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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18일 금요일

NARA 소장 독일노획문서에 대한 잡상 - 4. 독일기갑총감부문서 T78 R620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보관하고 있는 독일 기갑총감부분서 T78 R620은 7개의 폴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번폴더의 원래 문서번호는 H16/120입니다. 이 폴더에 수록된 문서들은 대전차전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앞 부분에는 견인식 대전차포 운용에 관한 내용이 많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문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소련군의 SU-76을 분석해 평가한 1944년 6월 20일자 보고서와 6월 27일자 보고서. 경장갑이지만 고속 주행이 가능하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6월 27일자 보고서에서는 실사격을 한 뒤 주포의 관통력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다만 약실을 개조한 뒤 독일제 Pak 40용 포탄으로 테스트한 결과라 소련제 탄약을 사용한 것과는 차이가 있을 듯 싶습니다.
-1944년 1월 부터 3월까지 동부전선에서 격파한 소련 전차의 격파 수단을 분석한 1944년 5월 29일자 보고서. 특히 보병이 휴대용 대전차 무기로 격파한 사례를 구체적으로 분류해 놓았습니다.
-독일 전차와 T-34/85, IS-2의 전투력을 비교한 1944년 6월 23일자 보고서. IS-2에 대해서는 판터가 근소하게 우세하다고 평가하는 반면 T-34/85에 대해서는 판터와 티거의 성능적 우위가 확실하기 때문에 그다지 위협적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토마스 옌츠가 이 보고서를 자주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독일 전차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이라면 이 보고서의 내용을 잘 아실겁니다.



-독일 전차와 미영연합군 전차의 전투력을 비교한 1944년 6월 25일자 보고서. 위의 보고서와 마찬가지로 토마스 옌츠의 책에서 자주 인용하는 보고서입니다.








-노획한 IS-2의 방어력에 관한 1944년 6월 29일자 보고서. 루마니아에 배치되어 있던 제15대전차대대 1중대가 당시 독일군의 보병연대급 대전차 화기였던 50mm Pak38로 시험한 결과인데 210m와 110m 거리에서 측면을 사격했을때는 튕겨나갔고 60m 거리에서 사격했을 때 포탄이 박혀서 20mm정도를 뚫었다고 합니다.
-1944년 1월부터 5월까지 돌격포여단들의 전과와 피해를 정리한 1944년 7월 9일자 보고서.


