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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24일 토요일

미군과 독일군 장비의 비교 평가에 관한 미 제2기갑사단장의 보고서 - 6




한동안 잊고 있었던(;;;;;;) 주제로군요. 지난편이 올라간게 2014년 이라니(;;;;;) 오늘은 중위~소위급 장교들의 증언을 소개합니다. 이 보고서에 실려있는 초급 장교들의 증언은 미군과 독일군 기갑장비의 성능격차를 이야기하는 서적에서 자주 인용되었기 때문에 접해보신 분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 밖의 다른 무기에 대한 평가도 흥미롭습니다. 초급지휘관들 부터는 미군 전차의 절대적인 열세를 증언하고 있어서 내용이 대동소이 합니다. 그래도 이왕 번역을 시작했으니 이 보고서를 전부 번역한 뒤 제3기갑사단장이 아이젠하워에게 보낸 보고서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제2기갑사단장의 보고서는 부사관과 사병들의 증언을 담은 부분만 번역하면 마무리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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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알로니어John J. Allonier 소위

본인은 M4 중형전차로 5호전차와 교전한 바 있다. 5호전차는 아군의 M4 보다 우수하다. 독일 전차의 강철 궤도는 우리가 사용하는 강철궤도 보다 내구성이 낮지만 접지압을 훨씬 좋게 해준다. 5호전차는 두꺼운 장갑을 가지고 있지만 기동성도 우수하다. 5호전차의 주포는 관통력이 높아서 아군의 75mm포 보다 훨씬 우수하다. 차체 기관총 사수용 관측창 또한 5호전차의 중요한 특징이다.

Issac D. White(Major General, Commanding General 2nd Armored Division), United States vs. German Equipment, (Merriam Press, 2011),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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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윈 릭Edwin H. Reeg 중위, 소대장

판처파우스트를 사격해 본 경험이 있는데 미제 무기 중에서는 이것과 비교할 만한 것이 없다. 100미터 거리에서 명중을 시킬 수 있었다. 판처파우스트는 매우 정확도가 높고 사격하는 것도 쉬우며 5호전차와 야크트판터의 정면 장갑에 대해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명중만 하면 관통을 시킬 수 있었다. 개활지에서는 좋은 폭발 효과를 보여주었으나 지면이 질퍽한 곳에서는 45발 중 한발 꼴로 불발이 일어났다. 판처파우스트는 우리가 사용하는 바주카와 비교했을 때 파괴력이 강하지만 유효 사거리는 약간 짧고, 따로 정비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 무기는 발사하는 것이 쉽고 발사하고 나서 발사관을 버리면 된다. 아군도 판처파우스트와 유사한 무기를 지급받는다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제 바주카포의 발사관은 아군의 것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나은 점이 없다. 하지만 탄약은 훨씬 위력이 좋다. 미제 바주카포로는 관통하지 못하는 장갑도 독일제 바주카포로는 뚫을 수 있었다. 또한 훨씬 먼 거리에서도 관통을 보장할 수 있다.

ibid.,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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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롤드 실즈Harold A. Shields 중위, 제66전차연대 A중대

1945년 3월 2일 제66전차연대 2대대는 라인강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대대 목표인 독일의 피흘렌Fichlen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아군 중형전차 세대가(4호전차 차체에 장포신 75mm포를 탑재한) 적의 자주포 한대에 격파되었다. 내가 지휘하는 M24 경전차 소대는 800야드 거리에서 이 자주포에 사격을 가했다. 우리 소대는 총 25발을 발사했으며 대부분이 철갑탄이었다. 적 자주포의 경사진 정면장갑은 모든 철갑탄을 튕겨냈다. 제66전차연대 I중대의 76mm포를 탑재한 중형전차 몇대가 이 자주포에 사격을 가했지만 이들이 쏜 포탄 역시 튕겨나갔다. I중대가 적 자주포에 사격을 가한 거리는 600야드 정도였다. 적 자주포는 양 옆으로 건물을 끼고 있어서 측면을 공격할 수가 없었고 오직 정면에서만 사격을 할 수 있었다. 나는 다음날인 3월 3일에 이 자주포를 직접 살펴보았다. 철갑탄은 단 한발도 정면을 관통하지 못했다. 아군의 포탄은 정면장갑에 약간의 흠집만 내고 튕겨나갔다. 그리고 이 자주포가 격파한 세대의 아군 전차도 살펴보았다. 세대 모두 독일군 자주포가 쏜 한발의 포탄에 관통이 되었으며 이 중 한대는 포탑 측면에 맞은 포탄이 반대편까지 뚫고 나갔다.

1944년 11월 17일 제66전차연대 2대대는 독일의 에데렌Ederen을 확보하는 임무를 위해 푸펜도르프Puffendorf에서 공격을 개시했다. 에데렌으로 진격하던 중 아군의 M5A1과 M4의 접지압을 독일군의 5호전차와 비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에데렌에 진입할 때 내가 탄 전차는 5호전차가 지나간 자국 바로 옆으로 지나갔다. 나는 두 전차의 야지 기동능력을 비교해 보고 싶어졌다. 나는 전차에서 내려 판터 전차의 궤도 자국을 내 전차의 것과 비교해 봤다. 5호전차의 궤도자국은 지면에서 2인치 정도 파여 있었는데 내가 탄 M5A1 전차의 궤도 자국은 3.5인치에서 4인치 정도 파여 있었다. 그리고 M4 중형전차의 궤도 자국은 5인치에서 6인치 정도 파여 있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독일 5호전차의 무게는 45톤으로 내가 탔던 15톤 급의 M5A1 전차 보다 세배나 무거웠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M4 중형전차는 30톤 이다.

ibid., pp.5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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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맥퀼렌Robert V. McQuillen 소위, 제66전차연대 A중대

