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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22일 목요일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군인들

한국전쟁은 여러모로 괴상한 전쟁이었습니다. 특히 한국에게는. 근대화된 전쟁을 치를 능력은 커녕 제대로 된 군대조차 조직할 능력이 없었던 한국에게 전쟁은 대재앙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전쟁이 터졌으니 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싸워야지요.

가장 큰 문제는 갑자기 늘어난 군대를 먹이는 일이었습니다. 이 시절 한국의 처지는 그야말로 딱해서 군인들을 먹이는 것 조차 똑바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한국전쟁 이전에도 군인들을 배불리 먹일 능력이 없었으니 전쟁이 터지고 군대가 늘어난 상황에서는 안봐도 뻔한 상황이 연출 될 수 밖에요. 1948년 9월 26일의 미군사고문단 기록을 보면 이범석 국방부장관이 국회에 사병의 급식 개선을 위해 추가 예산 편성을 요청하면서 병사 한 명의 일일 칼로리 섭취량이 육군의 기준치인 3,162칼로리에 못 미치는 2,322칼로리에 불과하다는 발언을 했다고 합니다.1) 한국전쟁 당시 미육군의 일일 칼로리 섭취량은 4200~4500칼로리 정도였으니 창군 초기의 한국군의 급양  수준은 미군의 절반 수준을 약간 웃도는 정도였습니다.2) 사실 식단의 질로 따지면 더 형편 없었겠지요. 예전에 썼던 ‘한국군 5사단의 일일 식량 지급’ 이 라는 글에서  한번 다루었지만 전쟁 초기 한국군 전투부대의 일일 칼로리 섭취량은 대략 3100칼로리 수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식단을 보면 영양소의 대부분을 밥에 의존하는 형편이지요. 보급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훈련소 같은 곳에서는 3600칼로리 수준이었던것 같습니다.3)

먹는게 형편없으니 군대가 제대로 돌아가긴 어려웠을 겁니다. 전쟁 당시 한국군의 비전투 장비손실 중 상당수가 춥고 배고픈 병사들이 장비를 팔아 먹을것이나 땔감을 구입했기 때문이라고 하니 말입니다. 미군사고문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많은 한국군 병사들이 음식이나 땔감을 구하기 위해 소총까지 팔아 치웠으며 자신의 소총을 팔아버린 뒤에는 다른 사람의 소총을 훔쳐 채워넣는 사고가 꽤 많았다고 합니다.4) 가난한 한국군 병사들이 배를 곯는 동안 돈 많은  미군들은 전투식량이 맛이 없어 내다버리고 있었다죠.  백선엽의 회고록에는 포로수용소를 가 보니 포로들이 한국군 보다 더 잘 먹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는 일화까지 있을 정도죠.5) 1953년 5월 12일에 의무병과 선임고문관이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군병원에 입원한 한국군 병사 중 7.6%가 영양실조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양부족으로 인한 질병인 결핵환자도 포함하면 이 수치는 조금 더 높아집니다. 여기에 11.9%의 결핵환자까지 합하면 거의 20%에 육박하는 수준입니다.6) 게다가 이 외에도 많은 질병이 영양실조가 주된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었으니 꽤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이것도 그나마 보급체계가 정비되고 미국의 원조가 꽤 들어온 1953년 5월의 상황이니 1950~1951년 경에는 더 심각했을 것 입니다.

병사들에게 밥도 제대로 못주는 형편이었으니 봉급도 제대로 챙겨주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한국군의 비참한 상황은 미국도 우려하는 문제였습니다. 전쟁 통이라 군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챙겨줘야 할 판인데 줄게 없을 정도로 엉망이니;;;; 아주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한국군의 비참한 실정 때문에 미국측에서 한국군이 각종 부대사업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것을 묵인해 줄 정도였지요.