2번 폴더의 원래 문서번호는 H16/197입니다. 이 폴더는 돌격포 부대에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1943년 4월 10일 부터 1944년 1월 20일까지 돌격포 배치 현황이 정리되어 있으며 특히 1943년 3~12월의 시기에는 돌격포를 장비한 모든 사단, 여단별 배치현황이 정리되어 있어서 돌격포 운용에 대한 전반적인 경향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3번 폴더의 원래 문서번호는 H16/201입니다. 전차 및 대전차포 부대의 실전 보고서들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문서를 몇개 꼽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943년 12월 7일자의 제36전차연대 3대대 보고서. 돌격포와 전차의 혼성 운용에 관한 내용입니다.
-제506중전차대대의 1944년 1월 16일자 보고서.
-제100전차연대의 1944년 1월 17일자 보고서. 제21기갑사단의 재편성 현황에 대한 보고입니다. 재편성 과정에서 인력과 장비가 부족한 것이 눈에 띕니다. 1대대는 4호전차 12대 뿐이고 제2대대는 소뮤아 S-35 19대만 장비하고 있습니다.
-1944년 1월 30일자 포로심문보고서. 소련군 제11근위전차여단 소속의 코네프라는 소위를 심문한 결과인데 전차여단의 편성뿐만 아니라 IS-2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정보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지난번에 소개했던 “연방의 신형전차”와 비교했을때 상대적으로 정확한 내용입니다.
-제24기갑사단의 1943년 11월 20일자 보고서 발췌요약본. 제24기갑사단이 사용한 주요 장비에 대한 평가를 발췌하고 있습니다. 특히 Pak40에 대한 격찬이 흥미롭습니다. 상대가 T-34일 경우 유효사거리에서 단 한발의 명중탄으로 완파가 가능하다고 극찬하고 있습니다.
-제48기갑군단의 1944년 1월 26일자 보고서. 1943년 11월 15일부터 1944년 1월 21일 까지의 전투 결과를 요약한 보고서입니다. 부록으로 군단 예하부대의 보고서도 함께 첨부되어 있습니다. 제48기갑군단 예하부대의 전차 격파 내역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제36전차연대의 1944년 1월 6일자 보고서. 화염방사전차의 운용 경험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로스도이칠란트 사단의 1944년 2월 1일자 보고서. 마찬가지로 화염방사전차의 운용경험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3기갑군의 1944년 2월 22일자 보고서. 견인식 88mm 대전차포에 대한 평가입니다. 호르니셰를 운용하는 제519중대전차대대와 비교한 내용도 있습니다.
-제16기갑척탄병사단 예하 제116전차대대의 1944년 2월 29일자 보고서. 1943년 7월 1일부터 1944년 1월 31일까지의 작전을 총괄해 평가한 내용입니다.
-제13기갑사단의 1944년 1월 20일자 보고서. 대대급 전투단의 전투 사례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제17군 참모부의 1944년 2월 27일자 보고서. 보병사단 소속의 돌격포대 편성을 위한 인력 보충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제3기갑군의 1944년 3월 24일자 보고서. 1943~44년 겨울 전역에서 소련군이 사용한 전술과 독일군의 대응책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독일군의 전술에 대한 평가에서는 티거 운용에 관한 내용이 눈에 들어옵니다.
-장갑열차의 운용에 관한 보고서. 원본의 상태가 매우 불량해 절반 정도는 읽기가 힘듭니다.
-제20기갑사단의 1944년 3월 8일자 보고서.
-1944년 3월 24일자 포로심문보고서. 소련군 기갑부대에 관한 내용을 정리해 놓았습니다.
-제17군의 1944년 3월 25일자 보고서. 제17군 예하의 대전차부대의 편성에 관한 내용입니다. 각 사단의 대전차포 장비 현황과 대전차대대 편제에 대한 내용이 실려있습니다.
-제481대전차중대Panzer Zerstörer Kompanie의 1944년 3월 23일자 보고서. 판처슈렉의 전기식 격발장치의 고장 문제를 지적하는 보고서입니다.
-제477대전차대대의 1944년 3월 15일자 보고서. 역시 판처슈렉의 운용 결과에 대한 평가입니다.
-제519중대전차대대의 1944년 2월 28일자 보고서. 호르니셰의 운용경험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호르니셰를 운용하는 대대의 방어전술이 상세히 서술되어 있어 유용합니다.
-스템머만Stemmermann전투단의 체르카시 포위망 돌파를 평가한 1944년 5월 2일자 보고서.
-제2전차연대 1대대의 1944년 4월 22일자 보고서. 판터 운용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주로 구동계통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는데 기계적으로 상당히 안정되어 1943년 여름과 같은 엔진실 화재가 줄어들었다고 평가합니다.
-일자 미상의 보고서. 남우크라이나 집단군 소속의 기갑전력과 대전차전력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보고서입니다. 첫번째 장이 없어서 정확한 작성일을 알 수 없습니다.
-제128대전차대대의 1944년 6월 2일자 보고서. 노획한 T-34/85와 SU-85를 수리한 뒤 운용한 결과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T-34계열의 기계적 신뢰성이 매우 나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고장을 방지하기 위해 행군 중에는 30분 마다 한번씩 정지했다고 하는군요. T-34로 T-34를 때려잡는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제24기갑사단의 1944년 5월 19일자 보고서.
-제7기갑수색대대의 1944년 6월 13일자 보고서. Sd.kfz 234의 운용평가에 관한 내용입니다.
-기갑총감부에서 노르망디 전역의 전투 경험을 분석한 보고서. 지난번에 쓴 「기갑총감부 보고서 "노르망디 전선에서의 대전차전 경험"」에 대략적인 내용을 정리해 놓았습니다.


