문산 전투』입니다. 이 책에서는 국군 제6사단의 전투상보를 인용하여 1951519일부터 530일까지 중공군의 장비 및 물자 손실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1-1.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의 『용문산 전투』에 기록된 중공군 장비 및 물자 손실

종 류

수 량

소 총

1,900

기관단총

482

자동소총

124

경기관총

189

중기관총

로켓포

2

박격포

71

산 포

9

직사포

4

소화기탄약

트럭 1+15상자 분

포 탄

39상자

트 럭

4

군 마

349

[출처: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용문산 전투』, 1983, 226쪽]

 

 『용문산 전투』에 실린 중공군의 장비 및 물자 손실 내역은 전투상보에 실린 내역을 일부만 올린 것 입니다. 제6보병사단의 전투상보에 정리된 중공군의 손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표1-2. 제6보병사단 전투상보에 기록된 중공군 장비 및 물자 노획 내역

 

2연대

7연대

19연대

본부 및 직할대

합계

3/4톤 트럭

1

 

 

 

1

트럭

3

 

 

 

3

지프

1

 

 

 

1

야포

4

 

1

4

8

산포

 

4

5

 

9

직사포

 

 

4

 

4

기관포

 

 

5

 

6

3.5인치 바주카포

2

 

 

 

2

기타 대포

 

 

 

1

1

120mm 박격포

1

 

 

3

4

105mm 박격포

 

 

4

 

4

81mm 박격포

1

2

14

 

17

60mm 박격포

8

3

35

 

46

고사기관총

 

 

 

1

1

ZB vz. 26

24

 

 

 

24

중기관총

2

 

79

3

84

경기관총

14

8

151

16

189

기관단총

440

17

26

1

484

BAR

 

1

62

61

124

PPSh41

28

64

108

4

204

소련제 소총

53

68

342

45

508

38식 소총

 

3

 

 

3

M1 소총

 

3

19

 

22

카빈 소총

 

4

7

 

11

기타 소총

372

 

782

 

1,154

수류탄

9,140

2,466

205

122

11,933

무전기

3

 

1

2

6

전화기

4

1

3

 

8

군마

50

23

216

60

349

피복

트럭 4대 분량

 

 

 

트럭 4대 분량

식량

트럭 50대 분량

 

 

 

트럭 50대 분량

[출처: 육군본부, 『한국전쟁사료 53 제6보병사단 전투상보』, 1987, 948쪽]


그런데 미군이 기록한 내용을 보면 제6보병사단의 전투상보에 기록된 것 보다 노획물자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좀 더 자료를 검토해 봐야 알 수 있겠습니다만, 한국 쪽에서 중공군의 손실을 실제보다 다소 적게 집계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예전에 다른 곳에 발표한 글에서 이 문제를 몇 번 지적한 바 있습니다. 용문산 전투 당시 제6보병사단이 배속되었던 미 제9군단의 19516월 지휘보고서에 집계된 통계를 보면 한국군 제6보병사단의 전과가 훨씬 더 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미 제9군단의 19516월 지휘보고서에 기록된 중공군 장비 및 물자 노획 내역

종 류

한국 6사단

한국 2사단

24사단

7사단

소 총

3,966

1,564

1,062

기관단총

955

136

6

212

자동소총

193

7

3

5

경기관총

364

14

3

71

중기관총

203

11

31

대공기관총

6

로켓포

10

4

무반동포

10

박격포

154

61

8

야 포

58

19

20

수류탄

12,670

3,233

3

2,833

소화기탄약

104,000

2,800

15,000

118,250

박격포탄

460

32

4,220

야포탄

50

28

트 럭

19

14

50

군 마

318

3

48

무전기

13

3

7

유선전화기

19

우마차

30

19

식 량

트럭 50대분

트럭 1대분

[출처: HQ IX Corps, Annex 2 to Periodic Intelligence Report Nr.248(June 1, 1951), Supporting Documents to Command Report June 1951, Book II Vol 2, RG407 Entry NM3-429 Box1810, p.5]

 

이 표를 보면 한국군 제6사단이 미군 부대들을 압도하는 전과를 거두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원인은 당연히 용문산 전투 당시 중공군 주력을 맞아 싸우면서 추격전을 전개했기 때문입니다. 중공군이 철수하면서 병력은 수습할 수 있었어도 상당한 양의 장비를 버리고 도주했음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 표에서 주목할 부분은 한국군 제6사단이 노획한 야포의 숫자입니다. 무려 58문의 야포를 노획했습니다. 중공군 보병사단은 당시 편제상 12문의 산포나 곡사포를 보유하고 있었으니 아무리 적게 잡아도 한국군 6사단은 중공군 5개사단이 장비할 수 있는 물량을 노획한 셈 입니다. 좀 단순하게 이야기 하면 최소한 중공군 1개 군의 포병은 무력화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측 기록인 제6사단의 전투 상보 보다 미 제9군단의 지휘보고서에서 한국군의 전과를 더 높이 평가하는 점은 꽤 흥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