1953년 기준으로 한국군의 급여체계는 다음과 같았습니다.7)

1953년도 기준 한국군의 급여
계급
급여(원화)
실질급여
급여(달러환산)
대장
90,000
85,400
14.23
중장
72,000
68,000
11.35
소장
66,000
62,500
10.41
준장
60,000
56,800
9.46
대령
56,100
53,400
8.90
중령
51,300
48,835
8.14
소령
46,500
44,275
7.38
대위
38,100
36,457
6.07
중위
35,700
34,126
5.68
소위
33,300
31,801
5.30
준위
32,300
30,937
5.15
일등상사
26,100
25,012
4.17
이등상사
24,300
23,171
3.86
일등중사
7,200
7,200
1.20
이등중사
6,000
6,000
1.00
하사
4,500
4,500
0.75
일병
3,600
3,600
0.60
이병
3,000
3,000
0.50

대한민국 육군 대장의 급여가 14달러 밖에 안되는 것도 안습입니디만 이것은 그나마 공정환율인 1달러당 6,000원으로 계산한 것 입니다. 1953년 초 암시장 환율은 1달러당 21,000~25,000원이었으니 이 환율을 적용하면 한국군 대장의 한달 급여가 3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이 되는 것 이었습니다. 육군 이등병은 한달 50센트에 목숨을 걸어야 하니 정말 비참하지요.

글자 그대로 외부의 원조가 없으면 당장 붕괴되어도 이상할 게 없는 수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상태로 전쟁을 위한 대규모 동원을 해야 했으니 국가는 물론이고 동원되는 국민으로서도 난감할 수 밖에요. 국민방위군 같은 대규모 동원계획이 참사로 끝난데는 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와 무능이 한 몫 했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자체가 그러한 대규모 동원을 할 역량을 결여하고 있었다는 점도 중요하게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1) ‘Supplemental Budget - FY 1948/1949’(1948. 9. 29), RG 338, PMAG 1948-49/KMAG 1948-53 Box 1
2) ‘Ration for the Armed Force, Korea’ Current ROKA-KMAG Problems(1953. 2. 8), RG 338, KMAG, Box 61 Plan for the Organization of a ROK Field Type Army
3) ‘Ration for the Armed Force, Korea’ Current ROKA-KMAG Problems(1953. 2. 8), RG 338, KMAG, Box 61 Plan for the Organization of a ROK Field Type Army
4) ‘Individual Rifles for ROK Army Soldiers’ Current ROKA-KMAG Problems(1953. 2. 22), RG 338, KMAG, Box 61 Plan for the Organization of a ROK Field Type Army. 이 보고서에 따르면 장비가 부족했던 국립경찰이 병사들의 소총을 강제로 빼앗은 사례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5) 백선엽, 『군과 나』(서울, 시대정신, 2009) 299~300쪽
6) ‘Alleged Undernourishment of ROK Army Patients’(1953. 5. 12), RG 338, KMAG, Box 61 Plan for the Organization of a ROK Field Type Army
7) ’Pay of ROK Army’ Current ROKA-KMAG Problems(1953. 2. 22), RG 338, KMAG, Box 61 Plan for the Organization of a ROK Field Type Army

2008년 12월 22일 월요일

모병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독일연방군

슈피겔 인터넷판에 독일연방군의 모병문제 악화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한 해군 모병관의 지원병 모집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Wer hat Angst vor Afghanistan?

이 기사에 따르면 독일 국방부장관에 따르면 2008년 상반기 장교 지원자는 2007년의 같은 기간과 비교해 16퍼센트 감소했으며 부사관과 사병은 11% 부족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관후보생 중 10%는 중간에 스스로 그만둘 정도라고 하는군요.;;;; 독일 국방부는 이런 심각한 상황에 대해 TV나 극장 광고를 늘리는 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의 플뢴(Plön)의 한 직업학교를 찾아간 해군 모병관 크뢰거(Torsten Kröger) 중위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크뢰거 중위는 설명회에 참석한 학생들에게 연방군이 제공하는 좋은 급여, 세금 혜택, 낮은 세율, 개인의 자질 개발, 좋은 전망 등을 설명하며 지원을 유도합니다. 기사를 쓴 기자는 연방군의 모병 홍보가 마치 DAX(Deutscher Aktien IndeX) 상장 기업 같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크뢰거 중위는 군에 입대하면 좋은 점으로 해외 파병의 기회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아프가니스탄;;;;

