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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28일 일요일

에른스트 폴크하임에 관한 논문 한편

 미국의 군사사가 제임스 코럼(James Corum)이 1990년대 초반 The Roots of Blitzkrieg이라는 연구를 발표하면서 전간기 독일군의 기계화전 교리의 발전에 대한 논의가 크게 진전됐습니다. 특히 이 연구의 중요한 업적은 1980년대 까지 독일군의 기계화전 교리 발전을 구데리안을 중심으로 논의하던 틀을 깨고 에른스트 폴크하임(Ernst Volckheim), 오스발트 루츠(Oswald Lutz) 등의 이론가들을 발굴한 데 있습니다. 이후 메리 헤이벡(Mary Habeck)의 Storm of Steel, 러셀 하트(Russell Hart)의 Guderian : Panzer Pioneer or Myth Maker?와 같은 연구가 나오면서 그동안 잊혀졌던 독일 군사이론가들의 업적이 발굴되고 구데리안의 역할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언 존슨(Ian Ona Johnson)이 The Journal of Military History 87호(2023)에 발표한 Ernst Volckheim, Heinz Guderian, and the Origins of German Armored Doctrine은 위에서 언급한 연구들의 연장선 상에서 에른스트 폴크하임의 업적을 조명하는 연구입니다. 존슨의 연구는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는 폴크하임의 제1차세계대전 당시 경험과 전후 기갑전 교리 연구, 두 번째는 폴크하임이 독일군의 교리 발전에 끼친 영향, 마지막은 폴크하임이 잊혀지게 된 원인입니다.

 폴크하임은 제1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전차 부대에서 복무한 소수의 장교 중 한명이었습니다. 그는 1917년 창설 중이던 전차부대에 부임해 1918년 공세에 참가했습니다. 전후에도 군에 남게 된 폴크하임은 1923년 부터 본격적으로 기갑전 교리에 대해서 연구를 시작합니다. 폴크하임은 1923년에 발표한 Die Deutschen Kampfwagen in Weltkriege에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수뇌부가 전차의 중요성을 일찍 깨닫지 못한 점을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전차는 여러가지 약점이 있지만 제병협동하에 적절한 시기와 장소에서 사용한다면 큰 전술적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미래의 전쟁에서는 대량의 전차를 집중운용해야 하며 적 방어선 돌파를 위한 중전차와 돌파 이후 전과확대 임무를 수행할 경전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전차를 지원하기 위한 공군력의 발전도 강조했습니다. 폴크하임은 제병협동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없다면 전차는 보조적인 무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폴크하임은 전선돌파를 위한 중전차는 독립된 전차사단으로 편성하고 전과확대를 수행할 경전차는 기병사단과 보병사단에 편성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그가 구상한 중전차사단은 450대의 전차를 보유하는 강력한 전투부대였습니다. 즉 독일군 내에서 처음으로 기갑사단 편성을 주장한 이론가는 에른스트 폴크하임 이었습니다.

 폴크하임은 전차 부대를 지휘한 장교였기 때문에 전차의 기술적인 면에서도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전차가 기술적으로 발전한다면 미래에는 진지전이 불가능할 거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효과적인 기동작전을 위해서는 전차의 기술적 수준이 높아야 했습니다. 그는 미래의 전차가 충분한 연료와 예비 탄약을 탑재하고 시속 30km의 순항속도로 12시간 이상 작전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정도의 기술적 수준을 갖춰야 전차가 작전적으로 유용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본 것 입니다. 

