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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1일 토요일

차베스의 키보드 워리어들

그동안 정신이 없다보니 RSS 리더에 읽지 않은 기사들이 가득 찼습니다.

밀린 글들을 대략 훑어보다 보니 골때리는 기사가 하나 눈에 들어오더군요. 4월 20일자로 된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의 기사는 바로 차베스가 진짜 "키보드 워리어"들을 세금으로 양성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Eine Kinderarmee für Hugo Chávez -Operation Kommunikationsdonner

이 기사에 따르면 차베스는 자신의 사회주의 혁명에 대해 중상모략을 일삼는 민영 언론에 반격하기 위하여 13세에서 17세의 청소년들을 동원하기로 결정했으며 그 결과 지난 2월 부터 수도 카라카스에서 시범적으로 선발된 79명의 청소년들에게 언론 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의 임무는 핸드폰, 인터넷,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이용해 민영 언론에 반격을 가하는 것 이라고 합니다. 세금으로 키보드 워리어를 양성하겠다는 것이니 정말 차베스도 막장이로군요.

차베스는 이미 이라크전에 큰 감명을 받아 대규모 민병대를 조직해 놓았는데 이제는 선전 선동을 위해 키보드 민병대를 조직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차베스를 찬양하던 사람들은 이 정신나간 짓에 대해서는 뭐라고 평할까요?

2010년 3월 7일 일요일

土産品

어떤 결혼식 때문에 대구에 다녀왔는데 대구까지 간 김에 그냥 오긴 그래서 토산품을 조금 사왔습니다.


대구지역에서 발행되는 어제 일자 일간지들입니다. 가판대에서 지역언론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게 꽤 마음에 들더군요. 물론 논조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만. 마침 제가 산 신문들은 모두 가카의 대구 R&D특구지정을 대서특필하고 있군요.

요즘은 지역색이라는게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은것 같은데 이런 종류의 지역색이라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랄까. 정론지를 자칭하는 소위 중앙일간지들만 지역 신문가판대까지 점령하고 있다면 정말 재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나 할까요. 어쨌든 소위 중앙일간지들은 서울이라는 중심의 논리를 대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언론의 논조도 중요하겠지만 지역의 목소리를 대변할수 있는 언론이 존재하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2009년 9월 7일 월요일

대량학살의 요건

씁슬한 이야기 하나...

르완다는 서구지정학에 대한 비백인 비평가들이 보기에는 아프리카의 문제에 대해 미국과 유럽은 별 차이가 없을 뿐 아니라 워싱턴과 다른 유럽국가들이 아프리카인의 목숨의 가치를 서방 또는 백인들의 목숨과 비교할 때 이중잣대를 사용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였다. 그들은 서방에서는, 적어도 서방의 일부에서는 유럽인이 유럽인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보스니아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지만 아프리카인이 아프리카인에게 가하는 폭력에 대해서는 거의 완전히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즉 서구의 기준에서 아프리카인이란 실체가 없으며 정체성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유럽은 역사적으로 미국 사회의 요람으로 인식되었고 미국과 바다를 건너 접하고 있으며, 게다가 미국의 국가안보적 이해관계에 중요한 지역이었다. 유럽에서 국경을 넘어 퍼져나가는 폭력사태는 항상 아프리카의 경계를 넘어 퍼져나가는 폭력사태 보다 미국의 정책입안가들에게 더 큰 영향을 주었다.

(중략)


워싱턴은 르완다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소말리아 사태의 정치적 결과로 이미 충분한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 최대한 작은 위험을 감수해야 했지만 그것은 아프리카에서 전혀 가능하지 않았다. 클린턴 행정부의 국무부 공보담당관은 이전의 부시 행정부의 전임자들이 보스니아 문제를 담당할 때 그랬던 것과 큰 차이가 없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르완다 사태를 대량학살(Genocide)라고 칭하는 것 조차 꺼렸다. 4월 28일, 한 기자가 국무부 대변인 크리스틴 셀리(Christine Shelly)에게 국무부는 르완다의 폭력사태를 대량학살로 보는지 질문했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 기자께서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비록 대량학살이라는 용어는 엄밀한 법률적 개념이 아니나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정확한 법률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대량학살이라는 용어에는 다른 요인들도 포함됩니다."

