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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3일 토요일

최근의 정세를 보고 있자니 생각나는 글

요즘 돌아가는 정세를 보니 작년에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재일교포인 장박진 박사의 『허구의 광복: 전후 한일병합 합법성 확정의 궤적』 (경인문화사, 2017) 결론 부분입니다. 매우 인상적으로 읽었던 부분이라 해당 내용을 발췌해 봅니다.

"그러나 2005년 노무현 정권하의 한국 정부는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안고 왔던 과거사 관련의 문제들을 재검토하는 과제들의 일환으로 한일회담 공식 기록을 공개하고 아울러 국가가 관여한 비인도적인 범죄 행위에 따른 개인청구권 문제는 한일협정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이것은 1990년대 초부터 이미 최대의 현안이 되었었던 일본군 위안부의 문제 등을 주로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 일본에 대한 감정의 골이 깊었던 한국 사회는 이 결정을 기본적으로 환영했다. 
그러나 국민감정이야 어쨌건, 이 판단은 한일 청구권 교섭의 실태를 객관적으로 반영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 한일 간에서 청구권 문제의 해결 원칙을 정한 1965년 4월 3일자의 합의 도출 시, 한국정부는 협정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범위를 전후에 새롭게 생긴 재산권에 기초한 문제에만 한정하는 것에 일찍 동의했다. 역으로 말해 종전 전에 이미 발생했었던 인적 피해에 기인한 청구권 문제에 관해서는 그것이 협정으로 해결되는 범위에 들어간다는 것에 일찍이 동의한 셈이었다.
(중략) 
그럼에도 2005년 한국정부는 미해결 과제 여하의 기준을 '느닷없이' 제시했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 스스로가 진행한 교섭에 대한 엄격한 검증을 분명히 결여한 것이었다. 더구나 그 결정까지 이미 4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있었다. 미해결 과제의 상징이 되었던 위안부 문제 역시 1990년대 초에는 이미 초미의 관심 대상으로 대두되어 있었다. 그에 따라 그 평가를 막론하고 사실상 청구권 협정을 다시금 보완하는 사업으로서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에 의한 추가 대응이 취해졌다. 이는 물론 직접적으로는 일본 측이 운영 책임을 지고 진행한 사업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성격상 설립이나 운영에 관해서는 한일 두 정부 간에 조정이 이루어졌다. 한국정부는 이런 조정 과정에서도 위안부 문제가 협정 대상에 포함될 것인가라는 각도에서 문제에 접근한 것은 아니었다. 엄격한 검증을 필요로 하는 학문적인 관점에서 평가한다면 2005년의 결정은 지극히 정서적인 대일 여론 동향에 말려든 포퓰리즘에 좌우된 자의적인 판단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그것은 대외적으로 대한민국 역대 정부의 일관된 입장에 입각한 것은 아니었다. 
(중략) 
한국정부가 과거 한일 청구권 교섭에서 스스로가 진행한 교섭의 실태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고 경제적인 보상 문제만큼 그 효력에 따라 국내에서 처리하도록 협정을 준수했었더라면 그 이외에 각 피해자 개인이 요구하는 사죄의 문제도, 관련 피해의 기록이나 교육 실천 문제도 일본에게 보다 강한 발언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실제 청구권협정은 경제적인 문제만을 처리한 것이지, 사죄의 문제 기타까지 '해결'시킨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국정부가 과거의 교섭 경위도 그 후 관련 문제에 관해 일본 측과 일정한 정도 조정을 거듭해 왔었다는 사실과의 정합성도 고려하지 않은 채, 2005년의 결정을 내린 결과 과거사를 둘러싼 흐름은 오히려 후퇴했다. 실제 협정의 효력을 부정하는 형식으로 문제를 제기한 결과 일본과 심각한 갈등을 빚게 된 위안부 교섭 역시 사실상 향후의 입막음의 대가로서 받게 된 엔화 10억의 신규 출자로 인해 '불가역적'으로 끝나게 되어 버렸다. 
(중략) 
그러나 벌어진 일을 그냥 탄식만 해도 소용은 없다. 결국 남은 것은 문제의 포기만이다. 비록 잃어버린 신뢰의 회복에는 장시간 필요하지만 지금부터라도 개인청구권 문제는 청구권협정의 효력에 따라 국내에서 처리한다는 원칙으로 꾸준히 실천해 나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 꾸준한 실천을 통해 일본에 대해 신뢰감을 주고 병합의 비합법성을 확인해도 추가적인 청구권 문제는 일절 생기지 않는다는 확신을 줘 나가도록 할 길 이외에 대처 방안은 없다. 국내에서는 이와 같은 '나약한 대응'에 불만을 안고 욕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클 것이다. 그러나 감정 어린 즉흥적인 대응이 결국 목적으로 하는 바를 이루지 못할 뿐더러, 보다 많은 것을 잃게 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한국 사회는 늘 가슴에 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좋든 나쁘든 간에 외교에는 항상 자기의 힘으로는 통솔하지 못하는 상대가 존재한다. 그러니만큼 외교는 애초부터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만 얻어낼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
장박진, 『허구의 광복: 전후 한일병합 합법성 확정의 궤적』 (경인문화사, 2017) 631~636쪽.