 폴크하임은 1923년 첫 연구를 발표한 이래 잇따라 기갑전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폴크하임은 직접 전차를 운용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전차의 기술적인 측면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1924년 8월에 발표한 글에서는 '중형전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돌파구가 형성된 뒤 전과확대를 위해 투입될 전차는 빠른 속도와 긴 행동반경 뿐만 아니라 적 전차부대와 교전을 하기 위한 강력한 무장과 장갑이 필요한데 경전차는 기술적으로 이것을 충족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당시 세계 각국은 경제적인 이유에서 경전차나 탱켓(Tankette) 개발에 주력했는데 폴크하임은 이런 방향으로 가서는 안된다고 봤습니다. 독일에서도 엔지니어 빌헬름 브란트(Wilhelm Brandt)와 같이 탱켓 개발을 지지하는 세력이 있었지만 폴크하임은 탱켓 개발은 근시안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에 전차 개발을 책임진 차량화부대총감 오스발트 루츠 장군은 폴크하임의 주장을 지지했습니다. 병기 개발을 총괄하는 병기-장비국(Inspektion für Waffen und Gerät)의 폴라트-보켈베르크(Alfred von Vollard-Bockelberg) 장군도 폴크하임의 이론을 받아들 중형 전차와 중전차 개발을 추진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유명한 3호전차와 4호전차입니다.

 폴크하임이 주목한 또다른 기술적 요소는 전차의 통신수단이었습니다. 폴크하임은 초기부터 터 제병협동하에서의 전차 운용을 강조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전차부대가 공군은 물론 보병, 포병 등 다른 병과와 원활하게 통신을 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습니다. 폴크하임은 전차의 통신 수단이야 말로 미래에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단언했습니다. 1920년대의 무전 기술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주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폴크하임이 1923년 부터 1924년 사이에 발표한 연구들은 큰 반향을 일으켜서 바이마르 공화국군 군무청(Truppenamt)은 폴크하임에게 기갑 병과 교육을 위한 교육 과정을 연구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즉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육성되기 시작한 기갑장교들은 폴크하임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것 입니다. 구데리안 또한 폴크하임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인물입니다. 구데리안은 훗날 회고록에서 폴크하임의 영향을 축소하는 왜곡을 했습니다만 1920년대 중후반 구데리안의 사상이 형성되는데는 폴크하임과의 교류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1928년 이후 폴크하임은 교리 연구에 많은 시간을 쏟지 못했습니다. 이 논문의 필자인 이언 존슨은 폴크하임의 보직이 자주 바뀌면서 연구에 집중할 수 없었고, 여기에 가족 문제도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을 합니다. 반면 구데리안은 폴크하임의 연구가 침체되었던 시기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구데리안이 Achtung Panzer!를 출간해 큰 명성을 얻고 히틀러와 직접적으로 접촉하게 되면서 승승장구하게 된데 비해 폴크하임은 전쟁 발발 직전에야 중령으로 진급했습니다. 전쟁 기간 중에는 노르웨이 침공작전에서 제40특수임무전차대대(Panzer-Abteilung z.b.V. 40)를 지휘해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소련 침공당시 제203전차연대장으로 참전해 부상을 입은 뒤로는 일선 지휘관으로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아 전선에 복귀하지 못 합니다. 구데리안이 승승장구한 것과 크게 대비되지요.

 폴크하임을 재조명하는 연구는 1990년대 이래 지속적으로 발표되었습니다만 이언 존슨의 연구는 폴크하임의 초기 연구를 보다 구체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읽어볼 만 합니다. 좋은 연구 같습니다.

2023년 4월 9일 일요일

1945년 6월 노르웨이 주둔 독일 전차부대의 항복 및 무장해제 장면


유튜브에서 1945년 6월 노르웨이 주둔 독일군이 항복하고 무장을 해제하는 장면을 기록한 영상을 봤습니다. 이 영상에 나오는 부대는 노르베겐 기갑여단(Panzer-Brigade Norwegen) 예하 부대입니다. 여러 회사에서 나온 3호전차 모형을 만들어 보고 있던 차에 전쟁 말기에 사용된 3호전차가 여러대 나오는 영상을 보니 재미가 있네요. 그런데 1945년인데도 이 영상에 나온 3호전차들은 모두 궤도의 가이드혼에 구멍이 뚫린 형식의 궤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궤도는 소모품인데 전쟁 중반기에 생산된 궤도가 이때까지도 사용되는걸 보면 재미있습니다. 제가 높게 평가하는 아카데미 3호전차에 들어있는 궤도는 전쟁 말기의 3호전차에도 쓰는게 곤란하겠군요.물론 저는 고증을 무시하고 그냥 조립합니다만.^^


