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3일 목요일

NARA의 남부연맹 작성 지도 온라인화


미국 국립문서관리청(NARA)에서 미국 내전 기간 중 남부연맹에서 제작한 지도들을 디지털화 해서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지도가 고화질로 스캔되어 있어서 미국 내전에 관심 가지신 분들에게 아주 유용한 자료가 되겠습니다. 저도 시간 되는 대로 다운로드 받아야 겠군요.




2017년 11월 17일 금요일

잡담

뻘글입니다.

블로그스팟 블로그를 운영한 지 11년이 되고 나니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듭니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한건 2003년 말 네이버 블로그를 만든 것인데 몇달 사용하다가 그냥 폭파하고 이글루스로 옮겨갔습니다. 그리고 2006년 까지 이글루스를 운영하다가 이글루스 운영정책이 바뀌는게 별로 마음에 안 들어서 도망갈 곳을 찾다가 블로그스팟으로 옮기게 됐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블로그스팟 블로그의 기본 기능은 정말 보잘것 없습니다. 이것 때문에 한동안 유료 서비스인 할로스캔을 설치해 댓글과 트랙백을 관리했는데 할로스캔 서비스가 중단되면서 댓글들이 날아가거나 뒤죽박죽으로 섞여 버렸습니다. 가끔씩 시간이 되면 그나마 복구할 수 있는 댓글들을 정리하는 중인데 예전 댓글들을 읽다 보면 참 묘합니다. 댓글을 달아주시던 분 중에서는 안타깝게 일찍 세상을 뜨신 분도 있고 오프라인으로 잘 만나서 아직까지 친분을 유지하는 분도 있습니다. 이제 블로그는 쇠락하는 미디어라고 하는데 그래도 아직까지 블로그 만큼 제게 잘 맞는 서비스는 없는 듯 합니다. 페이스북을 하긴 하는데 긴글을 쓰기엔 좀 모자란 듯 하여 아는 분들과 연락하는 용도로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시 기능 이야기를 해보면, 초기의 블로그스팟은 자체적으로 도표를 만드는 기능이 없었습니다. HTML로 만들거나 외부 서비스를 쓰거나 하는 방법 정도가 있었는데 저는 그게 귀찮아서 한동안 워드로 표를 만들고 이걸 캡쳐한 사진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업로드한지 오래된 사진들이 깨지거나 찾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어서 예전에 올린 표들이 사라진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다행히 요즘은 구글 문서에서 꽤 괜찮은 도표 기능과 주석 기능을 사용하고 있어서 블로그에 글 올리는게 한층 편리해졌습니다. 제가 군사사 글을 올릴 시간이 줄어든게 유감일 뿐이네요.

그나저나 초기에는 뻘글의 비중이 높았는데 요즘은 뻘글을 주로 페이스북에 쓰다 보니 블로그에 글 올리는 비중이 크게 줄었습니다. 그래도 막상 긴 글을 올리려면 블로그 말곤 마땅한 곳이 없군요. 구글이 블로그서비스 자체를 없애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블로그스팟을 계속 쓰겠지요. 빨리 군사사 글을 끄적일 시간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2017년 11월 2일 목요일

The Journal of Slavic Military Studies 30-4호에 실린 2차대전 논문 두 편


이번 The Journal of Slavic Military Studies 30-4호에는 제2차세계대전 관련 논문이 두 편 눈에 띕니다.

첫 번째는 빈 대학의 데니스 하블라트(Denis Havlat)가 쓴 Western Aid for the Soviet Union During World War II: Part II입니다. 올해 초에 나온 1부는 전쟁 초~중반 서방의 지원에 대해 다루었고 이번에 실린 2부는 1943~45년 시기 서방의 지원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연작 논문의 핵심이 2부인 것 같습니다.
하블라트는 1943~45년 시기 렌드리스와 미영 연합군의 군사작전이 독소전쟁에서 소련에게 어떠한 도움을 주었는지 논하고 있습니다. 렌드리스에서는 차량과 식량을 포함한 물자 지원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시각이지만 매우 합리적입니다. 저자는 소련군의 차량화 수준이 1943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높아지는 것이 렌드리스 때문이라는 점을 통계를 통해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렌드리스를 통한 대량의 차량 지원에도 불구하고 소련군이 전쟁 말기까지 300만 마리가 넘는 마필에 의존해야 할 정도로 차량 생산이 부족했음을 지적합니다. 식량을 포함한 물자 지원 또한 저자가 강조하는 지점입니다. 하블라트는 독일군이 소련의 농업지대를 장기간 점령하고 있어 1943년에 이르면 소련 전역에서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심각한 식량부족이 일어났기 때문에 렌드리스를 통한 식량 지원은 소련이 전쟁을 계속해서 수행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평가합니다.
다음으로는 미영 연합군의 전략항공전과 대서양전투가 소련의 전쟁 수행을 어떻게 지원했는가를 논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있어 하블라트는 필립 페이슨 오브라이언(Phillips Payson O'Brien)과 유사한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전략항공 공세가 독일 공군을 붕괴시켜 소련이 동부전선의 제공권을 장악하도록 해 주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하블라트는 소련공군이 막대한 피해를 입으면서도 독일 공군에 소모를 강요하지 못했다고 평가합니다. 저자는 미국의 전략 항공공세가 없었다면 전쟁이 끝날때 까지도 독일은 동부전선의 제공권을 잃지 않았을 것이고 어쩌면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소련 공군을 계속해서 압도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두 편의 글을 통해 저자는 소련과 러시아의 주장과 달리 연합국, 특히 미국이 전쟁을 수행하는데 기여한 역할은 결정적인 것이며 렌드리스와 같은 지원이 없었다면 소련이 승리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두 번째 논문은 Gaj Trifković의 ’The German Anabasis’: The Breakthrough of Army Group E from Eastern Yugoslavia 1944입니다. 이 글은 1944년 하반기 소련군이 남동부 유럽으로 진출하면서 독일군이 유고슬라비아 방면에서 실시한 지연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최근 몇년간 The Journal of Slavic Military Studies에 유고슬라비아 전선을 다룬 논문이 꾸준히 실리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한 전역에 대한 연구라는 점에서 특기할 만 합니다.