4번 폴더의 원래 문서 번호는 H16/213입니다. 이 폴더에는 밀라우Mielau 대전차교육대대Pz. Jg. Lehrgänge Mielau의 문서들이 들어 있습니다. 분량은 얼마 되지 않으며 1944년 2월 1일에 나온 보병사단 대전차대대 소속의 구축전차중대의 편제(K. St. N. Nr.1149 Ausf.B)에 관한 내용이 눈에 띕니다.


5번 폴더의 원래 문서 번호는 H16/217이며 내용은 1944년 7월 18일에 작성된 독립기갑여단 편성 명령과 편제표입니다.


6번 폴더의 원래 문서 번호는 H16/220이며 내용물은 적 전차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Die Panzerkampfwagen unserer Gegner라는 소책자입니다. 프랑스, 영국, 소련, 미국 전차에 대해 기술적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1942년 말까지 등장한 전차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7번 폴더의 원래 문서 번호는 H16/224입니다. 이 폴더는 3번 폴더와 비슷하게 다양한 전차 및 대전차부대의 보고서들을 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몇가지 보고서를 꼽아보면.
-제509중전차대대의 1943년 12월 17일자 보고서.
-제18군 참모부의 1943년 12월 8일자 보고서. 제18군 예하의 기갑 및 대전차부대들의 편제가 실려있습니다.
-제662중대전차대대에서 1943년 10월 30일에 작성한 비망록. 집단군에서 사단에 이르는 대전차부대의 재편을 제안하는 내용입니다.
-제1SS 전차연대 판터대대의 1943년 11월 16일자 보고서.
-제2전차연대 1대대의 1943년 10월 20일자 보고서.
-제656중대전차연대의 1943년 11월 6일자 보고서. 페르디난트와 4호돌격전차의 운용 결과를 평가하는 내용입니다.
-제503중전차대대의 1943년 10월 10일자 보고서. 1943년 8월 1일 부터 9월 21일까지의 전투 결과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긴 보고서인데 전투 보고외에도 기술적인 내용이 꽤 많습니다.
-제16기갑척탄병사단의 1943년 10월 7일자 보고서. 제656중전차연대와의 합동 작전에 대해 평가하는 내용입니다. 페르디난트가 너무 무겁다 보니 운용할 수 있는 지형에 제약을 많이 받아 골치아팠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그 무게 때문에 궤도를 교체하는 것 같은 자잘한 정비도 엄청나게 힘들었다고 비판합니다. 또한 주포 말고는 무장이 없다 보니 보병이 근접 공격이라도 해오면 난감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반 전차가 호위를 위해 배속되어야 했다고 합니다. 다만 장갑이 강력하다 보니 소련군의 중화기에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다는 점은 좋게 평가합니다. 돌격전차에 대해서는 150mm 고폭탄의 강력한 위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제16기갑척탄병사단의 1943년 10월 4일자 보고서. 이 보고서는 제506중전차대대와의 합동 작전에 대해 평가하고 있습니다.
-제10전차여단의 1943년 7월 17일자 보고서. 판터의 실망스러운 데뷔전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제301무선조종전차대대의 1943년 7월 23일자 보고서.
-제3기갑수색대대의 1943년 7월 23일자 보고서. Sd.kfz 251의 운용에 대해 평가하는 내용입니다.