 

2023년 1월 12일 목요일

우팔리즈 전투 직후에 촬영된 흥미로운 사진 한 장

흥미로운 사진 한 장을 봤습니다. 미국 시사잡지 라이프의 사진 기자가 1945년 1월 하순 벨기에의 우팔리즈(Houffalize)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사진을 보시면 우팔리즈 시가지의 폐허 속에 3호전차 한대가 있는게 보입니다. 

ⓒLife Magazine Archives

재미있는 점은 우팔리즈 전투에 투입된 독일군 제116기갑사단은 기록상 3호전차를 보유하지 않았다는 점 입니다. Kamen Nevenkin의 Fire Brigades : The Panzer Divisions 1943-1945의 제116기갑사단 항목(594쪽)을 보면 이 사단은 아르덴느 공세 직전인 1944년 12월 10일에 4호전차 26대, 판터 45대, 3호돌격포 25대를 보유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944년 12월 17일 부터 12월 29일까지 추가로 4호전차 5대, 판터 23대, 4호 구축전차 5대, 3호돌격포 14대를 보충받았다고 합니다.

Thomas L. Jentz의 Panzer Truppen 2권 198쪽을 보면 제116기갑사단이 1944년 12월 16일 기준으로 4호전차 21대, 판터 41대, 4호대공전차 3대를 보유하고 있었고 추가로 4호전차 5대, 판터 23대, 돌격포 14대가 사단에 배치되기 위해 이송중이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제116사단에 배치됐다는 기록이 없는 3호전차가 우팔리즈에 있는게 재미있습니다.

제116기갑사단 부대사는 다른 곳에 두고 있어서 지금 없는데 나중에 한번 아르덴느 공세 당시 3호전차에 관련된 내용이 있는지 찾아볼 생각입니다.

그런데 원래 부대가 보유하지 않았던 장비가 나오는 사례는 간혹 있습니다. 나중에 한번 이야기 할 일이 있을 것 같은데, 바그라티온 작전 당시 독일군 제5기갑사단도 작전 투입 당시에는 3호전차를 보유했다는 기록이 없으나 작전 도중 제5기갑사단 소속의 3호전차에 대한 보고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 우팔리즈의 3호전차도 그 이력이 궁금해지는군요.

2015년 12월 19일 토요일

1944년 6월 6일 부터 8월 31일까지 독일 전차의 손실 원인에 대한 분석

이 보고서는 2차대전 당시 영국육군의 제2작전연구과No.2 ORS, Operation Research Section에서 작성한 보고서,  Report No.17 Analysis of German Tank Casualties in France 6 June to 31 August 1944를 번역한 것 입니다. 영국육군 제2작전연구과가 작성한 보고서들은 미국의 작전연구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예전에 소개했었던 미육군 작전연구 Technical Memorandum ORO-T-117, Survey of Allied Tank Casualities in World War II(1951. 3. 31)에서는 영국측의 조사가 미군보다 정확하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미육군의 몇몇 작전연구들은 보고서나 증언을 제대로 된 교차검증 없이 집계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 보고서는 최대한 객관적인 데이터를 얻기 위해 아군의 증언에 대해 엄밀한 교차검증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들은 구더슨Ian Gooderson이 1944년 노르망디 전역에서 연합군 공군력이 기갑전력을 직접 타격하는데 큰 성과가 없었다는 연구를 하면서 주사료로 삼은 덕분에 크게 유명해졌습니다. 그 이야기는 과거 페리스코프에서 채승병님이 소개해서 국내에도 널리 알려졌지요.(페리스코프가 잠정 휴면이라 아쉽습니다!)


