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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17일 일요일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최근 일 때문에 뵙게 된 선생님께 한국전쟁 시기 이야기를 들었는데 꽤 흥미로운 일화가 있더군요. 전쟁 당시 화성군 송산면 지역에서 자위대장으로 있었던 박상봉이라는 사람은 지역 우익 인사들을 여러명 학살했다고 합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전세가 뒤집혀서 도망가던 중 퇴로가 일찍 끊겨서 월북을 못했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이 사람은 머리를 굴려서 국군에 자원입대 하는 방식으로 검거를 피했다고 합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진짜 그랬던 셈이죠. 그러나 결국 전쟁이 끝난 뒤인 1956년 경찰에 검거되어 죄값을 치르게 됐다고 합니다.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여서 기록이 남아있을까 찾아봤습니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 검색을 해보니 정말 확인이 되네요.




2010년 12월 19일 일요일

경향신문이 어렵긴 어려운가 봅니다

RSS피드를 확인하던 중 경향신문에 이런 글이 올라온걸 봤습니다.

읽으면서 손발이 엄청나게 오글거리더군요;;;;




경향신문의 사정이 어렵다더니 외부 기고도 매우 저급하기 짝이 없군요. 언젠가 통일이 될 테니 미리 NLL을 양보하자는군요. 아주 괴상한 논리이고 황당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통일은 되고 나야 알 일이고 지금은 북한이 다양한 수단으로 공갈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NLL을 양보하면 북한이 꽤나 고마워 하겠습니다? 우리가 NLL을 양보하면 남과 북이 손에 손잡고 하하하 할 수 있을 줄 아는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이 양반은 웰컴 투 동막골 따위의 허접한 평화론을 가진 듯 싶군요.

수십년간 쌓여온 정치적인 갈등이 이따위 저급한 평화론으로 해결될 수 있었다면 진작에 사태가 끝났겠지요.


잡담 하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유사한 구호를 많이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09년 8월 13일 목요일

The Ideological Origins of Nazi Imperialism, 그리고 잡담 약간

Woodruff D. Smith의 The Ideological Origins of Nazi Imperialism을 다시 한번 읽었습니다. 읽은지 꽤 돼서 내용이 가물가물해서 한 번 더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일 때문에 어수선해서 그런지 한 번 더 읽었지만 읽은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최근의 ‘간도떡밥’ 때문인지 재미있게 읽히긴 하더군요.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역시 파국으로 치닫기 직전인 9장의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입니다. 저자인 Smith 또한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는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제국주의적 정서’가 대중에게 광범위하게 파고들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그 대표적인 예로 1920년대에 제국주의적 팽창을 주제로 한 소설들이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는 1926년에 출간된 그림(Hans Grimm)의 소설 “Volk ohne Raum”이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유사한 종류의 소설 중 성공한 작품으로 1926년부터 1935년까지 315,000부가 팔렸다고 하는군요.
이 소설의 저자인 그림은 유럽 외부의 식민지 획득을 옹호하고 Lebensraum을 동유럽에서 찾는 나치에 비판적인 경향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소설은 기본적으로 독일의 팽창을 옹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중에게 Lebensraum 사상이 광범위하게 확산될 수 있는 매개가 되었으며 정치적 보수주의를 확신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 가장 재미있게 읽힌 이유는 위에서도 언급했듯 얼마 전 튀어나온 간도 반환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간도 반환 문제는 상식적으로 봤을 때 말도 안되는 이야기 이지만 대중매체를 통해 주기적으로 재생산 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같은 언론사가 간도 회복 캠페인 같은 짓을 앞장서서 하기도 했지요. 2009년이 지나간다고 하더라도 간도 떡밥은 미래에 다른 형태로 변주되어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문제는 이런 대책 없는 망상을 무책임하게 유포하고 있는 대중매체들입니다. 한국이야 독일 같은 강대국이 아니니 극우 정당이 집권해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개념 없는 민족주의 프로파간다가 판을 치는 것은 단순히 웃어 넘길 일은 아닙니다.

독도와 같이 민감한 문제가 튀어 나올 때 마다 반복되는 정치인들의 호들갑에서 볼 수 있듯 민족주의적인 정서는 정치에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입니다. 그리도 한반도 균형자론 같은 외교적 망신사례에서 볼 수 있듯 외교 정책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업적으로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 싸구려 민족주의를 팔어먹으려는 움직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이것은 어떻게든 대중의 정서에 영향을 끼칠 것 입니다. 물론 한국의 현실을 볼 때 나치 독일처럼 파국적으로 폭주하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2009년 3월 24일 화요일

소외받는 한국일보

어제 있었던 ‘신문에 대한 공적재원 투입 더 늦출 수 없다’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놓친 것은 꽤 아쉽습니다.