-그로스도이칠란트 사단의 일자 미상 보고서. 5월경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며 1942년 6월 28일부터 1942년 12월 25일까지의 전투 경험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총 23쪽입니다.
-제232돌격포대대의 1943년 5월 11일자 보고서. 1943년 1월 부터 3월까지의 전투 결과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제208보병사단의 1943년 5월 2일자 보고서. 대전차전 경험에 대해 정리한 내용인데 프랑스제인 Pak97/38이 대전차전과 보병지원 양쪽에 유용하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부분이 눈에 띕니다.
-그로스도이칠란트 전차연대 13중대 작전에 관한 보고서들. 이것도 분량이 조금 많은 편 입니다. 핵심이 되는 부분은 1943년 3월 7일부터 3월 19일까지의 작전을 요약한 보고서입니다.
-남부집단군 사령부가 1943년 5월 15일 기갑총감부에 보낸 제560중대전차대대에 대한 보고서. 호르니셰 운용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17기갑사단장이 1943년 4월 24일에 작성한 보고서. 기갑사단의 전술적 운용에 관한 내용입니다. 제병협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18군 사령부의 1943년 4월 2일자 보고서. 1943년 1월 12일부터 3월 31일까지의 대전차전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특히 제502중전차대대의 작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스라이히 사단이 1943년 4월 14일 SS기갑군단 사령부에 보낸 보고서. 전차 정비부대의 운용에 관련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남부집단군 사령부가 1943년 4월 3일에 작성한 그로스도이칠란트 전차연대의 전과에 대한 보고서. 1943년 3월 7일부터 3월 20일까지 총 269대의 소련 전차를 격파했는데 이중 188대를 4호전차 장포신형이 격파했고, 41대는 돌격포, 30대는 티거가 격파했다고 합니다. 3호전차가 전혀 전과를 기록하지 못한게 흥미롭습니다.
-제503중전차대대의 1943년 4월 12일자 보고서. 이 보고서도 양이 꽤 됩니다. 1943년 2월 2일부터 2월 22일까지의 작전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원본의 상태가 조금 좋지 않아서 알아보기가 힘듭니다. 게다기 이 중 한장은 제가 촬영할 때 실수를 해서 초점이 안맞습니다. 흔들린 사진 복원하는 방법을 아시는 분은 댓글 좀 달아주십시오.
-제18기갑사단의 1943년 3월 21일자 보고서. 이 사단의 대전차전 경험을 정리하고 있으며 대전차포와 대전차자주포, 포병의 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7전차연대 1대대의 1943년 3월 4일자 보고서. 3호전차와 4호전차를 운용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기술적 문제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제503중전차대대의 1943년 3월 15일자 보고서.
-제501중전차대대의 1943년 3월 18일자 보고서.
-제15기갑사단의 1943년 2월 4일자 보고서.
-제187고속대대Schnelle Abteilung의 1943년 2월 25일자 보고서. 구식화된 37mm대전차포에 포구장착형 유탄Stielgranate을 사용한 결과를 정리한 것 입니다.