2011년 1월 24일 월요일

『갈등하는 동맹』의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 대한 서술

2010년 봄에 역사비평사에서 낸 『갈등하는 동맹 - 한미관계 60년』을 읽는 중 입니다. 책이 나왔을 때 한번 읽어보라는 이야길 듣고 사놓긴 했는데 달력이 완전히 넘어가고 나서야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원래 『역사비평』에 연재된 글들을 정리해서 단행본으로 엮은 것인데 이승만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까지의 한미관계를 간략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진보적인 학계가 한미관계에 대해 가진 시각을 살펴보는데 도움이 되는 저작입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문제는 가까운 현재를 보는 시각인 것 같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기를 맡은 필자는 박건영과 정욱식이고 노무현 정부 시기를 맡은 필자는 박선원인데 특히 박선원은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안보전략비서관이었습니다. 애시당초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한 인물들을 필자로 선정한 셈이지요. 이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한미관계의 갈등은 물론 북핵위기의 원인을 모두 부시 행정부와 네오콘 집단에 돌리고 있습니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경직성과 전략적 오판이라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겠습니다만 작년 말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에서 드러난 것 처럼 모든 책임을 부시행정부와 네오콘에게 전가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 태도 같습니다.

특히 이런 점은 제2차 북핵위기에 대한 정욱식과 박선원의 서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정욱식과 박선원은 부시 행정부와 네오콘이 북한의 우라늄 계획에 대한 정보가 불완전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압박을 가해 북핵위기를 고조시켰다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2010년 말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에서 드러난 것 처럼 북한의 우라늄 계획은 장기간에 걸쳐 치밀하게 진행된 것 입니다. 특히 박선원의 글은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변호하기 위해 쓰여졌기 때문에 더 불편합니다. 실패한 정책에 대한 변명과 책임전가처럼 불편한 것은 없지요.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한 서술을 제외하면 개설서로 무난하다고 생각됩니다.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분들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2010년 5월 24일 월요일

고종석의 노무현에 대한 평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 어제 있었던 노무현 1주기 추모행사가 나왔다. 벌써 1년이나 지났다니 시간은 정말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노무현의 인간적인 매력은 어느정도 인정하지만 정치인으로서는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입장인지라 노무현의 유산을 계승하겠다는 친노정치인들의 행각에는 코웃음만 나왔다.

며칠전 광화문에 갔다가 노무현을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로 묘사한 그림을 보고 어이가 없었던 기억이 난다. 노무현의 지지자들은 노무현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면서 어떤 역사적 의미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글쎄올시다. 노무현 재임기는 훗날의 역사에서 지나가는 에피소드 정도나 되면 다행일 것이다.