나는 1944년 8월 18일쯤에 엘뵈프Elbeouf 근교에서 1개 소대의 M5A1 전차를 지휘하여 (75mm포와 76mm포를 탑재한 M4 중형전차를 장비한) 제66전차연대 G중대의 측면을 엄호하고 있었다. 우리는 적의 6호전차 세대로 부터 사격을 받았고 아군의 중형전차 세대가 격파됐다. 이 중 두대는 전소되었다. 독일 전차를 발견하자 마자 아군 중형전차들은 대응사격을 실시해 두대를 퇴각시켰다. 적의 세번째 전차는 궤도가 벗겨져 승무원들이 버리고 달아났다. 아군의 M4 중형전차들은 이 버려진 전차에 약 400야드 거리에서 76mm포를 발사했다. 세발의 포탄이 튕겨나갔다. 나중에 살펴보니 76mm 포탄은 겨우 2인치 정도를 뚫어 정면장갑에 살짝 흠집만 낸 수준이었다.

ibid.,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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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크레이크래프트David O. Craycraft 중위, 제66전차연대 3대대

5호전차의 조준경은 M4전차의 조준경 보다 우수하다. 독일제 조준경은 훨씬 또렷하고, 배율 조절이 가능하며, 배율이 높다. 게다가 거리 측정 기능도 있다. 하지만 밀폐된 상태에서는 미국제 전차의 시야가 훨씬 우수하다. M4 전차의 포탑 선회 속도는 5호 전차 보다 두 배 이상 빨라서 아군 전차는 표적에 대해 훨씬 빨리 대응할 수 있다. 5호전차는 넓은 궤도와 현가장치의 특성 때문에 셔먼 보다 우수한 접지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신형 현가장치를 가진 M4A3E8의 등장으로 아군 전차의 접지력도 크게 향상됐다. 5호전차는 마력이 높은 엔진을 장착해 강력하다. 5호전차의 무게는 기동력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M4의 기동성이 5호전차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5호전차의 내부 탄약배치는 M4보다 나을게 없다.

M24전차는 M5 보다 훨씬 뛰어나다. 하지만 장갑이 약한건 마찬가지이다. 이 전차를 자주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이상의 평가를 할 수는 없다.

미제 반궤도 장갑차는 독일군의 것 보다 훨씬 우수하다. 하지만 독일제 장갑차는 더 날카롭게 선회할 수 있다. 양측의 반궤도장갑차는 장갑이 너무 얇아 탑승한 보병을 그렇게 잘 보호하지 못한다. 미제 반궤도 장갑차는 독일 장갑차 보다 탑승과 하차가 훨씬 쉽다. 전차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미제 2½톤 트럭은 독일제 트럭보다 훨씬 우수하다. 특히 캡 오버(Cap-over-engine) 형식의 트럭은 미제가 훨씬 많은 적재 공간을 가지고 있다.

미제 지프는 거의 완벽에 가깝다.

88mm포는 ‘최강의 포’로 통한다. 미제 90mm포 보다 관통력과 정확도가 높다. 미제 90mm포는 포구초속이 너무 낮다. 독일의 75mm포가 미제 76mm포 보다 우수한 이유도 동일하다.

미제 30구경 기관총은 우리가 가진 장비 중에서도 최고로 꼽을 만하다. 발사속도도 적절하다. 매우 잘 만들어졌으며 혹독한 환경에서도 신뢰할 수 있다. 아군의 50구경 기관총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우수하다. 대공용으로 탁월하다. 하지만 차량에 탑재하는 방식은 지상 공격에 부적절하다. 50구경 기관총은 경계 진지에서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독일제 기관단총은 아군의 소화기보다 훨씬 우수하다. 발사속도도 빠르고 정확도도 높다.

아군의 카빈은 탄걸림이 잦아 인기가 없다. 게다가 탄의 위력과 살상력까지 낮다. 톰슨 기관단총은 근접 전투에서 많은 장병들이 선호하는 무기이다. 발사속도도 양호하고 공격해오는 적 보병에 대해 높은 저지력을 가지고 있다.

독일군의 바주카포는 구경이 크고 관통력도 높다. 조준장치도 아군의 바주카포 보다 뛰어나다. 미제 바주카포 포탄은 불발율도 높다.

아군의 피복류는 현재 독일군이 착용하는 모든 피복류에 비해 우수하다. 과거 독일군의 엘리트 부대는 훌륭한 피복류를 지급받았지만 현재는 피복류의 질이 급락했다. 혹한기 작전에 유용한 피복류는 다음과 같다. 1) 구형 야전상의와 바지; 2) 덧신 형식의 방한화(Shoe pacs); 3) 모직 안감으로 만들어진 벙어리장갑; 4) 모직 모자와 신형 후드 등. 코트의 방한 성능은 좋지만 너무 거추장 스럽다. 그리고 기갑 병과에서 널리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하다.

독일제 쌍안경은 아군의 것 보다 특별히 우수하지 않다.

ibid., pp.7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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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브루스Thomas K. Bruce 소위, 중형전차소대 소대장

본인은 프랑스 전역에 오래 참전하지는 않았으나 적군과 아군의 장비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왔다.

개인적으로 독일 전차는 모두 아군의 M4 보다 압도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적 전차의 장갑은 아군 전차의 장갑 보다 훨씬 더 철갑탄을 잘 막아낸다. 아군 전차의 장갑이 독일 전차의 장갑 보다 나은 점 한가지는 고폭탄에 대한 방어력이 훨씬 높다는 점이다. 아군 전차의 장갑은 고폭탄을 맞을 경우 맞은 부위가 파이는 정도이지만 독일 전차의 장갑은 금이 가거나 깨져버리는 경향이 있다. 한번은 내가 지휘한 전차가 100야드 거리에서 지연신관을 장착한 75mm 고폭탄으로 4호전차의 포탑 전면 장갑을 완전히 관통한 일이 있다.