독일연방군에서는 현재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병사들에게 특별수당으로 하루에 92유로3센트씩을 지급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세금이 붙지 않는다군요. 한 달이면 파병수당만 2,760유로9센트이니 원화로는 500만원에 가깝습니다.(덜덜덜)

어쨌건 직장으로서의 군대는 그다지 매력이 없어서 해마다 지원자가 줄어드는 형편입니다. 기사의 마지막 부분에서 크뢰거 중위는 예전 만큼 지원자가 많지 않다고 푸념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몇 달 전에도 독일공군의 조종사 부족사태에 대한 독일언론의 기사를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병력부족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자주 나오는 걸 보면 독일연방군이 어느 정도 고생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한 편이만 모병제로의 전환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습니다. 미국이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한 뒤 인건비 상승과 병력 보충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으며 독일도 90년대 이후 모병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같은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강대국들이 골머리를 앓는 모습을 보니 한국이 모병제로 전환할 경우 국방에 필요한 최소 규모의 군대를 유지할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듭니다.


※ 작년 초 모병제에 대해 몇가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모병제 논의에 대한 짧은 생각

2006년 11월 21일 화요일

독일 국방군의 급여체계(재탕!!!)

원래 페리스코프 포럼에 올렸던 내용인데 현재 그곳이 운영자님의 사정으로 인해 폐쇄됐으므로 여기다가 재탕을 해볼까 합니다.

==============(이 하 재 탕)==============

독일 국방군(Wehrmacht)의 급여 체계

독일 국방군의 급여체계는 25개의 급여등급(Besoldungsgruppen)으로 나뉘는 기본급과 전시 주둔지역의 부대에 일상 생활에 필요한 지출을 위해 지급되는 전시수당(Wehrsold), 주둔지의 주택 비용으로 지급되는 주택수당(Wohnungsgeldzuschuß), 자녀를 가진 군인에게 지급되는 자녀양육수당(Kinderzuschläge), 특별수당(Zulage)등이 있습니다.

1. 기본급

독일 국방군의 기본급은 25개 등급으로 나뉩니다. 독일 국방군의 기본급여 등급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었습니다. 기본급여는 주택수당과 합산되어 지급 됩니다. 주택 수당은 계급 등급에 따라 I부터 VII까지 7개 등급으로 나뉩니다. 전쟁 초기의 급여 체계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아래의 금액은 “연봉”입니다.

A. 장성급(Besoldungsgruppe 1~ Besoldungsgruppe 4)

Besoldungsgruppe 1, Wohnungsgeldzuschuß I(1942년부터 Besoldungsgruppe 1a)
26550 마르크
국방군 총 사령관(der Chef des Oberkommandos der Wehrmacht)
각 군 총 사령관(die Oberbefehlshaber der Wehrmachtteile)
원수 – 1942년부터
대제독(Großadmiral) – 1942년부터

Besoldungsgruppe 2, Wohnungsgeldzuschuß I
24,000마르크
상급대장, 해군상급대장(Generaladmiral), 대장, 해군대장(Admiral)

Besoldungsgruppe 1은 1942년 4월부터 Besoldungsgruppe 1a와 Besoldungsgruppe 1b로 나뉘었습니다. Besoldungsgruppe 1b에는 상급대장과 해군 상급대장이 포함됩니다. 대장과 해군대장은 기존의 Besoldungsgruppe 2에 들어갑니다. Besoldungsgruppe 1가 두개의 등급으로 나뉜 것은 1940년부터 원수 계급이 생기면서 새로 생긴 계급에 맞는 급여 등급이 필요해서 였습니다. 1942년에 새 급여 체계가 생기기 전 까지 원수와 대제독은 행정부의 장관급의 급여를 받았다고 하는 군요.