국무부 출입기자들은 이 발언은 관료적 발언의 놀라운 사례로서 어떤 발언을 하건 도덕적으로 타격을 받기 때문에 아무것도 이야기 하지 않으면서 이야기를 하겠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5월로 접어들면서 대량학살의 징후는 더욱 더 명확해 졌고 UN은 대규모 병력을 파병했다. 미국은 물자를 지원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다. UN군이 르완다를 이동할 수 있도록 보병수송장갑차가 보내질 것 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물자의 대여 조건, 장갑차의 도색, 그리고 어떠한 표시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 때문에 천천히 지연되고 있었다. 한 주가 지날 때 마다 사망자가 늘어만 갔다. 어느 순간 사망자의 추정치는 50만명이 되었고 그 숫자는 꾸준히 늘어만 갔으나 워싱턴에서는 논의만 계속하고 있었다.

만약 이 사태가 대량학살이라면 행정부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 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지침은 대량학살이 아니라 '대량학살적 행위(acts of genocide)'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6월 10일, 크리스틴 셀리는 국무부가 대량학살적 행위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믿을수 있는 모든 근거가 있다고 말했다. 이 브리핑에 참석한 한 기자는 얼마나 많은 대량학살적 행위가 일어나야 대량학살이 되는지 질문했다. 셀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질문은 제 직위에서 대답할 수 없는 것 입니다."

다른 기자가 질문했다.

"국무부가 대량학살이라는 단어를 단독으로 사용하지 않는 대신 대량학살의 앞 부분에 "~적 행위"라는 단어를 붙이라는 지침을 가지고 있다는게 사실입니까?"

셀리의 답변은 정부가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반영했다.

"제가 받은 지침은... 즉... 즉 제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용어를 사용하라는 것 입니다. 저는... 저는...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데 모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표현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특정 사안에 대해서 절대적인 규정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정의(定義)는 있습니다. 저는 신중한 검토를 거쳐 선정된 표현을 사용합니다."

조지 오웰이 그녀가 당황한 모습을 봤다면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David Halberstam, War in a Time of Peace : Bush, Clinton, and the Generals, Scribner, 2001, pp.273, 276~277

이 당시 미국의 행동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이었는데 도덕적인 비난'만' 받았습니다. 세상일이 대개 이렇게 돌아간다는 것은 참 씁슬한 일이지요.


잡담 하나. 크리스틴 셀리는 2005년 12월 17일 병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링크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2009년 7월 26일 일요일

셔먼

일요일에 앉아서 일을 하자니 손에 잘 안잡히더군요. 답답해서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다 보니 슈피겔에 1952년의 이집트 혁명 기록사진이 아홉장 올라와 있었습니다. 재미있게도 아홉장의 사진 중 두 장에 쿠데타를 일으킨 이집트군의 셔먼이 나와있더군요.

사진=AP

사진=Corbis

얼빵하게 생긴 셔먼의 엉덩이를 보니 뭔가 좀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타미야 M4A1셔먼의 포장을 뜯어서 대충 포탑만 맞춰 봤습니다.


타미야 M4A1에서 마음에 드는 점은 포방패가 두가지로 초기형의 M34도 들어있다는 점 입니다. 셔먼 계열은 대부분 얼빵하게 생겼지만 특히 포방패가 M34인 것은 더 얼빵해 보여서 마음에 듭니다.

그런데 포탑을 대충 맞춰놓고 보니 전에 만들다 만 하비보스의 M4가 생각나더군요. 이것도 포방패를 M34로 했는데 동축기관총 부품이 생긴게 마음에 안들어 잠시 방치해 두고 있었습니다.


하비보스의 셔먼에는 기관총이 두 종류가 들어 있는데 조립하고 남는 cal.30을 동축기관총으로 붙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하비보스 M4의 M34 포방패는 구멍이 좁아서 기관총이 잘 안들어가더군요. 사포질을 해서 구멍을 조금 넓혔습니다.


주포와 동축기관총이 같이 움직이도록 대충 붙여놨습니다. 하비보스의 M4는 사놓은 것이 더 있는데 다음에 만들때는 좀 더 그럴싸하게 해 봐야 겠습니다.


대략 비슷한 모양이 나오는 것 같군요. 얼빵한 분위기를 잘 풍기는 것 같아 마음에 들었습니다.

2009년 7월 20일 월요일

독일군,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사살

아프가니스탄 주둔 독일군이 검문 중 민간인 두명을 사살했다고 합니다.

Bundeswehr tötet Zivilisten
-> 새 기사로 대체되어 링크가 깨졌습니다.