인터넷 덕분에 이 보고서를 포함한 제2작전연구과의 서부전역 연구 보고서들은 쉽게 구하실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다운로드 링크로 연결됩니다.




다만 원문을 스캔한 것은 약간 알아보기 힘든 글자가 있어서 저는 Terry Coppy가 편집하여 출판본으로 정리한 Montgomery’s Scientists: Operational Research in Northwest Europe: The Work of No.2 Operational Research Section with 21 Army Group June 1944 to July 1945, (Laurier Centre for Military Strategic and Disarmament Studies, 2000), 399~406쪽의 것을 번역본으로 삼았습니다.


이와 관련해 예전에 올렸던 다음의 글들도 한번 참고하시면 좋을 듯 싶습니다.




***


1944년 6월 6일 부터 8월 31일까지 독일 전차의 손실 원인에 대한 분석


머릿말


1. 조사 시기는 크게 두 개의 단계, 즉 1944년 6월 6일 부터 8월 7일까지의 교착단계, 1944년 8월 8일 부터 8월 31일까지의 돌파, 전과확대 및 추격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단계의 조사 범위는 카랑탕Carentan을 지나는 좌표86이남의 미군 작전지역을 제외한 영국군과 미군의 전체 작전지역을 포함했다. 두 번째 단계의 조사 범위는 팔레즈 포위망에서 세느강에 이르는 영국군 작전지역 만을 포함했다.


이 보고서에 사용한 데이터는 여러 조사팀으로 부터 획득한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제2작전연구과와 제20야전병기기술부No.20 WTSFF  Weapons  Technical Staff, Field Force에서 수집한 것 들이다.


수집한 데이터


교착단계(1944년 6월 6일~1944년 8월 7일)


2. 독일군의 전차 손실 샘플은 오직 아군의 수중에 떨어진 차량만 조사 가능했으며 독일군이 회수한 차량의 경우는 확인할 수 없었다. 조사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3호전차는 단 한대도 조사하지 못했고 4호전차도 소수만 조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5호전차와 6호전차의 경우 잔해를 확보하는대로 모두 한명, 혹은 그 이상의 조사원들을 투입해 조사할 수 있었다.


3. 표1은 조사한 모든 차량을 해당되는 손실 원인과 함께 정리한 것이다.


표1. 1944년 6월 6일 부터 8월 7일까지 독일군이 상실한 전차
손실 원인
파괴된 전차(대)
총계(대)
비율(%)
6호전차
5호전차
4호전차
철갑탄
7
36
10
531)
48
성형작약탄

7
1
8
7
야포의 고폭탄

72)
2
9
8
지뢰


1
1
1
항공기 로켓탄

6
1
7
6
항공기 기총

2
1
3
3
폭 탄





자 폭

6
1
7
6
유 기

3
1
4
4
원인불명
1
133)
2
18
17
총 계
8
82
20
110
100
1)이중 일부는 포탄을 맞기 전에 이미 유기된 상태였을 가능성이 있다.
2)이중 네 대는 5.5인치 포의 일제사격에 격파되었다.
3)이중 다섯 대는 철갑탄과 성형작약탄에 의해 관통된 흔적이 있지만 실제 파괴된 원인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4. 여기에 제시된 표본이 완전한 상황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독일 전차가 격파된 원인 중에서는 철갑탄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9-23항에서는 철갑탄에 의해 격파된 전차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두번째 단계(1944년 8월 8일~8월 31일)


5. 두번째 단계에서 수집된 격파된 전차의 표본은 이 시기에 격파된 독일 전차의 손실을 거의 대부분 반영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왜냐하면 이 시기 독일군은 손상을 입은 전차를 거의 회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집된 표본은 총 손실의 절반 정도로 추정된다. 그리고 여기서는 3호전차와 4호전차가 발견되는 대로 모두 분석했다.


