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sion은 단어에서도 대략 느낄 수 있듯 프랑스인들이 만들어 낸 조직이었습니다.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유럽의 패권을 노리던 프랑스는 당연히 군사 문제에 있어서 많은 업적을 이뤘으며 사단 편제의 등장은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 입니다. 프랑스의 군사사상가들은 18세기 중반부터 당시까지의 전쟁에서 각 국의 군대가 처한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많은 고민을 했으며 그 결과 4개 연대로 편성된 독립된 작전단위를 구상하게 됩니다. 1788년에는 2개 연대를 여단의 지휘하에 두고 이 여단은 사단의 지휘를 받는 편제가 만들어지고 마침내 1794년에는 혁명정부에 의해 정식으로 2개 여단으로 구성되며 포병과 기병등의 지원부대를 갖춘 사단 편제가 확립됩니다. 사단편제는 전투에서 지휘관에게 보다 많은 융통성을 부여해 줬으며 연대 이상의 전술 단위가 없던 다른 국가의 군대들에 비해 압도적 우위를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가 결정적으로 나타난 것이 1805년의 아우스테를리츠 전역과 1806년의 예나 전역이었습니다. 특히 1806년의 프로이센군은 철저히 박살이 나서 뼈를 깎는 개혁에 들어가게 되지요.
이러한 4개연대-2개여단의 사단편제는 1차대전 까지 계속 유지됩니다만 19세기 후반부터 발전한 군사기술과 이에 따른 전장의 변화는 4각 편제를 개편해야 할 필요성을 이끌어냅니다. 가장 큰 원인은 화력의 급속한 증대로 방어가 공격에 비해 조금씩 유리해 지고 있었다는 점 입니다. 이미 미국의 남북전쟁과 유럽의 보불전쟁에서 이런 조짐이 나타났으며 1877년의 러시아-터키 전쟁에서는 이것이 더욱 명백히 나타납니다. 플레브나 전투에서 러시아군은 참호로 강화된 터키군의 방어선에 여러 차례 대규모 공세를 퍼부었지만 매번 수만의 희생자를 내고 좌절을 겪었습니다. 이 전쟁의 결과는 유럽의 각국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독일군은 중포의 개발에 더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대부분 국가의 보병사단들이 채택하고 있는 3각편제는 어느 국가가 처음 도입했을까요?
네. 그렇습니다. 오늘날의 3각편제를 처음 도입한 국가는 터키였습니다. 터키는 1877년 전쟁 이후 방어적인 군사전략을 채택하고 있었는데 독일 군사고문단은 방어에서는 4각 편제가 병력 운용면에서 비효율 적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보통 3개 연대를 방어선에 배치하고 1개 연대를 사단 예비로 두는 방어구조는 1개 여단이 아주 애매하게 병력을 운용해야 하는 데다가 예비대의 운용 문제도 불편했습니다. 만약 예비대가 A여단의 예하 연대인데 정작 투입해야 할 지역이 B여단의 방어선이라면?
1883년 오스만 투르크의 독일 군사고문단장에 임명된 골츠(Colmar von der Goltz)는 1887년 전쟁에서 방어의 효율이 높았던 결과에 크게 주목했습니다. 그는 1904년의 러일전쟁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거듭된 점에서 현대전에서 방어의 우위가 높아진 것을 거듭 확신했습니다. 중장으로 진급한 골츠는 계속해서 터키군의 훈련과 개혁을 지도하며 이러한 현대전 양상에 맞는 편제와 전술을 연구했습니다. 골츠는 1909년의 터키군 기동훈련에서 1개보병여단과 1개기병여단으로 편성된 보병사단 편제를 시험합니다. 골츠는 1909년 겨울에 실험적인 보병사단 편제를 거듭 실험했고 그 결과 1910년 터키군 총참모부는 보병사단의 편제를 4개연대-2개여단-보병사단에서 3개연대-보병사단으로 개편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터키군의 새로운 보병사단 편제는 사단에 포병연대가 배속되어 기존에 포병 없이 보병연대만 네개가 있던 보병사단에 비해 화력이 증강되고 방어에 더 적합한 구조가 되었습니다. 터키군은 1910년 10월 3각 편제로 새로이 개편된 1, 2 보병사단을 기동훈련에 투입해 새 편제를 시험했습니다. 이 기동훈련은 2개 군단(6개 보병사단, 2개 기병여단)이 동원된 야전군급 기동훈련으로 대규모 훈련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3각편제는 혁신적인 것 이었음에도 당시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 1912년 발발한 발칸 전쟁에서 신편제를 도입한 터키군은 세르비아-그리스-불가리아 연합군에게 참패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프랑스 혁명전쟁 당시 사단편제를 도입한 프랑스군이 신통찮은 성과를 거둔 까닭에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사단편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차대전에 발발할 당시 주요 열강들은 여전히 4각편제의 보병사단들을 가지고 전쟁에 나갔습니다. 그렇지만 얼마안가서 보병사단 편제는 급격히 3각편제로 바뀌게 됩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전쟁이 참호전 위주로 나가자 보병사단들은 공격보다 방어에 적합한 형태로 개편되게 되었던 것 입니다. 먼저 독일과 프랑스가 1916년 까지 모든 보병사단들을 3각 편제로 개편합니다. 독일의 경우는 조금 특이하게 보병여단 사령부가 3개 보병연대를 거느리는 식으로 3각 편제가 만들어집니다. 3각편제는 여러 모로 4각편제에 비해 우월했습니다. 먼저 여단사령부가 폐지되거나 1개로 줄어들었고 보병연대도 1개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사단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인력이 감소했습니다. 다음으로 2개여단-2개포병연대 체제(특히 러시아육군)에서 3개연대-1개포병연대 체제로 전환되면서 1개사단에 필요한 포병도 그만큼 줄어들었습니다.
이렇게 3각편제는 방어위주의 전쟁이 가져온 변화라고 할 수 있는데 기동이 강조된 2차대전 이후의 세계에서도 여전히 그 기본골격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참고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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