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매우 형편없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 점은 매우 충격적인 일 입니다. 저는 전쟁 발발 당시 2주 이내로 전쟁이 종결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전쟁 초기 부터 러시아군의 형편없는 전쟁 수행 능력이 드러나자 많이 당황했습니다. 이번 전쟁을 통해 러시아군의 문제점은 여러가지가 드러났습니다. 병사들의 낮은 전술 숙련도, 장교들의 형편없는 역량, 대규모 작전을 수행하기에 부족한 군수지원 능력, 각종 장비의 형편없는 관리 수준 등등. 그런데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지금 지적되는 러시아군의 문제점 중 일부는 소련군 시절에도 지적되던 문제였고 돈바스 전쟁 당시에도 지적됐습니다.
예를들어 2017년 간행된 이고르 수탸긴(Igor Sutyagin)과 저스틴 브롱크(Justin Bronk)가 함께 집필한 Russia's New Ground Forces에서는 돈바스 전쟁 당시 러시아군이 시베리아와 극동에서 차출한 부대를 우크라이나에 투입할때 서부군관구와 남부군관구 구역에 사전 비축한 장비들을 사용하지 못하고 주둔지에서 사용하던 장비를 수송해와야 했던 점에 주목합니다. 러시아군의 훈련 수준이 낮기 때문에 원래 사용하던 장비와 다른 장비를 운용하기 어려워 병력과 장비를 모두 수송해야 했다는 겁니다. 미군은 주요 지역에 장비들을 비축해 놓고 병력만 신속하게 이동시켜 작전을 수행할 수 있지만 러시아군은 같은 방식으로 작전을 수행하는데 제약이 많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돈바스 전쟁에서는 러시아군의 비축 장비들의 상태가 좋지 못해 즉각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장비 뿐만 아니라 탄약의 관리도 서방의 기준에서 볼때 형편없는 수준으로 이뤄졌고 이런 군수지원 체계를 개편하려는 시도는 계속 진행중이었습니다. 이외에도 현재 지적되는 많은 문제들이 돈바스 전쟁 당시 부터 지적되어 왔습니다. 대표적인게 징집병을 강제로 전쟁에 투입하는 문제입니다. 러시아군은 이미 돈바스 전쟁 당시 부터 징집병들을 강제로 계약시켜 전쟁에 내보내 왔습니다. 서류상으로는 전문 직업군인이지만 실제로는 훈련 수준과 사기가 떨어지는 징집병들을 전선에 투입하는 문제도 예전 부터 있었던 겁니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투항한 러시아 군인들이 이 문제를 폭로하고 있지요. 이런 러시아군의 문제점은 러시아군을 연구하는 서방 학자들이 꾸준히 지적해 왔습니다. 미국 육군대학에서 간행한 The Russian Military in Contemporary Perspective에 실린 몇몇 연구는 러시아 국방개혁의 한계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현재 실패로 드러나고 있는 모병제 군대로의 전환 같은 문제 같은 겁니다. 제가 몇년전에 이 블로그에서 언급했던 알렉산드르 골츠의 연구가 러시아군의 구조 개혁에 대해 비판적인 분석을 보여줬죠.
지금와서 보면 러시아 군대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점은 결코 새로운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러시아군을 지속적으로 관찰한 연구자들은 현재 드러나고 있는 문제들을 지속적으로 지적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보다 지표상의 국력이 강하다는 점 때문에 러시아군의 문제점을 올바르게 보지 못하고 우크라이나 군대를 과소평가하는 오류를 저질렀습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강대국 러시아라는 신기루에서 벗어나 러시아 군대의 실체를 보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러시아 군대에 대한 평가가 지금 보다 나아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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