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자주 울궈먹는 러시아 군사사 연구자인 Reese는 건국 초기 소련의 장교집단을 크게 세 그룹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보리스 샤포쉬니코프”로 대표되는 “순수한 전문 군인 집단”입니다. 리즈는 이 집단에 바실레프스키와 충격군 이론의 제창자인 트리안다필로프, 스베친 등을 포함 시키고 있습니다. 이 집단의 특징은 주로 짜르 체제에서 영관급 정도의 계급에 고급 군사교육을 받았으며 정치적 성향을 가지지 않아 군대는 당의 도구라는 관점에 충실하고 당의 의사결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것 입니다. 이 중 스베친은 공산당에 가입은 하지만 당 내에서 어떤 요직도 노리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 “미하일 투하체프스키”로 대표되는 “준 전문 군인 집단”입니다.
리즈는 이 준 전문 군인 집단은 공산당에 가입한 비중이 높으며 당의 정치 활동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투하체프스키는 당과 국가 정책에 영향력을 끼치려는 시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 덕에 레닌그라드 군관구로 좌천(?) 당하기도 하고 끝내는 골로 가지요.
이 집단에는 야키르, 초창기 전차 개발에 공헌한 칼렙스키, 아이데만, 우보레비치 등이 포함됩니다. 이들 집단의 특징은 1차 대전 당시 주로 부사관, 위관급 장교로 참전했으며 정치와 신기술에 관심이 많았다는 점 입니다. 혁명 직후 공산당에 가입한 경우가 많으며 투하체프스키와 우보레비치, 야키르는 당 중앙위원까지 올라가지요. 칼렙스키는 나중에 통신위원장으로 정부 요직을 차지합니다.
세 번째 집단은 보로실로프로 대표되는 “비 전문 군인 집단”입니다.
이 집단은 주로 스탈린이라는 든든한 정치적 “빽”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경우이고 대부분 농민출신에 고등 군사교육이 부족했던 편 입니다. 여기에는 독소전 초기 키예프 피박의 주인공인 부존늬 같이 능력이 의문시되는 인사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스탈린이 전문 군인 집단을 매우 불신했기 때문에 보로실로프 집단은 스탈린의 비호 하에 상당한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점 하나는 21세기의 미국인 리즈의 분석은 혁명 당시 보로쉴로프의 구분과 비슷하다는 것 입니다. 보로쉴로프는 1920년대 초 붉은 군대의 장교 집단을 1. 노동계급 출신의 "혁명적 지휘관"과 2. 짜르 체제에서 하급 간부였던 혁명적 농민 출신의 지휘관, 3. 짜르 체제의 엘리트 군 간부 출신 지휘관으로 구분했습니다.
약간 억지스럽긴 해도 리즈의 구분과 보로쉴로프의 구분이 얼추 비슷하게 맞아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또 Reese의 연구가 흥미로운 점은 John Erickson이 The Soviet High Command에서 장교집단을 “전문 군인 집단”과 “비 전문 군인 집단”으로 구분한 것에서 좀 더 세분화를 시도했다는 점 입니다. 즉 전문 직업군인 집단을 다시 “순수한” 직업군인 집단과 “정치 지향적” 직업군인 집단으로 구분 함으로서 1937년의 군 숙청에서 왜 투하체프스키 집단이 집중적으로 거덜이 났는가를 좀 더 잘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샤포쉬니코프와 바실레프스키는 정치 불개입과 당의 명령에 대한 복종에 충실했기 때문에 스탈린과 충돌할 일이 거의 없었고 자신들의 업무 범위 내에서 일정한 자율성을 인정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반면 투하체프스키 집단은 당의 중공업화에 찬성하면서도 군대가 차지하는 비중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당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려고 했고 스탈린 세력의 불쾌감을 자극합니다.
그 후의 결론은 다들 잘 아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