독일 연방군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여섯명의 민간인이 탄 차량이 독일군이 있는 곳으로 고속으로 접근해 왔기 때문에 경고사격을 했으나 멈추지 않아 차량을 직접 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아프가니스탄 당국에 따르면 사망자는 어린이 한 명을 포함해 세 명이라고 합니다.

독일 연방군의 공식 발표가 맞다면 사격을 가한 병사는 교전수칙에 충실했던 것이겠지만 어쨌든 어린이 까지 사살된 것이 사실이라면 여론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당장 좌파연합의 라퐁텐(Oskar Lafontaine)은 아프가니스탄 파병은 실패이며 즉시 철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ps 1. 새로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어린아이가 사살된 게 확인됐다는군요. 첫번째 기사와 내용이 달라졌습니다. 독일연방군도 꽤 곤혹스러운 모양입니다.

Deutsche Soldaten töten Jugendlichen

ps 2. 기사가 계속 편집되는군요;;;; 처음 기사는 민간인 사살이 중심이었는데;;;; 정신 없습니다.

2009년 7월 14일 화요일

한미동맹에 대한 김대중의 시각

하드를 정리하다가 작년 8월 10일의 일요진단 특집에서 복사한 내용을 발견했습니다. 이날 일요진단 특집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특별 초정해서 국내외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꽤 재미있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특히 제가 가장 흥미롭게 본 것은 한미동맹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파일을 찾은 김에 그 부분을 인용해 보죠.

김대중 : 우리는 한미관계건 한일관계건 모든 것은 우리 국익 중심으로 생각해야 됩니다.우리가 국익중심으로 생각한다면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첫째로 군사적으로 안전해야 합니다.

군사적으로 안전하게 우리를 도와줄 나라는 미국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미동맹은 아주 중요하고 우리에게 필요하고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반미한다는 것은 우리 이익과 배치되는 것이죠.

그러나 미국만 따라가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미국하고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중국, 러시아, 일본하고도 반드시 우호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 4대국 관계를 잘해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가 안전할 수 있고 희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호체제, 이것을 당분간 하되 머지않아 6자회담에서 합의된 대로 동북아안보기구가 생길 겁니다.

그러면 남북이 합친 6자 중심으로 안보기구가 생기면 거기에서 4대국도 같이해서 자기들이 의무로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지키는 데 협력할 것입니다.그런 것을 내다보면서 당분간은 그런 체제가 올 때까지는 미국하고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그리고 나머지 세 나라하고도 좋게 지내야 합니다, 절대 나쁘게 지내면 안 됩니다.그건 우리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요진단(2008.8.10), KBS1

제 개인적인 감상은 생략;;;;

2009년 5월 18일 월요일

장하준에 대한 단상

sonnet님이 지난 4월 3일에 있었던 SBS 시사토론을 해설과 함께 요약해 주셔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sonnet님이 인용하신 토론 내용을 보니 상당히 흥미로운 토론이었던 것 같습니다.

SBS시사토론: 이창용-장하준(sonnet)


저 또한 다른 많은 분들과 마찬가지로 이창용이 장하준에 대해 우세한 판정승을 거둔 것으로 봅니다. 사실 지난 정권에서 장하준이 명성을 떨치다 보니 이 어린양도 ‘사다리 걷어차기’ ‘개혁의 덫’ ‘국가의 역할’을 모두 돈 주고 사서 읽었습니다. 그런데 장하준이 SBS 시사토론에서 발언한 내용을 보니 장하준이 그의 저작들에서 보여준 취약점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이창용은 꽤 설득력 있는 사례들을 들고 나오는데 장하준은 왜 그렇지 못하다고 느껴질 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장하준이 들고 있는 사례들은 대공황 이전의 세계를 설명할 때는 적절할지 몰라도 대공황 이후의 세계를 설명 하는데는 부적절하다고 봅니다.

‘사다리 걷어차기’의 경우는 꽤 재미있게 읽었지만 미리 답을 정해놓고 그 답에 맞춰 이야기를 끌어 맞추는 경향이 강하다고 느꼈습니다. 장하준은 선진국들을 비판하기 위해서 주로 19세기와 1차대전 이전의 20세기의 사례를 들어 논지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대공황과 2차대전을 거치면서 선진국들이 오늘날 가지고 있는 위상이 확립되었기 때문이겠지만 그 결과 대공황 이후 근본적으로 변화된 세계를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습니다.

장하준의 저작들은 재미있긴 하지만 선진국의 태도에 대한 비판 대신 오늘날의 세계에 필요한 대안을 제시하기에는 역부족 입니다. SBS 시사토론도 마찬가지 였다고 생각됩니다.

