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은 怪力亂神인지라 진지하게 생각하면 정신건강에 해롭지만 재미는 있다는 점에서 술과 같습니다.
이 어린양은 대략 고등학교 초반까지 괴담에 심취해 있었는데 그 계기가 된 것이 고골의 단편 “비이(Вий)”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있고 워낙 유명하다 보니 많은 분들이 잘 아실 것 입니다. 20년전에 읽은 책이었지만 주인공의 최후가 워낙 인상에 깊었고 책에 딸린 삽화도 제법 으스스 했던지라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었지요.
그러다가 얼마 전에 생각의 나무에서 고골의 중편과 단편을 엮은 “오월의 밤”이 출간되어 있고 여기에 “비이”가 실려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다시 읽게 됐는데 역시 재미있더군요. 주인공이 최후를 맞게 되는 이유는 다른 많은 괴담들에서 나타나듯 절대 보면 안 될 것을 보았기 때문인데 이런 뻔한 이야기도 좋은 글 솜씨와 결합하면 결코 질리지 않는 떡밥이 됩니다. 번역을 담당하신 분은 조준래라는 분인데 번역이 꽤 재미있게 잘되어 있습니다.
“오월의 밤”에는 “비이”외에도 “무서운 복수” “성 요한제 전야” 등 다섯편의 작품이 더 실려 있는데 “비이” “무서운 복수” “성 요한제 전야”는 공포적 분위기가 강한 반면 나머지 세 작품은 개그가 적절히 섞여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실려있는 “오월의 밤 또는 물에 빠져 죽은 처녀”는 물귀신이 나오는 이야기지만 전체적으로 개그더군요.
특히 이 책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작품의 배경이 우크라이나이다 보니 먹을 것에 대한 묘사가 많다는 것 입니다. 소설에 묘사된 여러 가지의 우크라이나 요리에 대한 묘사는 읽는 것 만으로도 즐거워 지더군요. “이반 표도로비치 스폰카와 그의 이모”는 특히 요리에 대한 묘사가 많아서 좋았습니다. 풍부한 요리에 대한 묘사를 보다 보니 히틀러가 drang nach Osten을 줄구장창 외친 이유가 우크라이나 요리가 아닐까 하는 망상도 덤으로 들더군요.
전체적인 감상은 20년전의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있던 이야기를 다시 읽게 되어 아주 즐거웠다는 것 입니다. 앞으로도 기억의 한 구석에 흔적만 남은 다른 책들을 다시 읽을 기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기억을 되살리면서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제 기억력이 아주 엉망은 아니라는 긍정적인 사실을 발견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