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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19일 목요일

야당의 올바른 자세???

60년대 잡지를 읽다가 재미있는 구절이 있어서 소개해봅니다. 1965년 초 한일회담 타결이 가시화 된 시점의 이야기 입니다.

야당지도자들은 한일회담에 대하여 두가지 전략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첫째는 한일회담은 어차피 타결되어야 하는 것인데 국민의 반일감정에 비추어 타결한 정부는 치명상을 입는다. 그러므로 적당히 반대한다는 명분과 기록만 남겨두고 박(정희)정권으로 하여금 타결하게 하자는 것인데 지금 몇몇 재야정치인은 이러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둘째는 이번의 한일교섭은 한국측에 매우 불리한 것이어서 극한투쟁을 해서라도 반대해야 한다, 그 반대투쟁에 국민의 반일감정이 가세하면 현정권을 아주 무력하게 거세하거나 또는 더 나아가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것으로 민정당 주류에서 작년에 그와같은 전략을 따랐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한일교섭이 대단원을 향해 쾌속으로 달리는 이때 야당측이 어떤 전략을 택하고 있는지가 분명치 않다. 현실이 지나치게 앞질러 가고 있으니 둘째의 전략을 택할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첫째의 전략에 만족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南載熙*, 「剩餘價値만 남기는 政治」, 靑脈 第7號(1965. 4), 15쪽

* 당시 조선일보 문화부장

오늘날의 야당 또한 민감한 일이 발생한다면 위의 두가지 중 한가지 테크를 타겠지요. 이래서 야당 노릇 하는게 쉽다는 이야기가 나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09년 10월 18일 일요일

한미관계에 대한 어떤 논평

최근 이글루스에서 한일회담과 관련된 토론이 진행중입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논쟁거리여서인지 좋은 글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저는 특히 번동아제님의 '한국이 원하는 돈을 받지 못한 이유'를 가장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번동아제님께서는 이 글에서 한일협정이 진행되던 과정의 국제적 정세와 당시 한국이 처한 한계점에 대해 명료하게 정리를 해 주셨는데 저 또한 이 글의 주된 논지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저도 뭔가 사족을 조금 달아볼까 했는데 생각해 보니 한일협정과 관련된 문서는 주로 이승만 정부 시기에 이루이전 협상에 대한 문서만 조금 읽었는지라 박정희 정부 시기의 한일협상에 대해서는 마땅히 적을 만한 것이 없더군요;;;; 대신 당시 한일협정 문제로 고조된 반미/반일감정을 경계하는 보수적인 지식인들의 견해를 보여주는 글을 한 편 소개해 볼까 합니다.

당시 서울대 문리대 교수로 재직중이던 박준규(朴俊圭)는 시사잡지인 청맥 1965년 1월호에 「條約協定으로 본 韓美關係」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습니다. 이 글의 결론부분에서는 당시 한일협정 체결문제로 격앙된 민족감정을 다음과 같이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전략)

이상에서 몇 가지 주요 조약과 협정을 통하여 한미관계를 고찰하였다. 결과적으로 느껴지는 것은-적어도 조약 및 협정의 조문을 통해서는- 과연 우리는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마땅히 받어야 할 대접을 받고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그 다음에 느껴지는 것은 대체로 미국은 한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소극적이고 회피적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 문제를 하나의 가외(加外)의 부담으로 생각하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의아심이다. 그리고 최근의 미일관계를 조감할 때 미국의 한국과 일본에 대한 비중의 격차가 너무나 현격하다는 비애감마저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느낌을 어떻게 승화시키고 한미관계를 어떻게 조정해나가느냐가 한국의 당면한 과제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한미관계를 국가대 국가의 외교관계로서 고찰할 때 우리는 미국에 대하여 경우에 따라서는 지나친 기대를 걸고 있는것이 아닌가를 재삼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국제사회란 도덕사회도 자선사회도 아니며 그곳에서는 '힘'의 서열에 따라서 응분의 지위가 규정되며 각자의 지위에 따라서 응분의 대우를 받기 마련이다. 일본이 한국보다 월등한 비중의 대우를 미국으로부터 받고 있는 것도 그러한 원리로 부터 연유하는 것이며 어느 의미에서 한국은 미국의 대우를 탓하기 전에 스스로의 무력함을 한탄해야 할 입장인지도 모른다.

일본이 받고있는 정도의 대우를 미국으로부터 받지 못한다고 반미적 감정에 흐른다거나 한미관계의 역사적 의의를 망각하고 미국 이외의 다른 강국(예컨데 일본)과 새로운 기축(基軸)관계를 형성하려고 덤벼드는 것은 모두가 '한국의 국가이익'에 배치되는 처사라고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한반도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2차대전 말기에 한국을 분점(分占)하게 된 것은 대일전쟁 종결을 위한 전략적 고려의 결과였으며 한반도에 항구적으로 고착할 의도를 반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미국의 대한정책은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지만 한미관계의 기축이 변동할 리는 없을 것이다.

혹자는 이것을 대미일변도니 사대주의니 하고 비판할는지도 모르나 세계정치의 현세하(現勢下)에서 소위 중립국가를 제외한 국가로서 미국 혹은 쏘련과의 기축에 크고 작고간에 의존하지 않는 나라가 몇개나 되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영국, 서독, 일본 등은 말할 필요도 없고 '드골'의 프랑스가 큰소리 칠 수 있는 것도 역시 미국 세력의 배경하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한국처럼 미국의 전쟁처리 과정에서 탄생한 나라가 대미관계를 국가 이익의 기축으로 삼는것은 자명의 이치라 하겠다.

(후략)

朴俊圭,「條約協定으로 본 韓美關係」, 靑脈 第5號(1965.1), 82~83쪽

지금은 이 당시보다 사정이 많이 좋아졌지만 큰 틀은 유지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입니다. 물론 '민족감정'에 입각해서 본다면 당시 협상은 굴욕적인 면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것은 어쩔수 없는 당시의 국제적 역학관계가 그대로 반영된 것 이었습니다. 우리가 강화협상에 승전국의 지위를 가지고 참여할 수 있었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수는 없었지요.

사실 논쟁의 시발점(?) 이었던 슈타인호프님의 글이나 번동아제님의 글은 어디까지나 당시 협상이 진행된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자 하는 글임에도 불구하고 필요이상으로 흥분하는 분들이 보이는 것 같아 구경하는 입장에서 약간 난감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1964년이 아닌데 말입니다.

잡담하나. 한일협정관련문서가 공개된 뒤 동아일보에서는 이 협정 문서 전체를 PDF로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한일회담 관련 공개 문서 全文 다운 받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