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아내에 대한 여성들의 질문은 답하기가 힘들었다.
“예. 제 부인은 한국 사람이고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당신의 미국 부인은 어디에 있나요.”
“내 한국 아내가 내 미국 아내입니다.”
“그건 이상한데요. 왜 그렇게 대답하시는 거죠? 뭐 때문에 화가 나셨나요? 우리는 외교관을 제외한 모든 외국인들이 여기에 있을 때 한국 아내를 데리고 산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아내가 한명입니다. 그녀는 한국 사람이고, 지금은 서울에 있습니다.”
“당신의 미국 아내는 어쩌고요?”
나는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내 아내는 한국에서 한국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미국에 유학을 갔습니다. 지금은 친정 가족과 함께 서울에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할머니가 그림자가 드리운 구석에서 권위있게 말했다.
“저 사람은 자기도 첩을 두고 있다고 말하려고 하는 게다. 하지만 서투른 한국어 실력 때문에 첩이 한국 사람인지 미국 사람인지는 모르겠구나.”
그녀는 나에게 확실히 하라고 격려했다.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서울의 높은 사람들이 부도덕하다고 말하지만 여기에도 첩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문제없다고 여기는 한 괜찮습니다.”
빈센트 S. R. 브란트 저, 『한국에서 보낸 나날들 : 인류학자 빈센트 브란트 박사의 마을현지조사 회고록』, (국사편찬위원회, 2011), 61~62쪽
이 이야기의 뒷 부분에서는 미국인들이 ‘제사’를 지내지 않는 다는 것에 마을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는 일화도 실려 있습니다. 외부와의 교류가 제한되었던 사회에서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을 넘어서는 것들을 쉽게 받아들이기란 힘들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