이 밖에 다른 대전차무기를 비교하면, 아군의 것은 독일제 보다 열등하다. 특히 바주카포는 독일제가 훨씬 우수하다. 본인은 직접 독일제 바주카포를 시험해 봤는데, M4 전차에 시험사격을 했을때 모든 부위를 관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밖에 대부분의 장비는 독일제가 미제에 비해 열등하다. 특히 독일군의 차량과 피복류는 아군의 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ibid.,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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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터 몽고메리Coulter M. Montgomery 중위, 제66전차연대

아군 전차의 조준경 조준선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배율이 충분치 않다. 신형 조준경은 구형에 비해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배율이 부족하다. 독일제 조준경은 렌즈의 품질이 우수한 듯 하다. 아군 전차의 페리스코프를 10배율이나 12배율로 만들수는 없는가? 페리스코프의 시야를 희생할 필요는 없지만 배율이 너무 낮다. 포수가 페리스코프를 사용하는게 너무 불편하다. 전차의 궤도도 넓어져야 한다. 신형 E8 현가장치는 기존의 현가장치 보다 훨씬 접지력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독일 전차의 접지력에는 미치지 못한다. 전차의 내부 구조에 대해서는 별 불만이 없다. 전차의 내부 구조는 아군 전차가 독일 전차 보다 훨씬 우수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76mm포를 탑재한 전차가 그렇다. 76mm포를 탑재한 전차는 75mm를 탑재한 전차 보다 훨씬 편하다. 전차병들의 고충을 아는 사람이 설계했다고 생각된다.

우리 부대에서는 T26 전차를 본 사람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전차가 올바른 방향으로 진보를 이룩했다고 생각한다. 신형 전차는 독일 전차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주포와 방어력을 갖췄다고 알고 있다.

기타 장비.

경전차. 75mm포를 탑재한 신형 경전차는 훌륭하다. 이 전차는 거의 모든 임무에 투입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M5는 전차로서 쓸만한 물건이 아니다. 독일군 경전차는 상대해 본 일이 없어서 아군의 경전차와 비교 평가할 수 없다.

반궤도장갑차. 아군의 것이 독일제 보다 우수하다. 하지만 독일제 보다 나아봤자 쓸데가 없다. 반궤도 장갑차는 접지력이 형편없고 방어력도 낮아 대부분의 적 화기를 막아내지 못한다.

트럭. 이 말을 하고 싶었다. 아군의 2½톤 트럭은 세계 최고의 트럭이다. 독일제 트럭보다 모든 면에서 우수하다. 아군의 지프도 마찬가지로 최고다.

아군의 소화기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다. 하지만 30구경 기관총의 총열 교체를 좀 더 쉽게 할 필요는 있다. 독일제 기관총은 총열을 순식간에 교체할 수 있다. 하지만 아군 기관총은 지속사격 능력과 정확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이왕이면 아군의 중화기도 좀 더 잘 만들수는 없었는가? 아군 화포, 특히 전차포의 포구초속이 좀 더 높았으면 한다. 독일군과 영국군은 더 많은 장약을 넣은 포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포를 만든다.

바주카포. 바주카포를 처음 개발한건 우리다. 그런데 이것 말고는 내세울 게 없다. 독일제 바주카와 비교하면 정말 형편없다. 위력 뿐만 아니라 명중율도 독일제가 높다.

피복류. 아군의 피복은 훌륭하다. 독일군의 군복보다 훨씬 실용적이다. 다만 일부 품목은 적군이 더 훌륭하다. 아군의 고글은 정말 저질이다. 독일제가 훨씬 좋다. 그리고 독일군의 동계 장비는 아군보다 우수한 것 같다.

ibid., pp.8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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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헌리John M. Hunley 소위, 박격포 소대장.

개인적으로 아군의 81mm 박격포는 보병 지원 임무에 있어서 독일제 81mm 박격포와 대등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갑부대의 화력 지원에 있어서는 독일제 120mm 박격포가 훨씬 유용하다고 확신한다. 기갑부대의 화력 지원을 위해서는 155mm 곡사포 수준의 사거리와 파괴력, 그리고 현재 사용되는 아군의 박격포 보다 훨씬 정확도가 높은 무기가 필요하다. 또한 개인적으로 자주박격포의 차대는 반궤도 장갑차 보다 중장갑을 갖춘 차량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경전차나 중형전차의 차대에 360도 회전이 가능한 포가를 올리면 좋을 것이다. 최근의 작전 처럼 평야 지대에서 박격포의 짧은 사거리로 인해 전차 부대를 근거리에서 지원해야 하는 경우 반궤도장갑차를 장비한 박격포 소대는 적의 직사 중화기에 극도로 취약했으며, 특히 마을이나 요새화된 거점을 우회해야 하는 경우 그런 위험이 있었다. 이런 위협을 극복하려면 중장갑을 갖춘 차대가 필요하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박격포와 포탄에 대해 평가를 하자면, 먼저 접촉신관을 장착한 M56포탄의 위력이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근접신관을 장착한 M43A1과 M56, M57 포탄도 적에게는 큰 위협이다. 만약 M56포탄에 접촉 모드와 지연 모드를 선택할 수 있는 신관을 장착하게 된다면 기존의 목적은 물론 다른 목적에도 사용할 수 있다고 본다. 박격포 소대를 완전 궤도 차량으로 편성하면 전차를 훨씬 잘 따라다닐 수 있으며 참호나 도랑 같은 장애물도 쉽게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ibid., pp.8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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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A. 루이스O. A. Lewis 중위

독일군은 무연화약을 사용하고 있어서 위치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아군의 전차포는 쏘자 마자 위치가 발각된다.

