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27일 월요일

"죽 쒀서 개 준다"

한국에는  『나치의 병사들』로 잘 알려진 독일 역사학자 죈케 나이첼(Sönke Neitzel)이 해제를 달아 간행한 사료집 Abgehört- Deutsche Generäle in britischer Kriegsgefangenschaft 1942-1945을 읽다보니 씁슬한 웃음이 나오는 내용이 간혹 있습니다. 이 사료집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에 포로가 된 독일 고급 장교들의 사적인 대화를 감청한 녹취록들을 정리한 것으로 영어판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웃겼던 부분은 1944년 서부전역에서 서부기갑집단, 제7군 사령관을 역임한 에버바흐(Heinrich Eberbach) 기갑대장이 제12SS기갑사단장 쿠르트 마이어(Kurt Meyer)와 대화를 나누던 중 한 발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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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바흐 : 잘 보면 러시아군은 바르샤바 부터는 아주 훌륭한 자동차도로를 이용할 수 있다는걸 알 수 있지. 우리가 만든 도로말이야. 바르샤바-포젠-베를린으로 이어지는. 설사 해빙기가 닥치더라도 보급이 예전 처럼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 이 동부 도로는 우리가 러시아를 침공할때에도 이미 상태가 좋았어. 차선도 여러개였지. 그리고 나중에는 (폴란드) 총독부에서 매우 큰 노력을 기울여서 도로를 개선했어. 이제 러시아군은 보급을 하는데 더이상 어려움이 없을 거야. 소련군을 오데르강에서 오래 저지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군.

Wenn man sich anguckt, von Warschau hat der Russe diese wunderbare Autostrasse, die wir gebaut haben : Warschau-Posen-Berlin. Der Nachschub wird also für die nicht mehr die gross Schwierigkeit spielen, wie früher, selbst dann nicht, wenn Tauwetter eintritt. Denn diese Aufmarchstrassen im Osten hatten wir seinerzeit für den Angriff auf Russland schon ausgezeichnet ausgebaut, mehrgleisig - sind späterhin noch weiterhin ausgebaut worden, im General Gouvernement, wo ja sehr viel für Strassen getan worden ist. Ich bin nicht einmal sicher, dass es gelingen wird, ihn an der Oder Iange aufzuhalten.

 Sönke Neitzel, Abgehört- Deutsche Generäle in britischer Kriegsgefangenschaft 1942-1945, (Berlin: List, 2007), p.408.


에버바흐는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기 위해 건설한 도로가 독일의 멸망을 재촉하는 수단이 된 역설적인 상황을 씁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이러니함이 제3자의 입장에서는 꽤 웃깁니다.

2022년 6월 18일 토요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러난 러시아 공군의 작전 수행 능력에 대한 비판

 듀푸이 연구소의 블로그에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한심한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러시아공군에 관한 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필자는 미해병대 출신의 군사연구자 윌리엄 세이어즈(William Sayers)인데 이 양반이 러시아 공군의 문제점을 덤덤하게 지적하니까 오히려 더 웃깁니다. 러시아 공군의 무능력함에 대해서는 RUSI의 저스틴 브롱크도 비슷한 지적을 했습니다. 

Is the Russian Air Force Actually Incapable of Complex Air Operations? | Royal United Services Institute (rusi.org)

세이어즈의 글은 전문적인 연구가 아닌 칼럼이긴 하지만 해당 분야에 수십년간 종사한 전문가의 견해인 만큼 참고할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사실 글 자체가 웃겨서 번역을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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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S View of Air Superiority | Mystics & Statistics (dupuyinstitute.org)


러시아 공군이 제공권을 보는 관점

윌리엄 세이어즈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됐을때  TV에서는 러시아 공군이 서방의 공군 처럼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하지만 러시아 공군은 언론인들이 미국 공군의 전쟁 수행 방식을 보면서 예측했던 대로 작전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언론인들은 의문을 제기했다. "러시아 공군은 어디 있는거야?" 그런데 이런 언론 보도들은 심각한 오해에 기반하고 있다.