표2. 1944년 8월 8일 부터 8월 31일까지 독일군이 상실한 전차
손실 원인
파괴된 전차(대)
총계(대)
비율(%)
6호전차
5호전차
4호전차
3호전차
철갑탄
1
11
11

24
48
성형작약탄

1


1
0.4
야포의 고폭탄

1
3

4
2
지뢰






항공기 로켓탄

2
5

7
3
항공기 기총

1


1
0.4
폭 탄


2

2
1
자 폭
20
44
41
3
108
48
유 기
6
30
27

63
28
원인불명

6
7

13
6
총 계
28
96
96
3
223
100


6. 프랑스 전역 후반부(1944년 8월 8일~8월 31일)에는 독일전차의 주된 손실 원인이 독일측에 의한 자폭이나 유기였다. 이 문제는 ORS보고서 2호, “노르망디에서 세느강 까지 후퇴하는 과정에서 적이 상실한 차량 및 장비(Enemy Casualties in Vehicles and Equipment during the Retreat from Normandy to the Seine)”에서 다루고 있다.


각 단계별 대전차 병기의 효과 대한 비교평가


7. 각 단계에서 적 전차를 격파한 다양한 종류의 대전차 병기의 효과를 비교하기 위해서 적이 방기하거나 자폭시킨 차량은 제외했으며 그에 따른 비율은 표3과 같다.


표3.
적 전차의 손실 원인
각 단계별 파괴된 적 전차의 비율
1단계(1944.6.7~8.7)
2단계(1944.8.8~8.31)
철갑탄
65%
63%
성형작약탄
10%
2%
야포 고폭탄
11%
10%
지뢰
1%

항공기 로켓탄
9%
18%
항공기 기관포
4%
2%
폭탄

5%
격파된 적 전차 총계
81대
39대


8. 모든 단계에서 적 전차를 가장 많이 격파한 수단은 철갑탄임을 알 수 있다. 신무기인 항공기 로켓탄으로 격파한 전차도 결코 적다고는 할 수 없다.


철갑탄에 의한 격파에 대한 분석


9. 아군이 격파된 적 전차를 표적으로 철갑탄 사격 연습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철갑탄에 맞은 전차에 대한 분석은 해당 전차를 격파한 포 반원, 또는 전차 승무원들의 증언이 가능한 경우로 한정했다. 증언과 다른 증거가 일치할 경우에만 철갑탄에 의한 격파로 인정했다. 이 기준을 적용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전차 차종
명중한 포탄
4호전차
5
5호전차
22
6호전차
5


10. 표본은 모두 아군의 수중에 떨어진 전차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결과를 보면 적이 특정한 차종을 더 많이 회수하는 경향이 있는 것 처럼 보일 수 있다. 적이 특정한 차종을 더 많이 회수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유가 견인이나 수리의 용이함 때문인지, 아니면 두가지 다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다. 이론적인 추론 만으로는 이러한 경향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다.


11. 각 탄종별 명중, 관통 여부, 관통 실패 여부는 다음의 표와 같다.


표4.
포탄의 종류
관통성공
관통실패
총  계
관통률
17파운드 APCBC
21
4
25
84%
M10의 3인치 철갑탄
171)
5
22
77%
75mm 철갑탄
5
8
13
38%
6파운드 DS
9
4
13
69%
6파운드 APCBC
9
1
10
90%
1)여기에는 4호전차를 상대로 한 5회의 교전결과가 포함되어 있다. 다른 포들 결과는 6호전차와 5호전차만을 상대로 한 것이다.


표4에 대한 설명
12.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여 무작위로 추출한 표본이 너무 적기 때문에 이와 유사한 통계 자료를 더 확보하기 전에는 표4로 부터 어떠한 결론도 이끌어 낼 수 없다.


13(a). 철갑탄의 관통 여부를 차종별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표5
차종
관통성공
관통실패
총계
관통비율
6호전차
13
8
21
62%
5호전차
42
14
56
75%
4호전차
6

6
100%
총계
61
22
83
73%
아군 M4 셔먼



95%1)
1)여기에 인용된 아군 M4 셔먼의 관통비율에 대한 통계는 1944년 8월 15일자 ORS보고서 2호 “1944년 6월 6일 부터 7월 10일까지의 셔먼 손실에 대한 분석(Analysis of Sherman Tank Casualties in Normandy, 6th June-10th July 44)”에서 인용한 것이다.