2013년 5월 24일 금요일

NARA 소장 독일노획문서에 대한 잡상 - 3. 독일기갑총감부문서 T78 R619


이번에 다룰 독일노획문서는 독일육군 기갑총감부문서 T78 R619입니다. 지난번에는 T78 R617을 다뤘는데 T78 R619로 건너뛴 이유는 해제를 살펴보니 T78 R618이 주로 기갑총감부의 인사관계 문서로 이루어져 있어 우선순위를 뒤에 두다 보니 시간이 없어 촬영하지 못했게 때문입니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청(NARA)가 소장하고 있는 독일육군 기갑총감부문서 T78 R619는 총 7개의 폴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첫 번째 폴더는 제목이 없는데 독일측의 원래 문서 번호는 H16/148입니다. 이 폴더는 정리가 되어 있지 않으며 굉장히 잡다한 문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몇가지 흥미로운 문서들을 소개해 보면,

-이 폴더의 첫 번째 문서인 1943년 3월 12일자의 보고서를 보면 소련의 SU-85 및 SU-152, 영국의 블랙프린스 및 교량가설전차, 미국의 M-36 잭슨 등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정보가 실려있습니다.
-1945년 2월 1일자로 된 모든 전선의 보병사단의 구축전차/돌격포/대전차자주포 보유 현황을 정리한 도표가 실려있습니다. 필름의 촬영상태가 썩 좋지는 않지만 매우 흥미로운 자료입니다.
-1945년 5월 8일에 정리한 기갑총감부의 일지가 있습니다. 이 일지는 1945년 4월 20일 부터 1945년 5월 5일까지 기갑부대 및 대전차부대의 편성 명령과 현황을 담고 있습니다. 글자 그대로 최후의 기갑부대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1945년 5월 15일자의 그로스도이칠란트 기갑척탄병여단의 병력 현황에 대한 통계가 있습니다. 항복 당시의 병력 현황을 정리한 내용 같습니다.
-1945년 5월 15일자로 된 기갑총감부의 간부 명단 및 차량현황이 있습니다. 항복 당시의 현황 같습니다.


2. 두 번째 폴더는 아돌프 히틀러 전차생산계획에 대한 문서입니다. 독일측의 원래 문서번호는 H16/160a와 H16/160b입니다. 원래 미국의 전략폭격조사단U.S. Strategic Bombing Survey에서 미국의 전략폭격이 독일의 산업에 어떤 피해를 주었는지 조사하기 위해 확보한 문서를 다시 NARA에 인계한 것입니다. 상태는 그다지 좋지 못합니다. 1943년 1월에 작성된 계획이라는데 여기서 가장 깨는 것은 초중전차 마우스의 양산 계획입니다. 1943년 1월 시점에는 1943년 11월 생산을 시작해 1944년 3월까지 15대를 생산할 예정이었다는군요.


3. 세 번째 폴더도 아돌프 히틀러 전차생산계획에 대한 문서입니다.


4. 네 번째 폴더는 소련의 전차 개발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독일측의 원래 문서번호는 H16/169입니다. 지난번에 소개한 IS-2에 관한 이상한 정보가 이 폴더에 들어있는 문서입니다. 정보 보고서가 다 그렇듯 신뢰도의 편차가 매우 큽니다. 황당한 정보 부터 신뢰도가 높은 정보까지 다양한 정보가 들어있습니다. 1943년 부터 1944년 까지의 문서를 담고 있어서 IS-2와 T-34/85에 관한 정보가 많이 있습니다.


5. 다섯 번째 폴더는 1943년 3월 부터 1943년 7월 까지 전 전선의 기갑부대 및 보병사단이 보유한 기갑차량 현황을 정리한 도표입니다. 독일측의 원래 문서번호는 H16/171입니다.