노무현이 퇴임하기 직전 한국일보의 고종석은 '노무현 생각'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노무현에 대해 아주 재미있는 평가를 했다. 결론 부분만 조금 인용해 보자.


노무현과 노무현 시대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 분명히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조차, 노무현이 실패한 대통령이었음은 엄연하다.


100% 공감이다.

2010년 2월 8일 월요일

대북정책에 대한 융통성 있는 접근에 대한 희망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서 한마디. 제가 보수적인 경향이 있다 보니 제 블로그에 들러주시는 분 중에서 저를 한나라당 지지자로 오인하시는 사례가 종종있습니다. 제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저는 (특히 외교안보정책에 있어) 보수적인 민주당 지지자입니다. 김대중 정부 후반기와 노무현 정부 전기간의 외교안보정책에 대해서 극도로 부정적이긴 합니다만 한나라당 지지자는 아닙니다. 강인덕 같은 보수적인 인사를 통일부 수장에 임명하는 등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대북정책을 시사했던 김대중 정부 초기에는 꽤 기대감이 크기도 했지요.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원래는 작년 연말에 쓰려고 했는데 제가 기억력이 좋지 않다 보니 좀 많이 밀리게 됐군요.

언제부터인가는 모르겠지만 정치적인 갈등이 심화되면서 개별 정당은 물론 정당 지지자들 간에도 대립각이 극단적으로 날카로워진다는 느낌입니다. 상대 정당, 정파의 정책은 무조건 틀린 것이고 내가 지지하는 정당,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의 주장만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라는 주장이 횡행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 입니다. 저와 같은 당을 지지하시는 분들은 불쾌하시겠지만 김대중의 대북정책이 무조건 옳은 것이며 그것을 계승해 발전시킨 노무현도 당연히 옳은 것이라는 주장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됩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대북정책이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북한의 1차 핵실험으로 명백해 졌으며 민주당-열린우리당이 집권한 10년 동안 북한은 남한의 유화적인 정책에 상응하는 대응을 사실상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제한적인 이산가족 방문이나 제한적인 정치사회단체들의 활동같은 통일쇼를 예로 들진 맙시다) 한계점이 명백히 드러난 상황에서도 한나라당의 공세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느라 정책에 대한 반성을 거의 하지 못한 점은 부메랑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북한의 핵실험 이후에는 보수층의 파상적인 공세에 무기력하게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화정책 만으로는 북한에 대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이 드러난 이후에도 개혁진영은 김대중과 노무현의 대북정책을 옹호하는데 주력했지만 이것은 한나라당에 비해 훨씬 적은 개혁진영의 고정지지층을 결속시키는 역할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습니다.

물론 저도 대북유화정책이 조건만 갖춰진다면 충분한 효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 통일을 고려하고 있다면 북한과의 교류 필요성을 절대 부정하지는 못 할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이 핵실험을 공개적으로 실시하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실험을 하는 마당에 그것은 미국과 일본을 겨냥한 것이다,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 하는 식으로 어설픈 물타기를 한다면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참으로 낯뜨거운 것은 노무현 정부당시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했을 때는 미국의 압박정책이 문제라고 합리화하기 바쁘던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들어와 북한이 2차 핵실험을 하자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하는데 여념이 없었다는 것 입니다. 비슷한 사례는 셀수 없이 많습니다. 2002년 북한과의 교전으로 한국 해군이 많은 사상자를 냈을 때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을 옹호하느라 바쁘던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에서 금강산 관광객이 한명 살해당했을 때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하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지요. 북한이 유화정책을 해도 도발하고 강경정책, 또는 무시하는 정책을 해도 도발한다면 도데체 유화정책이 무슨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비극적인 것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파의 대북정책을 맹목적으로 옹호하기 위해서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 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반성적인 자기성찰이란 불가능해 지고 융통성마저 잃게 됩니다.