13(b). 차종별로 격파에 필요한 명중탄 숫자는 평균적으로 다음과 같다.


표6.
차종
격파에 필요한 명중탄 평균
격파에 필요한 관통탄 평균
6호전차
4.2
2.6
5호전차
2.55
1.9
4호전차
1.2
1.2
아군 M4 셔먼
1.63
1.551)
1)여기에 인용된 아군 M4 셔먼에 대한 통계는 1944년 8월 15일자 ORS보고서 2호 “1944년 6월 6일 부터 7월 10일까지의 셔먼 손실에 대한 분석(Analysis of Sherman Tank Casualties in Normandy, 6th June-10th July 44)”에서 인용한 것이다.


표5와 6에 대한 설명
14(a). 이 표를 보면 6호전차와 5호전차는 4호전차나 아군의 셔먼에 비해 더 많은 명중탄을 견뎌낼 수 있는 특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6호전차와 5호전차의 진짜 장점은 관통을 당하더라도 내부에 심각한 피해를 입지 않는 다는 점이다. 전차의 내부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최상의 전차 내부구조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풀기 위해 영국 본토에서 통제된 환경하에 실험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14(b). 전차를 격파하는데 어느 정도의 명중탄, 또는 관통탄이 필요한지 평가하는 것, 그리고  전차가 격파된 이후에 아군 전차포 사수나 대전차포 사수가 발사한 포탄이 몇발이었는지 평가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표6은 오독될 가능성이 있다. 표6은 대략적인 지표로 보아야 할 것이다.


15. 전차 한대를 격파하는데 소요된 명중탄의 숫자는 다음과 같다.


표7.
전차를 격파하는데 소요된 명중탄
격파된 전차 대수
6호전차
5호전차
4호전차
M4 셔먼
1발

7
4
25
2발
2
6
1
11
3발
1
4

2
4발

2

1
5발

2


6발
1



7발

1


8발
1


1
총계
5
22
5
401)
1)여기에 인용된 아군 M4 셔먼에 대한 통계는 1944년 8월 15일자 ORS보고서 2호 “1944년 6월 6일 부터 7월 10일까지의 셔먼 손실에 대한 분석(Analysis of Sherman Tank Casualties in Normandy, 6th June-10th July 44)”에서 인용한 것이다.


표7에 대한 설명
16. 판터가 셔먼에 대해 가지고 있는 특장점은 표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단 한발에 쉽게 격파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17. 철갑탄에 격파된 뒤 화재가 발생한 전차에 대한 통계는 다음과 같다.


표8.
차종
화재발생
화재 미발생
화재가 발생한 전차의 비율
6호전차
4
1
80%
5호전차
14
8
63%
4호전차
4
1
80%
M4 셔먼
33
7
82%1)
1)여기에 인용된 아군 M4 셔먼에 대한 통계는 1944년 8월 15일자 ORS보고서 2호 “1944년 6월 6일 부터 7월 10일까지의 셔먼 손실에 대한 분석(Analysis of Sherman Tank Casualties in Normandy, 6th June-10th July 44)”에서 인용한 것이다.


표9.
차종
화재가 발생한 전차의 평균 명중탄
화재가 발생한 전차의 평균 관통탄
6호전차
5.25
3.25
5호전차
4.0
3.24
4호전차
1.5
1.5
M4 셔먼
1.97
1.891)
1)여기에 인용된 아군 M4 셔먼에 대한 통계는 1944년 8월 15일자 ORS보고서 2호 “1944년 6월 6일 부터 7월 10일까지의 셔먼 손실에 대한 분석(Analysis of Sherman Tank Casualties in Normandy, 6th June-10th July 44)”에서 인용한 것이다.