러시아는 한때 "대륙의 강국"으로 불렸다. 이 나라는 오직 지상군에 집중하고 있을뿐이라 공군과 해군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다. 그래서 러시아 공군은 항상 러시아 육군에 종속된 부산물 정도에 불과했다. 러시아 공군은 육군에 짓눌려 단순한 장거리 포병 이상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독립된 교리를 발전시키지 못했다. 만약 러시아 공군이 우리 공군과 같이 발전해왔다면 강력한 병종이 됐을 것이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라면 러시아는 공군력으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비전을 가질 수 없다. 그리고 러시아 공군에 대해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 공군의 주 임무는 미국이 전장항공차단(Battlfield Air Interdiction)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임무는 지상군과의 협동 작전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 전선 후방을 타격하는 임무이다.(접촉선에서 30~70km 후방) 러시아 공군은 미국의 개념과 같은 근접항공지원(Close Air Support)를 하지 않는다. 러시아 공군은 근접항공지원을 잘 하지 못한다. 냉전때도 그랬고 제2차 세계대전 때도 마찬가지로 못했다. 1999년 그로즈니 전투 이후 러시아군은 공군의 레파토리에 임무를 하나 더 추가했다. 적의 저항 의지를 분쇄하기 위해 민간 시설에 대량의 피해를 입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이 짓을 하는걸 보고 있지 않은가.

러시아 공군은 미국에서 '제공권' 이라고 부르는 것을 달성할 생각도 없다. 러시아에서 우군 상공의 공역 통제 임무를 수행하는 주력은 지대공 미사일 부대다. 전투기 부대는 지대공 미사일 부대가 담당하지 못하는 빈틈을 채우고 보조하는 역할이다. 러시아의 전투기 부대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무를 뿐이다. 설사 러시아 공군이 서방의 개념과 같은 제공권을 장악한다 하더라도 그 다음에는 제공권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모를 것이다. 러시아 공군은 제공권이 뭔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관심도 없다. 그래서 러시아 군은 이동식 방공차량을 대량으로 운용한다. 적의 공군이 러시아 지상군에 다가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러시아가 원하는건 이게 전부다.

냉전기 소련은 현재 러시아가 처한 것과 완전히 다른 상황에 처해있었다. 나토는 대량의 핵무기를 보유했다. 소련군 참모대학은 이런 것들을 가르쳤다.

          항공군은 전선군의 공세작전에서 다음과 같은 임무를 수행한다.

          -핵 타격의 초기 단계에 참여한다

          -아군 부대와 보급 시설을 적의 공습으로 부터 보호한다

          -적의 항공 전력을 비행장과 공중, 그리고 후방 지역에서 격파한다

          -적의 핵 미사일을 찾아서 파괴한다

          -제병협동군과 전차군의 작전을 지원한다

          -적의 예비대를 격파하고 제압한다

          -항공 정찰을 수행한다

          -강습 상륙작전과 공정작전을 지원한다

이것들은 전쟁을 수행할 때 핵무기를 사용하고, 나토의 공군은 소련군에 대한 핵 타격을 수행하지 못할 수준으로 격파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또 나토의 공군력에 대한 타격이 3순위의 임무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70년대에 소련군 총참모부는 나토군의 전투력 중 절반이 공군력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토군의 항공 우세를 상쇄하기 위한 항공 작전을 만들었다. 이론은 그럴싸 했다. 그리고 아군의 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혁신적인 무기들도 만들었다. 하지만 소련 공군은 나토 공군을 실전에서 무찌를 수 있는 기량은 연마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소련 공군은 폭격기들을 목표 지점 까지 호위하는데 적용할 교리나 전술을 만들지 못했다. 그 대신 전투기들을 유도하기 위해서 취약한 지상관제소에 의존하는 짓을 계속했다. 나토군의 전술과 역량에 대응하기에는 답이 없는 수준이었다. 냉전이 끝나고 핵무기의 위협이 크게 감소하자 러시아 공군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 공군에 가까운 교리로 돌아갔다.