만약 북한이 개혁진영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준다면 대북유화정책을 굳건히 견지해 나간 것이 결과적으로 큰 이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 외교안보정책에 있어 개혁진영이 주도권을 쥐는 상황도 충분히 가능할 것 입니다. 하지만 반대되는 경우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럴 경우 정치적으로 체력이 약한 개혁진영이 입게될 타격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1989~1990년 동독이 붕괴될 당시 서독의 사민당(SPD)는 동독과의 점진적 통일을 주장했지만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치닫자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반면 기민-기사당 측은 동독의 혼란이 가속화 되자 동방정책의 틀을 깨고 적극적인 흡수통일로 노선을 전환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사민당은 동방정책의 연장선 상에서 온건한 정책을 고수한 까닭에 동독의 붕괴를 일관적으로 추진한 기민-기사당이 외교안보적인 승리를 거머쥐는 사태에 무기력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미래는 불확실 한 것 입니다. 민주당 측이 원하는 것 처럼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가 연착륙 할 가능성도 있지만 그와는 반대로 북한이 체제유지를 고수하다가 갑자기 붕괴하는 급변사태를 맞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개혁진영이 북한에 대한 유화정책을 고수한 것이 치명적인 부메랑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지지기반이 한나라당에 비해 취약한 민주당과 그 밖의 진보정당들이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와 흡수통일이라는 상황이 닥칠 경우 한나라당에게 수동적으로 말려들어가고 결과적으로 외교안보분야에서 장기적으로 주도권을 상실하게 되는 것 입니다.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보수정당에게 수동적으로 말려들어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유를 마련했으면 하는게 저의 작은 기대입니다.

2009년 5월 13일 수요일

봉하마을에 가서 보물찾기를 해보는 것도 좋겠군요

뉴스를 보던 중 재미있는 기사가 하나 보이더군요.

盧 "명품시계, 아내가 버렸다" (연합뉴스)

봉하마을 어디인가에 1억짜리 시계가 굴러다니고 있는 모양입니다. 봉하마을에 가는 분들은 보물찾기를 해 보는 것도 좋겠군요.

2009년 3월 24일 화요일

소외받는 한국일보

어제 있었던 ‘신문에 대한 공적재원 투입 더 늦출 수 없다’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놓친 것은 꽤 아쉽습니다.

저는 노무현 정부 시기의 언론 정책 중에서 ‘신문발전기금’에 대해서는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편입니다. 노무현에 비판적인 쪽에서는 한겨레나 오마이뉴스 같이 친여당적 성향을 보이는 매체를 지원하기 위한 꼼수라고 비난했지만 한국일보 같이 노무현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도 ‘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비교적 공정하게 운영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민주당 측이 정파적 이해관계에서 한겨레와 경향에 대한 지원을 주장하는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현재로서는 언론사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에 일정 부분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어제 토론회를 참가하지 못했기 때문에 최문순 의원의 홈페이지에서 자료집을 다운받았습니다. 자료집에 실린 발제문은 신문발전위원회의 신학림 위원이 썼는데 역시나 언론노조 위원장 출신답게 조중동에 대한 비난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한겨레와 경향을 띄워주고 있습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발행 부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족벌 신문들의 신뢰도는 신문이나 언론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급격히 떨어지고 있고, 나머지 신문들은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접근(access)권을 판매 및 배달 과정에서 원천적으로 차단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2008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촛불 집회를 통해 신문과 신문 업계에도 작지만 놀랄만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에 대한 신뢰도의 폭발적인 증가가 그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신문 전체의 신뢰도 하락 추세가 멈추거나 상승으로 되돌아갈 것 같지는 않다.

