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16일 금요일

스티븐 잘로가의 2차대전 기갑전 저작에 관한 잡담

아마 스티븐 잘로가는 기갑전과 관련해 가장 유명한 저술가일 것 입니다. 기갑전에 대한 저술을 오랫동안 해 왔고 다루는 범위도 매우 광범위합니다. 최근 몇년간은 제2차대전 시기 유럽전선의 기갑전에 대한 저작을  집중적으로 간행하면서 ‘독일 기갑부대의 신화’를 깨트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잘로가의 주장은 큰 틀에서 매우 합리적입니다. 그는 기갑전에서 개별 전차의 성능 문제를 무시할 수 는 없으나 타 병과와의 협동, 전차 승무원의 숙련도 같은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잘로가가 제시하는 대전제는 설득력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례를 분석하는데 있어서는 꽤 많은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미군 기갑부대의 작전을 설명하는데 있어 그렇습니다.


먼저 사료의 활용이 부적절합니다. 잘로가가 자주 사용하는 자료 중 하나는 ‘Ballistic Research Laboratories Memorandum Report 798’입니다. 잘로가는 Panther vs Sherman (Duel)의 결론 부분에서 이 자료를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미육군의 탄도학연구소는 전차전에서 승리하는데 어떤 요소가 중요한지 파악하기 위해서 전차전에 대한 작전연구를 수행했다. 전쟁 중에는 어느 진영도 통계자료를 규칙적으로 취합하지 못했기 때문에 탄도학연구소의 분석팀은 미 3기갑사단과 4기갑사단의 기록을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이 두 기갑사단은 미군의 다른 기갑사단들과 비교했을때 평균, 혹은 그 이상의 전차전을 경험했다. 총 98건의 교전을 골라내 계량화 했으며 시기는 1944년 8월 부터 12월 말 까지였다. 이 중 33건이 아르덴느 전투 시기의 교전이었다.”1)


이 서술만 보면 98건 모두가 전차 대 전차의 교전을 분석한 것이라는 인상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98건에는 전차 대 대전차포, 전차 대 보병 교전까지 포함되어 있어 순수한 전차전에 해당하는 사례는 훨씬 적습니다. 게다가 잘로가가 비판하고 싶어하는 셔먼 대 판터의 교전 결과로 한정하면 그 사례는 더 줄어들고 그것도 대부분 로렌 전역 시기의 사례로 한정됩니다. BRL798에 실려있는 아르덴느 전투 시기 셔먼 대 판터의 교전 사례는 제3기갑사단이 9건, 제4기갑사단이 6건에 불과합니다.


잘로가는 이 부족한 사례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해 냅니다.


“셔먼과 판터가 격돌한 29건의 전투를 보면 평균적으로 셔먼이 판터보다 1.2배 많았다. 이 자료를 보면 판터는 방어 전투시 셔먼에 비해 1.1배 효율적이었으나, 셔먼이 방어 전투시에는 판터에 비해 8.4배 효율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셔먼은 전체적으로 판터에 비해 3.6배 효율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 보고서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이 전쟁 기간 중 있었던 전형적인 셔먼 대 판터의 교전 양상을 보여주지는 못할 것이며, 그 원인은 데이터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셔먼과 판터의 교환비율이 5대 1이라는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소문은 역사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  전차전의 결과는 기술적인 측면 보다는 전술적인 상황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 기술적으로 우수하더라도 전술적인 상황이 더 큰 영향을 끼쳤다. 경험이 풍부한 전차장이 적을 먼저 발견할 가능성이 높았고, 훈련이 잘 된 승무원들이 잘 협력해서 선제 공격을 가할 가능성이 높았고, 우수한 사수가 먼저 적을 명중 시킬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전차전에서는 전차병의 훈련 수준은 중요한 요인이었다. 하지만 우수한 승무원이 우수한 전차를 타고 전진해올 때 그저 그런 수준의 승무원이 그저 그런 수준의 전차에 타고 매복을 하고 있었다면 매복을 하고 있는 쪽이 우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2)


여기서 잘로가가 말한 29건 중 다수는 벌지 전투 이전, 특히 로렌 전역의 제4기갑사단의 교전 사례에 해당됩니다. 하지만 BRL798에서 벌지전투 당시 제3기갑사단의 셔먼과 판터의 교전 결과만 놓고 분석하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순수하게 셔먼과 판터가 교전한 전투에서는 판터 1대가 격파될 때 셔먼 13대가 격파되는 결과가 나옵니다.(셔먼 총 13대 파괴, 판터 총 1대 파괴). 제 3기갑사단의 교전결과에 M5까지 포함했을 때는 좀 낫습니다. 판터 1대가 격파될 때 미국 전차 11.3대가 격파된다는 결과가 나옵니다.(미국 전차 총 34대 파괴, 판터 3대 파괴) 그리고 구축전차까지 포함하면 판터 1대가 격파될 때 미국 기갑차량 7대가 격파되는 걸로 나옵니다.(미국 기갑차량 총 35대 파괴, 판터 5대 파괴) 이것이 교차검증은 전혀 거치지 않은, 미군 기록에만 의존한 결과임을 고려한다면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잘로가가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려고 노력하는 로렌 전역당시 4기갑사단의 경우, 전투 보고서가 심각하게 전과를 과장하고 있으며 이 점은 잘로가의 다른 저작인 Armored Champion: The Top Tanks of World War II에서도 인정하고 있습니다.3) 그러니 전투보고서들을 교차검증 없이 그대로 인용한 BRL798의 결론도 좀 회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잘로가는 같은 해에 나온 Armored Thunderbolt: The U.S. Army Sherman in World War II에서도 동일한 자료를 동일한 방식으로 인용해 동일한 주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4)