독일군이 사용하는 1인용 천막은 위장무늬가 들어가 있고 접어서 판초로도 사용할 수 있어 아군이 사용하는 것 보다 좋다.

ibid.,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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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세이델Frank Seydel Jr., 소위, 소대장.

본인은 3월 3일 독일 보징호벤Bosinghoven에서 약 600야드 정도의 거리에서 두대의 5호전차와 교전했다. 이때 나는 76mm포 탑재 전차를 타고 있었고 초탄은 피모철갑탄(APC)을 썼다. 초탄은 명중했으나 그대로 튕겨나갔다. 500야드 거리에서 다시 한발을 더 발사해 명중한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음에 철갑탄과 고폭탄을 합쳐 10발을 더 발사하고 나서야 독일 전차가 화염에 휩싸였다. 이때의 경험으로 독일군의 전차는 우수한 장갑을 가졌지만 포탑 선회속도가 형편없이 느리다는 점을 알게 됐다. 적 전차를 격파한 뒤 내 전차를 좀 더 유리한 위치로 이동시켜서 불타는 적 전차를 관찰한 결과 이런 결론을 얻었다.

ibid.,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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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쇼펠William L. Schaufel 중위, 중대장

1945년 2월 27일 독일 오버아모트Oberamot에서 도로를 봉쇄하고 있던 내 중대의 제2소대는 약 3,600야드 거리에서 6호전차 두대의 공격을 받았다. 셔먼 두 대가 격파됐다. 우리는 초속 3,400피트 76mm 고속철갑탄(HVAP)을 7발 발사했으나 모두 경사장갑에 튕겨나갔다. 6호전차의 우수한 광학장비와 포구초속의 높은 주포 때문에 아군은 화력에서 열세였다. 타이거 전차에 연막탄을 발사하자 적은 철수했다. 독일군은 연막을 치는 것이 포병이나 전폭기에 목표물을 지시하는 행동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5호전차의 경우 고속철갑탄은 1,500야드 거리에서 효과가 있다. 아군 전차는 5호전차 보다 포탑 선회속도가 빨라서 적의 측면으로 우회기동을 할 때 유리하다. 우리는 4호 자주포의 측면으로 기동한 뒤 800야드 거리에서 76mm포로 사격을 해 이를 격파했다. 적 자주포는 회전포탑이 없는게 단점이다. 이 전투는 1944년 11월 16일 독일의 플로버리히Floverich에서 있었다. 이때 우리는 4발의 피모철갑탄과 지연신관을 장착한 고폭탄을 사용했다.

아군 전차는 차고가 높아서 적에게 훌륭한 목표물이다. 그리고 방사형 엔진은 출력도 낮은데다가 정비에 많은 손이 간다.

ibid.,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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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럴 오일러Ural E. Oyler 중위, 소대장.

독일군의 포구초속이 높은 전차포와 M4 중형전차의 75mm 주포를 비교하면 아군의 전차포는 실망스럽다. 과거 많은 전투에서 아군은 우리와 동일한 구경의 전차포를 사용하는 적과 교전했다. 독일 우박Uback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아군은 포구초속이 높은 75mm 포의 공격을 받아 항공지원을 받을 때 까지 전진을 할 수 없었다. 만약 아군도 독일 전차를 격파할 수 있는 포구초속이 높은 전차포가 있었다면 진격이 지체될 일도 없었을 것이며 전투 초반에 피격된 전차를 제외하고는 손실도 없었을 것이다.

독일군과 미군이 사용하는 탄약을 비교평가하면, 먼저 우유병 처럼 생긴 탄피를 도입해서 포구초속을 더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군이 사용하는 75mm 탄약은 독일군의 75mm 탄약 보다 형편없다. 마찬가지로 아군의 76mm 철갑탄의 관통력도 높여야 한다.

아군 전차의 고무패드가 달린 궤도와 독일 전차의 궤도를 비교해보면 아군의 모든 궤도차량의 궤도폭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일 기갑차량과 교전을 했을때 아군 전차가 연약한 지반에서는 독일 전차를 따라잡지 못하는 경우를 숱하게 목격했다.

신형 M4A3E8 전차는 많은 개량이 이루어져 훌륭한 성능을 발휘하고 있다. 차체 정면 장갑과 포탑 측면 장갑이 여전히 약하다는 점을 빼면 전차병들이 바라던 바를 적용하고 있다. M4A3E8에 고속철갑탄(HVAP)를 대량으로 보급한다면 독일 전차를 능히 대적할 수 있다고 본다.

ibid., pp.9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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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런스 스워드Clarence R. Sward 소위, 소대장.

1944년 11월 17일 독일 푸펜도르프에서 게레온스바일러 방면으로 공격하던 중 M4 전차 1개 중대가 나의 경전차 소대를 앞서 철길을 건넜다. 아군 전차들이 400야드 정도 전진했을때 독일군이 사격을 개시했고 아군 중형전차들도 응사했다. 20분 동안 중형전차 9대와 경전차 1대가 격파됐지만 독일 전차는 단 한대도 격파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목격한 적 차량은 전차 혹은 자주포 네대였다.

ibid.,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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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라록William E. Larock 소위, 소대장.

1944년 11월 16일 내가 탄 M5A1 경전차는 40야드 거리에서 독일군의 바주카포 공격을 받았다. 이 공격으로 직경 1인치 정도의 구멍이 뚫렸고 파편이 차내로 튀어들어왔다. 피격된 부위는 차체 좌측면 후부였다. 어쩌면 최소 두명의 전사자가 발생했을지도 모르지만, 조종수가 평소 피격된 위치에 외투를 둘둘 말아서 보관하고 있었던 덕분에 사망자가 없었다. 하지만 이 공격으로 세명이 부상을 당해 2개월간 병원 신세를 져야했다. 차체 내부에는 큰 피해가 없었다.

ibid.,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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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코스토우Peter Kostow 중위, 제67전차연대 C중대 소대장.