언론에서는 "제공권"을 적 공군이 죽은 벌레 처럼 지상에 바싹 엎드려 있게 만드는 것으로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30년 전쯤의 일을 고대사 처럼 생각하기는 하지만, Desert Storm(1991), Deliberate Force(1995), Allied Force(1999), Enduring Freedom(2001), Iraqi Freedom(2003), Odessey Dawn(2011) 등의 작전은 대중도 알고 있다. 이러한 작전에서 미국과 연합군의 공군은 적군을 압도했다. 미군과 연합군을 공중 우세를 달성한 상태에서 전쟁을 시작했다. 바로 언론에 나오는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그 상황이다. 그리고 냉전 시기에 그랬던 것 처럼 (러시아 공군이 아니라) 러시아군 총참모부가 적 공군의 실질적이고 결정적인 위협을 마주한다면, 러시아 총참모부의 목표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교리 개념은 '파괴'다. '파괴'라는 개념은 포병 용어다. "파괴란 적 공군을 완전히 섬멸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적 공군이 조직적인 저항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파괴하려면 적 공군기의 50~60%를 격파해야 한다." 이건 마치 포병 교범에서 인용한 문구 같다. 사실 포병 교범에도 이런 말이 나온다.

러시아 공군은 우수한 항공기와 유도폭탄, 미사일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무기들을 적절하게 활용하는데 필요한 전술과 교리, 정보 및 표적 선정 수단이 없다. 서방에서는 유도무기로 갱도를 폭격하고 고층 건물에서 하중을 받는 부분을 타격해서 건물을 붕괴시킨다. 이렇게 해서 적국의 경제를 붕괴시키거나 국가 전체의 통치 체계를 무너트린다. 미국이 사용하는 유도무기는 1990년대에도 정확도가 높았다. 그래서 콘트리트를 채워 넣은 훈련용 폭탄에 유도 키트를 달아 적군의 대공포를 개별적으로 파괴하면서 부수적인 피해를 방지할 수 있었다. 이후로도 부수적 피해라는 위험 없이 목표물을 파괴하기 위해 새로운 유도무기들이 배치됐다. 러시아군은 유도무기를 일반 폭탄 보다 정확도가 높은 장난감 정도로 치부한다. 즉 임무를 수행하는데 많은 폭탄을 사용하지 않아 군수보급의 측면에서 유리한 점에 주목할 뿐이다.

나는 1980년대에 소련의 군사항공 분야를 분석하는 일을 시작했다. 당시 소련 공군은 Su-27과 MiG-29 같은 4세대 전투기를 도입하고 있었고 이것들은 F-15, F-16/F-18에 비교할 만 했다. 이 기종들은 소련 공군이 과거에 사용하던 전투기 보다 훨씬 우수해서 우리 미국 공군과 같은 전술을 채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소련 공군이 신형 전투기의 성능을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전술을 개발하지 않는지 열심히 관찰했다. 하지만 소련공군은 새로운 전술을 개발하지 않았다. 40년이 지난 지금 러시아 공군은 여전히 과거와 같은 전술을 사용하고 있다.

조금 더 지적을 하자면, 러시아군은 우리 미군이 하는 방식과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 공군의 조종사 양성 과정을 보면 이 점을 아주 잘 알 수 있다. 미국 공군과 다른 서방 국가의 공군은 조종사를 교육할 때 가능한 최고의 기준에 맞춰 훈련을 실시한다. 하지만 러시아 공군의 조종사 양성 기준은 훨씬 낮다. 러시아 공군의 조종사 양성 기준은 그냥 우리 공군과 같은 높은 수준이 아닌 것이다. 왜 그런가? 가설을 하나 제시하자면 러시아 공군은 우리와 같이 높은 수준의 조종사를 양성할 능력이 없어 가능한 수준 내에서 훈련을 시키는 듯 하다. 그런데 다른 가능성도 있다. 러시아 공군은 전투 환경에서는 인간의 역량이 급격히 떨어지는 경향이 있어 조종사들에게 큰 기대를 하는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므로 조종사들에게 많은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조종사의 기준을 실제 교전 상황에서 조종사들이 달성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현실적인 수준으로 낮게 잡는것이다.