잘로가는 이상할 정도로 로렌 전역에 집착하고 있는데 얼마전에는 로렌 전역을 다룬 단행본을 한권 내기도 했습니다. 그는 지그프리트 방어선 전역에서 있었던 기갑전들은 소규모 전투에 불과하다며 언급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미군이 고전한 사례로 꼽히는 푸펜도르프 전투 같은 것은 잘로가의 저작에서 거의 언급이 안된다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참고로, 푸펜도르프 전투는 미육군의 제2차세계대전 공간사에서 퍼싱 전차의 개발사를 서술하기 전에 미군과 독일군의 기갑 장비의 성능 격차를 논하면서  중요하게 언급하는 전투입니다.5)  


※ BRL798의 로렌전역 데이터 분석에 관해서는 "미 제4기갑사단이 아라쿠르 전투에서 거둔 전과에 대한 잡설"에서 이야기 한 바 있습니다.


물론 잘로가는 BRL798에 있는 사례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잘로가의 다른 저작들을 보면 그가 의도적으로 미군에게 유리한 사례만을 뽑아내려고 한다는 의심을 거둘 수 없습니다. 그는 Armored Champion: The Top Tanks of World War II에서 벌지 전투 당시의 기갑전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고 있습니다.


“2주간의 격렬한 전투 끝에 아르덴느에 투입된 독일 전차연대들은 완전히 격파됐다. 최강의 부대였던 8개의 판터 대대들은 전투가 시작될 당시 415대의 판터를 가지고 있었으나 전투가 끝날 무렵에는 가동 가능한 숫자가 105대로 줄어들었다. 전체 손실 중 180대는 완전 손실이었고 나머지는 파손, 혹은 기계적 고장에 의한 손실이었다. 이 전투에서도 또다시 판터의 기계적 신뢰성 문제가 드러났는데 특히 최종 구동축이 심각했다. 부하가 많이 걸리는 판터의 변속기는 경험이 많은 조종수나 다룰수 있었지만, 아르덴느 전투에 투입된 신참 승무원들은 새로 생산된 전차를 늦게 수령했거나 훈련에 필요한 연료를 조달하기 힘들어서 제대로 훈련을 받을 수 없었다. 독일측 기록에 따르면 아르덴느 공세 당시 상실한 전차의 절반 이상은 기계 고장으로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미군은 아르덴느 전투에서 독일군 보다 더 많은 전차를 잃었지만 그 이유는 단지 미군이 더 많은 전차를 보유했기 때문이었다.(U.S. tank losses in the Ardennes were numerically greater than German losses simply because the U.S. Army had so many more tanks.) 아르덴느 전투의 대부분을 담당한 미 제1군은 12월 말 까지 약 320대의 셔먼을 잃었고 그 중 90대는 M4A1/ A3(76mm)였다. 이 손실은 미 제1군의 12월 중 일일 평균 전차보유대수의 1/4에 해당하는 것 이었다. 미 제1군은 지속적으로 장비를 보충받아서 1944년 12월 말에는 1,085대의 셔먼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중 980대가 가동가능한 상태였고 기계적 불량이나 전투 중 손상으로 수리 중인 것은 9퍼센트에 불과했다.”6)


전차가 많아서 미군의 손실이 더 많았다는 서술은 읽는 이를 벙찌게 만듭니다. 태평양 전선의 미군이 일본군 보다 더 많은 비행기를 보유했다고 더 많은 비행기를 잃은 건 아니잖습니까. 벌지전투 기갑전에 대한 잘로가의 서술은 꽤 일관적인데 미군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온 전투는 일절 언급을 회피한다는 점 입니다. 잘로가는 벌지 전투 초기에 투입된 미 1군 예하 기갑사단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은 점은 언급을 하지 않고 다만 “아르덴느 공세 초기에는 전차전이 별로 일어나지 않았다”는 서술로 대충 넘어갑니다.7) 비슷한 서술은 노르트빈트 작전을 다루는 부분에서도 나타납니다. 노르트빈트 작전에서도 미 12기갑사단이 큰 손실을 입고 많은 전차를 노획당했지만 잘로가는 그런 점은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다만 작전에 투입된 독일군의 손실이 컸다는 점만 언급하고 있을 뿐 입니다.8)


그리고 자료의 취사선택 만큼이나 납득하기 어려운 점은 논쟁이 될 만한 부분에서 근거를 밝히지 않고 대충 넘어가는 경향입니다. 잘로가는 독일 군수산업계의 비효율성을 지적하면서 티거의 생산 가격에 대해서 이런 주장을 합니다.