Besoldungsgruppe 1b, Wohnungsgeldzuschuß I
25,500마르크
상급대장, 해군 상급대장

Besoldungsgruppe 3, Wohnungsgeldzuschuß I
19,000마르크
중장, 해군중장(Vizeadmiral), 군의, 수의병과 중장급(Generalstabarzt, Admiralstabarzt, Generalstabveterinar)

Besoldungsgruppe 4, Wohnungsgeldzuschuß II
16,000마르크
소장, 해군소장(Konteradmiral), 군의, 수의병과 소장급(Generalarzt, Admiralarzt, Generalveterinar)

B. 영관급(Besoldungsgruppe 5~7)

Besoldungsgruppe 5, Wohnungsgeldzuschuß II
12,600마르크
대령과 대령급 군의, 수의병과 장교(Oberstarzt, Flottenarzt, Oberstveterinar)

Besoldungsgruppe 6, Wohnungsgeldzuschuß III
9,700마르크
중령과 중령급 군의, 수의병과 장교(Oberfeldarzt, Geschwaderarzt, Oberfeldveterinar)

Besoldungsgruppe 7, Wohnungsgeldzuschuß III
7,700~8,400마르크
소령과 소령급 군의, 수의병과 장교(Oberstabarzt, Marineoberstabarzt, Oberstabveterinar)

C. 위관급(Besoldungsgruppe 8~ Besoldungsgruppe 16)

Besoldungsgruppe 8
Wohnungsgeldzuschuß III : 4,800~6,900마르크, 대위와 대위급 군의, 수의병과 장교(Stabarzt, Marinestabarzt, Stabveterinar), 호봉(Dienstaltersstufe) 2등급
Wohnungsgeldzuschuß IV : 4,800~6,000마르크, 대위와 대위급 군의, 수의병과 장교, 호봉 1등급

※Dienstaltersstufe를 번역할 뾰족한 단어가 생각이 안나서 의미가 가장 비슷할 듯한 호봉으로 옮겼습니다.

Besoldungsgruppe 9, Wohnungsgeldzuschuß IV
3,400-3,700-4,000-4,200마르크
중위

Besoldungsgruppe 10,
2,400-2,700-3,000-3,400-3,700-4,000-4,200
소위
Wohnungsgeldzuschuß IV – 호봉 4등급
Wohnungsgeldzuschuß V – 호봉 1등급부터 3등급까지

Besoldungsgruppe 11, Wohnungsgeldzuschuß IV
3,400-3,800-4,200마르크
중위, 소위급 간부(군의, 수의 병과, Oberarzt, Marineoberassistenzarzt, Oberveterinar, Assistenzarzt, Marineassistenzarzt, Veterinar)

Besoldungsgruppe 12, Wohnungsgeldzuschuß III
7,650-8,680마르크
군악병과 중령(Obermusikinspizient)

Besoldungsgruppe 13, Wohnungsgeldzuschuß III
6,350-6,750-7,150
군악병과 소령(Musikinspizient)

Besoldungsgruppe 14, Wohnungsgeldzuschuß IV
5,000-5,250-5,500마르크
군악병과 대위(Stabmusikmeister)

Besoldungsgruppe 15, Wohnungsgeldzuschuß IV
3,960-4,160-4,360-4,590-4,848마르크
군악병과 중위(Obermusikmeister)

Besoldungsgruppe 16
2,930-3,170-3,470-3,620-3,770마르크
군악병과 소위(Musikmeister)
Wohnungsgeldzuschuß V – 호봉 1, 2등급
Wohnungsgeldzuschuß IV – 호봉 3 등급

D. 부사관급(Besoldungsgruppe 17~ Besoldungsgruppe 22)

Besoldungsgruppe 17, Wohnungsgeldzuschuß IV
3,400-3,600-3,800-4,000마르크
주임원사급(병기 정비(Oberwaffenwarte, Festungsoberwerkmeister), 말 편자 수리(Oberhufbeschlagslehrmeister))

Besoldungsgruppe 18
2,500-2,700-2,850-3,050-3,250-3,400-3,600마르크
원사급(Festungswerkmeister, Hufbeschlagslehrmeister)
Wohnungsgeldzuschuß IV – 호봉 6등급
Wohnungsgeldzuschuß V – 호봉 1~5등급

※ Oberwaffenwarte, Festungsoberwerkmeister, Oberhufbeschlagslehrmeister, Festungswerkmeister, Hufbeschlagslehrmeister는 상사(Stabsfeldwebel) 보다 위의 계급입니다. 원사라는 표현이 적당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독일 국방군의 분류상 부사관 계급이고 마땅한 번역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주임원사와 원사급으로 옮겼습니다.