신학림, ‘신문에 대한 공적재원 투입 더 늦출 수 없다’, 2009

이런 식의 편들기는 정말 낮 뜨겁습니다;;;;

신학림은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구독자들은 자신들이 구독하는 신문에 대해 높은 신뢰도를 가지고 있지만 조중동의 구독자들은 자신들이 구독하는 신문에 대해 신뢰도가 낮다는 점을 들어 조중동을 깎아 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뒤집어 보면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구독층은 맹목적으로 해당 신문을 믿는다는 이야기도 되기 때문에 별로 좋은 이야기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한국일보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었습니다. 어쩌다 한국일보 이야기를 한다고 해 봐야 신문시장의 경쟁을 촉발했다는 부정적인 이야기 뿐이더군요. 뭐랄까. 조중동처럼 악의 축이 되어 관심을 받는 것도 아니고 한겨레나 경향처럼 ‘정론지’로 떠받들어 지는 것도 아니고;;;; 아마 최문순이나 신학림과 반대점에 서있는 한나라당 쪽에서도 반대되는 시각을 가지고 있을 뿐 한국일보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을 듯 싶습니다;;;; 한국일보가 비교적 보수적 성향이긴 하지만 정파성은 조중동이나 한경에 비해 옅은 편이지요. 사실 그나마 균형을 잘 잡고 있는 신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극단의 양 쪽에 있는 쪽에서는 박쥐 정도로 보는 모양입니다.

한국일보를 즐겨 보는 입장에서 매우 씁슬하군요.

2008년 9월 23일 화요일

오늘 구입한 책

저녁에 서점에 들렀다가 책을 한 권 샀습니다.


표지가 멋져서(!) 집어들었는데 목차와 본문의 몇몇 부분을 대략 훑어 보니 꽤 재미있어 보이더군요. 돌아오는 버스에서 조금 더 읽었습니다. 대략 훑어 보니 저자가 아시아 문제에 있어서 민족주의의 강화를 가장 우려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특히 한국 부분에서는 노무현 정부 들어 부쩍 높아진 한국의 민족주의 문제가 한-미-일 삼각동맹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꽤 주목하고 있더군요. 대표적으로 2005년에 있었다는, 한국이 미국에게 한미동맹의 가상적으로 '일본'을 넣자고 요구한 민망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헉;;;; 브레진스키의 '거대한 체스판'을 재미있게 읽은 경험이 있는데 이 책은 그 책 보다는 조금 딱딱해도 비슷하게 재미있어 보입니다.

2007년 8월 29일 수요일

나는 통일 정치쇼의 들러리였다 - 권오홍

가끔가다가 한심한 제목을 달았지만 내용은 상당히 재미있는 책이 있습니다. 「나는 통일정치쇼의 들러리였다」역시 제목은 매우 한심하지만 내용은 정반대인 책입니다. 출판사도 동아일보사이기 때문에 보수 언론을 혐오하시는 분들은 편견을 가지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제목과 출판사만 보고 읽지 않기에는 아까운 책 입니다.

(약력만 가지고 판단하면) 책의 저자인 권오홍씨는 대북사업에 초창기부터 관여한 이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현장 전문가의 눈으로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한 것이기 때문에 이 책은 상당한 가치가 있습니다. 저자는 참여정부의 대북정책, 특히 지난 2006년의 핵위기부터 이해찬 총리의 방북에 이르기까지 막후에서 있었던 북한과의 협상과정을 회고하면서 그 과정에서 있었던 양측(주로 한국정부)의 과오에 대해 지적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책 초반에 나오는 이종석 통일부장관이 물러난 사정에 대한 설명입니다. 저자는 북한측의 평가를 빌어 이종석 장관을 이렇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평양에서 이종석이란 한 인물을 두고 나온 평가는 여러 갈래다. 결론은 “그는 학자(아마추어)다”라는 말이다. 그쪽 식으로 볼 때는 “꾼”이 아닌 사람이 처리하기에는 남북한 양자의 관계가 그리 가볍지 않다는 인식이 있다. 그는 서울에서 노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이 분야에서 거의 무소불위의 권능을 보였다. 그러나 고장난명(孤掌難鳴)이었다.(39쪽)

이종석 전통일부장관이 현실감각이 다소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은 그 동안 간간히 나오던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품고 있었는데 이렇게 직설적으로 지적하는 사람도 있는 것을 보니 내부적으로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였던 모양입니다.