6. 여섯 번째 폴더는 여러 야전부대의 작전보고서를 담고 있습니다. 독일측의 원래 문서번호는 H16/186입니다. 여기 실린 보고서 중에는 옌츠Thomas L. Jentz의 여러 책에 실려서 유명한 것들이 많습니다. 흥미로운 보고서를 몇 개 꼽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944년 2월 20일 제3기갑군의 정보참모처에서 소련군 포로를 분석한 보고서. 이 보고서는 소련군 포로들을 심문하여 소련군의 인력, 장비 보급 상황과 부대 편제 및 소련의 경제 상황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분석 결과는 소련의 인력 소모가 심각한 것을 보여주는데 포로의 연령대가 1889년생 부터 1928년생에 이르기 까지 다양합니다. 1800년대에 출생한 포로들이 모두 사병(!) 이라는 점이 특기할 만 합니다. 이 밖에 포로들의 진술을 가지고 소련군의 부대 편제를 분석한 내용이나 소련군의 보급 상황, 후방의 생활 수준에 대한 내용도 재미있습니다.
-제200보충훈련돌격포대대장의 보고서. 이 보고서는 제200보충훈련돌격포대대Sturmgeschütze Ersatz und Ausbildung Abteilung 200의 대대장이 1943년 8월 30일부터 9월 22일까지 러시아전선에 배치된 12개 돌격포대대를 방문하여 조사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돌격포대대들이 실전에서 겪은 문제점과 실태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가 많습니다. 결론 부분에는 조사한 돌격포 대대의 적 전차 격파 및 손실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압도적인 교환비를 보여주는게 인상적입니다.
-1943년 11월에 작성된 판처슈렉과 판처파우스트에 대한 보고서. 이 보고서는 여러 일선부대에서 판처슈렉과 판처파우스트를 사용한 뒤 평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판처슈렉의 경우 조준기의 개량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판처파우스트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훌륭한 대전차 병기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제24기갑사단의 1943월 11월 4일자 보고서. 전차 및 돌격포를 혼성 편성한 기갑부대의 운용에 관한 내용입니다.
-제103기갑포병연대 3대대(제4기갑사단 예하)의 1943년 8월 20일자 보고서. 후멜Hummel 및 베스페Wespe를 운용하고 평가한 내용이 특히 흥미롭습니다. 이 외에도 이 폴더에는 제103기갑포병연대의 보고서가 많은 편입니다.
-제506중전차대대의 1943년 10월 14일자 보고서.
-제8군의 1943년 10월 5일자 보고서. 제8군 예하 제대의 기갑 및 대전차 전력 현황을 보고하고 있습니다.
-제503중전차대대의 1943년 10월 7일자 보고서. 대대의 전차 정비 현황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제656중대전차연대의 1943년 9월 27일자 보고서. 페르디난트와 돌격전차의 혼성 운용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기동방어에서 페르디난트가 얼마나 골치 아픈 물건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506중전차대대의 1943년 9월 30일자 보고서.
-제655중대전차대대의 1943년 8월 27일자 보고서. 1943년 7월 11일 부터 7월 27일까지 오룔지구 방어전에서 호르니셰(나스호른) 대전차자주포의 운용에 관한 내용입니다. 호르니셰에 탑재된 88mm가 전차 뿐만 아니라 보병을 상대로 한 전투에서도 유용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88mm의 고폭탄 사격으로 소련군 보병의 돌격을 분쇄하거나 아예 후퇴하게 만든 경우까지 있다는군요. 또한 3000미터에서도 목표를 격파할 수 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로스도이칠란트 기갑연대 제3대대의 1943년 8월 31일자 보고서. 역시 티거의 우수한 성능을 확인할 수 있는 보고서입니다. 소련군의 대전차포 진지를 아무 손실이 없이 섬멸한다던가 하는. 다만 티거가 등장한지 꽤 지난 시점이라 소련군의 대응도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1943년 8월 15일의 전투에서는 SU-122의 명중탄에 제10중대장이 중상을 입는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판터에 관한 1943년 7월 20일자 보고서. 제4기갑군사령부에 제출된 보고서인데 요약하면 정면 장갑은 충분한데 측면 장갑이 약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내용입니다. 또한 그 유명한 구동계통의 문제에 대해 지적하고 있습니다. 7월 18~19일 제51, 52대대의 판터 보유 및 손실 현황이 실려있습니다. 이외에도 판터에 관한 보고서가 몇 건 더 있는데 이것들은 Panzertruppen 같은 유명한 옌츠의 저작에도 인용되어 있습니다.
-파더보른 전차교육대의 1943년 5월 28일자 보고서. 제501, 502, 503중전차대대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티거 운용에 관련된 사항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역시 옌츠의 저서에 실려있는 보고서입니다.


7. 마지막 일곱번째 폴더는 “대전차병기의 개발 및 보급Entwicklung und Fertigung von Panzerabwehrwaffe”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MP43 같은 보병용 소화기 등 잡다한 내용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분량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원래 독일측 문서번호는 H16/188입니다.

2007년 1월 12일 금요일

뭔가 구린 보고서 - "히틀러 보고서"의 쿠르스크 전투 부분

스탈린 연구자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스탈린에게 올라가는 보고서는 베리야, 또는 그 아래 단계에서 상당히 손을 많이 본다는 것 입니다. 왜냐? 다 아시겠지만 우리의 강철의 지도자 동무의 심보가 뒤틀리면 피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1949년에 작성돼 스탈린에게 제출된 “히틀러 보고서”의 영어판을 읽어 보게 됐습니다. 이것 역시 스탈린 동무에게 올라 가는 것이라 그런지 뭔가 구린 냄새가 곳곳에서 나더군요.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쿠르스크 전투에 대한 부분입니다.