Besoldungsgruppe 19

Besoldungsgruppe 19, Wohnungsgeldzuschuß V : 2,550마르크
상사(Stabsfeldwebel), 상사급 병기 담당관(Waffenwarte) 13-14년차 근무

Besoldungsgruppe 19, Wohnungsgeldzuschuß V : 2,742마르크
상사, 상사급 병기 담당관 15-16년차 근무

Besoldungsgruppe 19, Wohnungsgeldzuschuß V : 2,934마르크
상사, 상사급 병기 담당관 17-18년차 근무

Besoldungsgruppe 20

Besoldungsgruppe 20a, Wohnungsgeldzuschuß V : 2,454마르크
중사, 중사급 병기 담당관 13-14년차 근무

Besoldungsgruppe 20a, Wohnungsgeldzuschuß V : 2,646마르크
중사, 중사급 병기 담당관 15-16년차 근무

Besoldungsgruppe 20a, Wohnungsgeldzuschuß V : 2,838마르크
중사, 중사급 병기 담당관 17-18년차 근무

Besoldungsgruppe 20b, Wohnungsgeldzuschuß V
2,400마르크
중사, 중사급 군의(Unterarzt) 수의병과(Unterveterinar) 12년 미만 근무

Besoldungsgruppe 21

Besoldungsgruppe 21a, Wohnungsgeldzuschuß V : 2,394마르크
하사, 13-14년차 근무

Besoldungsgruppe 21a, Wohnungsgeldzuschuß V : 2,520마르크
하사, 15-16년차 근무

Besoldungsgruppe 21a, Wohnungsgeldzuschuß V : 2,646마르크
하사, 17-18년차 근무

Besoldungsgruppe 21b, Wohnungsgeldzuschuß V : 2,340마르크
하사, 12년 미만 근무

Besoldungsgruppe 22

Besoldungsgruppe 22a, Wohnungsgeldzuschuß VI : 2,322마르크
병장, 13-14년차 근무

Besoldungsgruppe 22a, Wohnungsgeldzuschuß VI : 2,424마르크
병장, 15-16년차 근무

Besoldungsgruppe 22a, Wohnungsgeldzuschuß VI : 2,514마르크
병장, 17-18년차 근무

Besoldungsgruppe 22b, Wohnungsgeldzuschuß VI : 2,040-2,160마르크
병장, 12년 미만 근무

E. 사병급(Besoldungsgruppe 23~ Besoldungsgruppe 25)

Besoldungsgruppe 23

Besoldungsgruppe 23a, Wohnungsgeldzuschuß VI : 2,064마르크
상병, 13-14년차 근무

Besoldungsgruppe 23a, Wohnungsgeldzuschuß VI : 2,166마르크
상병, 15-16년차 근무

Besoldungsgruppe 23a, Wohnungsgeldzuschuß VI : 2,256마르크
상병, 17-18년차 근무

Besoldungsgruppe 23b, Wohnungsgeldzuschuß VI : 1,536-1,920마르크
상병, 12년 미만 근무

Besoldungsgruppe 24, Wohnungsgeldzuschuß VI : 1,680-1,740-1,800마르크
일병

Besoldungsgruppe 25, Wohnungsgeldzuschuß VII : 1,410마르크
이병

2. 전시수당(Wehrsold)

전시수당은 독일군이 유럽 각지를 점령한 뒤 현지에 주둔하는 병력에게 생활에 필요한 경비를 추가로 지급하기 위해서 도입 되었습니다. 전시 수당 지급은 16개 등급으로 나뉩니다. 아래의 수치는 월 급여 입니다.