표8과 9에 대한 설명
18(a). 표8을 보면 판터(5호전차)의 경우 셔먼에 비해 화재가 발생하는 비율이 현저히 낮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영국군과 독일군 사수의 사격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경향이 나타났을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18(b). 표9에서 보여주는 경향을 볼때 전차의 화재발생 원인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표에 나타난 것 처럼 분석 대상이 된 전차들은 차종별로 관통탄이 발생했을때 화재가 발생하는 정도에 차이가 있으며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경향은 전차의 종류와 전차를 격파한 포탄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보이며 전장에서 획득한 잔해를 분석하는 것으로는 더 이상 설명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연구조사가 필요하다.


19. 적 전차에 대한 철갑탄 관통에 대한 통계는 다음과 같다. 오직 5호전차의 경우만 충분한 분석에 필요한 표본을 획득할 수 있었다.


표10.
5호전차
차체상부
포방패/포탑정면
포탑측면
차체측면
포탑후부
차체후부
총계
관통성공
17파운드

1
4
9
1
3
28
3인치(M10)


1
5

1
7
75mm


1
4


5
6파운드 DS

1
1
3

1
6
6파운드 APCBC
11)

3
2


6
총계
1
2
10
23
1
5
42
관통실패
17파운드
2

1



3
3인치(M10)
1
1
1



3
75mm
1

1
1


3
6파운드 DS
3
1




4
6파운드 APCBC


1



1
총계
7
2
4
1


14
명중탄 총계
8
4
14
24
1
5
56
명중시 관통율
12.5%
50%
71.5%
96%
100%
100%

1)차체 기관총 마운트로 관통


표10에 대한 설명.
20(a). 아군의 철갑탄이 5호전차의 정면 경사장갑에 거의 효과가 없다는 점은 심각하다. 5호전차의 정면 장갑은 현대 전차에 있어 충분하며 그 성능과 장점은 장차 전차 설계에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20(b). 5호전차 정면장갑의 상대적으로 강력한 방어력은 오직 아군의 수중에 들어온 제한된 숫자의 잔해만을 분석해서 확인한 것이다. 정면에만 명중탄을 맞은 5호전차는 대부분 전장을 이탈할 수 있었으며, 한편으로 많은 경우 판터와 정면으로 마주쳤을 때는 사격 자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판터의 우수함은 표10에 나타난 것 이상이다.
20(c). 표에 나타난 바와 같이 판터의 차체 측면 장갑은 매우 약하다. 이 사실은 현재 아군의 포 사수들에게 가능한 판터의 측면을 쏘라고 교육하는 것이 유효함을 보여준다.


21. 5호전차에 대한 철갑탄의 관통성공 및 실패 통계를 다른 방식으로 정리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표11.

포탄의 숫자
5호전차의
전면
측면
후면
명중탄
12
38
6
관통탄
3
33
6
관통탄 비율
25%
87%
100%


표11에 대한 설명.
22(a). 이 통계를 보면 사수가 판터의 측면이나 후면에 사격을 가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설사 정면에서 공격이 가능하더라도 사격해서 안된다고 교육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할 수 있다.
22(b). 이 통계만으로는 사수나 전차장이 정면 대신 측면을 공격하기 위해 어느 정도까지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지 답을 얻을 수 없다. 이에 대한 답은 다양한 조건 하에서 판터에 대한 명중 및 관통 비율을 감안해야 얻을 수 있는데 이 표에서는 그러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 독일측은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포병 부대에 아군 전차를 상대로 한 모든 교전 결과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여 추가적인 정보를 수집하려 한다는 증거가 있다.


관통각


23. 다음의 표는 최대한 정확하게 측정한 장갑판의 각도에 따른 관통 비율을 보여준다.


표12.
관통한 장갑의 평균 각도
독일전차
M4 셔먼
관통횟수
관통율
관통횟수
관통율
0-5˚
20
53%
32
52%
5-30˚
15
39%
13
37%
30-90˚
3
8%
7
11%
총 계
38
100%
52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