이 밖에도 저자는 안희정으로 대표되는 대통령 심복들의 능력 부족과 무지함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현 정부의 실세들이 자신의 능력 부족을 깨닫지도 못하면서 의욕 과잉으로 일만 벌이는 통에 대북정책이 엉망으로 표류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이화영의원(현 민주신당)에 대한 비난은 굉장히 신랄합니다.

결국 안희정이나 이화영, 이호철을 통해서 본 그들의 세계관, 시대관, 한반도관, 나아가 처세하는 방식은 과거의 정치인보다 더 몹쓸 여지가 많다는 게 개인적 결론이다. 그들의 아마추어리즘이 지난 몇 년 동안 국가 정책의 저변에 흐른 게 아니었나 싶어 마음 한 편이 씁슬하다.(279쪽)

이 책에서는 정치 흥행을 목표로 한 기존의 대북정책은 남북관계 개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며 냉철하게 계산된 경제중심의 협력만이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개인의 회고록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주관적인 면이 강하긴 하지만 흥미로운 내용이 매우 많아 충분히 읽을 만 한 책 입니다. 물론 노빠 같은 부류들은 동아일보사에서 나왔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이 책을 불신할게 뻔하긴 합니다만.

저자는 앞으로 김대중 정부 시기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책을 낼 계획이라고 하는데 이것 또한 상당히 기대가 되는 책 입니다.

2007년 1월 8일 월요일

한국의 모병제 논의에 대한 짧은 생각

노무현 대통령의 “군대가서 썩는다”는 발언은 지난 연말 최고의 히트작 이었습니다. 현직 대한민국 최고의 강태공 노무현 대통령답게 이 발언을 통해 수많은 월척을 낚았지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구조적으로 한계를 보이기 시작한 한국의 “국민개병제”에 대한 대안으로 “모병제”가 꾸준히 논의되고 있는 와중에서 튀어 나왔다는 점에서 더 흥미 있었습니다.