1a : 국방군 총사령관, 각군 사령관 : 300마르크
1b : 상급대장 : 270 마르크
2 : 대장 : 240 마르크
3 : 중장 : 210 마르크
4 : 소장 : 180 마르크
5 : 대령 : 150 마르크
6 : 중령 : 120 마르크
7 : 소령 : 108 마르크
8 : 대위 : 96 마르크
9 : 중위 : 81 마르크
10 : 소위 : 72 마르크
11 : 상사, 중사 : 60 마르크
12 : 하사, 상급수습사관(Oberfahnrich) : 54 마르크
13 : 병장, 수습사관(Fahnrich) : 45 마르크
14 : 상병 : 42 마르크
15 : 일병, 근무 연한 2년 이상의 이병 : 36 마르크
16 : 근무연한 2년 이하의 일병과 이병 : 30 마르크

전시 수당이 지급된 지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네덜란드, 벨기에 : 1940년 9월 1일부터
노르웨이 : 1940년 10월 1일부터
프랑스, 덴마크 : 1940년 11월 1일부터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루마니아, 세르비아, 불가리아, 그리스 : 1941년 7월 1일부터
발트 3국, 구 폴란드 동부, 구 핀란드 영토 : 1941년 7월 1일부터

3. 자녀 양육수당(Kinderzuschläge)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 Reichswehr의 자녀 양육수당은 다음과 같이 지급되었습니다.

한 자녀 : 월 10 마르크
두 자녀 : 월 20 마르크
세자녀, 네자녀 : 각 25 마르크
다섯자녀 이상 : 각 30 마르크

이 규정은 1938년 6월 30일 까지 시행 되었고 1938년 7월 1일부터 적용된 새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 자녀 : 10 마르크
두 자녀 : 20 마르크
세 자녀 : 25 마르크
네 자녀 이상 : 각 30 마르크

그러다가 1941년 1월 1일 부터는 일괄 20 마르크로 통일되었습니다.

4. 특별수당(Zulage)

잠수함 승무원이나 강하병의 경우 특별 수당이 지급 되었습니다. 특수 병과이고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높았기 때문입니다.

강하병특별수당(Fallschirmschützenzulage)은 강하부대의 모든 부대원들에게 계급에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월 75마르크가 지급 되었습니다. 강하학교등의 교육 기관에서 훈련 중의 강하 부대원은 월 30마르크를 받았습니다.

잠수수당(Tauchzulage)은 잠수함이 출항한 날짜를 기준으로 일 단위로 지급 되었습니다. 1941년 3월 1일부터 적용된 규정에 따르면 소위 이상의 장교는 하루에 일괄 4 마르크를, 상사와 중사는 3마르크를, 하사부터 상병까지는 2.50마르크를, 그 이하의 사병들은 1.50마르크를 받았습니다.

아프리카수당(Afrikazulage)는 북아프리카에 파병된 장교와 사병들에게 특별히 지급 된 수당입니다. 사막이 사람 살기에 좋지 않은 지역이다 보니 특별 수당이 지급 되었다고 합니다. 아프리카수당은 장교의 경우 매일 4 마르크, 부사관의 경우 매일 3 마르크, 사병의 경우 매일 2 마르크를 지급 받았습니다.

지뢰제거수당(Zulage für Minensuchen)은 공병들에게 특별히 지급된 수당으로 지뢰 제거에 투입된 기간동안 매일 1 마르크씩 지급 되었습니다.

5. 장성급직위 지출경비(Dienstaufwandentschädigungen der Generale)

이 수당은 장성급 이상 고위 지휘관들이 작전 지역에서 직책에 맞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특별히 지급되는 경비 입니다. 이 수당은 직책에 따라 다음과 같이 책정 되었습니다.

집단군 사령관 : 월 250 마르크
야전군 사령관 : 월 250 마르크
군단장급, 군관구, 상급 지휘부(예를 들면 포병지휘부) 지휘관 : 150 마르크
사단장급 지휘관 : 월 50 마르크

1940년 이후 새로 생긴 원수급 장성들은 월 400마르크를 지급 받았다고 합니다.