2009년 5월 13일 수요일

봉하마을에 가서 보물찾기를 해보는 것도 좋겠군요

뉴스를 보던 중 재미있는 기사가 하나 보이더군요.

盧 "명품시계, 아내가 버렸다" (연합뉴스)

봉하마을 어디인가에 1억짜리 시계가 굴러다니고 있는 모양입니다. 봉하마을에 가는 분들은 보물찾기를 해 보는 것도 좋겠군요.

2009년 5월 2일 토요일

시사IN 85호 특집과 오늘자 한국일보 사설

시사IN 85호는 커버스토리로 ‘촛불 1년 무엇을 남겼나’라는 기획 기사를 실었습니다. 특집 치고도 매우 많은 분량을 촛불 1년 기획특집이 차지하고 있더군요. ‘미네르바 인터뷰’라던가 보수주의 논객들의 촛불 1주년 좌담회 등 흥미로운 기사가 많았습니다.

아직까지도 제 개인적으로는 작년 촛불시위의 의의에 대해서 정리가 덜 된 상태인데 한 가지 확실하게 인정하는 것은 정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켰다는 점 입니다. 그 방법이 비록 세련되지 못하고 몇몇 부분에서는 매우 거칠게 표출된 것 도 사실이지만 시민들이 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심을 적극적으로 나타냈다는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것 입니다. 물론 촛불시위로 촉발된 정치적 관심이 투표 참여 등 현실정치에 대한 참여로 제대로 전환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장기적으로는 개선되지 않을까 막연하게 기대해 보기도 합니다.
물론 촛불 시위 과정에서 근거 없는 주장이 횡행하고 극단적인 정치적 편향성이 표출된 사례도 없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대중의 정치적 관심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낸 점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해야 할 것 입니다.

시사IN 85호의 특집 기사 중에서 ‘보수주의자 3인 방담 : 촛불이 진보의 성찰 기회 날렸다’라는 대담은 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대담에는 뉴라이트 전국연합 대변인 변철환, 공정언론시민연대 사무처장 최홍재, 미디어 워치의 변희재(;;;;) 등 세 사람이 참여했는데 제 개인적으로는 귀담아 들을 만한 이야기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특히 최홍재의 지적 중 ‘광우병 대책회의’가 쇠고기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나 진보 진영이 촛불 시위의 성과에 고무되어 자기 성찰의 기회를 상실했다는 주장은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네르바 박대성 인터뷰는 예상보다도 알맹이가 없었는데 제 개인적으로는 박대성의 해명 몇 가지는 꽤나 미심쩍습니다. 특히 미국 금융계에서 일했다는 거짓말을 한 이유에 대해서 어떤 자전수필의 내용을 따라 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보다는 언론에서 보도했던 것 처럼 만화책 주인공에서 따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수백기가 분량의 논문 자료를 가지고 공부했다고 자랑을 하면서 검찰이 모든 자료를 압수하고 돌려주지 않고 있다고 하는데 이건 아무래도 정말 거짓말 이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리고 한국일보 이야기로 넘어가서…

오늘 자 한국일보에는 황영식 논설위원이 꽤 재미있는 글을 썼는데 노사모와 박사모를 모두 연예인 팬클럽 수준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노사모에서는 이런 평가를 인정하지 않을 듯 싶은데 제 생각에는 황영식 논설위원의 평가가 적절한 듯 싶더군요.

하지만 오늘 자 한국일보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것은 ‘신문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신문 엑스포’라는 사설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제가 지난번에 혹평한 동아일보 사설, ‘읽기 문화와 신문 발전, 민주주의 기반이다’와 마찬가지로 신문이 팔리지 않아 힘드니 신문 좀 읽자는 내용이지만 호들갑 떨지 않고 차분하게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후한 평가를 하고 싶습니다.(동아일보 사설은 좌빨신문이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치졸한 중상모략 까지 했지요;;;)

잡담 하나. 1주년을 맞아 다시 촛불을 들자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 다시 촛불을 드는 것은 무익한 역량의 낭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작년의 촛불 시위도 2개월 만에 동력을 소진하고 탄력을 잃었는데 대중의 광범위한 참여가 불확실한 이 시기에 무리해서 판을 벌일 필요가 있을까 싶군요. 물론 미래는 알 수 없으니 갑자기 대중 참여를 촉발할 새로운 사건이 생길수도 있겠습니다만…

잡담 둘. 시사IN의 이번 특집 기사 중 여대생 사망설을 유포해 구속된 ‘또랑에 든 소’라는 사람의 인터뷰가 있었는데 이 양반은 아직도 여대생 살해가 은폐 되었다고 믿고 있으며 진실 규명을 위해 특검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지부조화도 이 정도면 가히 정신병 수준입니다.