“독일의 전차 생산 가격을 추산하는데 있어 또 한가지 문제점은 1943년의 ‘아돌프 히틀러 전차 생산계획’의 성과가 정치적으로 활용됐으며, 알베르트 슈페어의 군수생산부가 판터와 같은 신형 전차가 비용적으로 크게 효율적이라는 점을 선전하고, 전차 생산에 필요한 자본 투자의 규모를 감추거나 조작하려 했기 때문이다. 독일군에게 납품된 티거 I 한대의 가격은 300,000 마르크였으나 일본에 판매된 티거 I은 645,000천 마르크였다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이것이 기반 시설에 투자한 비용까지 반영한 실제 비용에 가까울 것이다.(It’s worth noting that the price for a Tiger I tank for the German army was about 300,000 RM, but the example sold to Japan was priced at 645,000 RM, an amount more likely to reflect the actual cost including industrial infrastructure investment.)9)


티거의 실제 가격이 알려진 것 보다 두 배는 축소됐다는 굉장한 주장인데 근거는 없습니다. 일본에 판매된 티거의 가격이 645,000마르크였던 이유는 전차 외에 각종 소모품, 설계 도면, 운송 비용 등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토마스 젠츠 같은 연구자들이 이미 언급한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로가는 특별히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과격한 주장을 합니다. 잘로가의 저작들을 보다 보면 이렇게 주장의 근거가 필요한 부분에서 이렇다 할 출처를 제시하지 않는 경우를 간혹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잘로가는 독일군의 전차 손실 기록은 완전 손실만 기록하고 격파되어 본국으로 수송되는 차량 등을 집계에서 누락하고 있어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을 반복합니다.10) 물론 이것은 어느 정도 타당합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실제 완전 손실은 어느 정도 이고 완파되어 본국으로 수송된 전차는 어느 정도 인지 입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잘로가는 몇가지 정황 증거는 제시하지만 구체적으로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독일측 기록의 문제점은 비판하지만 미군 기록의 문제점은 지적하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인용하는 경향이 계속되는 한 잘로가의 저작은 앞으로도 의구심을 가지고 볼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주석
1) Steven J. Zaloga, Panther vs Sherman (Duel), (2008, Osprey Publishing. Kindle Edition) Kindle Locations 1067-1071.
2) Panther vs Sherman (Duel), Kindle Locations 1086-1095.
3) 1944년 9월 독일군이 로렌 전역에서 상실한 기갑차량은 총 341대이며, 미국측은 같은기간 총 1,214대의 독일 기갑차량을 격파한 것으로 집계했다고 합니다. 미국이 주장한 독일 기갑차량 격파대수는 독일군이 공세 시작전 보유한 기갑차량의 2배에 달합니다.  Steven J. Zaloga, Armored Champion: The Top Tanks of World War II, (2015, Stackpole Books. Kindle Edition)
4) Steven J. Zaloga, Armored Thunderbolt: The U.S. Army Sherman in World War II, (2008, Stackpole Books), p.231.
5) Lida Mayo, The Ordnance Department : On Beachhead and Battlefront, (1991, USGPO), pp.325~326; 참고로 David E. Johnson, Fast Tanks and Heavy Bombers: Innovation in the U.S. Army, (1998, Cornell University Press), p.195에서는 푸펜도르프 전투에서 미 2기갑사단이 57대의 전차를 상실한 반면 전차전에서 독일군의 손실은 판터 2대, 티거 II 2대에 불과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독일쪽 기록과는 조금 차이를 보이는데 독일측 기록에 따르면 전차전에서 격파된 티거 II는 1대이고 세대가 미군의 중곡사포 포격에 격파됐다고 합니다. 판터 손실은 정확히 평가하지 못하겠습니다.
6) Armored Champion: The Top Tanks of World War II, Kindle Locations 3841-3851.
7) Armored Champion: The Top Tanks of World War II, Kindle Locations 3807-3811. Armored Thunderbolt: The U.S. Army Sherman in World War II에서는 그나마 좀 더 자세히 서술하고 있지만 미군 기갑사단들의 고전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8) Armored Champion: The Top Tanks of World War II, Kindle Locations 3852-3858.
9) Armored Champion: The Top Tanks of World War II, Kindle Locations 651-655.
10) Armored Champion: The Top Tanks of World War II, Kindle Locations 3572-3577.


댓글 3개:

  1. 어딜가나 나오는 전형적인 사례군요. 내 주장을 위해 불리한 증거자료는 무시하기.. 흔한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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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먼저 근거가 되는 자료들에 대해서 면밀히 검토해야 하는데 잘로가가 쓴 글만 봐서는 사료비판을 제대로 한 것 같지 않습니다. 잘로가가 인용하는 1940~50년대에 나온 작전연구 중에서 교차검증이 제대로 된 것은 찾아보기 힘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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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매번 잘로가의 주장이 말이 안된다고 의심했었는데 역시나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국내 밀덕들은 그걸 오피셜로 와서 받아쓰기 하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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