저는 노무현 정부 시기의 언론 정책 중에서 ‘신문발전기금’에 대해서는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편입니다. 노무현에 비판적인 쪽에서는 한겨레나 오마이뉴스 같이 친여당적 성향을 보이는 매체를 지원하기 위한 꼼수라고 비난했지만 한국일보 같이 노무현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도 ‘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비교적 공정하게 운영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민주당 측이 정파적 이해관계에서 한겨레와 경향에 대한 지원을 주장하는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현재로서는 언론사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에 일정 부분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어제 토론회를 참가하지 못했기 때문에 최문순 의원의 홈페이지에서 자료집을 다운받았습니다. 자료집에 실린 발제문은 신문발전위원회의 신학림 위원이 썼는데 역시나 언론노조 위원장 출신답게 조중동에 대한 비난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한겨레와 경향을 띄워주고 있습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발행 부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족벌 신문들의 신뢰도는 신문이나 언론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급격히 떨어지고 있고, 나머지 신문들은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접근(access)권을 판매 및 배달 과정에서 원천적으로 차단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2008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촛불 집회를 통해 신문과 신문 업계에도 작지만 놀랄만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에 대한 신뢰도의 폭발적인 증가가 그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신문 전체의 신뢰도 하락 추세가 멈추거나 상승으로 되돌아갈 것 같지는 않다.

신학림, ‘신문에 대한 공적재원 투입 더 늦출 수 없다’, 2009

이런 식의 편들기는 정말 낮 뜨겁습니다;;;;

신학림은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구독자들은 자신들이 구독하는 신문에 대해 높은 신뢰도를 가지고 있지만 조중동의 구독자들은 자신들이 구독하는 신문에 대해 신뢰도가 낮다는 점을 들어 조중동을 깎아 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뒤집어 보면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구독층은 맹목적으로 해당 신문을 믿는다는 이야기도 되기 때문에 별로 좋은 이야기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한국일보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었습니다. 어쩌다 한국일보 이야기를 한다고 해 봐야 신문시장의 경쟁을 촉발했다는 부정적인 이야기 뿐이더군요. 뭐랄까. 조중동처럼 악의 축이 되어 관심을 받는 것도 아니고 한겨레나 경향처럼 ‘정론지’로 떠받들어 지는 것도 아니고;;;; 아마 최문순이나 신학림과 반대점에 서있는 한나라당 쪽에서도 반대되는 시각을 가지고 있을 뿐 한국일보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을 듯 싶습니다;;;; 한국일보가 비교적 보수적 성향이긴 하지만 정파성은 조중동이나 한경에 비해 옅은 편이지요. 사실 그나마 균형을 잘 잡고 있는 신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극단의 양 쪽에 있는 쪽에서는 박쥐 정도로 보는 모양입니다.

한국일보를 즐겨 보는 입장에서 매우 씁슬하군요.

2007년 4월 2일 월요일

시청 앞의 충무공 동상?

미국인 기부금으로 충무공 동상을 서울시청 앞에 건립할 예정

이대통령은 현 서울 PX관리인 윌리암 버든씨가 약 5,000불의 예산으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건립하겠다고 정부에 자진 요청하여 왔기에 그렇지 않아도 정부로서는 충무공 동상건립을 계획 중이던 바, 이를 쾌락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정부 및 요로에서는 충무공 동상건립을 추진키 위하여 대한민족문화협회를 조직 결성하고 동 협회에서 일체를 추진하게 되었다 하며, 조각가 윤효중(尹孝重)씨가 동상을 조각하기로 되었다는데 이미 모형이 완성되었고 오는 11월 말까지에 건립을 완료할 것이라고 한다.

동상 건립장소는 시청 앞 로터리이며 오는 30일에 기공식을 거행할 예정이라 한다. 그리고 동 동상은 높이 31척이며 동양에서 최대의 동상이라고 하는데 총 공사비는 약 3,000만원이 걸릴 것이라 한다. 윌리암씨는 금년 32세의 젊은 실업가로서 씨의 독지(篤志) 에 일반은 크게 감격하고 있다.

경향신문 1950년 3월 18일자, 자료 대한민국사 16권 690-691쪽에서 재인용

만약 수령님이 6월 25일에 멍청한 짓을 하지 않았다면 충무공 동상은 서울 시청 앞에 있었겠군요. 나름대로 명물이 됐을 듯 싶습니다. 아마도 충무공 동상을 중심으로 시청 광장이 조성됐을 지도 모르지요.
1950년도 공군 예산이 2억5000만원 이었으니 충무공 동상 건립에 3000만원이 소요된다는 것은 그만큼 충무공 동상 건립이 중요한 문제로 간주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