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읽는 책 중에 폴리(Robert T. Foley)의 German Strategy and the Path to Verdun : Erich von Falkenhayn and the Development of Attrition - 1870~1916이 있습니다. 독일의 군사상에서 다소 특이한 위치에 있는 소모전 전략의 등장과 퇴조를 다룬 연구인데 팔켄하인에 대한 조금 다른 해석이 재미있군요.
그리고 역시 두 세계대전을 다루는 연구 답게 2차대전 말기 연합군의 폭격으로 소실된 독일 사료의 문제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독일 군사사 연구자들이 공통적으로 토로하는 불만 중 하나가 1945년의 포츠담 폭격으로 이곳에 소장 중이던 프로이센군 및 제3제국기 독일육군의 1차사료들이 대량으로 유실되었다는 점 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폭격에서 살아남은 문서들은 소련군이 수집해 갔고 이것들은 1988년 고르바초프 정권기에 동독정부에 반환되었다는 정도 입니다. 소련이 문서를 반환한 뒤 1차대전과 관련된 새로운 연구가 여럿 발표되었지요.
육군 뿐 아니라 공군의 경우도 전쟁 말기 문서가 대량으로 파기되어 골치아프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에 대한 언급을 처음 접한 것은 코럼(James Corum)의 독일 공군 창설기에 대한 연구 였는데 읽는 입장에서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미군의 경우는 많은 자료가 남아 있기 때문에 독일군에 비해서 훨씬 미시적인 부분까지도 서술이 가능합니다. 대대 단위의 전투일지를 종합해 일일 전투식량 재고량까지 파악할 수 있으니 크레벨드(Martin van Creveld)가 지적한 것 처럼 미군은 자료가 많아 문제고 독일군은 자료가 적어 문제라는 말이 허언은 아닙니다.
군사사에 많은 관심을 가진 입장인지라 자료의 소실을 아쉬워하는 연구자들의 한탄을 읽을 때 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독일인들이 마이크로 필름 사본이라도 만들어서 별도로 보관했다면 전쟁통에 중요한 사료들이 완전히 소실되는 참사는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의문을 품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기도 하지요.
쿠르스크 전투와 관련해서 소련군이 프로호로브카 전투에서 전술적 승리를 거뒀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진 이유도 전투에 참여한 무장친위대의 일지가 1980년대 까지도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찾아보면 1차대전의 경우도 비슷한 문제가 있을 것 입니다.
잡담을 조금 더 하자면.
이런 문제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인데 한국전쟁 초기에 서울이 순식간에 함락되다 보니 국방부의 주요 문서들을 이송하지 못한 채 상당수를 잃어 버린 경험이 있습니다. 결국 빈 공백을 미국 군사고문단의 문서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하는데 그럴 때 마다 우리가 남긴 기록이 단 한 장만 더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백선엽 장군도 한국전쟁 당시 우리가 남긴 기록이 너무 없어서 아쉽다는 이야기를 한 일이 있지요.
조지 오웰이 남긴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말은 정말 핵심을 찌르는 것 같습니다. 미군 기록에 많이 의존하다 보니 어떤 경우에는 정말 미국의 시각으로만 문제를 바라보게 되더군요. 그럴때는 정말 식은 땀이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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