50야드 거리에서 독일군 8명을 발견하고 37mm 산탄(Canister)를 발사한 일이 있다. 독일군은 포탄의 발사음과 폭발에 겁을 먹고 항복했다. 하지만 포로들은 상처 하나 없었다.

경전차를 몰고 적에 대해 정면 공격을 감행한 일이 있었다. 적의 5호전차 2대를 만나 수많은 37mm 철갑탄을 발사했지만 무력했다. 적은 우리 경전차 두대를 격파해 화염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우리는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ibid.,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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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화이트James A. Whiter Jr., 중위, 제67전차연대 중대장.

본인이 소대장 보직에 있었을 때의 일이다. 독일의 게레온스바일러 인근에서 아군의 좌측으로 우회하려는 5호전차 한대를 발견하고 소대의 화력을 집중해 공격했다. 800야드 거리에서 사격을 개시해 적 전차가 후퇴하도록 했다. 교전을 계속하면서 거리가 1500야드까지 벌어졌다. 나의 소대는 75mm M4전차 3대와 76mm M4전차 2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내가 직접 목격한 명중탄만 해도 75mm와 76mm를 합쳐 10발이었다. 5호전차는 엄폐가 가능한 지점에 도달하자 내가 탄 차량에 명중탄을 날렸고 내 전차는 관통당해 화염에 휩싸였다. 개인적으로는 포구제퇴기가 달린 M4A3E8이 여지껏 내가 본 아군 차량 중 최고라고 생각한다. 고속철갑탄을 대량으로 보급받을 수 있다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

ibid.,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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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오스본Thomas H. Osborne 중위, 제67전차연대 I중대 부중대장

2500야드 거리에서 적 6호전차를 목격한 일이 있다. 적 전차는 측면을 우리쪽에 드러내고 있었고 두개의 수로가 지나가는 능선 위에 호를 파서 차체를 숨기고 있었다. 다른 부대가 전진하려고 했으나 두 대의 전차만 잃고 후퇴해야 했다. 적 전차는 능선 위에서 하루 하고도 반나절을 버틴 끝에 탄약이 소모되어 후퇴했다. 이때 내가 지휘한 소대는 적의 6호전차를 몰아내기 위해 수많은 철갑탄, 연막탄, 고폭탄을 발사했다. 우리 소대만 최소한 75mm 철갑탄 10발에서 15발 정도를 명중시켰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도 전진할 수 없었고 적 전차의 승무원들도 아군의 공격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 같다.

ibid., p.109.

2017년 6월 13일 화요일

만헤이 전투에 대한 뻘글


근자에 먹고사는 문제로 업데이트가 전혀안되고 있어 민망하군요. 블로그에 밀덕썰 푸는게 소소한 삶의 재미 중 하나인데 말입니다.

예전에 어디에 투고하려고 썼던 뻘글 한 편 투척합니다. 만헤이 전투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원래 연재하려 했던 곳의 특성상 자료출처나 주석은 없습니다. 뭐, 전부 다 제 블로그에서 오래전에 했던 이야기이니 이곳을 꾸준히 들르신 분들이라면 지겨우시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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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크만의 기묘한 모험


독일군의 야심찬 아르덴느 공세가 미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좌절되어 가고 있던 1944 12 24, N15도로가 지나가는 교통 요충지인 만헤이(Manhay)가 독일 무장친위대 제2기갑사단 다스 라이히(Das Reich)’에 점령됐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편찬된 미육군의 공간사에서는 이날 밤 독일군이 노획한 셔먼 전차를 앞세우고 미군으로 위장해 만헤이를 점령했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독일측 참전자들의 증언이 공개되면서 만헤이 전투는 미육군의 설명과는 다르게 전개됐음이 밝혀졌다. 이날 만헤이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아르덴느 전투가 시작될 무렵 다스 라이히사단은 제6기갑군의 예비대로 대기하고 있었다. 1944 12 19, B집단군 사령관 발터 모델 원수는 예비대로 대기하고 있던 다스 라이히사단을 투입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 무렵 독일군을 괴롭히던 고질적인 연료부족 때문에 다스 라이히사단은 투입 명령을 받고도 이동을 할 수 없었다. ‘다스 라이히사단에 대한 연료보급은 12 22일 오전이 지나서야 마무리 되었다. 보급을 마친 다스 라이히사단은 N15 도로를 따라 북상하다가 바하끄 쁘헤듀흐(Baraque Fraiture)에서 미 82공수사단 325글라이더 보병연대 2대대와 여기에 배속된 미 3기갑사단 32전차연대 3대대 소속의 1개 전차소대의 저항에 부딛혔다. ‘다스 라이히전차연대 7중대의 4호전차와 미 32전차연대 3대대의 셔먼 전차간에 전차전이 벌어졌다. 독일측은 4대의 4호전차를 잃었고 미군은 11대의 셔먼전차와 다수의 차량을 상실하고 바하끄 쁘헤듀흐에서 퇴각했다. 그러나 23일부터 24일까지 미육군항공대의 대대적인 공습으로 만헤이를 목표로 한 독일군의 진격은 저지되었다. 일부 독일 전차병들은 끊임없는 공습으로 공황상태에 빠져 전차를 버리고 도망치기까지 했다. 여기에 바하끄 쁘헤듀흐를 탈환하기 위해 미 3기갑사단과 82공수사단이 병력을 증원하면서 독일군은 더욱 곤경에 빠졌다.