1943년 6월, 히틀러는 쿠르스크 전투를 준비하기 위해서 오버살츠베르크에서 동 프로이센의 “늑대굴”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무렵 터키군 총참모부의 사절단이 방문했다. 터키 사절단은 독일 국방군 총사령부의 초청을 받아 독일을 방문했다. 독일측은 동부전선에 배치된 독일군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터키 사절단에게 쿠르스크 공세를 위해 하리코프-벨고로드 지구에 집결한 독일 기갑부대의 기동훈련을 참관하도록 했다. 터키 사절단은 이 기동훈련을 참관한 뒤 늑대굴로 돌아와 히틀러를 접견했다. 터키 사절단은 히틀러와 다과를 하기에 앞서 카이텔, 요들과 함께 많은 대화를 나눴다. 터키 사절단은 히틀러를 접견한 뒤 독일 국방군 총사령부의 초대를 받아 프랑스를 방문했다. 히틀러는 터키 사절단과 대화를 나눈 뒤 매우 즐거워했다.

“터키인들은 믿을 수 있을 거야. 하리코프에서 우리 기갑사단의 기동을 참관한게 저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 같아.”

터키 사절단은 프랑스에 도착해 서부전구 총사령관 룬트슈테트 원수의 환대를 받았다. 히틀러는 룬트슈테트에게 터키 사절단이 동부 전선의 기갑사단들로부터 받은 깊은 인상을 활용할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대서양 방벽에서 가장 방어 준비가 잘 갖춰진 지역만 보여주도록 지시했다. 이에 따라 터키 사절단은 Cap Gris Nez에 있는 해안포대 “프리츠 토트”를 방문했다. 터키 사절단은 노획한 야포로 만든 해안 포대는 볼 수 없었다.

1943년 7월 5일, 벨고로드-쿠르스크-오룔 지구에서 공세가 개시됐다. 공세 첫날 히틀러는 그의 부관들에게 자이츨러로부터 전황 보고가 안 들어왔는지 확인하도록 닥달했다. 그날 오후 12시 30분, 자이츨러는 직접 보고를 하기 위해 히틀러를 찿았다. 히틀러는 자이츨러에게 흥분된 어조로 물었다.

“자이츨러. 쿠르스크의 전황은 어떤가?”

자이츨러는 전황에 대해서 모호한 어투로 얼버무렸다. 자이츨러는 현재 전황이 단편적으로 들어와 있다고 대답했다. 러시아군이 매우 완강히 저항하고 있다는 것 이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 붙였다.

“기습의 효과는 전혀 없었습니다.”

히틀러는 자제력을 잃었다.

“페르디난트! 페르디난트 부대를 당장 투입하란 말이다!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전선을 돌파해야 한다!”

7월 6일, 자이츨러는 보병과 공병들이 러시아군의 방어선을 여전히 돌파하지 못했으며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그 뒤 기갑부대가 투입됐다. 히틀러는 격분했다. 히틀러는 기갑사단들을 예비대로 두고 피해가 어떻든 간에 보병과 공병 부대가 소련군의 방어선을 완전히 뚫기 전 까지는 투입하지 말 것을 명령했었다. 예비대 투입은 돌파구가 열린 다음에 할 계획이었다. 히틀러는 거듭해서 집중적인 타격을 입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때 히틀러는 마치 열병을 앓는 사람 처럼 보였다. 히틀러는 매 시간 마다 자이츨러에게 러시아군의 방어선이 얼마나 뚫렸는지, 그리고 그의 히틀러 사단이 얼마나 진격했는지 등을 물어봤다.