러시아 공군의 선천적인 보수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하나 더 있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 본토 방공전을 다룬 헐리우드 영화들을 보면 용맹한 연합군 지휘관들이 상급 사령부로부터 다음 작전에는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라"는 명령을 받는다. (영화 Twelve O'Clock High의 주인공) 새비지 장군은 부대의 폭격기 18대 전부를 폭격 임무에 투입할 수 있도록 정비반원들에게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이도록 독려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냉전 시기 소련군 총참모부는 항공군들이 필요한 때에 각 연대가 일정한 소티를 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초기 단계에서는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는 나토와의 전쟁 계획이 그러했다. 항공연대의 소티 수는 연대가 수행해야 할 임무에 맞춰 정해졌다. 일반적인 전투기연대나 전투폭격기연대는 36대의 항공기를 보유했고, 연대의 항공기 1대가 1소티를 출격한다면 연대의 소티 수는 36소티가 된다. 그런데 정비 문제라던가, 작전상의 또는 전투 손실이 발생해 연대가 보유한 항공기 36대 이하로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가? 소련 공군은 항공연대에 비행기를 더 늘렸다. 전투기연대와 전투폭격기연대의 경우 9대를 더 추가했다. 이렇게 비행기 숫자를 더 늘려서 항공연대들이 항상 연대당 36소티를 출격할 수 있도록 했다. 비용이 많이 들지만 연대에 할당된 소티를 채울 수 있는 간편한 방법이었다.

이런 점들은 러시아인들은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을 하고 종종 우리가 보기엔 이상한 방법으로 문제에 접근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러시아인들은 러시아 공군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우리의 선배들은 한국전쟁 당시 중국과 소련의 안전한 기지에서 출격하는 소련 공군 조종사들이 모는 항공기와 싸웠다.(소련은 당시 이를 비밀로 했지만 요즘은 아주 당당하게 인정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우리 공군은 소련이 만들고 교육한 전술, 그리고 방공망을 상대해야 했다. 그래서 요즘 푸틴이 자신의 업보를 치르는 걸 구경하는게 꽤 재미있다.

2022년 6월 5일 일요일

연합국 정보기구의 독일 기갑부대에 대한 평가

 제2차세계대전 중 독일의 정보기관들은 전략적으로 많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정보전을 다루는 많은 저작들은 독일의 수많은 실패사례와 연합국의 성공사례들을 비교하고 있지요. 전략적인 면에서 제2차대전 시기 독일의 정보기관들이 실패한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일 입니다. 그런데 전략적인 성공사례들만 놓고 보면 연합국 정보기관들의 한계를 놓치는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작전차원의 정보전에서는 어땠을까요? 

스웨덴의 군사사가 세테를링(Niklas Zetterling)은 Normandy 1944 : German Military Organization, Combat Power and Organizational Effectiveness에서 이 문제를 간략하게 언급한 바 있습니다. 제2차대전 중 미국과 영국 정보기관은 무장친위대와 국방군 기갑사단의 전차연대 편제에 차이가 있다고 판단했고 전쟁이 끝날 때 까지도 이런 잘못된 평가를 유지했습니다. 예를들어 1945년 3월 15일 간행된 TM-E 30-451 Handbook on German Military Forces에서는 국방군 소속 기갑사단은 4호전차 52대와 판터 51대를 보유하고 있으나 무장친위대 기갑사단은 4호전차 64대와 판터 62대를 보유한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1) 물론 이건 잘못된 평가입니다. 


미군이 추정한 독일 국방군 기갑사단 편제표
TM-E 30-451 Handbook on German Military Forces, p.II-26

미군이 추정한 독일 무장친위대 기갑사단 편제표
TM-E 30-451 Handbook on German Military Forces, p.II-28

세테를링은 독일 사료를 근거로 미군이 추정한 이런 편제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지적합니다. 2) 독일 국방군과 무장친위대 기갑사단의 전차연대는 편제상 큰 차이가 존재하지 않고 편제상 전차 보유대수는 동일합니다. 물론 1944년 후반기 이후 정치적으로 친위대의 입지가 강화되면서 무장친위대의 기갑사단 편제를 정규군과 차별화 하려는 '시도'가 있기는 했습니다만 실현되지는 않았습니다.3) '최소한' 장비 보급 측면에서는 국방군과 무장친위대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는 점은 독일군에 관한 여러 연구가 지적하고 있습니다.