2009년 4월 24일 금요일

너무 노골적이잖아!

일하다가 잠시 인터넷을 하는 중인데 이런 재미있는 사설을 봤습니다.

[사설]읽기 문화와 신문 발전, 민주주의 기반이다

그래도 제법 긴 역사를 자랑하는 보수 일간지인데 사설 치고는 너무 천박하군요;;;; 대놓고 배고프다고 악을 쓰는게 안스럽니다.

먹고 살기 힘든건 알겠지만 정론지 행세를 하려거든 그래도 품위를 지켜야지요. 그게 싫으면 그냥 정식 옐로페이퍼로 나가던가.

일 때문에 피곤해서 머리도 멍~한데 이런 사설을 읽으니 정말 안드로메다가 눈 앞에 있는 것 같습니다.

2009년 4월 16일 목요일

별로 좋지 않다

연합뉴스를 보다 보니 찝찝한 소식이 하나 눈에 들어오는 군요.

李대통령 "한국경제, 긴 터널의 중간쯤"

눈꼽만큼 좋은 일이 있어도 호들갑 떨기 좋아하는 가카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걸 보면 앞으로도 짜증나는 일이 많을 듯 싶군요. 약간 면피성 발언으로 들립니다.

2009년 4월 13일 월요일

목수정과 일부 진보신당 당원의 주장은 왜 불편하게 들리는가

목수정 사태(?!)가 예상외로 장기화 되고 있습니다. 그 발단은 3월 23일에 진보신당 당원인 목수정이 ‘레디앙’에 올린 정명훈에 대한 비난 기사였으니 이미 20일 째로군요. 이번 사태가 장기화 된 데에는 진보신당 당원이나 진보성향의 블로거들이 꾸준히 목수정의 변론에 나선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국립오페라합창단’이 아닌 ‘목수정에 대한 변론’이 이 정도로 질질 끌 만큼 중요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참 신기한 일 입니다.

이번 사태는 정명훈의 공식적인 반론이 없었기 때문에 전적으로 목수정의 3월 23일 기사만을 가지고 이야기 해야 합니다. 앞으로도 정명훈이 반론을 제기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판단의 유일한 근거가 되는 것은 목수정의 ‘지극히 주관적인’ 기사 뿐이고 그에 대해 판단할 제 3자들은 그 ‘지극히 주관적인 기사’에서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객관적 사실 만을 뽑아내어 판단해야 할 것 입니다.

목수정의 3월 23일 기사에서 알아낼 수 있는 객관적인 사실은 이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1. 2009년 3월 20일, 목수정은 국립오페라합창단원들의 복직에 대한 지지를 요청하기 위해서 정명훈을 만났다.

2. 정명훈은 목수정의 요청을 거부했다.

목수정의 기사에는 정명훈이 엄청난 폭언과 모욕을 가한 것 처럼 되어 있으나 목수정의 일방적인 주장 뿐이니 그대로 믿긴 어렵습니다. 목수정에 대한 일부 변론자들은 ‘정명훈의 폭언’을 언급하면서 목수정의 과격한 반응을 옹호하고 있는데 목수정의 일방적인 주장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제3자를 납득시키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A가 한 말이 B를 통해 어떻게 왜곡되어 전달되는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목수정의 주장을 교차검증 할 방법이 없는 이상 목수정의 기사에 나타난 ‘정명훈의 폭언’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조금 더 합리적일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수정의 기사’에 실린 정명훈에 대한 내용만을 가지고 목수정의 행동을 변호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진보신당 내부에서 목수정을 옹호하는 당원들을 결집시키기에는 충분한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진보신당이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고 말 그대로 서민을 위한 대중정당을 지향한다면 이런 자폐적인 태도는 버리는 것이 좋을 것 입니다. 물론 지금까지의 사태 전개를 봐서는 목수정을 옹호하는 진보신당 지지자들이 그럴 생각이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만.