2006년 11월 19일 일요일

1930년대 소련군 장교의 생활 수준(번역글)

저는 서방에서 소련, 러시아군을 연구하는 학자들 중 Roger R. Reese의 글을 가장 좋아합니다. 사회사적인 접근방법도 좋거니와 문장이 매우 쉽고 읽기 편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용도 매우 좋지요. 이 글은 Roger R. Reese, Stalin;s Reluctant Soldiers : A Social History of the Red Army, 1925-1941, p125-p127에서 발췌 번역한 글 입니다.

소련군 장교의 주거는 매우 형편없어서 붉은군대의 이미지를 실추시켰고 또 장교 모집에도 장애요인 이었다. 1차 5개년 계획이전부터 주택 문제는 군대 뿐 아니라 소련 사회의 전체적인 문제였다. 예를 들어 1931년에는 붉은군대의 장교 5만 명이 숙소를 제공 받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그리고 그나마 있는 주택이라는 것도 그 상태가 형편없었다. 심지어 고급 장교들의 관사 조차 일반 시민들의 아파트처럼 낡고 비좁았다. 20년대, 30년대, 그리고 심지어 40년대 까지도 장교들은 수준 이하의 복지에 대해 불만이었다. 일반적으로 장교들의 생활수준은 사회의 비슷한 계층의 민간인들에 비해 낮았기 때문에 소련 인민들은 기본적인 혜택도 주지 않는 조국을 지키는데 대해 관심이 낮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혁명 이전 제정 러시아의 상황이 그대로 이어지게 됐다. 알렉산드르 3세가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 부근에 주둔한 부대들을 대대적으로 서부 국경지대로 재배치 하자 번듯한 주택에서 거주하던 장교들은 서부 폴란드나 우크라이나의 가난한 농촌 촌락에 적응해야 했다. 이렇게 되자 엄청난 숫자의 장교들이 전역해 버렸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다시 반복돼 1930년대에 소련 육군이 우크라이나에 새 부대들을 편성하고 장교들을 전출 시키자 장교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주택을 지어야 했다. 그리고 더 멀고 사정이 열악한 극동 지역에서 근무할 장교를 확보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웠다.

장교들은 종종 도시민들이 그랬듯 공동 주택에 거주했다. 예를 들어 1932년 “붉은별”지는 한 항공여단의 장교용 아파트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 “장교용 아파트는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건물벽의 회반죽은 갈라져 떨어지고 있었고 문과 창문은 제대로 닫히지 않았다. 그리고 한 블록에 있는 세 개 동은 세면장이 없었다.” 이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한 장교는 군 소식지에 보낸 편지에서 비가 오면 아파트는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로 엉망이 된다고 하소연할 정도였다. 그는 비가 오면 꼭대기 층에서 가장 아래층 까지 빗물이 흘러내린다고 적었다. 그리고 창문이 엉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창유리가 떨어지고 없었다. 문은 싸구려 합판으로 만들어져 찬바람이 들어왔다. 수도도 공급되지 않는 지경이었다. 1년전 겨울에 이 장교의 가족들은 그나마 관사조차 배정 받지 못해 병사들의 내무반에서 병사들과 지내야 했다. 숙소가 너무 부족해 학교의 교실까지 사용해야 할 정도였다. 장교용 주택이 난방이 안되거나 아예 안되는 것은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겨울에는 건강에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끼쳤다.

가족을 가진 장교들은 자신의 아내와 자녀들이 겪는 고통 때문에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우크라이나 군관구의 기혼 장교들은 두 세대가 방 두 세칸 짜리 아파트 하나를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장교들은 또 자녀들을 위한 탁아소, 유치원, 놀이터도 매우 부족하다고 하소연했다. 1930년대 초반에 레닌그라드 군관구의 많은 장교들은 관사가 부족한데다 일반 주택도 얻기가 힘들어 부대에서 퇴근하지 않고 지내는 지경이었다. 비슷한 사례를 들면 1931년에 모스크바 경비부대의 장교 1,730명은 관사를 지급 받지 못했고 또 다른 529명은 “매우 나쁜” 주택에 거주했다. 장교와 그 부인들이 불평을 많이 한 것은 애초에 생활수준에 대한 기대가 높았기 때문이었다. 군인 가족들은 일반 시민의 생활수준도 엉망이라는 점에 대해 거의 위안을 받지 못했다.