적군의 편제와 병력 규모를 파악하는건 매우 어려운 일 입니다. 정보기구들이 자주 실패하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전 서부전선의 독일군 기갑사단 배치와 전력을 파악하려던 연합국의 시도가 실패한 사실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미영 연합군은 상륙작전 직전까지도 노르망디에 배치된 독일 제21기갑사단의 전차 전력이 총 240대에 달하고 이중 상당수가 판터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무장친위대 제12기갑사단을 합치면 독일군이 총 540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4) 실제로는 독일 기갑사단 중 가장 전력이 약했던 제21기갑사단을 무장친위대 기갑사단 보다 높게 평가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제21기갑사단이 노르망디 상륙 직전인 1944년 6월 1일 보유한 전차를 보면 3호전차 6대, 4호전차 장포신형 98대, 4호전차 단포신형 6대, 프랑스제 S-35 40대, 호치키스 H-35 2대로 총 152대입니다.5) 이중 48대는 구식화된 독일제와 프랑스제 전차이니 연합군 전차를 상대로 유효한 전력이라곤 할 수 없습니다. 장포신 4호전차 98대가 실질적인 전력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전쟁에서 확보해야 하는 정보는 굉장히 방대합니다. 연합국의 정보기관은 준수한 활약을 했지만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는 못했습니다. 독일 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소련도 전쟁 말기 까지 독일군의 규모와 편제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고 평가하는데는 형편없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러시아 군사사가 발레리 자물린은 소련군이 쿠르스크 전투 당시 독일군 기갑사단의 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지적한 바 있지요.6) 연합국 정보기관이 작전 차원의 정보를 파악하는데 보여준 한계점은 사실 전쟁의 승패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기 때문에 종종 간과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한계점을 알아야 제2차세계대전 중 정보전의 양상에 대해 공정하게 평가를 할 수 있겠지요.


주석

1) TM-E 30-451 Handbook on German Military Forces, War Department, 1945, pp.II-26~II-28.

2) Niklas Zetterling, Normandy 1944 : German Military Organization, Combat Power and Organizational Effectiveness, casemate, 2019, pp.18~19

3) "SS Panz. u. SS Panz. Gren. Div"  SS Führungshauptamt Amt II Org.Abt.Ia/II, Tgb.Nr. 948/45 g.Kdos. (1945. 2. 14), H16/120 Zustandberichte Band 501(Gen Insp d Pz Tr/Org Abt.), RG242 T78 R617.

4) Marc Milner, Stopping the Panzers : The Untold Story of D-Day, University Press of Kansas, 2014, pp.90~91

5)  Zetterling, p.330.

6) Valeriy Zamulin, 'Prokhorovka: The Origins and Evolution of a Myth', The Journal of Slavic Military Studies, 25-4

2022년 6월 3일 금요일

Covert Legions : U.S. Army Intelligence in Germany, 1944-1949

 요즘 간행되는 미국 육군군사사연구소의 저작들을 보면 연구의 중점이 테러와의 전쟁과 냉전으로 옮겨간 것 같습니다. 사실 제2차세계대전은 워낙 많은 연구가 되어 있으니 혁신적인 연구가 나올 여지가 적지요. 미국 육군군사사연구소는 U.S. Army in the Cold War라는 제목의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유럽의 냉전을 중심으로 연구가 나오고 있지만 앞으로 아시아 지역의 냉전도 다루게 되겠지요. 올해 U.S. Army in the Cold War 시리즈로 꽤 흥미로운 책이 한 권 나왔습니다.

Covert Legions : U.S. Army Intelligence in Germany, 1944-1949

이 연구는 미육군의 독일 점령 초기 부터 냉전이 본격화되는 베를린 봉쇄에 이르기까지 미국 육군이 독일에서 수행한 정보 활동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연구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번째는 제2차세계대전 시기 미육군의 대독 정보활동을 다루는 부분 입니다. 두 번째는 냉전 초기 미육군의 정보활동 조직과 체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세번째는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미육군의 독일내 정보활동에 대한 분석입니다. 이 세번째 부분은 중요한 부분을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미육군의 전쟁범죄 조사활동과 독일의 탈나치화 정책 수행, 그리고 마지막으로 냉전 초기 독일내의 대소련 정보활동 등 입니다. 소련 관련 내용을 다루는 제9장과 제10장은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9장은 미육군의 정보기구와 독일 사민당의 협력관계를 다루고 있는데 이건 나중에 독일 총리가되는 빌리 브란트와 깊숙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빌리 브란트의 정치적 몰락을 가져오는 간첩 스캔들의 기원이 냉전 초기 대소련 정보활동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점을 보여주는게 재미있지요. 빌리 브란트가 미국의 정보원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은 밝혀진지 얼마 되지 않은 이야기 입니다. 빌리 브란트를 비롯해 독일연방공화국 초기 정치계의 거물들과 미국 정보기관과의 관계를 밝혀낸 점은 이 연구의 장점입니다. 연구의 마무리를 짓는 제10장은 베를린 봉쇄로 냉전이 격화되고 미육군의 정보활동 방향이 전환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적국 독일의 체제 변화에서 동맹 독일과의 협력 체계 구축으로 전환되는 과정이지요.