결국 독일군은 미군의 공습을 피해 야습을 감행하기로 결정했다. ‘다스 라이히전차연대장 루돌프엔셀링(Rudolf Enseling) SS중령은 만헤이 방면에 대한 야습에 예비대로 대기하고 있던 1대대 4중대를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4중대는 경험이 풍부한 장교였던 오르트빈 폴(Ortwin Pohl) SS대위가 지휘하고 있었다. 폴 대위는 우수한 지휘관이자 전차 에이스였다. 그는 노르망디 전선에서 12대의 미군 전차를 격파한 바 있었다. 그리고 그의 부관이 바로 유명한 전차에이스 에른스트 바르크만(Ernst Barkmann) SS상사였다. 바르크만 상사는 노르망디 전투에서 큰 활약을 했으며 특히 쿠탕스 가도의 전투로 명성을 떨쳤다. 1소대는 아르덴느 공세 직전 임관한 크노케(Heinrich Knocke) SS소위가, 2소대는 비스만(Alfred Wissmann) SS소위가, 3소대는 경험이 풍부한 부사관인 프란츠 프라우셔(Franz Frauscher) SS원사가 지휘하고 있었다. 각 소대는 모두 5대의 판터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중대본부는 폴 대위의 402호차와 바르크만 상사의 401호차 2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또한 4중대를 지원하기 위해 만프레트 하게샤이머(Manfred Hargesheimer) SS중위가 지휘하는 2중대 소속의 판터 6대가 4중대에 배속됐다. 그리고 전차를 지원하기 위해 제3SS기갑척탄병연대 16중대(공병중대)가 배속됐다.

1638분에 4중대의 전차들은 오데뉴(Odeigne)에 집결해 해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공격의 선봉에 서는 것은 베테랑인 프라우셔 원사가 지휘하는 3소대였다. 3소대의 뒤에는 중대본부가 따랐고 그 뒤에는 2소대, 그리고 최후위에는 경험이 부족한 1소대가 배치됐다.
한편 4중대의 정면에는 미 3기갑사단의 올린 브루스터(Olin F. Brewster) 중령이 지휘하는 TF브루스터가 배치되어 있었다. TF브루스터는 3기갑사단 32전차연대 소속의 3개 전차소대, 36기계화보병연대 I중대 병력 일부, 82공수사단 509강하연대 병력 일부, 그리고 75보병사단 290보병연대 C중대 등 잡다한 부대로 급조된 전투단이었다.

오후 10, 예정대로 공격이 개시됐다. 만헤이 방면으로 북상하던 4중대는 곧 TF브루스터 소속의 전차들과 격돌했다. 짧지만 격렬한 전투가 전개됐고 프라우셔 원사의 판터가 피격됐다. 미군은 셔먼 전차 두대를 잃고 북쪽으로 후퇴했다. 4중대는 잠시 진격을 멈추고 재정비에 들어갔으며 프라우셔 원사는 지휘를 위해 전차를 바꿔탔다.

그런데 혼란의 와중에 상황 전달을 받지 못한 바르크만 상사는 중대가 잠시 진격을 멈췄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단독으로 북상했다. 바르크만 상사는 자신이 낙오됐다고 생각한 나머지 아군을 만날 때 까지 계속 북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군이 아니라 만헤이를 방어하고 있던 미 7기갑사단 A전투단 40전차대대 소속의 셔먼 전차였다. 셔먼 전차장 마티어스(Mathias) 하사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바르크만의 판터를 아군의 셔먼 전차로 착각했다. 남쪽에는 아군이 배치되어 있었으니 당연한 것 이었다. 바르크만 상사는 마티어스 하사의 셔먼 전차를 프라우셔의 판터라고 착각해 그 옆에 정지하고 말을 걸었다. 마티어스 하사는 갑자기 독일어가 들리자 당황해서 포탑 안으로 들어가 해치를 잠궈버렸다. 바르크만도 상대의 반응에 당황했다. 옆에 있는 전차를 다시 살펴보니 후미등이 미군의 붉은 색이 아닌가! 판터의 후미등은 녹색이었다. 당황한 바르크만은 인터폰에 소리를 질렀다.

포수! 옆에 있는 전차는 적 전차다! 쏴라!(Richtschütze! Panzer neben uns ist ein Feindpanzer! Abchießen!)“

사수인 호르스트 포겐도르프(Horst Poggendorf) SS병장도 당황해서 소리를 질렀다.

쏠 수가 없습니다! 포탑을 돌릴 수 없어요!(Abschießen geht nicht! Turmschwenkwerk klemmt!)“

두 대의 전차가 너무 가까이 붙어있다 보니 판터의 포신이 걸려서 포탑을 회전 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이때 판터 조종수인 그룬드마이어(Grundmeyer) SS상병이 순발력을 발휘했다. 포탑을 돌릴 수 있도록 판터를 재빨리 후진 시킨 것 이었다. 포겐도르프 병장도 때를 놓치지 않고 셔먼을 격파했다. 놀랍게도 마티어스 하사를 비롯한 셔먼의 승무원들은 살아남았는데 근거리에서 발사된 판터의 포탄이 셔먼의 후부까지 관통해 버리는 바람에 내부에는 피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티어스 하사는 부상을을 입은 포수를 구출해 탈출했다.