장교의 주거 수준은 장교 집단의 구성에도 일정한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었다. 제 1차 5개 년 계획 실시 이전에 고학력의 젊은이들에게는 기회가 풍부했다. 많은 장교들이 군대를 제대해 다른 직장과 더 나은 생활 수준을 찾았고 아이러니 하게도 장교에 지원하는 교육수준이 낮은 집단 조차도 군대에서 교육을 받게 되면 더 나은 생활 환경을 찾기 시작했다. 사례를 하나 들면 세르게이 슈테멘코는 그가 1933년 모스크바의 차량화 및 기계화학교의 경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 했다.

“나는 학교 근처인 레포르토보에 살았다. 나는 첫 해에 호스텔에서 거주했고 2년차가 되자 9제곱미터 짜리 방 한 칸을 배정해 준 뒤 키예프에 있는 내 가족들을 모스크바로 불러들였다. 내 어머니는 침대에서 주무시고 나와 아내는 바닥에서 자야 했으며 나의 어린 딸은 바로 옆의 욕조에서 재웠다. 1년 뒤 우리는 학교 부지 일부에 새 건물을 짓는데 참여했고 그곳으로 이사하자 엄청난 호사를 누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슈테멘코와 다른 장교들이 이런 생활 수준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난한 농부 출신에 낮은 교육수준을 가졌고 10대 후반이 되면 입을 하나 덜기 위해 가족에서 내몰리는 사회 계층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슈테멘코는 농업학교에 지원했다가 탈락하자 고향 친구와 함께 군에 지원했고 교육수준이 형편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장교 교육 과정으로 차출됐다. 그 결과 슈테멘코는 1926년에 19세의 나이로 모스크바 포병 학교에 입교했다. 아무리 군대의 복지 수준이 낮더라도 슈테멘코가 고향에 있는 것 보다는 훨씬 나았다. 만약 그가 고향에 남았더라면 공사장의 잡부나 짐꾼, 나뭇꾼으로 지내며 공용 건물의 다락이나 국영 전당포의 구석진 방에서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 슈테멘코가 군대에 계속 남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게 슈테멘코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군대와 당은 주로 가난한 농민이나 노동자 층에서 장교를 선발했기 때문에 이런 사례는 매우 흔했다.

그러나 붉은군대만이 2차 대전 이전에 장교의 생활 수준과 사회적 지위가 낮았던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 육군도 역시 우수한 자질을 가진 장교를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으며 소련과 사정이 비슷했다. 1930년대에 정부가 장교 봉급 인상과 복지 향상을 거부하자 많은 프랑스 군 장교들이 전역해 버렸다. 영국육군은 진급 적체 때문에 장교를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영국군 장교는 대위까지 진급하는데 평균 14년이 걸렸으며 대위에서 소령으로 진급하는데 6년, 소령에서 다시 중령으로 진급하는데 9년이 걸렸고 이때쯤 되면 전역을 고려해야 했다. 소련과 마찬가지로 영국도 군대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 본드(Brian Bond)와 머레이(Williamson Murray)는 일반적인 영국인들은 장교의 복지수준이 2급 수준의 인력이나 바보들에게나 적당한 수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영국군이 장교 충원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보고 있다. 영국, 프랑스, 소련에서 성공하는 길은 사회나 정치 방면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반면 독일군의 장교는 1차 대전 이전의 사회적 지위와 소득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크나페(Siegfried Knappe)의 연구에 따르면 1937년 기준으로 독일군의 중위는 월급만 가지고도 자동차 한대와 승마용 말 한 마리를 유지할 수 있었으며 생활 수준도 좋은 편이었다. 그 결과 독일군은 2차 대전 이전 장교를 확보하는데 하등의 어려움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