매우 재미있는 연구입니다. 특히 1945-1948년 시기 한국의 상황과 겹쳐 보이는 부분도 많아서 재미있게 읽히네요.

2022년 6월 2일 목요일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잡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매우 형편없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 점은 매우 충격적인 일 입니다. 저는 전쟁 발발 당시 2주 이내로 전쟁이 종결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전쟁 초기 부터 러시아군의 형편없는 전쟁 수행 능력이 드러나자 많이 당황했습니다. 이번 전쟁을 통해 러시아군의 문제점은 여러가지가 드러났습니다. 병사들의 낮은 전술 숙련도, 장교들의 형편없는 역량, 대규모 작전을 수행하기에 부족한 군수지원 능력, 각종 장비의 형편없는 관리 수준 등등. 그런데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지금 지적되는 러시아군의 문제점 중 일부는 소련군 시절에도 지적되던 문제였고 돈바스 전쟁 당시에도 지적됐습니다. 

예를들어 2017년 간행된 이고르 수탸긴(Igor Sutyagin)과 저스틴 브롱크(Justin Bronk)가 함께 집필한 Russia's New Ground Forces에서는 돈바스 전쟁 당시 러시아군이 시베리아와 극동에서 차출한 부대를 우크라이나에 투입할때 서부군관구와 남부군관구 구역에 사전 비축한 장비들을 사용하지 못하고 주둔지에서 사용하던 장비를 수송해와야 했던 점에 주목합니다. 러시아군의 훈련 수준이 낮기 때문에 원래 사용하던 장비와 다른 장비를 운용하기 어려워 병력과 장비를 모두 수송해야 했다는 겁니다. 미군은 주요 지역에 장비들을 비축해 놓고 병력만 신속하게 이동시켜 작전을 수행할 수 있지만 러시아군은 같은 방식으로 작전을 수행하는데 제약이 많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돈바스 전쟁에서는 러시아군의 비축 장비들의 상태가 좋지 못해 즉각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장비 뿐만 아니라 탄약의 관리도 서방의 기준에서 볼때 형편없는 수준으로 이뤄졌고 이런 군수지원 체계를 개편하려는 시도는 계속 진행중이었습니다. 이외에도 현재 지적되는 많은 문제들이 돈바스 전쟁 당시 부터 지적되어 왔습니다. 대표적인게 징집병을 강제로 전쟁에 투입하는 문제입니다. 러시아군은 이미 돈바스 전쟁 당시 부터 징집병들을 강제로 계약시켜 전쟁에 내보내 왔습니다. 서류상으로는 전문 직업군인이지만 실제로는 훈련 수준과 사기가 떨어지는 징집병들을 전선에 투입하는 문제도 예전 부터 있었던 겁니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투항한 러시아 군인들이 이 문제를 폭로하고 있지요. 이런 러시아군의 문제점은 러시아군을 연구하는 서방 학자들이 꾸준히 지적해 왔습니다. 미국 육군대학에서 간행한 The Russian Military in Contemporary Perspective에 실린 몇몇 연구는 러시아 국방개혁의 한계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현재 실패로 드러나고 있는 모병제 군대로의 전환 같은 문제 같은 겁니다. 제가 몇년전에 이 블로그에서 언급했던 알렉산드르 골츠의 연구가 러시아군의 구조 개혁에 대해 비판적인 분석을 보여줬죠. 

지금와서 보면 러시아 군대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점은 결코 새로운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러시아군을 지속적으로 관찰한 연구자들은 현재 드러나고 있는 문제들을 지속적으로 지적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보다 지표상의 국력이 강하다는 점 때문에 러시아군의 문제점을 올바르게 보지 못하고 우크라이나 군대를 과소평가하는 오류를 저질렀습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강대국 러시아라는 신기루에서 벗어나 러시아 군대의 실체를 보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러시아 군대에 대한 평가가 지금 보다 나아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