대략 20일 동안 사태의 전개를 지켜본 입장에서 주관적으로 평가한다면 목수정과 진보신당 지지자들은 대중의 지지를 잃고 거부감만 일으킨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 국립오페라합창단원들의 복직 문제는 한쪽 구석으로 밀려났으니 원래 목수정이 의도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물론 목수정과 그를 변호하는 진보신당 지지자들이 국립오페라합창단원들의 복직을 지원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합니다. 그러나 목수정은 기사 하나를 정명훈에 대한 비난에 할애했기 때문에 정작 자신이 목표로 하고 있던 국립오페라합창단원의 복직문제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는 것은 실패했습니다. 그들이 애초에 좋은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과 그들의 행동이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은 다른 문제겠지요. 왜 온라인 진보들의 대중을 향한 외침은 정작 그 대상인 대중들에게 불편하게 들릴까요?

목수정 사태를 계기로 많은 분들이 그에 대한 설명을 했습니다. capcold님의 경우 이것을 ‘지사정신’이라는 단어로 설명하셨고 sonnet님은 ‘길거리 전도에 나선 종교인’의 예를 들어 설명하셨지요. 제 개인적으로는 sonnet님의 종교인에 대한 비유가 흥미롭습니다.

재미있게도 목수정을 변론하는 블로거들은 약자의 ‘연대’를 강조하면서 목수정의 글을 비판하는 제 3자도 언젠가는 ‘자본’의 희생양이 되어 ‘연대’를 필요로 하는 약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주장이지만 동시에 지금 ‘연대’ 하지 않으면 훗날 누가 당신을 위해 ‘연대’에 참여하겠느냐는 위협으로 들립니다. 이것은 ‘예수천국 불신지옥’‘지옥의 유황불’ 이야기를 하면서 신앙을 강요하는 길거리 전도사의 태도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느껴집니다. 상대가 바보라면 모를까, 공공연히 ‘공포’를 조장하는데 누가 기분 좋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목수정의 태도도 매우 우려 스럽습니다. 인터넷 언론의 ‘기사’라는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목수정의 기사는 정명훈에 대한 비난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마치 길거리 전도사가 자신의 신앙을 거부하는 다른 종교 신도를 저주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목수정의 글을 읽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스펙트럼은 다양할 것 입니다. 훗날 ‘연대’를 필요로 하게 될 사람도 있겠지만 ‘연대’의 필요성이 거의 없는 사회적 강자도 있을 수 있겠지요. 이런 불특정 다수를 향해 공포를 조장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방법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연대’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사람이라도 대놓고 협박하면 듣기 싫을 것이고 ‘연대’가 필요 없는 사람은 속으로 비웃겠지요.

현재의 진보신당 지지자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에 적합한 소통방식이 필요합니다. 진보신당 내부의 논리는 진보신당 내부에서나 통할 뿐 입니다.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싶다면 진보신당 외부의 제 3자도 동의할 수 있는 논리와 소통방법을 강구해야 겠지요. 목수정에 대한 비판에 대해 비판자들이 잘못됐다는 방식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왜 비판자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가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목수정과 그를 변호하는 사람들이 지극히 좁은 의미의 ‘사회적 연대’를 목표로 하는 것 이라면 그들의 전술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넓은 ‘사회적 연대’를 필요로 한다면 자신들만의 소통방식이 아닌 조금 더 광범위한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소통방식을 강구해야 할 것 입니다. 길거리 전도사들이 1년 365일 지옥의 공포를 조장하며 돌아다니고 있지만 왜 호응이 낮은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활동이라고 별 다를거 있겠습니까.

2009년 3월 24일 화요일

소외받는 한국일보

어제 있었던 ‘신문에 대한 공적재원 투입 더 늦출 수 없다’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놓친 것은 꽤 아쉽습니다.

저는 노무현 정부 시기의 언론 정책 중에서 ‘신문발전기금’에 대해서는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편입니다. 노무현에 비판적인 쪽에서는 한겨레나 오마이뉴스 같이 친여당적 성향을 보이는 매체를 지원하기 위한 꼼수라고 비난했지만 한국일보 같이 노무현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도 ‘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비교적 공정하게 운영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민주당 측이 정파적 이해관계에서 한겨레와 경향에 대한 지원을 주장하는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현재로서는 언론사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에 일정 부분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어제 토론회를 참가하지 못했기 때문에 최문순 의원의 홈페이지에서 자료집을 다운받았습니다. 자료집에 실린 발제문은 신문발전위원회의 신학림 위원이 썼는데 역시나 언론노조 위원장 출신답게 조중동에 대한 비난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한겨레와 경향을 띄워주고 있습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발행 부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족벌 신문들의 신뢰도는 신문이나 언론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급격히 떨어지고 있고, 나머지 신문들은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접근(access)권을 판매 및 배달 과정에서 원천적으로 차단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2008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촛불 집회를 통해 신문과 신문 업계에도 작지만 놀랄만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에 대한 신뢰도의 폭발적인 증가가 그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신문 전체의 신뢰도 하락 추세가 멈추거나 상승으로 되돌아갈 것 같지는 않다.