2017년 11월 1일 수요일

한국전쟁에 참전한 무장친위대원의 이야기: Waffenbrüder- Ein Niederländer in Russland und Korea

제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군사사에 관심 가진 사람들에게 매우 인기있는 주제고 그중에서도 무장친위대는 독보적인 존재입니다. 무장친위대의 역사, 장비, 군장을 다룬 연구서 뿐만 아니라 무장친위대원들의 회고록도 여러권이 발간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소개할 John J. R. Folmer의 Waffenbrüder- Ein Niederländer in Russland und Korea도 무장친위대원으로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한 인물의 회고담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John J. R. Folmer는 1923년 5월 4일 오늘날의 인도네시아인 네덜란드령 동인도에서 태어나 1939년 대학입학자격시험을 치기 위해 본국으로 돌아옵니다. 하필이면 그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이듬해에 네덜란드는 독일군에 점령됩니다. 그는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무장친위대에 자원하기로 결심합니다. 폴머르는 훈련을 수료한 뒤 무장친위대 비킹 사단의 베스트란트(Westland) 연대 2대대 7중대 1소대 1분대 기관총 사수로 독소전쟁에 참전하게 됩니다. 이어지는 독소전쟁의 회고담은 다른 무장친위대원들의 회고담과 비슷합니다. 그는 동부전선에서 전개되는 일련의 격전에 참전해 전공을 세우고 부상을 당하기도 합니다. 폴머르는 1944년 7월 그간의 공훈을 인정받아 바트 퇼츠의 친위대사관학교에 입교하게 됩니다.

전쟁 말기의 경험담은 꽤 흥미롭습니다. 저자는 무장친위대 소위로 임관하면서 전쟁말기에 급조된 부대인 제38사단(니벨룽엔 사단) 제95연대 3대대 대대장 부관으로 다시 전선에 나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장친위대에 관한 책은 많지만 제38사단은 전쟁 말에 급조된 부대라서 관련된 문헌이 상대적으로 소략합니다. 이 회고담에 묘사된 제95연대 3대대장은 꽤 상식적인 인물입니다. 3대대장은 미군이 추격해 오는 상황에서 중간에 휴식을 취하기 위해 도시에 머무를 때 마다 소년병들을 제대시키고 후퇴합니다. 한 부대가 자발적이고 조직적으로 와해되는 과정에 대한 묘사는 꽤 재미있습니다. 대대장의 부관인 폴머르는 머무르는 도시의 시장과 협의해 소년병들에게 나눠줄 사복을 모으고 '제대시키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합니다. 미군에 포로가 된 폴머르는 임시 수용소에서 탈출해 귀향합니다.

여기까지라면 다른 무장친위대원의 회고담과 비슷한 개성없는 이야기가 되었을 것 입니다. 수많은 무용담과 고통스러운 패배의 기억으로 끝나는 이야기지요. 하지만 이 책은 마지막 1장으로 인해 맥락이 바뀌게 됩니다. 폴머르는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네덜란드군에 자원입대해 한국에 파견되기 때문입니다. 1951년 3월 네덜란드군 2진으로 C중대가 한국에 도착합니다. 그는 네덜란드군에 자원입대해 C중대의 기관총 사수로 참전합니다. 그리고 이 전쟁은 그에게 '승리'를 가져다 준 전쟁이 됩니다. 폴머르는 이렇게 회고합니다.

"한국전쟁은 자유세계가 공산주의의 광기에 맞서 싸운 전쟁이었다. 10년전에는 독일만이 홀로 공산주의에 맞서 싸우다 패배했다. 하지만 이제는 전 세계가, 자유세계 전체가 공산주의에 맞서 일어났다."

폴머르는 한국전선에서 1년간 싸운 뒤 1952년 9월 18일 '명예롭게' 군 생활을 마칩니다. 그의 세계관에서 독소전쟁은 공산침략에 맞서싸운 10년 전쟁의 일부였고 한국전쟁은 이를 승리로 마무리한 경험이 됩니다. 다른 무장친위대원의 경험담과 달리 이 책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승리'의 기록으로 마무리 됩니다. 꽤 특이한 시각의 회고담이고 한국전쟁 때문에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 이 책에는 다른 네덜란드 무장친위대원들의 이야기도 있지만 이 책을 쓸 당시(1996년) 살아있었던 가족들의 보호를 위해 모두 가명으로 처리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