이제 바르크만은 자신이 적진 한가운데에 고립됐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는 이 상황에서 그대로 전진하는 것을 택했다. 마티어스 하사의 셔먼을 격파하고 이동하던 바르크만의 앞에 제814대전차대대 B중대 소속의 M10 구축전차 두 대가 나타났다. 이들도 바르크만의 판터를 아군의 셔먼으로 오인해 사격을 가하지 않았다. 포겐도르프는 신속하게 사격을 가해 두 대의 M10을 격파했다. 바르크만은 미군 전차가 계속해서 나타나자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이동하기로 했다. 다시 전진하던 바르크만의 앞에 제40전차대대 C중대 소속의 셔먼 아홉대가 나타났다. 바르크만은 천연덕스럽게 계속 이동했고 미군들은 바르크만의 전차를 아군 전차로 생각해 한 발의 사격도 가하지 않았다. 바르크만은 그곳을 벗어나 만헤이 교차로에 도착했다. 바르크만은 원래 그랑므닐 방면으로 가려고 했으나 셔먼 전차 세대가 그랑므닐 방향에서 오는 것을 보고는 충돌을 피하기 위해 그대로 만헤이로 돌입하기로 했다. 만헤이는 철수를 준비하는 미군 차량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미군은 철수 준비로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바르크만의 판터가 만헤이에 돌입했을 때도 한동안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정체를 들키지 않을 수는 없었다. 미군들은 갑자기 만헤이 한 복판에 독일 전차가 나타난 것을 깨닫고 혼란에 빠졌다. 바르크만은 앞에서 다가오던 지프를 그대로 깔아뭉갠 뒤 전속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미군 운전병들도 질주하는 판터를 피해 차량을 모느라 우왕좌왕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미군 전차들이 바르크만의 셔먼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한대의 M5 스튜어트가 판터의 앞을 막았으나 바르크만의 판터는 그대로 스튜어트를 들이받고 전진했다. 그리고 포탑을 6시 방향으로 회전시켜 추격해 오는 미군 전차들을 차례대로 격파하기 시작했다. 바르크만의 판터는 만헤이를 벗어나 마을 외곽의 숲으로 달아났다. 바르크만은 혼란에 빠진 미군이 추격을 멈춘 것을 확인한 뒤 숲 속에 숨기로 했다. 판터의 엔진이 이상을 일으켜 더 이상 이동하는 것이 위험했다.

바르크만이 만헤이에서 좌충우돌 하는 동안 전열을 가다듬은 4중대는 다시 전진하기 시작했다. 이때 미 40전차대대 C중대 소속의 셔먼 한 대가 4중대의 판터들을 향해 사격을 퍼부었다. 프라우셔는 즉시 조명탄을 발사한 뒤 이 셔먼을 격파했다. C중대의 나머지 셔먼 전차들도 순식간에 격파됐다. 미군 전차병들은 대부분 전차 밖에 나와 휴식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완전한 기습이었다. C중대를 전멸시킨 4중대는 만헤이로 돌입했다. 그러나 바르크만이 이미 한바탕 난리를 피운 뒤라 미군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또 다시 프라우셔의 판터가 셔먼의 근거리 사격에 피격됐다. 프라우셔의 뒤를 따르던 판터가 즉시 반격을 가해 셔먼을 격파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프라우셔와 승무원들은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프라우셔는 다시 전차를 갈아타고 지휘를 해야 했다.

4중대는 만헤이를 점령한 뒤 다시 방향을 돌려 그랑므닐 쪽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628대전차대대 소속의 M10 구축전차들이 포격을 가해 3소대의 베테랑 전차장인 오스카 피셔의 판터가 격파되고 피셔도 전사했다. 피셔의 판터는 도로를 막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군은 공격 기동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랑므닐을 둘러싸고 포격전이 전개되는 와중에 4중대장 폴 대위가 부상을 입고 후송됐다. 폴 대위의 중대장 차량은 크노케 소위의 포수가 인계했다. 중대장 차량은 만헤이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피셔의 판터를 우회하는 와중에 판터 네 대가 미군의 대전차 지뢰를 밟고 기동불능이 됐다. 4중대의 공격이 난관에 부딛혔다. 4중대는 미군의 방어를 물리치고 그랑므닐 서쪽의 에흐제(Erezze)에 도착해 다시 재정비에 들어갔다. 폴 대위가 후송됐기 때문에 4중대에 배속되어 있던 하게샤이머 중위가 지휘권을 인계받았다. 그런데 하게샤이머 중위도 낙오된 미군의 총격에 어깨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다. 결국 4중대의 간부들은 다시 그랑므닐로 후퇴해 방어태세를 갖추기로 결정했다.

12 24일 밤의 전투로 7기갑사단 A전투단은 21대의 전차를 잃었고, 40전차대대 A중대장 앨런(Malcolm O. Allen) 대위가 포로가 되고 D중대장 휴즈(Walter J. Hughes) 대위가 전사하는 등 420여명의 인명 손실을 입었다.

한편, 숲속에 숨어있던 바르크만은 상황이 정리된 것으로 보이자 다시 만헤이로 돌아왔다. 만헤이에는 중대장의 판터가 대기하고 있었다. 바르크만은 중대장차의 임시 전차장과 상의를 한 뒤 건물 사이에 전차를 숨기고 방어 태세를 취하기로 했다. 12 25일 오전, 미군은 만헤이를 탈환하기 위해 7기갑사단 31전차대대 B중대를 투입했다. B중대 소속의 셔먼 다섯대는 만헤이를 향해 전진하다가 바르크만을 비롯한 4중대 본부 판터 두대의 포격으로 전멸했다. 잠시 뒤 올프(Emerson Wolfe) 대위가 지휘하는 본대의 셔먼 10대가 도착했으나 앞서 투입된 선발대가 전멸한 것을 보고는 공격을 머뭇거렸다. 만헤이 탈환을 지휘하기 위해 도착한 7기갑사단 B전투단장 브루스 클라크(Bruce Clark) 준장은 올프 대위에게 즉시 공격하라고 명령했으나 올프 대위는 판터가 매복하고 있는 상황에서 엄폐물 없는 개활지로 돌격하는 것은 불리하다고 설명했다. 클라크 준장은 올프 대위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해 공격 명령을 취소했다. 한편 그랑므닐 방면을 방어하고 있던 4중대의 주력은 TF맥조지(McGeorge) 소속의 셔먼 전차 17대와 교전해 15대를 격파하는 피해를 입혔다.