신학림, ‘신문에 대한 공적재원 투입 더 늦출 수 없다’, 2009

이런 식의 편들기는 정말 낮 뜨겁습니다;;;;

신학림은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구독자들은 자신들이 구독하는 신문에 대해 높은 신뢰도를 가지고 있지만 조중동의 구독자들은 자신들이 구독하는 신문에 대해 신뢰도가 낮다는 점을 들어 조중동을 깎아 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뒤집어 보면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구독층은 맹목적으로 해당 신문을 믿는다는 이야기도 되기 때문에 별로 좋은 이야기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한국일보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었습니다. 어쩌다 한국일보 이야기를 한다고 해 봐야 신문시장의 경쟁을 촉발했다는 부정적인 이야기 뿐이더군요. 뭐랄까. 조중동처럼 악의 축이 되어 관심을 받는 것도 아니고 한겨레나 경향처럼 ‘정론지’로 떠받들어 지는 것도 아니고;;;; 아마 최문순이나 신학림과 반대점에 서있는 한나라당 쪽에서도 반대되는 시각을 가지고 있을 뿐 한국일보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을 듯 싶습니다;;;; 한국일보가 비교적 보수적 성향이긴 하지만 정파성은 조중동이나 한경에 비해 옅은 편이지요. 사실 그나마 균형을 잘 잡고 있는 신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극단의 양 쪽에 있는 쪽에서는 박쥐 정도로 보는 모양입니다.

한국일보를 즐겨 보는 입장에서 매우 씁슬하군요.

2009년 2월 17일 화요일

한편, 동아일보 사이트는...



동아일보 인터넷 판에서는 미네르바 관련 사과문을 구석에 실어놨습니다.

아무래도 동아일보사에서는 자신들의 오보를 언제 인정하나 고심하다가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소식을 듣자 이때다 싶어 사과문을 실은 듯 싶군요.

정말 안습.

신동아의 굴욕

동아일보 미네르바 사과문 게재


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군요.

동아일보사가 조선일보에 광고를 내 신동아 기사 "미네르바 가짜설"에 대한 사과를 냈습니다.

80년대에는 신동아가 월간지로서 쓸만한 기사도 많이 내더니 90년대 이후 질이 떨어지면서 결국 이꼴이 됐군요.

안습입니다.

2009년 2월 11일 수요일

[妄想大百科事典] 정론지(正論紙)

[妄想大百科事典] 정론지(正論紙)

특정 정파의 입맛에 맞는 활자매체를 해당 정파가 높여 부르는 말.

특정 매체가 특정 정파로 부터 정론지 호칭을 받을 경우 그 매체의 신뢰성에 대해 심각하게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한편, 정론지라 하더라도 특정 정파의 입맛에 맞지 않는 보도를 할 경우에는 단번에 해당 정파에 의해 찌라시로 격하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특정 정치집단의 정론지 타령은 정치 의식의 저열함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보고 있다.

2009년 1월 7일 수요일

가카의 대약진운동 2

정부의 일자리 대책에 대해서 언론들이 재원 조달 방안이 미흡하다며 비판하고 있습니다.

[녹색 뉴딜] 급한 일자리+친환경 성장 '한국형 뉴딜'

조선일보도 비판적인 사설을 실었군요.

[사설] '녹색 뉴딜'로 정말 96만 개 일자리 창출 가능한가

이번 대책은 정책적 고려가 부족한 상태로 상부의 지시에 의해 졸속으로 수립된 것이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역사적 경험에 따르면 이런 불황 상태에서는 정부 지출로 이런 임시적인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하건 일단 재원 조달 방안은 확실해야 믿을 수 있지요. 그런데 정부의 계획은 도통 믿음이 가지 않는군요.




뭐 어떻습니까. 일자리만 늘어나면 되는거죠!

한국일보에서 퍼왔습니다.




중국이 철 생산량을 늘린 것 처럼 말입니다!

2009년 1월 6일 화요일

가카의 대약진운동

지하철 가판대에서 한국일보를 사보니 1면에 아주 멋진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올해는 완전고용 시대?