한국의 “모병제”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모병제에 대해 더 긍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점 입니다. 그리고 더 흥미로운 점은 이 “진보적”인 사람들이 내세우는 논의는 미국의 자유주의자들의 논의와 유사하다는 점이지요.
닉슨의 참모 중 하나였던 밀튼 프리드먼은 시장경제의 원리를 가지고 징병제를 공격했던 대표적 인사입니다. 프리드먼은 “국민개병제”로 만들어진 군대는 노예의 군대라고 조소하기도 했습니다.(이건 프리드먼이 국민 개병제의 정치적 의미를 모르거나 알면서도 무시했다는 이야기죠)
당시 모병제에 찬성하는 시장주의자들은 모병제를 실시하더라도 육군이 필요로 하는 병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으며 군대의 효율도 보장될 것이라고 선전했습니다. 그러나 미군은 모병제를 실시한 직후부터 심각한 인건비 상승과 효율 저하에 시달렸습니다. 1968년 미군은 320만명의 병력에 320억달러(국방비의 42%)의 인건비를 지출했지만 징병제 폐지 2년차인 1974년에는 병력 220만에 439억달러(국방비의 56%)의 인건비를 지출했습니다. 직업군인의 증가로 이에 필요한 부대비용(특히 가족 부양에 필요한)이 급증했고 전반적인 급여가 증가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정치적 논의가 활발한 유럽의 경우는 “진보” 또는 “좌파”로 자처하는 인사들이 “국민개병제”를 옹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J. Erickson의 기념비적인 저작, The Soviet High Command는 혁명 초기 소련에서 전개된 국방제도의 골격에 대한 공산당내 좌우파의 논의를 잘 다루고 있습니다. 소련의 공산당 좌파들은 9차 전당대회에서 “전문화된 군대”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트로츠키에 대해 군사력이 민중으로부터 괴리될 경우 그 군사력은 민중을 압제하는 도구가 된다고 주장하며 민병대 체제를 소련 군사력의 근간으로 삼을 것을 주장했습니다.
진보적 지식인들이 모병제나 전문적인 군인 집단에 거부감을 가졌던 이유는 19세기 초 까지도 용병으로 이뤄진 직업군대가 민중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던 유럽의 역사에 기인합니다. V. G. Kiernan이 여러 사례를 들어 잘 지적했듯 절대 왕정시기 주로 외국인으로 만들어진 용병군대는 국민을 억압하는 도구였습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 고용주인 부르봉 왕가에 충성하며 시민들을 상대로 최후까지 항전한 스위스 용병들의 이야기는 슬프기도 하지만 역으로 뒤집어보면 용병군대가 얼마나 절대권력의 이익에 충실히 복무하면서 국민을 짓밟았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절대왕정의 성립과정에서 중앙 권력에 의한 무력 장악이 중요한 과정이었다는 것은 정치사가들의 공통적인 견해이죠. 유럽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이런 역사적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국민개병제에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장 경제 원리에 따라 모병제를 도입한 미국의 군대가 과연 모든 조건에서 잘 돌아가고 있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닙니다.
닉슨은 선거운동 기간에 모병제가 사실상의 용병제라는 국민개병제 옹호자들의 주장에 대해 미국의 모병제는 미국 시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현재 미국은 모병율 저하로 시민권이 없는 영주권자까지 모병 범위를 확대하고 있으며 날이 갈수록 병사 일인당 소요되는 인건비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비용 대 효용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지요. 미국은 꾸준히 모병에 따른 인건비 증가와 병력 확충의 어려움에 따른 전쟁 수행능력 부족을 겪고 있습니다.
모병제로 움직이는 이라크의 미군은 징병제로 움직였던 40년 전 베트남의 미군과 마찬가지로 비정규전 하에서 어려움에 봉착해 있습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교리와 전술의 문제입니다. 모병제로 만들어지는 오늘날의 미군은 분명히 강력하고 매우 우수한 군대입니다. 하지만 이라크에서는 여전히 40년 전 징병제 시절과 마찬가지의 문제에 봉착해 있습니다. 모병제가 만능이 아님을 직접 보여주고 있는 것 입니다. 모병제로 만들어진 군대도 적절한 교리와 전술이 없다면 국민개병제로 이뤄진 군대만도 못 한 것이 현실입니다. 즉 뒤집어 말하면 합리적으로 운영 되고 적절한 교리와 전술이 있다면 국민개병제로 만들어진 군대도 충분히 잘 움직일 수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지금 한국의 국민개병제가 수많은 문제점을 노출 시키고 있고 비능률적이라고 혹평 받는 것은 운영 방식이 잘못된 것이지 국민개병제가 모병제보다 나쁜 제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재 한국은 국민개병제로 인한 여러 가지 폐해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굳이 제가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많은 분들이 군대를 다녀오셨기 때문에 그 폐해를 경험적으로 잘 아실 것 입니다. 하지만 폐해가 많다고 하더라도 모병제 말고도 현재의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은 더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칭 진보들은 모병제냐 징병제냐의 단순한 이분법적 논지만 전개하고 있습니다. 답답할 따름입니다.

사족 하나 더. 모병제로 이뤄진 군대가 국민개병제로 이뤄진 군대보다 더 우수하다면 극도로 우수한 전투력을 보여줬던 2차대전기의 독일 국방군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핸슨 볼드윈 같은 초기의 미국 모병제 지지자들은 국민개병제의 비효율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독일의 “전격전”을 그 예로 들었습니다. “전격전”을 수행한 독일의 군대는 국민개병제로 만들어진 군대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 웃기는 일 이지요.

국내에서 진보로 자처하는 인사들의 모병제 논의가 단순히 겉멋만 잔뜩 든 언어유희에 불과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비단 저 혼자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칭 진보들이 시장논리를 만병통치약인 양 전면에 내세우고 시민의 정치적 권리와 군사력이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무관심 한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물론 시장의 논리도 중요하며 많은 경우 사회에 유익한 작용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코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