그리고 며칠 되지 않아 자이츨러는 공세가 완전히 돈좌됐다고 보고했다. 독일군은 방어로 돌아섰고 일부 지구에서는 소련군이 공세를 시작했다. 페르디난트와 티거 전차는 방어진지에 배치된 대전차포와 T-34에 연달아 격파됐다. 히틀러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을 거부했다. 히틀러는 주먹으로 탁자를 치며 소리쳤다.

“이건 다 내 명령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야!”

귄세는 히틀러의 명령을 받고 아돌프 히틀러 사단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출발했다. 귄세는 벨고로드에서 히틀러 사단 지휘관인 제프 디트리히를 만났다. 귄세는 착륙하기 전에 하늘에서 소련군의 강력한 방어선과 곳곳에 널려있는 독일 전차와 자주포의 잔해를 볼 수 있었다. 디트리히는 귄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진격 할 수 있었던 것은 겨우 10km였네. 하지만 피해가 너무 엄청났어. 작전을 시작할 때 내 사단은 150대의 전차를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전투에 투입 가능한 게 20대도 되지 않네. 보병의 손실도 매우 큰 상태야. 다른 사단들의 상황도 이보다 나을게 없어. 러시아군의 방어선이 얼마나 종심 깊게 구축됐는지 아는가? 동 프로이센에 돌아가서 말로 보고하는건 쉽겠지. 그러나 여기서는 다르다네. 우리는 돌파를 하지 못했어.”

다음날 저녁 귄세는 동 프로이센으로 돌아갔다. 귄세가 보고를 위해 히틀러를 방문하자 히틀러는 피곤하다는 제스쳐를 취하며 말했다.

“잊어 버리게. 나도 알아. 디트리히 조차 실패했군. 나는 이번 공세로 전세를 완전히 뒤집으려고 했어. 러시아군이 이렇게 강하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군.”

Ed. Henrik Eberle and Matthias Uhl, The Hitler Book, p.117~119

이미 쿠르스크 전투에 대한 연구를 많이 접하신 분들은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잘 아실 것 입니다.

먼저 디트리히의 이야기를 보시죠.

“내가 진격 할 수 있었던 것은 겨우 10km였네. 하지만 피해가 너무 엄청났어. 작전을 시작할 때 내 사단은 150대의 전차를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전투에 투입 가능한 게 20대도 되지 않네. 보병의 손실도 매우 큰 상태야. 다른 사단들의 상황도 이보다 나을게 없어. 러시아군의 방어선이 얼마나 종심 깊게 구축됐는지 아는가? 동 프로이센에 돌아가서 말로 보고하는건 쉽겠지. 그러나 여기서는 다르다네. 우리는 돌파를 하지 못했어.”


이제는 잘 알려져 있지만 SS 2기갑군단은 그다지 큰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쿠르스크 전투 기간 중이나 그 이후에도 전투 투입 가능한 전차가 20대 이하로 떨어진 사단은 없었지요.

그리고 그 다음. 히틀러의 이야기를 보시죠.

“잊어 버리게. 나도 알아. 디트리히 조차 실패했군. 나는 이번 공세로 전세를 완전히 뒤집으려고 했어. 러시아군이 이렇게 강하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군.”


독일측이 쿠르스크 전투를 통해 일거에 전세의 역전을 노렸다는 것은 전형적인 소련의 해석입니다. 소련은 1970년대 까지도 독일군은 쿠르스크의 돌출부를 분쇄한 뒤 모스크바로 총 공세를 가할 계획이었다고 제멋대로 역사를 서술했습니다. 독일측의 의도는 쿠르스크 돌출부를 분쇄해 소련군의 주력 기동부대를 섬멸하고 전선을 단축해 방어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 이었지 더 큰 도박판에 올인 하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보고서는 주로 귄세 등 히틀러의 측근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 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증언 자체의 신뢰도는 둘째 치고 내용 자체에 구린 구석이 많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스탈린의 입맛에 맞춰 주기 위해 많은 부분에 손을 댄 것 같습니다. 신뢰도가 매우 떨어지는 구술 자료집이라고 판단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