가카께서 명령을 하달하니 각 부처들이 경쟁적으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한 모양입니다. 이건 무슨 대약진운동 시기의 농민대회를 보는 것 같군요;;;;


공업에서의 대약진에 앞서 먼저 식량 생산에서 증산 경쟁 운동이 일어났다. 1958년에 ‘최고의 수확을 다짐하는 농민대회’가 열렸다. 과거 밀 수확량은 1에이커 당 500근에 불과했으나 이날 출전한 첫번째 인민공사 대표는 1에이커 당 3,000근을 목표로 내세웠다. 두번째 대표는 4,000근을, 세번째 대표는 5,000근을 다짐했으며 결국 대회에서는 모두 10,000근을 달성할 것을 결의했다.

차문석, 『반노동의 유토피아 – 산업주의에 굴복한 20세기 사회주의』, 박종철출판사, 2001, 244쪽

넵. 물론 결과는 다들 잘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과연, 우리의 가카는 마오주석 부럽지 않은 양반입니다. 가카께서 일자리를 만들라고 하시니 각 부처별로 일자리 만들기 경쟁을 하는군요. 벌써 일자리가 100만개를 넘어섰다고 하니 남조선은 구원받았습니다!

※ 역시 한국일보는 돈 주고 사 볼 가치가 있는 신문입니다. 같은 내용으로 이렇게 재미있는 기사를 뽑아낸다는게 쉬운 일이겠습니까.

2008년 12월 22일 월요일

모병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독일연방군

슈피겔 인터넷판에 독일연방군의 모병문제 악화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한 해군 모병관의 지원병 모집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Wer hat Angst vor Afghanistan?

이 기사에 따르면 독일 국방부장관에 따르면 2008년 상반기 장교 지원자는 2007년의 같은 기간과 비교해 16퍼센트 감소했으며 부사관과 사병은 11% 부족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관후보생 중 10%는 중간에 스스로 그만둘 정도라고 하는군요.;;;; 독일 국방부는 이런 심각한 상황에 대해 TV나 극장 광고를 늘리는 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의 플뢴(Plön)의 한 직업학교를 찾아간 해군 모병관 크뢰거(Torsten Kröger) 중위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크뢰거 중위는 설명회에 참석한 학생들에게 연방군이 제공하는 좋은 급여, 세금 혜택, 낮은 세율, 개인의 자질 개발, 좋은 전망 등을 설명하며 지원을 유도합니다. 기사를 쓴 기자는 연방군의 모병 홍보가 마치 DAX(Deutscher Aktien IndeX) 상장 기업 같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크뢰거 중위는 군에 입대하면 좋은 점으로 해외 파병의 기회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아프가니스탄;;;;

독일연방군에서는 현재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병사들에게 특별수당으로 하루에 92유로3센트씩을 지급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세금이 붙지 않는다군요. 한 달이면 파병수당만 2,760유로9센트이니 원화로는 500만원에 가깝습니다.(덜덜덜)

어쨌건 직장으로서의 군대는 그다지 매력이 없어서 해마다 지원자가 줄어드는 형편입니다. 기사의 마지막 부분에서 크뢰거 중위는 예전 만큼 지원자가 많지 않다고 푸념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몇 달 전에도 독일공군의 조종사 부족사태에 대한 독일언론의 기사를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병력부족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자주 나오는 걸 보면 독일연방군이 어느 정도 고생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한 편이만 모병제로의 전환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습니다. 미국이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한 뒤 인건비 상승과 병력 보충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으며 독일도 90년대 이후 모병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같은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강대국들이 골머리를 앓는 모습을 보니 한국이 모병제로 전환할 경우 국방에 필요한 최소 규모의 군대를 유지할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듭니다.


※ 작년 초 모병제에 대해 몇가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모병제 논의에 대한 짧은 생각

북한, 수입차 관세율을 30%에서 100%로 인상

마이니치 신문에 재미있는 소식이 하나 실렸습니다.

北朝鮮:輸入車関税100%に 市民の車所有はほぼ絶望的

북한이 수입차에 대한 관세를 100%로 인상했다고 합니다.(;;;;) 이런 조치를 취하는 것을 보면 북한 내에도 흔히 생각하는 것 보다는 자동차 수요가 있는 모양입니다. 예전에 합작으로 자동차 공장을 세우는 것을 보고 과연 저것을 북한 내부에서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는데 아무래도 그 보다는 상황이 좋은 모양입니다. 그리고 올해 10월 이전에는 수입차에 대한 관세율이 30%였다는데 이것도 상당히 높았군요.

짤막한 단신 기사이지만 꽤 재미있는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