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6일 일요일

『바르바로싸 : 중앙집단군 1941.1-12』 , 허진 저, 수문출판사, 2022

  『무장친위대 전사록』의 저자 허진이 올해 상반기에 바르바로사 작전을 다룬 책을 한권 출간했습니다. 수문출판사에서 나온 『바르바로싸 : 중앙집단군 1941.1-12』은 본문만 800쪽이 넘어가는 대작입니다. 책의 판형도 크고 편집도 빡빡하게 되어 있어 정보량이 매우 많습니다. 책을 처음 보면 분량 때문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됩니다.

 이 책의 장점은 바로 이 방대한 양에 기반한 정보의 량 입니다. 저자는 독일의 1차 사료를 바탕으로 작전 단위의 서술을 하면서 소부대의 전투들은 기존에 간행된 2차 문헌들을 인용해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바르바로사 작전의 각 단계별로 독일 중부집단군 예하 부대들이 수행한 전투들을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바르바로사 작전을 다룬 한국어로 된 문헌은 매우 부족합니다. 오래전에 나왔던 타임라이프 2차세계대전사의 해당 권 등 개설서 수준의 단행본이 몇권 있던 정도에 불과하지요. 그래서 이 책의 방대한 내용은 그 자체로 장점이 됩니다. 

 하지만  『바르바로싸 : 중앙집단군 1941.1-12』도 『무장친위대 전사록』의 한계점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 책이 지향하는 목표가 무엇이냐는 겁니다. 저자 허진은 책의 서두에서 바르바로사 작전을 연구한 데이비드 글랜츠(David Glantz), 데이비드 스태헐(David Stahel) 등의 연구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스태헐에 대해서는 "러시아 민족주의와 공산당 기관지의 서술에 경도되어 있다"고 까지 비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전작 『무장친위대 전사록』에서도 글랜츠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 바 있는데 이 책에서도 이런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허진은 글랜츠를 필두로 한 소련 시각을 반영하는 연구들의 위상을 깎아내리고 있는데 무의미해 보입니다. 영어권에서 글랜츠가 확보한 학문적 위치는 너무 확고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스톨피(R.H.S. Stolfi)의 고전적인 연구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스톨피가 바르바로사 작전이 독일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있었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허진의 시각이 전통적인 1980년대의 시각에 머무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이 책  『바르바로싸 : 중앙집단군 1941.1-12』이 글랜츠나 스태헐 등의 연구의 대척점이 되는 충분한 해답을 주는가? 제 생각엔 아닙니다. 이 책의 결론을 읽으면 저자 허진도 마땅한 답을 도출하지 못한 걸로 보입니다. 저자는 결론 부분에서 "소련군이 양의 질로의 전화라는 거의 초자연적인 총체적 능력을 발휘한 끝에 벼랑 끝의 조국을 구했다는 사실 하나만은 (중략) 인정치 않을 수 없는 요인임에는 분명하다."(818쪽)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이런 설명은 기존의 연구들에서도 하던 이야기 입니다. 저자는 서두에서 기존의 연구들을 자신만만한 어조로 폄하하고 있으나 정작 이 책은 새로운 연구라고 하기에는 분석의 수준이 그리 치밀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수많은 전술 차원의 전투들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이런 전투들을 장황하게 일일이 나열하는건 기존 연구를 비판하는 것과 별 관련이 없습니다. 기존 연구들을 비판하고자 한다면 기존 연구에서 쟁점이 되는 부분을 집어서 그 부분을 비판하는 분석을 하면 되고 이건 작전 차원의 서술로 가능합니다. 굳이 소대-분대 단위의 소규모 전투들을 일일이 나열하면서 초점을 흐트릴 필요가 없습니다. 전반적으로 책 전체의 초점이 모호하며 분석이 치밀하지 못한 점이 눈에 띕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저자의 문체입니다. 좋게 평가하면 아주 자유로운 서술을 하고 있는데 이런 문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매우 불편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입니다. 

"소련군의 앙증맞은 무승부는 실제적인 군사적 효과 이상으로 격상시키는 (...)" (16쪽)

"1차 대전 때와 같은 참호전도 없으며 겨울이 오기 전에 모스크바를 딸 수 있다는(...)."(486쪽)

"종횡무진, 신출귀몰, 동분서주하는 이 월드클래스 장군은 (...)" (521쪽)

"브라우히취 육군 총사령관은 (....) 사실상 공익요원 정도의 식물인간이었으며 (...)" (660쪽)

"물론 PPSh도 잔고장이 많은 신뢰성이 딸리는 화기였으나 (...)" (676쪽)

 이런 가벼운 문체 뿐만 아니라 비문 문제도 있습니다. 이 책에는 꽤 많은 비문이 있습니다. 이런건 편집 단계에서 잡아내야 하는데 그게 잘 된 거 같지 않습니다. 

 형식적인 면에서도 문제가 많습니다. 내용이 방대해서 교열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한게 원인이 아닐까 짐작이 됩니다. 주석이 있어야 할 곳에 붙어있지 않거나 저자의 개인적 견해를 설명하는 부분에 별 관련없는 주석이 붙어있곤 합니다. 이런 문제는 편집자가 보고 바로잡아줬어야 하는데 그게 잘 되어 있지 않습니다. 

 저자는 앞으로도 독소전쟁에 관련된 단행본을 계속 낼 계획이라고 합니다. 저자의 성향을 봐서는 앞으로 나올 책들도 지금까지 나온 책들과 같은 기조를 유지할 듯 하군요. 

댓글 2개:

  1. 소대 분대단위 소규모 전투까지 나열한 디테일 면에서 흥미가 생기긴 하는데, 저자의 상당히 시대착오적인 인식 등 전작과 거의 동일한 문제를 답습하네요. 출판 예고 소식이 들려올 때 글랜츠와 스태헐을 비판한다길래 무슨 소리를 하려나 싶었는데 어김없이 제대로 된 결론을 내놓질 못하는군요.

    출판 서적에 저런 문체를 사용하는 건 읽는 입장에서 또 황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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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어로 된 책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는데 이거 말곤 애매한 것 같습니다. 특히 기존에 외국에서 나온 연구들을 많이 접한 사람에겐 별로 가치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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