미군은 만헤이와 그랑므닐을 직접 공격하는 대신 12 25일부터 27일까지 8개 포병대대를 동원해 포격을 퍼부었다. 여기에 미육군항공대가 가세해 만헤이-그랑므닐의 독일군은 옴싹달싹 할 수 없었다. 크노케 소위의 411호차가 미군의 포격으로 격파됐다. 4중대는 포격이 뜸해진 25일 밤에 만헤이를 버리고 남쪽으로 철수했다. 바르크만의 대담한 모험으로 독일군은 만헤이를 비교적 쉽게 점령할 수 있었으나 전쟁을 운으로만 치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바르크만의 모험은 제2차 세계대전의 특이한 일화로만 남았다.

2017년 4월 11일 화요일

주취폭력-3


주취폭력
주취폭력-2


 "마을에는 흥남서 철수해온 미병(美兵)들이 들어서 여러가지 불안한 공기를 자아내고 있다. 부흥동과 치일동에서 부녀를 강간한 사건이 생겼고 아랫마을에는 여자를 내어주지 않는다 해서 무고한 백성을 쏘아 죽인 사건이 생겼다. 젊은 여자들은 모두 산중으로 피란가고 있다.

 낮에 희준의 집에 미군이 왔다는 급보가 있어서 나가보았더니 술취한 병정 둘이 바케츠에 막걸리를 하나 가득 담아가지고 와선 혼자 있는 종수(從嫂)씨에게 먹으라고 자꾸 권하고, 내가 가니 내 앞으로 술 바케츠를 들이밀고 먹으라기에 좀 먹는 시늉을 해보이고 차워서 많이는 먹지 못하겠다는 거며, 이 집은 여염집이니 나가달라는 말을 했너니 "이놈, 너는 인민군이 아니냐, 이런 놈은 죽여버려야 되겠다"하고 총을 내 가슴패기에 들이대어서 절그럭거리고 탄환을 잰다. 그의 혀 꼬부라진 취한 목소리에 탄환을 재는 소리가 겹쳐져서 가슴이 섬찟하였으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국립대학의 교수다" 했더니 다른 한놈이 그 총을 빼앗아 들고 함께 나가버린다.

 이런 외군(外軍)이라도 제발 오래오래 계셔주시옵서서 하고 비대발괄해야할 대한민국의 처지다.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도록 인민공화국이 만들어버린 것이다. 아아, 어디에 가면 진정한 우리의 조국이 있을 것인가.

서울대학교 김성칠 교수의 1950년 12월 28일 일기

김성칠 지음/정병준 해제, 『역사 앞에서: 한 사학자의 6ㆍ25일기』 (개정판, 창비, 2009), 321~322쪽

2017년 4월 9일 일요일

다부동 전투당시 북한군 기갑차량 손실원인

흥미로운 자료 하나를 올려봅니다.


이 표는 다부동전투가 끝난 뒤 미 1기병사단 방어구역에서 발견된 북한군 전차와 자주포의 잔해를 분석한 결과를 정리한 겁니다. 조사는 두 차례 이루어졌는데 재조사 결과 손실원인이 바뀐 경우가 몇건 있습니다. 작전연구에서 장비 손실원인을 추정하는 어려움을 잘 보여주는 듯 합니다. 2차 조사에서 결론이 바뀐 것이 19건 중 12건이란 점은 꽤 흥미롭습니다. 한차례의 조사만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 오류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것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잔해를 바탕으로 손실원인을 추정하는 것은 꽤 어렵습니다. 지난번에 소개했던 영국군의 보고서 “1944년 6월 6일 부터 8월 31일까지 독일 전차의 손실 원인에 대한 분석”을 보면 영국군은 분석 대상이 될 전차의 잔해도 주의깊게 선정해서 유기된 차량에 사격한 흔적으로 판정되면 샘플에서 제외하기까지 합니다.


표. 다부동 지구 전투에서 북한군 기갑차량의 손실원인
차종
1차조사결과
(50.9.27)
2차조사결과
(50.10.11)
비고
SU-76
야포(확실)
승무원이 유기(확실)
차량번호 1324
SU-76
-
야포(추정)

SU-76
항공폭탄(추정)
야포(확실)

T-34/85
승무원이 유기(추정)
승무원이 유기(확실)
바주카포 피격흔
T-34/85
야포(추정)
90mm전차포(확실)
차량번호 328
T-34/85
항공기(추정)
90mm전차포(확실)

SU-76
전차포(추정)
3.5인치 바주카(확실)

T-34/85
항공기 로켓 또는 야포(추정)
네이팜탄(확실)

SU-76
야포 또는 전차포(추정)
90mm전차포(확실)
차량번호 13XX
SU-76
야포 또는 전차포(추정)
90mm전차포(확실)

T-34/85
추정불가
90mm전차포(확실)

T-34/85
추정불가
네이팜탄(확실)
차량번호 320
90mm 관통흔
SU-76
추정불가
박격포 또는 야포(추정)

SU-76
추정불가
승무원이 유기(확실)

SU-76
기계고장(추정)
승무원이 유기(확실)
차량번호 1326
SU-76
항공기 로켓(추정)
-

T-34/85
네이팜탄(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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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34/85
네이팜탄(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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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34/85
네이팜탄(확실)
-

(Robert J. Best, ORO-T-261, The Structure of a Battle: Analysis of a UN-NK Action North of Taegu, Korea, September 1950(1954. 1. 20), RG550 Records of United States Army, Pacific, Entry A1-2-A Organizational History Files Box 105, pp.368~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